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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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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김택술(金澤述, 1884~1954)은 일제강점기 항일(抗日) 운동가이자, 유학자, 문장가, 교육자로서 당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특히 당대 저명했던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의 고제자(高弟子)로서 도학(道學)과 문장(文章)이 빼어났다는 칭송을 받았다.『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에, "하늘에서 준 재능이 높고 밝으며, 재주와 성실함은 남들보다 뛰어났다. 간재 전우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학문이 정밀하고 깊으며, 문장은 일찍이 완성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시묘를 3년 동안 하였다. 글을 짓고 후학을 길렀으니 한 시대 스승의 표상이 되었다. 일찍이 최익현을 따라 목숨을 지켜 도를 잘 실천하는 의를 강설하였다. 공은 경술년 합방 이후 왜적이 공의 효행을 듣고 금잔을 하사하여 포상할 적에, 이를 물리치고 받지 않았다. 이에 왜적으로부터 온갖 위협을 받았으나 현명하게 대처하고 행동했다. 왜적의 칙령에 죽음을 맹세하고 따르지 않음은 물론 배급한 식량마저도 물리쳐 먹지 않았다. 태산(정읍 이평면 산명) 위 황량한 산등성이 위에 흙집을 짓고 솔잎을 먹으면서 '금화곡수양아(金華哭首陽餓- 금화를 통곡하며 수양산에서 은거하던 백이처럼 굶어 죽겠다.)'라는 여섯 글자를 부절로 삼아 정절로써 삶을 마쳤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보면, 김택술은 누구보다도 문학적 재능이 남달랐고 학문적 깊이도 있었으며, 효심도 지극했고 의로움을 지녀 항일운동에도 동참했으며, 지조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편고동문검공(徧告同門僉公)〉에서 "절의(節義)는 도학(道學)의 울타리이고, 도학은 절의의 집과 방이다. 도학을 하지 않고 절의가 있는 사람은 있지만, 도학을 하면서 절의가 없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한 바 있으니, 그의 가치관이 도학과 절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1964년, 문인과 유림들은 김택술의 도덕을 기념하기 위해 출생지인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에 창동서원(滄東書院)을 건립해 향사(享祀)하였다. 이 서원은 1975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8호로 지정되었다.
2. 행력김택술의 본관은 전라북도 부안(扶安)이다. 조고(祖考)는 김석규(金錫圭)이고, 선고(先考)는 벽봉(碧峰) 김낙진(金洛進)이며, 선비(先妣)는 전주 최씨(全州崔氏)이다. 1884년(고종 21년) 6월 6일 정읍군(井邑郡) 이평면(梨坪面) 창동(滄東)에서 태어났다.자(字)는 종현(鍾賢)이고, 호(號)는 후창(後滄)이다. '후창'이란, 간재선생이 지어준 것이다. 중봉(重峯) 조헌(趙憲, 1544~1592)이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의 일을 계승한다는 의미로써 호를 '후율(後栗)'이라고 지었는데, 이를 모방하여 남송(南宋) 주자(朱子, 1130~1200)의 뒤를 잇겠다는 의미로 후창이라 한 것이다. 곧 주자의 고향이 창주(滄洲)이므로 창주병수(滄洲病叟)의 호와, 창주정사(滄洲精舍)가 있었으니 주자의 뒤를 잇겠다는 의미로 지은 것이다.1988년(고종 34) 14세에는 감시(監試)에 응하고, 남은 노잣돈으로 『문선(文選)』, 『사문유취(事文類聚)』, 벼루 등을 구매하여 귀가하는 일도 있었다. 이로 보면, 그의 학문적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이듬해, 15세가 되던 해에는 성주 이씨(星州李氏)를 부인으로 맞이하였다.1900년(고종 37) 17세, 천안(天安) 금곡(金谷)에 가서 간재 전우를 스승으로 모시는 예를 행하였다. 『후창선생속집(後滄先生續集)』의 〈선고벽봉군가장(先考碧峰君家狀)〉에 따르면, "경자년 가을, 전선생께서 변산에 있는 월명암에 머물러 계셨으니, 부친이 나에게 명하여 선생을 가서 알현하라고 하였다. 선생께서 나를 아껴 몸소 부친을 방문하였다. 사람들이 나에게 간재선생을 스승으로 모실 것을 청하라고 권하였는데, 부친께서는 집에서 스승을 청하는 것은 성의가 없고 또 예가 아니라고 하였다. 이에 날을 가려 폐백을 갖추고 사백여 리를 넘어 천안 산중에 있는 간재선생을 배알하고 연분을 청하도록 하였다."라고 하였다. 실제 몇 달 후, 김택술은 천안에 찾아가 간재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다.1906년(고종 43) 23세, 정읍(井邑) 태인(泰仁)에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의 의병진중(義兵陣中)을 방문하여 창의군(倡義軍)을 위로하고 간재선생의 서신(書信)을 전달하였다. 이듬해에는 스승의 언행을 마음에 간직하여 본받기 위해 〈서신록(書紳錄)〉을 기록하였다.1908년(순종 2) 25세, 일제의 지배 아래 있는 육지를 떠나 섬으로 들어가겠다는 신념으로 왕등도(王登島)에 들어가 거처할 섬을 찾다가 8, 9월 계화도(界火島) 장자동(壯子洞)에 머물렀다. 김택술 또한 계화도를 방문하여 간재선생의 문고(文藁) 편집과 교정에 참여하였다. 1912년에는 일제의 검열이 덜 미치는 북간도(北間島)를 두고'유학자들이 참으로 살만한 땅'이라고 하며, 부모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북간도로 가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였다.1915년 32세, 일제가 은사금(恩賜金)을 보낸 것을 물리쳤다. 이듬해, 부친 벽봉선생의 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侍墓)를 하였다. 1918년 35세에 『노화동이고(蘆華同異攷)』를 지었다. 이는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과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1792~1868)의 학문이 자연스럽게 부합한다는 주장을 전집(全集) 내용을 비교하고 서로 다른 점을 추출해서 비판하기도 했는데, 이에 간재 선생은 김택술의 이 저술이 세교(世敎)에 보탬이 된다고 극찬하기도 했다.1922년, 39세에는 호남 유림으로 추대되어 대표로 충청북도 청주(淸州)의 화양동(華陽洞, 현 충북 괴산)을 방문하여 〈화양동유록(華陽洞遊錄)〉을 지었다. 화양동에는 만동묘(萬東廟)뿐만 아니라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묘가 있어 기호(畿湖) 유림들의 성지였기에 유학자 김택술이 가지는 의미는 컸다. 유학의 맥을 이어야 한다는 간재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1925년 정읍 만종재(萬宗齋)에서 강학을 시작하였다.〈강규(講規)〉, 〈교과규칙(敎課規則)〉, 〈시고규칙(試考規則)〉 등을 지어 교육과정과 운영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특히 〈교과규칙〉을 살펴보면 반(班)을 학업의 정도에 따라 갑·을·병·정으로 분반하였으며, 반마다 과목과 교재를 규정하였다.1924년 41세, 동문수학하던 석농(石農) 오진영(吳震泳, 1868~1944)이 간재선생의 유훈(遺訓)을 어기고 총독부(總督府)의 승인 아래 문집 『간재사고(艮齋私稿)』을 추진한 일이 발생하자, 현동묘하(玄洞墓下)에서 동지 59명과 함께 그를 성토하였다. 일찍이 간재선생은 문집 간행에 대하여 "왜놈들이 이 땅에 있는 한 문집을 내지 말라."고 하였기에 문집 간행을 보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진영을 둘러싼 영남(嶺南)의 학자들은 왜인 관청의 출판 인가를 받아서라도 출간을 늦출 수 없으며 이 또한 선사 말년에 받은 유명(遺命)이라고 하였다. 이에 반하여 김택술을 비롯한 호남(湖南)의 학자들은 왜적에게 출판 인가를 받아 출간을 하는 것은 스승의 높은 학덕과 의리를 욕보이는 일이며, 인가를 받아 출간해도 괜찮다는 유명을 받았다는 것은 거짓말로, 이는 선생을 속이는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김택술은 이 때문에 배일당(排日黨)으로 지목되어 전주 검사국에 여러 번 호출을 당하였고, 일차 피랍되어 무수한 고문을 당했다. 이후 그는 간재선생의 유고를 편찬하고 교정하여, 스승이 직접 확인한 원본 『화도수정본(華島手定本)』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1926년 43세, 오진영을 주축으로 한 영남지방 문인들이 간재선생의 문집을 재편집하여 스승의 유지를 무시하고 경남 사천 용산정(龍山亭)에서 납활자(鈉活字)를 이용하여 간재선생 진주본(晉州本)을 발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듬해 김택술은 〈간재사고진주본고변록(艮齋私稿晉州本考辨錄)〉을 지어 수정본(手定本)과 진주본(晉州本)을 정밀하게 대조하여 진주본이 간재의 본뜻과 의리에 어긋나는 것을 비판하였다.1934년 51세 때, 아버지의 제삿날을 맞아 자신과 자손들을 향해"제사란 자손의 정성을 모아 조상의 신령을 모시는 것으로, 자손이 항상 조상에게서 명령을 듣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예법에 따라 항상 제사 때는 주부(主婦)가 남편 다음에 아헌례(亞獻禮)를 올려야 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혼인의 중요성, 사위나 며느리의 성품과 행실, 그 집안의 가법을 살펴야 하지 문벌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1954년 71세 2월 18일,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완주군 소양면 명덕리(明德理) 산수동(山水洞)에 장사를 지냈다. 이에 동생인 척재(拓齋) 김억술(金億述, 1899~1959)은 "아, 형님의 풍채는 난새가 우뚝 서 있는 듯, 학이 고고하게 서 있는 듯. 가슴속의 도량은 맑은 가을물인 듯, 개인 날의 달빛 같았습니다. (중략) 슬프고 외로운 발걸음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쓸쓸하고 외로운 이 몸은 물가로 산속으로 헤매며 길이 끝나 돌아갈 곳 없는 듯하고 소경이 안내자를 잃은 것과 같습니다."라고 슬픔을 표출하였다.
3. 작품김택술의 학문적 연원은 선고인 김낙진에 있다. 15세가 되기도 전에 사서삼경(四書三經), 『예기(禮記)』, 『좌전(左傳)』, 『논어(論語)』, 『시경(詩經)』 등을 모두 외우게 했으니, 어릴 적 가학(家學)이 매우 깊고 단단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보다 깊은 학문 연원은 간재선생에게 있다. 17세에 친자(親炙)하기 시작하여 수년 동안 배울 수 있었기에, 그의 학문은 간재의 영향이 매우 큰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 문집의 1/3은 간재선생과 주고받은 편지이다.삼가 제가 오늘날의 형세를 살펴보니, 서리를 밟아 이르는 얼음이 이미 단단해졌고, 새가 기미를 보고 날아오를 때는 이제 못 잡게 되어버렸습니다. 치발(薙髮)은 뒷날에 닥쳐올 일이지만 치의(緇衣)는 이미 눈앞에 와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일이 보통 사람의 눈에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춘추(春秋)』의 의리에 있어 실로 경중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시경』〈치의〉를 인용하여 의리에는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을 더러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약 옛사람의 일을 근거로 말을 한다면, 치의는 오래되었는지라 굳이 말할 것이 없거니와, 머리를 자르는 일로 말하자면 성탕이 비 내리기를 기도하고, 태백이 나라를 양보한 일 같은 경우는 역시 혹 부득이한 상황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치의를 입는 까닭은 우리가 옛사람을 따르고자 해서가 아니라 저들이 조약을 따르도록 협박한 데서 나왔으니 어찌 이 고사들을 끌어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두 마디 말로 이런 상황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공자께서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일을 가지고 머리를 풀어헤치는 일과 함께 말씀하셨으니, 치의와 치발이 경중의 차이가 없다는 것은 이미 굳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맹자가 오십 보를 도망간 자와 백 보를 도망간 자가 다를 바가 없다고 하셨으니, 비록 둥근 소매 옷에 큰 띠를 두르는 우리 복장에 검은 저고리 하나만 착용한다고 하더라도 오랑캐를 따르는 것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선생께서 답서에서 "치의를 입는 것과 치발을 하는 것이 오랑캐의 제도인 것은 똑같다. 어떤 이들이 이 둘을 놓고 경중과 시비를 나누지만, 그대가 그렇지 않다고 여긴 견해가 맞다. 근래에 내가 지은 〈종중시중변(從衆時中辨)〉한 편이 바로 이와 같은 주장을 비판하여 깨뜨린 것인데, 지금 겨를이 없어 적어 보내지 못한다."라고 했다.을사년(1905) 10월, 간재선생에게 올린 편지이다. 이를 통해 일제강점기 한 시대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우선 조선 조정에서 대신들에게 서양의 양복-치의-을 입을 것을 권고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단발령-치발-의 시행이다. 물론 이 단발령은 1896년 2월 친일내각이 물러나자 고종이 "머리를 깎는 것은 각자 편한 대로 할 것이다."라는 조서를 내려 단발령을 강조하지는 않았고, 이후 1897년 단발령은 정식으로 폐지된다. 그러나 1905년 고종은 일본인의 위협에 각 군의 군수와 주사에게 단발할 것을 명령하였다. 위에서 "치발은 뒷날에 닥쳐올 일이지만 치의는 이미 눈앞에 와 있다."라고 한 것은 모두 이러한 상황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경중과 시비를 논하고 있으나 모두 오랑캐의 법도라는 것이고, 스승과 제자 모두 이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김택술은 자신의 의견을 스승에게 전하는 글도 있고, 의혹이 생겨 질문하는 글도 있으며, 어려움, 슬픔, 기쁨 등 그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스승과 글을 통해 교감하고 있었다.다음으로 잡저(雜著)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성리설이다. 이미 400년 전에 공리공론(空理空論)으로까지 치부되었던 성리론이 20세기에 들어 다시 고개를 들고 더욱 진중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무릇 정학(正學)은 주리(主理)이다. 이학(異學)은 주기(主氣)이지만 주리(主理)는 일찍이 기(氣)를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자로부터 송나라 유학에 이르기까지 모두 심(心)으로써 기(氣)에 속한다고 했고, 또 마음이 주재한다는 의논이 있었다. 기(氣)를 주장하는 사람이 일찍이 이(理)를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불씨는 여래(如來)가 바로 성(性)이라고 하였고, 고자(告子)는 생(生)을 성(性)이라고 말했고, 식색(食色)이 성이라고 하였고, 육상산(陸象山)은 이(理)가 이미 드러났다는 설을 두었고, 왕양명(王陽明)은 심(心)의 본체가 곧 천리(天理)라는 설을 두었다. 그들이 한 말을 가지고 살펴보면, 주리자는 반대로 주기를 주장한 것 같고, 주기자는 반대로 주리를 주장한 것 같다. 그러나 그 실상을 궁구해보면, 공명(空明) 영각(靈覺)은 불씨의 이른바 성(性)이고, 지각(知覺) 운동(運動)은 고자의 이른바 성이고, 육상산의 이른바 차리(此理)는 마음의 맑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왕양명의 이른바 천리(天理)는 마음의 양지(良知)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 사가(四家)가 인식한 이(理)와 성(性)은 우리 유가의 이른바 기(氣)이고 심(心)이다. 그러므로 우리 유가가 그들을 주기(主氣)라고 여기는 것이다.1903년, 김택술의 나이 40에 지은 것으로 그의 성리설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작품〈주리주기대(主理主氣對)〉이다. 요컨대, 성리설에 있어서 김택술은 정학이 바로 주리(主理)임을 밝히고, 불교, 고자, 육상산, 왕양명에서의 성(性)이나 이(理)가 주기론(主氣論)임을 밝히고 있다.위의 작품 외에도 〈기질성문답(氣質性問答)〉에서는 본연성을 밝고 뜨거운 태양에 비유하고, 기질성을 구름이나 기류에 따라 어둡거나 추운 것에 비유하여, 기상이 태양의 본체를 손상시킬 수 없듯이 본연성이 기질성에 불변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두 작품은 모두 기호학파(畿湖學派)가 지니고 있는 핵심 사상이며, 이를 훗날에 더욱 일목요연하게 뒷받침하고 있다.한편, 잡저 가운데 〈관조선사(觀朝鮮史)〉는 주목할 만하다. 1936년 편찬된 김경중(金暻中, 1863~1945)이 저술한 『조선사(朝鮮史)』를 김택술이 읽고 자신의 견해를 225조항으로 역사를 비평하였다. 그는 『조선사』의 명칭에 관한 문제를 시작으로,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인물들과 절의에 대해 논평하고, 명(明)나라 조정의 조선에 대한 정책, 조선 군주의 처신, 위정자의 실정 및 불교, 사치풍조 등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산문 외에, 김택술의 작품 가운데 한시 또한 주목된다. 그 방대한 양은 물론이고, 작품성 역시 뛰어난 시가 많기 때문이다. 본서에 1.336수, 속집에 169수 도합 1,505수가 수록되어 있다. 조선후기에 천여 수가 넘는 문인들이 많지 않으니, 시인으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지난 해 대나무 하나 구하여나무를 작은 밭 주변에 심었지식구들은 밭을 잘 가꾸려다실수로 쳐서 온전한 나무 없구나올해 죽순이 다시 나와커다랗게 의연히 서 있다네아 대나무의 사물됨을초췌하여 때를 만나지 못함을뜻 있는 선비의 가련함으로김택술의 감정의 결이 잘 드러나 있는 〈죽(竹)〉이라는 제목의 한시이다. 대나무를 매개로 하여 현인(賢人)과 지사(志士)의 불우함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 주제이다. 그가 주로 창작한 영물시가 죽(竹), 송(松), 매(梅) 등이 많은데, 이는 그의 절의를 투사함에 다름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한시라는 장르로서 리듬을 잘 갖추고 있으면서도, 산문의 이야기하듯 심회를 말하고 있고, 또한 송풍(宋風)의 화려한 전거(典據)라든지, 험벽(險僻)한 글자 등이 보이지 않는 데 있다. 바로 시언지(詩言志)의 품격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 하겠다.산문 중에 〈겨울 국화를 보고 느낀 바 있어 기록하다 [見冬菊識感]〉라는 작품에서는, '겨울'을 일제강점기를 빗대었고, '국화'를 선비의 절개를 비유하였다. 곧'가을'은 숙살(肅殺)을 의미하는데, 오히려 시들지 않는 서리를 맞은 국화의 고귀함을 말하고 또 서리를 넘은 눈 속의 국화를 말하고 있으니, 곧 오상고절(傲霜孤節)을 넘어선 비장함이 엿보이며 선비의 지절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의 작품과도 잘 조응한다.속집에서는 『사백록(俟百錄)』과 『중동국통정변유무년표(中東國統正變有無年表)』이 주목된다. 서명의'사백(俟百)'은 『중용』제29장의 "백세 이후의 성인을 기다려서 물어봐도 의혹이 없다.[百世以俟聖人而不惑]"라는 의미이다. 내용은 동문 오진영이 문중 사림에게 끼친 화(禍), 의발 전수에 대한 허위, 진주 간행본의 오류 등에 대한 논의이다.또 『중동국통정변유무년표』는 정도(正道)로 입각한 국가를 '정통(正統)', 정도를 따르지 않은 국가는 '변통(變統)'이라 하여 정통성을 고찰한 책이다. 예컨대, 하(夏)나라는 정통 439년, 주(周)나라는 정통 867년, 명(明)나라 정통 278년 등이며, 진(秦)나라는 변통 15년, 진(晉)나라는 변통 37년 원(元)나라는 변통 88년 등 국가의 정통 여부를 통해 그 정체성을 고찰한 것이다.
4. 문집『후창집(後滄集)』은 본집 31권 15책, 속집 11권 5책, 합 42권 20책의 석판본이다. 1955년 아들 김형관(金炯觀)과 문인들이 간행하였다.연구자 박술철은 『후창집』의 판본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으니 소중한 자료가 된다.① 『후창집(後滄集)』 총15책, 김택술, 창동서원발행추정(전주대학교 고서실 소장), 간사자미상(刊寫者未詳), 목판본(木版本) 31권(卷)15책(冊).② 『후창집』 총14권, 김택술, 심천서실장본(心泉書室藏本-전북대학교 고서실 소장), 간사자미상, 석판본 29권 14책, 총 15책 중 제 10권 1책 유실.③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총4권, 김택술, 목판본, 본집 31권 15책.④ 『후창집』 총1권, 김택술, 여강출판사(驪江出版社), 영인본(影印本), 1988.⑤ 『후창선생속집(後滄先生續集)』총 4권, 김택술, 1997, 순창인쇄소(전주소재)⑥ 기타 저서로는 『중동국통정변유무연표(中東國統正變有無年表)』1권과 『사백록(俟百錄)』1권이 있다.본집(本集)은 권두(卷頭)에 총목(總目)이 있고, 권별마다 목록이 따로 있다. 크게는 편지, 잡저, 운문과 묘도문자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권1부터 권12까지는 서(書) 536편이 있다. 권1과 권2는 네 편을 제외하면, 모두 간재선생과 주고받은 편지이다. 주로 경학, 성리학, 예학 등에 관한 학문적 논설이다. 이 외의 편지는 석농 오진영과 간재 선생의 문집에 관련하여 논쟁한 부분이 많다.권13부터 권19에 이르기까지 잡저(雜著) 101편이 있다. 김택술의 사상, 학문, 학규(學規) 등이 수록되어 있다. 〈남산재유제군(南山齋喩諸君)〉, 〈덕천서사규약(德川書社規約)〉 등은 근대 서사(書舍)의 학제(學制)와 수학 과정 및 운영 등에 대해 광범위하게 논하고 있다. 〈오진영의여서병갑서변(吳震泳擬與徐柄甲書辨)〉은 오진영의 서신을 조목조목 논변한 것이다. 〈간재선생사고습유편집범례(艮齋先生私稿拾遺編輯凡例)〉와〈간재선생년보편집범례(艮齋先生年譜編輯凡例)〉 등은 오진영이 진주에서 간행한 문집과 별도로 편집한 간재선생문집의 편집 범례이다.권20에는 서(序) 42편이 있다. 권21에는 기(記) 32편, 제발(題跋) 20편, 명(銘) 15편, 잠(箴) 8편, 찬(贊) 4편, 혼서(昏書) 5편, 자사(字辭) 24편, 애사(哀辭) 1편이 있다. 권22에는 제문(祭文) 37편, 고축(告祝) 16편, 상량문(上梁文) 8편, 비문(碑文) 5편이 있다. 권23과 권24는 묘갈명(墓碣銘) 30편, 묘지명(墓誌銘) 3편, 묘표(墓表) 28편이 있다. 권25는 행장(行狀) 19편, 가장(家狀) 4편, 전(傳) 11편이 있다. 권26부터 권31에 이르기까지 시(詩)가 1,336수, 부(賦)가 2편, 사(辭) 1편이 수록되어 있다.운문은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 오언율시(五言律詩), 칠언율시(七言律詩), 장편고체(長篇古體) 등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다. 시상(詩想)은 도학을 지향하는 유학자로서 사문(師門)의 옹호와 국난기를 거치면서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진실과 양심을 묘사한 작품이 대다수이다.속집(續集)의 권두에는 김준영(金駿榮)이 1903년 4월에 김택술에게 써 주었던 〈증김종현서(贈金鍾賢序)〉를 서문으로 대신하였고, 아들 김형관(金炯觀)이 발문을 붙였으며 별도로 『사백록』과 『중동국통정변유무년표』를 편집하였다.속집 역시 크게 편지, 잡저 및 기타, 운문과 연표 등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권1부터 권3까지 서(書) 98편이 있다. 권4는 잡저(雜著) 23편, 권5는 서(序) 6편, 기(記) 12편, 제발(題跋) 8편, 명(銘) 2편, 잠(箴) 1편, 찬(贊) 1편, 혼서(昏書) 1편, 고축문(告祝文) 3편, 제문(祭文) 3편, 상량문(上梁文) 2편, 묘갈명(墓碣銘) 4편, 묘지명(墓誌銘) 1편, 묘표(墓表) 7편, 유사(遺事) 1편, 전(傳) 2편 등이 있다. 권6은 시(詩) 169수, 권7과 권8은 연보(年譜)가 부록(附錄)으로 수록되어 있다.
5. 맺으며본서는 조선말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에 이르기까지 다사다난했던 시기를 살았던 근현대 유학자 김택술의 문집 『후창집』을 번역하고 주석을 낸 책이다.어쩌면 현대의 우리들과 시대적 간극이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문학적 형상화라든지, 역사관이라든지, 자연관, 처세관 등은 그 간극이 더욱 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의 멸망, 국권 수탈, 광복, 6.25동란 등 격변의 시간 속에서, 김택술은 수많은 글을 남겼다. 조선 중기에나 치열하게 논쟁이 거듭될 만한 성리설을 비롯하여, 국가의 정통이냐 변통이냐의 정통성에 대한 사관, 사회적 문화 현상에 대한 관점, 유가적 수양론과 절의, 근대의 서당교육사, 근대 유학자의 장례문화 등 적은 시간 속에 많은 문화를 담아내고 있는 책이 바로 『후창집』이다.이러한 소중한 자료를 번역하고 주석을 내어 준 한국학호남진흥원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앞으로 본서가 근현대 문화사를 연구하고 밝히는 데 많은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기사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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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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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간재선생에게 올림 을사년(1905) 10월(上艮齋先生 乙巳 十月)
- 간재선생에게 올림 병오년(1906) 윤4월(上艮齋先生 丙午年 閏四月)
- 간재선생에게 올림병오년(1906)(上艮齋先生 丙午)
- 간재선생에게 올림 무신년(1908)(上艮齋先生 戊申)
- 간재선생에게 올림 무신년(1908)(上艮齋先生 戊申)
- 간재선생에게 올림 기유년(1909)(上艮齋先生 己酉)
- 간재선생에게 올림 기유년(1909)(上艮齋先生 己酉)
- 간재선생에게 올림 기유년(1909)(上艮齋先生 己酉)
- 간재선생에게 올림 경술년(1910)(上艮齋先生 庚戌)
- 간재선생에게 올림 계축년(1913)(上艮齋先生 癸丑)
- 간재선생에게 올림 갑인년(1914)(上艮齋先生 甲寅)
- 간재선생에게 올려 정세영(鄭世永)의 편지를 논함 갑인년(1914)(上艮齋先生論鄭世永書 甲寅)
- 간재선생에게 올림 갑인년(1914)(上艮齋先生 甲寅)
- 간재선생에게 올림 갑인년(1914)(上艮齋先生 甲寅)
- 간재선생에게 올림 을묘년(1915)(上艮齋先生 乙卯)
- 간재선생에게 올려 박창현의 편지를 논함 을묘년(1915)(上艮齊先生論朴昌鉉書 乙卯)
- 간재선생에게 올림 을묘년(1915)(上艮齋先生 乙卯)
- 간재선생에게 올림 병진년(1916)(上艮齋先生 丙辰)
- 간재선생에게 올린 편지 병진년(1916)(上艮齋先生 丙辰)
- 간재선생에게 올림 병진년(1916)(上艮齋先生 丙辰)
- 간재선생에게 올림 정사년(1917)(上艮齋先生 丁巳)
- 간재선생에게 올림 정사년(1917)(上艮齋先生 丁巳)
- 간재선생에게 올림 무오년(1918)(上艮齋先生 戊午)
- 간재선생에게 올림 무오년(1918)(上艮齋先生 戊午)
- 간재선생에게 올리는 《어류》 문목 무오년(1918)(上艮齋先生語類問目 戊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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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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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已未)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庚申)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庚申)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庚申)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庚申)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辛酉正月)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辛酉)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辛酉)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辛丑)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辛酉)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辛酉)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辛酉)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壬戌)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壬戌)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壬戌)
- 간재선생에게 올림(上艮齋先生 壬戌)
- 병암 김장준영에게 올림(上炳菴金丈(駿榮) 癸卯)
- 병암 김장에게 올림(上炳菴金丈 乙巳)
- 병암 김장에게 올림(上炳菴金丈 丙午)
- 병암 김장에게 올림(上炳菴金丈 丁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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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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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지산 김장복한 에게 올림 경신년(1920)(上志山金丈(福漢) ○庚申)
- 지산 김장에게 올림 경신년(1920)(上志山金丈 庚申)
- 벽정 임장상학에게 보냄 갑자년(1924)(與碧亭林丈相鶴 ○甲子)
- 김추당석기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金秋塘錫基 ○戊辰)
- 김주사영구에게 답함 을해년(1935)(答金主事榮九 ○乙亥)
- 외종형 김만당희현에게 답함 갑신년(1944)(答外從兄金晚棠熺鉉 ○甲申)
- 오학근에게 보냄 을해년(1935)(與吳學根 ○乙亥)
- 소지천상규에게 답함 임오년(1942)(答蘇芝泉尚奎 ○壬午)
- 위치명혁기에게 답함 계유년(1933)(答魏致明赫基 ○癸酉)
- 위치명에게 답함 계유년(1933)(答魏致明 癸酉)
- 위치명에게 답함 병자년(1936)(答魏致明 丙子)
- 안윤성재욱에게 보냄 정축년(1937)(與安允成在旭 丁丑)
- 송사천광엽에게 보냄 을축년(1925)(與宋士千光燁 乙丑)
- 박선명상구에게 보냄 무진년(1928)(與朴善明塽九 戊辰)
- 박선명에게 보냄 기묘년(1939)(與朴善明 已卯)
- 박선명에게 답함 경진년(1940)(答朴善明 庚辰)
- 김주백종락에게 답함 정해년(1947)(答金周伯 宗洛 ○丁亥)
- 김주백에게 보냄 경인년(1950)(與金周伯 庚寅)
- 김주백에게 답함 신묘년(1951)(答金周伯 辛卯)
- 오극경병수에게 답함 정축년(1937)(答吳極卿秉壽 ○丁丑)
- 오극경에게 답함 무인년(1938)(答吳極卿 戊寅)
- 오극경에게 답함 무인년(1938)(答吳極卿 戊寅)
- 오극경에게 보냄 을묘년(1915)(與吳極卿 乙卯)
- 오극경에게 답함 기묘년(1939)(答吳極卿 己卯)
- 오극경에게 답함 기묘년(1939)(答吳極卿 己卯)
- 오극경에게 답함 기묘년(1939)(答吳極卿 己卯)
- 박봉규에게 보냄 병자년(1936)(與朴鳳圭 ○丙子)
- 김기중에게 답합 정해년(1947)(答金箕重 ○丁亥)
- 유백원동기에게 보냄 갑신년(1944)(與柳伯源 東起○ 甲申)
- 강양오신윤에게 보냄 신사년(1941)(與姜良五 信倫 ○辛巳)
- 강양오에게 보냄 신사년(1941)(與姜良五 辛巳)
- 강양오에게 보냄 신사년(1941)(與姜良五 辛巳)
- 안창국에게 보냄 정묘년(1927)(與安昌國 ○丁卯)
- 손명선두선에게 답함 정묘년(1927)(答孫明先 斗宣○ 丁卯)
- 김성팔은동 삼형제를 위로하며 갑자년(1924)(慰金聖八殷東三兄弟 ○甲子)
- 전사성훈에게 보냄 경신년(1920)(與田思誠壎○ 庚申)
- 윤덕환병형에게 답함 을묘년(1915)(答尹德煥炳馨 ○乙卯)
- 나재문제창에게 보냄 병인년(1926)(與羅在文濟昌 ○丙寅)
- 이원호기완에게 보냄 무인년(1938)(與李元浩起完 ○戊寅)
- 이원호에게 답함 기묘년(1939)(答李元浩 乙卯)
- 이원호에게 답함 신사년(1941)(答李元浩 辛巳)
- 이원호에게 답함 병술년(1946)(答李元浩 丙戊)
- 홍문선덕의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洪文善德義 ○戊辰)
- 김인진에게 답함 무자년(1948)(答金寅鎮 ○戊子)
- 황순집서구에게 답함 신묘년(1951)(答黃舜輯 瑞九 ○辛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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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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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김성구노동에게 보냄 경신년(1920)(與金聖九 魯東○庚申)
- 김성구에게 답함 경신년(1920)(答金聖九 庚申)
- 김성구에게 답함 신유년(1921)(答金聖九 辛酉)
- 김성구에게 답함 신유년(1921)(答金聖九 辛酉)
- 김성구에게 답함 신유년(1921)(答金聖九 辛酉)
- 김성구에게 답함 신유년(1921)(答金聖九 辛酉)
- 김성구에게 보냄 신유년(1921)(與金聖九 辛酉)
- 김성구에게 보냄 임술년(1922)(與金聖九 壬戉)
- 김성구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金聖九 乙丑)
- 김성구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金聖九 乙丑)
- 김성구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金聖九 乙丑)
- 김성구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金聖九 乙丑)
- 김성구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金聖九 丙寅)
- 김성구에게 보냄 병인년(1926)(與金聖九 丙寅)
- 김성구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金聖九 丙寅)
- 김성구에게 보냄 병인년(1926)(與金聖九 丙寅)
- 김성구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金聖九 丙寅)
- 김성구에게 답함 정묘년(1927)(答金聖九 丁卯)
- 김성구에게 답함 정묘년(1927)(答金聖九 丁卯)
- 김성구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金聖九 戊辰)
- 김성구에게 답함 기사년(1929)(答金聖九 己巳)
- 김성구에게 보냄 기사년(1929)(與金聖九 己巳)
- 김성구에게 답함 정축년(1937)(答金聖九 丁丑)
- 김성구에게 답함 무인년(1938)(答金聖九 戊寅)
- 김성구에게 답함 무인년(1938)(答金聖九 戊寅)
- 김성구에게 답함 경진년(1940)(答金聖九 庚辰)
- 김성구에게 보냄 신사년(1941)(與金聖九 辛巳)
- 김성구에게 답함 임오년(1942)(答金聖九 壬午)
- 김성구에게 답함 을유년(1945)(答金聖九 乙酉)
- 김성구에게 답함 정해년(1947)(答金聖九 丁亥)
- 황일성·이영규·전용욱에게 답함(答黃 佾性·李永珪·田溶彧)
- 황계일건익에게 답함 을유년(1945)(答黃啟一 鍵翼○乙酉)
- 김문호에게 보냄 정축년(1937)(與金文鎬 ○丁丑)
- 김씨에게 보냄 정축년(1937)(與金 丁丑)
- 김씨에게 보냄 기묘년(1939)(與金 己卯)
- 김씨에게 보냄 기묘년(1939)(與金 己卯)
- 이기흥에게 답함 정묘년(1927)(答李起興 ○丁卯)
- 이종택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李鐘澤 ○戊辰)
- 오윤일원홍에게 답함 정축년(1937)(答吳允一 源弘 ○丁丑)
- 오윤일에게 보냄 정축년(1937)(與吳允一 丁丑)
- 오윤일에게 답함 신사년(1941)(答吳允一 辛巳)
- 오윤일에게 답함 임오년(1942)(答吳允一 壬午)
- 오윤일에게 답함 임오년(1942)(答吳允一 壬午)
- 오윤일에게 답함 을유년(1945)(答吳允一 乙酉)
- 나성부제봉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羅性夫濟奉 ○乙丑)
- 나성부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羅性夫 乙丑)
- 나율부 제윤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羅栗夫濟潤 ○戊辰)
- 유천사유지 첨회소에 보냄(與柳川祠遺址僉會所)
- 정씨 첨좌에게 답함(答丁氏僉座)
- 어떤 사람에게 보냄【대신 지음】(與人【代作】)
- 어떤 사람에게 답함【간재선생을 대신하여 지음】 경신년(1920)(答人【代艮齋先生作】 ○庚申)
- 머리를 깎지 않는 이유에 대한 피인의 질문에 의답함(擬答彼人不薙髪理由之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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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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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소심 황장종복에게 답함.【○현동 첨좌를 대신하여 지음】 계해년(1923) 7월(答小心黃丈【鐘復 ○代 玄洞僉座作 ○】癸亥七月)
- 소심 황장에게 올림(上小心黃丈 乙丑二月)
- 소심 황장에게 올림(上小心黃丈 丙寅七月)
- 소심 황장에게 답함(答小心黃丈 丙寅九月)
- 소심 황장에게 올림(上小心黃丈 丁卯)
- 소심 황장에게 올림(上小心黃丈 戊辰)
- 소심 황장에게 답함(答小心黃丈 庚午)
- 열재 소장학규에게 답함(答悅齋蘇丈學奎 ○甲子)
- 열재 소장에게 답함(答悅齋蘇丈 甲子九月)
- 열재 소장에게 올림(上悅齋蘇丈 乙丑十二月)
- 열재 소장에게 답함(答悦齊蘇丈 癸酉)
- 열재 소장에게 답함(答悅齋蘇丈 癸酉)
- 열재 소장에게 답함(答悅齋蘇丈 癸酉十二月)
- 열재 소장에게 올림(上悅齋蘇丈 丙子)
- 열재 소장에게 올림(上悅齋蘇丈 丙子)
- 열재 소장에게 답함(答悅齋蘇丈 丁丑)
- 열재 소장에게 올림(上悅齋蘇丈)
- 족숙(族叔) 가암(可庵) 김낙필(金洛弼) 노인에게 올림 정사년(1917)(上老可庵叔洛 ○丁巳)
- 족숙 창암(鬯庵)【낙규(洛奎)】, 함재(涵齋)【낙두(洛斗)】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鬯庵【洛奎】涵齋【洛斗】族叔 乙丑)
- 족숙 창암·함재에게 올림 을축년(1925) 12월(上鬯涵齋族叔 乙丑十二月)
- 족숙 창암에게 올림 정묘년(1927) 4월(上鬯庵族叔 丁卯四月)
- 성암 이장유흥에게 답함 경신년(1920)(與誠菴李丈裕興 ○庚申)
- 원재(遠齋) 이장희진에게 답함 임술년(1922)(答遠齋 李丈喜璡 ○壬戌)
- 원재 이장에게 보냄 을축년(1925) 2월(與遠齋李丈 乙丑二月)
- 원재 이장에게 보냄 을축년(1925) 4월(與遠齋李丈 乙丑四月)
- 원재 이장에게 답함 을축년(1925) 6월(答遠齋李丈 乙丑六月)
- 원재 이장에게 답함 을축년(1925) 10월(答遠齋李丈 乙丑十月)
- 근소 서장병갑에게 답함 계해년(1923) 7월(答近小徐丈柄甲 ○癸亥七月)
- 근소 서장에게 보냄 정묘년(1927) 1월(與近小徐丈 丁卯元月)
- 유몽 정장인창에게 보냄 을축년(1925) 9월(與惟夢鄭丈寅昌 ○乙丑九月)
- 유몽 정장에게 답함 을축년(1925) 11월(答惟夢鄭丈 乙丑十一月)
- 희암 김장찬모에게 답함 경술년(1925)(答希菴金丈酇謨 ○庚戌)
- 희암 김장에게 답함 경술년(1925)(答希菴金丈 庚戌)
- 함재(김낙두) 족숙에게 답함 갑자년(1924)(答涵齋族叔 甲子)
- 함재 족숙에게 답함 을축년(1925) 8월(答涵齋族叔 乙丑八月)
- 함재 족숙에게 올림 을축년(1925) 11월(上涵齋族叔 乙丑十一月)
- 함재 족숙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涵齋族叔 丙寅)
- 함재 족숙에게 올림 병인년(1926)(上涵齋族叔 丙寅)
- 함재 족숙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涵齋族叔 戊辰)
- 함재 족숙에게 올림 무진년(1928)(上涵齋族叔 戊辰)
- 함재 족숙에게 답함 정묘년(1927)(答涵齋族叔 丁卯)
- 함재와 나재 익용에게 올림 신미년(1931)(上涵齋·懶齋 益容 ○辛未)
- 함재 족숙에게 올림 신미년(1931)(上涵齋族叔 辛未)
- 함재 족숙에게 답함 계유년(1933)(答涵齋族叔 癸酉)
- 함재 족숙에게 올림 정축년(1937)(上涵齋族叔 丁丑)
- 나재 종장 익용에게 올림 정사년(1917)(上懶齋宗丈益容 ○丁巳)
- 나재 종장에게 보냄 정사년(1917)(與懶齋宗丈 丁巳)
- 나재 종장에게 답함 무오년(1918)(答懶齋宗丈 戊午)
- 나재 종장에게 답함 무오년(1918)(答懶齋宗丈 戊午)
- 나재 종장에게 보냄 신미년(1931)(與懶齋宗丈 辛未)
- 나재 종장에게 보냄 신미년(1931)(與懶齋宗丈辛未)
- 나재 종장에게 답함 을해년(1935)(答懶齋宗丈 乙亥)
- 나재 종장에게 보냄 병자년(1936)(與懶齋宗丈 丙子)
- 양촌 임장병룡에게 보냄 을해년(1935)(與讓村林丈秉龍 ○乙亥)
- 양촌 임장에게 답함 을해년(1935)(答讓村林丈 乙亥)
- 견암 김장태희에게 보냄 임오년(1942)(與堅菴金丈泰熙 ○壬午)
- 정재 전장화구에게 보냄 갑자년(1924) 5월(與靜齋田丈華九 ○甲子五月)
- 정재 전장에게 보냄 갑자년(1924) 11월(與靜齋田丈 甲子十一月)
- 정재 전장에게 답함 을축년(1925) 1월(答靜齋田丈 乙丑元月)
- 정재 전장에게 보냄 을축년(1925) 3월(與靜齋田丈 乙丑三月)
- 정재 전장에게 보냄 을축년(1925) 4월(與靜齋田丈 乙丑四月)
- 정재 전장에게 보냄 정묘년(1927)(與靜齋田丈 丁卯)
- 정재 전장에게 답함 계유년(1933)(答靜齋田丈 癸酉)
- 정재 전장에게 답함 갑술년(1934)(答靜齋田丈 甲戌)
- 정재 전장에게 보냄(與靜齋田丈 甲戌)
- 정재 전장에게 보냄(與靜齋田丈 甲戌)
- 정재 전장에게 답함(答靜齋田丈 甲戌)
- 정재 전장에게 답함(答靜齋田丈 乙亥元月)
- 연심 전장희순에게 보냄(與鍊心田丈熙舜 ○乙亥)
- 연심 전장에게 보냄(與鍊心田丈 乙亥)
- 연심 전장에게 보냄(與鋉心田丈 戊寅)
- 연심 전장에게 보냄(與鋉心田丈 戊寅)
- 연심 전장에게 답함(答鋉心田丈 戊寅)
- 연심 전장에게 보냄(與鍊心田丈 戊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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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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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김위재 병주에게 답함 계해년(1923)(答金危齋炳周 ○癸亥)
- 족숙 의재 낙청에게 보냄 을축년(1925)(與毅齋族叔洛清 ○乙丑)
- 홍위헌 익유에게 보냄 무인년(1938)(與洪韋軒翼裕 ○戊寅)
- 홍위헌에게 답함(答洪韋軒)
- 홍위헌에게 답함 무인년(1938)(答洪韋軒 戊寅)
- 홍위헌에게 답함 기묘년(1939)(答洪韋軒 己卯)
- 이신헌 기환에게 보냄 을축년(1925)(與李愼軒起煥 ○乙丑)
- 이신헌에게 보냄 기사년(1929)(與李愼軒 己巳)
- 이신헌에게 보냄 신미년(1931)(與李愼軒 辛未)
- 이신헌에게 답함 신미년(1931)(答李愼軒 辛未)
- 이신헌에게 답함 신미년(1931)(答李愼軒 辛未)
- 이신헌에게 답함 계유년(1933)(答李愼軒 癸酉)
- 이신헌에게 답함 갑술년(1934)(答李愼軒 甲戌)
- 이신헌에게 답함 갑술년(1934)(答李愼軒 甲戌)
- 이신헌에게 답함 갑술년(1934)(答李愼軒 甲戌)
- 이신헌에게 답함 을해년(1935)(答李愼軒 乙亥)
- 이신헌에게 답함 병자년(1936)(答李愼軒 丙子)
- 이신헌에게 보냄 병자년(1936)(與李愼軒 丙子)
- 최금재병심에게 답함 을묘년(1915)(答崔欽齋秉心 ○乙卯)
- 최금재에게 답함 병진년(1916)(答崔欽齋 丙辰)
- 최병심에게 보냄 신유년(1921)(與崔欽齋 辛酉)
- 최금재에게 보냄 병인년(1926)(與崔欽齋 丙寅)
- 최금재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崔欽齋 丙寅)
- 최금재에게 보냄 병술년(1946)(與崔欽齋 丙戌)
- 최금재에게 보냄 신묘년(1951)(與崔欽齋 辛卯)
- 임경선 호철에게 답함 정해년(1947)(答林敬善浩喆 ○丁亥)
- 신사경 현철에게 답함 갑신년(1944)(答申士敬鉉徹 ○甲申)
- 임자경 장우에게 답함 을해년(1935)(答林子敬章佑 ○乙亥)
- 임자경에게 보냄 경진년(1940)(與林子敬 庚辰)
- 임자경에게 답함 경진년(1940)(答林子敬 庚辰)
- 임자경에게 보냄 경진년(1940)(與林子敬 庚辰)
- 임자경에게 답함 신사년(1941)(答林子敬 辛巳)
- 국윤명 영환에게 보냄 갑술년(1934)(與鞠潤明瑛煥 ○甲戌)
- 국윤명에게 보냄 병자년(1936)(與鞠潤明 丙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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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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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백광오남두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白光五南斗 ○乙丑)
- 방복지 환영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房福之煥永 ○丙寅)
- 변복삼 규원에게 보냄 을축년(1925)(與邊復三圭源 ○乙丑)
- 최백 순준에게 보냄 갑술년(1934)(與崔伯舜 濬 ○甲戌)
- 박수경 채환에게 보냄 계묘년(1903)(與朴受卿彩煥 ○癸卯)
- 박수경에게 답함 기미년(1909)(答朴受卿 己酉)
- 전명래 명석에게 답함 계묘년(1903)(答全明來明錫 ○癸卯)
- 강배언 신면에게 답함 정해년(1947)(答姜拜言信冕 ○丁亥)
- 전사인 일효를 위로하는 별지 병자년(1936)(慰田士仁鎰孝別紙 ○丙子)
- 김윤승 종섬에게 답함 갑자년(1924)(答金允升鐘暹 ○甲子)
- 김윤승에게 답함 갑자년(1924)(答金允升 甲子)
- 김윤승에게 답함 갑자년(1924)(答金允升 甲子)
- 김윤승에게 답함 갑자년(1924)(答金允升 甲子)
- 김윤승에게 답함 정묘년(1927)(與金允升 丁卯)
- 이재화종곤에게 보냄 경인년(1926)(與李載和鐘坤 ○庚寅)
- 조자정제원에게 답함 무신년(1908)(答趙子貞濟元 ○戊申)
- 조자정에게 답함 기유년(1909)(答趙子貞 己酉)
- 조자정에게 답함 병자년(1936)(與趙子貞 丙子)
- 조자정에게 답함 정축년(1937)(與趙子貞 丁丑)
- 조자정에게 답함 무인년(1938)(答趙子貞 戊寅)
- 조자정에게 답함 무인년(1938)(答趙子貞 戊寅)
- 조자정에게 답함 무인년(1938)(答趙子貞 戊寅)
- 조자정에게 답함 기묘년(1939)(答趙子貞 己卯)
- 조자정에게 답함 기묘년(1939)(與趙子貞 己卯)
- 조자정에게 답함 경진년(1940)(與趙子貞 庚辰)
- 조자정에게 답함 신사년(1941)(答趙子貞 辛巳)
- 조자정에게 답함 신사년(1941)(答趙子貞 辛巳)
- 조자정에게 답함 갑신년(1944)(與趙子貞 甲申)
- 송경율 노용에게 답함 을묘년(1915)(答宋景栗鲁容 ○乙卯)
- 조수경 한규에게 답함 정축년(1937)(答趙受卿瀚奎 ○丁丑)
- 조수경에게 답함 무자년(1948)(答趙受卿 戊子)
- 조수경에게 답함 무자년(1948)(答趙受卿 戊子)
- 전사순 일건에게 답함 기축년(1949)(答田士順鎰健 ○乙丑)
- 전사순에게 답함 병자년(1936)(答田士順 丙子)
- 최성무 장열에게 보냄 병오년(1906)(與崔性武長烈 ○丙午)
- 최성무에게 답함 무신년(1908)(答崔性武 戊申)
- 최성무에게 보냄 정사년(1917)(與崔性武 丁巳)
- 오익부 해룡에게 보냄 무인년(1938)(與吳翼夫海龍 ○戊寅)
- 오익부 사익에게 보냄 을유년(1945)(與吳翼夫士益 乙酉)
- 전순형 기진에게 보냄 을해년(1935)(與田舜衡璣鎮 ○乙亥)
- 정국진 기성에게 보냄 을해년(1935)(與鄭國振基聲 ○乙亥)
- 정국진에게 답함 을해년(1935)(答鄭國振 乙亥)
- 정국진에게 답함 을해년(1935)(答鄭國振 乙亥)
- 정국진에게 답함 병자년(1936)(與鄭國振 丙子)
- 정국진에게 답함 정축년(1925)(答鄭國振 丁丑)
- 문성보 제중에게 보냄 정축년(1925)(與文聖甫濟衆 ○丁丑)
- 문성보에게 보냄 정축년(1925)(與文聖甫 丁丑)
- 이경순 인구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李敬循仁矩 ○丙寅)
- 전자여 달준에게 답함 신유년(1921)(答全子與達準 ○辛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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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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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오사익 해겸에게 보냄 계해년(1923)(答吳士益海謙 ○癸亥)
- 오사익에게 보냄 병인년(1926)(與吳士益 丙寅)
- 오사익에게 보냄 을해년(1935)(與吳士益 乙亥)
- 오사익에게 답함 을해년(1935)(答吳士益 乙亥)
- 오사익에게 답함 병자년(1936)(答吳士益 丙子)
- 오사익에게 보냄 병자년(1936)(與吳士益 丙子)
- 오사익에게 답함 병자년(1936)(答吳士益 丙子)
- 오사익에게 보냄 병자년(1936)(與吳士益 丙子)
- 오사익에게 답함 병자년(1936)(答吳士益 丙子)
- 오사익에게 답함 정축년(1937)(答吳士益 丁丑)
- 오사익에게 보냄 정축년(1937)(與吳士益 丁丑)
- 오사익에게 답함 정축년(1937)(答吳士益 丁丑)
- 오사익에게 보냄 무인년(1938)(與吳士益 戊寅)
- 오사익에게 답함 무인년(1938)(答吳士益 戊寅)
- 오사익에게 답함 무인년(1938)(答吳士益 戊寅)
- 오사익에게 답함 기묘년(1939)(答吳士益 己卯)
- 오사익에게 답함 기묘년(1939)(答吳士益 己卯)
- 오사익에게 답함【직접 마주한 날에 또 견해를 고칠 것을 말하였기에 편지를 썼지만 보내지 않았다.】 기묘년(1939) 10월(答吳士益)
- 오사익에게 보냄 경진년(1940)(與吳士益 庚辰)
- 오사익에게 보냄 신사년(1941)(與吳士益 辛巳)
- 오사익에게 보냄 신사년 (1941)(與吳士益 辛巳)
- 오사익에게 답함 신사년 (1941)(答吳士益 辛巳)
- 오사익에게 보냄 무자년 (1948)(與吳士益 戊子)
- 오사익에게 보냄 경인년 (1950)(與吳士益 庚寅)
- 족인 평오준철에게 답함 을해년 (1935)(答族人平吾準喆 乙亥)
- 권 아무개에게 답함 갑자년 (1924)(答權某 甲子)
- 오 아무개에게 보냄 갑자년(1924) 6월(與吳某 甲子六月)
- 오 아무개에게 답함 갑자년(1924) 7월 〇성토 전(答吳某 甲子七月○聲討前)
- 오 아무개에게 답함【부안 여러 어른을 대신하여 지음】 갑자년(1924)(答吳某 代扶安諸丈作○甲子)
- 오 아무개에게 보냄【승지공파(承旨公派) 여러 족인들을 대신하여 씀】 갑자년 (1924)(與吳某 代承旨公派諸族人作○甲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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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권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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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전사견 일중에게 보냄 임술년(1922)(與田士狷 鎰中 壬戌)
- 전사견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田士狷 乙丑)
- 전사견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田士狷 乙丑)
- 전사견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田士狷 丙寅)
- 전사견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田士狷 丙寅)
- 전사견에게 답함 정묘년(1927)(答田士狷 丁卯)
- 전사견에게 답함 정묘년(1927)(答田士狷 丁卯)
- 전사견에게 답함 정묘년(1927)(答田士狷 丁卯)
- 전사견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田士狷 戊辰)
- 전사견에게 답함 기사년(1929)(答田士狷 己巳)
- 전사견에게 답함 기사년(1929)(答田士狷 己巳)
- 전사견에게 답함 기사년(1929)(答田士狷 己巳)
- 전사견에게 답함 임신년(1932)(答田士狷 壬申)
- 전사견에게 답함 계유년(1933) 4월(答田士狷 癸酉 四月)
- 전사견에게 보냄 계유년(1933)(與田士狷 癸酉)
- 전사견에게 보냄 갑술년(1934)(與田士狷 甲戌)
- 전사견에게 보냄 을해년(1935)(與田士狷 乙亥)
- 전사견에게 답함 을해년(1935) 8월(答田士狷 乙亥 八月)
- 전사견에게 보냄 을해년(1935) 10월(與田士狷 乙亥 十月)
- 전사견에게 보냄 을해년(1935)(與田士狷 乙亥)
- 전사견에게 답함 병자년(1936)(答田士狷 丙子)
- 전사견에게 답함 병자년(1936)(答田士狷 丙子)
- 이여우 석하에게 답함 신유년(1921)(答李汝禹 碩夏 ㅇ辛酉)
- 이여우에게 보냄 임술년(1922)(與李汝禹 壬戌)
- 방옥경 관에게 답함 기축년(1949)(答房玉慶 琯 己丑)
- 강사신 신극에게 보냄 신사년(1941)(與姜士愼 信極 辛巳)
- 족제 행원 효술에게 답함 갑인년(1914)(答族弟行源 孝述 甲寅)
- 족제 행원에게 답함 병진년(1916)(答族弟行源 丙辰)
- 강하중 봉화에게 답함 기묘년(1939)(答姜和中 鳳和 己卯)
- 강경함 동영에게 답함 임오년(1942)(答姜敬涵 東泳 ㅇ壬午)
- 족제 사의 홍재에게 보냄 을축년(1925)(與族弟士毅 弘梓 乙丑)
- 족제 사의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族弟士毅 丙寅)
- 족제 사의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族弟士毅 丙寅)
- 족제 사의에게 답함 정묘년(1927)(答族弟士毅 丁卯)
- 족제 사의에게 보냄 정묘년(1927)(與族弟士毅 丁卯)
- 족제 사의에게 답함 무인년(1938)(答族弟士毅 戊寅)
- 족제 사의에게 보냄 기묘년(1939)(與族弟士毅 己卯)
- 족질 문경 형익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族姪文卿 炯翼 乙丑)
- 족질 문경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族姪文卿 丙寅)
- 족질 문경에게 보냄 경오년(1930)(與族姪文卿 庚午)
- 족질 문경에게 답함 계유년(1933)(答族姪文卿 癸酉)
- 김소련 구락에게 답함 기미년(1919)(答金巢蓮 龜洛 己未)
- 김소련에게 답함 신유년(1921)(答金巢蓮 辛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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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권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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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족제 희숙 현술에게 답함 무오년(1918)(答族弟希淑 賢述 戊午)
- 족제 희숙에게 답하다 기미년(1919)(答族弟希淑 己未)
- 족제 희숙에게 답함 갑자년(1924)(答族弟希淑 甲子)
- 족제 희숙에게 답함 갑자년(1924)(答族弟希淑 甲子)
- 족제 희숙에게 주다 을축년(1925)(與族弟希淑 乙丑)
- 족제 희숙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族弟希淑 乙丑)
- 족제 희숙에게 보냄 을축년(1925)(與族弟希淑 乙丑)
- 족제 희숙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族弟希淑 乙丑)
- 족제 희숙에게 보냄 기사년(1929)(與族弟希淑 己巳)
- 족제 희숙에게 보냄 기사년(1929)(與族弟希淑 己巳)
- 족제 희숙에게 답함 기사년(1929)(答族弟希淑 己巳)
- 족제 희숙에게 답함 경오년(1930)(答族弟希淑 庚午)
- 족제 희숙에게 보냄 신미년(1931)(與族弟希淑 辛未)
- 족제 희숙에게 보냄 계유년(1933)(與族弟希淑 癸酉)
- 족제 희숙에게 보냄 계유년(1933)(與族弟希淑 癸酉)
- 족제 희숙에게 답함 갑술년(1934)(答族弟希淑 甲戌)
- 족제 희숙에게 답함 갑술년(1934)(答族弟希淑 甲戌)
- 족제 희숙에게 보냄 갑술년(1934)(與族弟希淑 甲戌)
- 족제 희숙에게 답함 갑술년(1934)(答族弟希淑 甲戌)
- 황치실 신연에게 보냄 기묘년(1939)(與黃致實 信淵 ㅇ己卯)
- 황치실에게 답함 정해년(1947)(答黃致實 丁亥)
- 김사긍 종연에게 답함 정묘년(1927)(答金士兢 鍾淵 ○丁卯)
- 김사긍에게 보냄 정묘년(1927)(與金士兢 丁卯)
- 명찬구 우진에게 답함 계해년(1923)(答明粲九 宇鎭 癸亥)
- 명찬구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明粲九 丙寅)
- 명찬구에게 답함 경오년(1930)(答明粲九 庚午)
- 한유성종연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韓有聲 鍾淵 戊辰)
- 양극명 병회에게 답함 신유년(1921)(答楊克明 秉晦 辛酉)
- 양극명에게 답함 계해년(1923)(答楊克明 癸亥)
- 양극명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楊克明 戊辰)
- 양극명에게 답함 경오년(1930)(答楊克明 庚午)
- 양극명에게 답함 경진년(1940)(與楊克明 庚辰)
- 최여중 태일에게 보냄 병인년(1926)(與崔汝重 泰鎰 丙寅)
- 최여중에게 답함 계유년(1933)(答崔汝重 癸酉)
- 최여중에게 드림 갑술년(1934)(答崔汝重 甲戌)
- 최여중에게 드림 을해년(1935)(與崔汝重 乙亥)
- 최여중에게 드림 경진년(1940)(與崔汝重 庚辰)
- 최여중에게 드림 갑신년(1944)(與崔汝重 甲申)
- 족제 김명중 건식에게 드림 을축년(1925)(與族弟明仲 建植 乙丑)
- 임경백 병일에게 드림 갑자년(1924)(與林敬伯 秉一 甲子)
- 임정로 종원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林貞老 鍾元 乙丑)
- 소재준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蘇 在準 丙寅)
- 방옥범 진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房玉範珍 丙寅)
- 방옥범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房玉範 丙寅)
- 방옥범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房玉範 丙寅)
- 방옥범에게 답함 정묘년(1927)(答房玉範 丁卯)
- 채중일동건에게 답함 계해년(1923)(答蔡中一東建 癸亥)
- 채중일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蔡中一 戊辰)
- 채중일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蔡中一 戊辰)
- 채중일에게 답함 기사년(1929)(答蔡中一 己巳)
- 채중일에게 답함 무인년(1938)(答蔡中一 戊寅)
- 채중일에게 답함 기묘년(1929)(答蔡中一 己卯)
- 손성백주택에게 보냄 정축년(1937)(與孫誠伯周澤 丁丑)
- 이문수덕래에게 답함 신유년(1921)(答李文修德來 辛酉)
- 이도형에게 답함 기묘년(1939)(答李▦▦道衡 己卯)
- 청도의 여러 사람들에게 답함 임술년(1922) 10월(答淸道諸人 壬戌十月)
- 청도의 여러 사람들께 답함 계해년(1923)(答淸道諸人 癸亥)
- 용동의 여러 사람들게 보냄 병인년(1926)(與龍洞諸人 丙寅)
- 남에게 답함 병진년(1916)(答人 丙辰)
- 남에게 답함 경인년(1920)(答人 庚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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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권11
-
-
서(書)
- 최이구 민열에게 보냄 을해년(1935)(答崔以求 敏烈 乙亥)
- 최이구에게 보냄 을해년(1935)(與崔以求 乙亥)
- 최이구에게 보냄 을해년(1935)(與崔以求 乙亥)
- 최이구에게 답함 기묘년(1939)(答崔以求 己卯)
- 최이구에게 보냄 기묘년(1939)(與崔以求 己卯)
- 이사유 한응에게 답함 경오년(1930)(答李士裕 漢膺 庚午)
- 이사유에게 답함 임신년(1932)(答李士裕 壬申)
- 이사유에게 보냄 임오년(1942)(與李士裕 壬午)
- 이사유에게 답함 기축년(1949)(答李士裕 己丑)
- 종제 자유 인술에게 답함 기사년(1929)(答宗第子由 仁術 己巳)
- 종제 자유에게 보냄 계유년(1933)(與宗第子由 癸酉)
- 종제 자유에게 답함 계유년(1933)(答宗第子由 癸酉)
- 이협천 재영에게 보냄 기미년(1919)(與李協天 在英 己未)
- 이협천에게 답함 경신년(1920)(答李協天 庚申)
- 이헌영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李 憲永 乙丑)
- 김순만 상락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金順萬 常洛 乙丑)
- 족숙 낙조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族叔 洛潮 乙丑)
- 소태화 진석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蘇太化 鎭奭 丙寅)
- 조철하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趙 澈夏 丙寅)
- 이기용에게 보냄 갑자년(1924)(與李 起容 甲子)
- 최이득 종열 이관 일섭에게 드림 을해년(1935)(與崔以得宗烈 以貫一燮 乙亥)
- 최이관에게 보냄 병인년(1926)(與崔以貫 丙寅)
- 김진옥 수성에게 답함 경오년(1930)(答金振玉 秀聲 庚午)
- 김진옥에게 보냄 경진(1940)(與金振玉 庚辰)
- 김군장 한두에게 보냄 무진년(1928)(與金君章 漢斗 戊辰)
- 김유정 용에게 답함 정묘년(1927)(答金孺定 滽 丁卯)
- 박회재 근호에게 보냄 기사년(1929)(與朴晦哉 根浩 己巳)
- 박회재에게 답함 기사년(1929)(答朴晦哉 己巳)
- 나익부 인상에게 보냄 을축년(1937)(與羅益夫 仁相 乙丑)
- 나익부에게 보냄 정묘년(1927)(與羅益夫 丁卯)
- 홍찬오 석규에게 보냄 무진년(1928)(與洪燦五 錫奎 戊辰)
- 족질영노 형린에게 보냄 을축년(1925)(與族姪靈魯 炯麟 乙丑)
- 장문거 연풍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張文居 然豊 戊辰)
- 장문거에게 답함 기사년(1929)(答張文居 己巳)
- 조정호 찬흥에게 답함 정묘년(1927)(答趙正豪 燦興 丁卯)
- 유성오 삼종에게 보냄 기사년(1929)(與劉省吾 三鍾 己巳)
- 송기창에게 보냄 을축년(1925)(與宋基滄 乙丑)
- 송기창에게 보냄 정묘년(1927)(與宋基滄 丁卯)
- 유우일 만종에게 보냄 경오년(1930)(與劉于一 萬鍾 庚午)
- 박종기에게 보냄(與朴 鍾基)
- 김동길에게 답함 을축년(1925)(答金 東吉 乙丑)
- 홍자정 석모에게 보냄 무진년(1928)(與洪子正 錫模 戊辰)
- 이태원 인수에게 보냄 신미년(1931)(答李台元 仁洙 辛未)
- 이태원에게 답함 신미년(1931)(答李台元 辛未)
- 이태원에게 답함 신미년(1931)(答李台元 辛未)
- 이태원에게 답함 신미년(1931)(答李台元 辛未)
- 문학수에게 답함(答文 學洙)
- 족제 사문 흥술에게 답함 계유년(1933)(答族弟士聞 興述 癸酉)
- 최원경 갑열에게 답함 임신년(1932)(答崔元敬 甲烈 壬申)
- 박남룡에게 답함 계유년(1933)(答朴南龍 癸酉)
- 강제칠 기석에게 답함 무인년(1933)(答姜齊七 璣錫 戊寅)
- 권영규에게 답함(答權寧奎)
- 안수근에게 보냄(與安壽根)
- 손창오 동선에게 답함 정축년(1937)(答孫昌午 東宣 丁丑)
- 손창오에게 답함 무인년(1938)(答孫昌午 戊寅)
- 조카 김상현에게 보냄 정사년(1917)(與金姪庠鉉 丁巳)
- 조카 최춘열에게 보냄 계해년(1923)(與崔甥春烈 癸亥)
- 조카 박진호에게 답함 을해년(1935)(答朴甥珍浩 乙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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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권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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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재종조부께 올림 병인년(1926)(上再從祖 丙寅)
- 하수 족숙 낙구에게 올림 을해년(1935)(上河叟族叔 洛龜 乙亥)
- 송고 족형 익술에게 보냄 기미년(1919)(與松皐族兄 翊述 己未)
- 수동의 여러 종친에게 보냄 신미년(1931)(與壽洞僉宗座 辛未)
- 족형 사일 형술에게 보냄 계미년(1943)(與族兄士一 坰述 癸未)
- 족제 명익 병재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族弟明益 柄梓 戊辰)
- 족제 명익에게 답함 계유년(1933)(答族弟明益 癸酉)
- 족제 명익에게 보냄 신사년(1941)(與族弟明益 辛巳)
- 족질 상집 형돈에게 보냄 신사년(1941)(與族姪庠集 炯敦 辛巳)
- 족숙 경원 낙상에게 보냄 병인년(1926)(與族叔景元 洛相 丙寅)
- 족질 응봉 형일에게 답함 계유년(1933)(答族姪應鳳 炯日 癸酉)
- 성재 종중에 올림 무오년(1918)(上星齋宗中 戊午)
- 성재 종중에 보냄 무인년(1938)(與星齋宗中 戊寅)
- 분재 문중에 올림 기미년(1919)(上粉齋門中 己未)
- 분재 문중에 보냄 무인년(1938)(與粉齋門中 戊寅)
- 계제 여안 억술에게 답함 병진년(1916)(答季弟汝安 億述 丙辰)
- 계제 여안에게 보냄 병진년(1916)(與季弟汝安 丙辰)
- 계제 여안에게 보냄 정사년(1917)(與季弟汝安 丁巳)
- 계제 여안에게 보냄 정사년(1917)(與季弟汝安 丁巳)
- 계제 여안에게 보냄 정사년(1917)(與季弟汝安 丁巳)
- 계제 여안에게 답함 기미년(1919)(答季弟汝安 己未)
- 계제 여안에게 보냄 을축년(1925)(與季弟汝安 乙丑)
- 계제 여안에게 답함 병인년(1926)(答季弟汝安 丙寅)
- 계제 여안에게 보냄 정묘년(1927)(與季弟汝安 丁卯)
- 계제 여안에게 답함 무진년(1928)(答季弟汝安 戊辰)
- 계재 여안에게 답함 기사년(1929)(答季弟汝安 己巳)
- 계제 여안에게 보냄 경오년(1930)(與季弟汝安 庚午)
- 계제 여안에게 답함 경오년(1930)(答季弟汝安 庚午)
- 계제 여안에게 보냄 신미년(1931)(與季弟汝安 辛未)
- 계제 여안에게 보냄 갑술년(1934)(與季弟汝安 甲戌)
- 계제 여안에게 보냄 무인년(1938)(與季弟汝安 戊寅)
- 계제 여안에게 보냄 을유년(1945)(與季弟汝安 乙酉)
- 삼종제에게 답함 병자년(1936)(答三從弟 丙子)
- 형복에게 보냄 병진년(1916)(寄炯復 丙辰)
- 형복에게 보냄(寄炯復)
- 형복에게 보냄 신유년(1921)(寄炯復 辛酉)
- 형복에게 보냄 경오년(1930)(寄炯復 庚午)
- 형복에게 보냄 경술년(1934)(寄炯復 甲戌)
- 형복에게 보냄 기묘년(1939)(寄炯復 己卯)
- 형태에게 부침 갑자년(1924)(寄炯泰 甲子)
- 형태에게 보냄 병인년(1926)(寄炯泰 丙寅)
- 형태에게 보냄(寄炯泰)
- 형관에게 보냄 계유년(1933)(寄炯觀 癸酉)
- 형관에게 부침 아울러 사위 박진호에게 보임 계유년(1933)(寄炯觀 兼示朴甥珍浩 癸酉)
- 형관에게 답함 을해년(1935)(答炯觀 乙亥)
- 형관에게 보냄 을묘년(1915)(寄炯觀 乙卯)
- 아이들에게 보임 경진년(1940)(示兒輩 庚辰)
- 조카 형수에게 답함 경진년(1940)(答從子炯洙 庚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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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書)
- 권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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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저(雜著)
- 주리와 주기에 대한 대답 【간재 선생이 〈주리주기문〉을 짓고 치대하게 하였다. 1903년】(主理主氣對【艮齋先生作主理主氣問, 令置對. 癸卯】)
- 기질성에 대한 문답 【1915년】(氣質性問答 【乙卯】)
- 스스로 경계하는 열 가지 조목 【1908년】(自警十則 【戊申】)
- 기미년 생일 아침에 스스로 경계함(己未生朝自警)
- 선친의 휘일에 감회를 적어 스스로 경계하고 아울러 아이들에게 보임 【1934년 1월 21일】(先君諱日書感自警兼示兒輩 【甲戌元月二十一日】)
- 스승의 상 때에 동문들에게 두루 고함 【1922년】(師喪時輪告同門 【壬戍】)
- 우연히 기록하다(偶書)
- 경진년 생일 아침에 감회를 기록함(庚辰生朝識感)
- 자기설 【1919년】(自欺說 【己未】)
- 자기설 제2 【1919년】(自欺說第二 【己未】)
- 우설로 스스로 경계함 【1940년】(憂說自戒 【庚辰】)
- '변'자설 【1940년】(辨字說 【庚辰】)
- 백졸설 【1939년】(百拙說 【己卯】)
- 네 아들의 명과 자에 대한 설 【1939년】(四子名字說 【己卯】)
- 박쥐에 대한 설 【1939년】(蝙蝠說 【己卯】)
- 시냇가에 은거한 것에 대한 설 【1947년】(溪隱說 【丁亥】)
- 농사지으며 은거한 것에 대한 설 【1947년】(耕隱說 【丁亥】)
- 솔잎을 먹는 것에 대한 설 【1926년】(啖松說 【丙寅】)
- 김성원의 자에 대한 설 【1924년】(金聲遠字說 【甲子】)
- 최이구와 이관의 자에 대한 설 【1925년】(崔以求以貫字說 【乙丑】)
- 허정로 이중의 명과 자에 대한 설 【1927년】(許正老而中名字說 【丁卯】)
- 이사진의 자에 대한 설 【1929년】(李士進字說 【己巳】)
- 귀질 극범의 자에 대한 설 【1922년】(龜姪克範字說 【壬戌】)
- 정통론 상 【1944년】(正統論上 【甲申】)
- 정통론 하 【1944년】(正統論下 【甲申】)
- 숙손통론 【1908년】(叔孫通論 【戊申】)
- 한 문제가 두광국을 승상으로 삼지 않은 것에 대한 변론 【1926년】(漢文帝不相竇廣國論 【丙寅】)
- 한 문제가 옥배를 얻고 개원한 것에 대한 변론 【1926년】(漢文帝得玉杯改元論 【丙寅】)
- 직불의가 금을 사서 보상해준 것에 대한 변론 【1926년】(直不疑償金論 丙寅)
- 등유가 아들을 버린 것에 대한 변론 【1908년】(鄧攸棄子論 【戊申】)
- 우산을 매입한 것에 대한 변론 【1940년】(買牛山論 【庚辰】)
- 거실에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에 대한 변론 【1940년】(不得罪於巨室論 【庚辰】)
- 가규 【1944년】(家規 【甲申】)
- 선조의 자취에 대해 생각하고 물음(先蹟思問)
- 나라 안의 여러 김씨에게 두루 고하는 글 【1931년】(徧告國中諸金氏文 【辛未】)
- 종중에 통고하는 글 【1937년】(通告宗中文 【丁丑】)
- 집안 사람들에게 보임 【1939년】(示家衆 【己卯】)
- 쌍백당 이 충숙공이 지은 매죽당 부군의 묘갈명을 읽고 【1942년】(讀雙柏堂李忠肅公所撰梅竹堂府君墓碣銘 【壬午】)
- '고'자의 음과 뜻 【1944년】(告字音義 【甲申】)
- 겨울 국화를 보고 감회을 기록함(見冬菊識感)
- 세속에서 문자의 호칭을 오용하는 것에 대한 변론(世俗文字稱號誤用辨)
- 남산재에서 제군을 깨우쳐줌 【1924년】(南山齋喩諸君 【甲子】)
- 덕천서사 규약 【1925년】(德川書社規約 【乙丑】)
- 교과 규칙 【1925년】(敎課規則 【乙丑】)
- 시고 규칙(試考規則)
- 대암서사에서 제군에게 보임 【1926년】(臺巖書社示諸君 【丙寅】)
- 우연히 기록하다(偶錄)
- 예설쇄록(禮說鎖錄)
- 선사 장례 때의 홀기 【1922년 9월 13일 당시에 내가 집례를 담당하였는데, 전재 선생 장례 때의 홀기를 인하여 가감하였다.】(先師襄禮時笏記 【壬戌九月十三日, 時余當執禮, 因全齋先生襄禮時笏記, 增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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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저(雜著)
- 권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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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저(雜著)
- 동문의 여러 공들에게 두루 알림 【59인이 연명하여 당시에 인쇄해 배포한 글은 이 글을 가지고 여러 사람이 함께 첨삭한 것이니, 읽는 사람은 상세히 살펴보라. 1924년 7월】(徧告同門僉公 【五十九人聯名當日印布文, 就此本而衆共添刪者, 覽者詳之. 甲子七月】)
- 삼가 동문의 여러 공들에게 알림 【119인이 연명하였다. 1925년 11월】(敬告同門諸公 【百十九人聯名. 乙丑十一月】)
- 동문의 동지들에게 돌려 알림 【1926년 5월】(輪告同門同志 【丙寅五月】)
- 동문의 여러 공들에게 돌려 알림 【1934년】(輪告同門僉公 【甲戌】)
- 오진영이 서병갑에게 보내려던 편지에 대한 변론 【1937년】(吳震泳擬與徐柄甲書辨 【丁丑】)
- 재변론 【1938년】(再辨 【戊寅】)
- 전발설에 대한 변론 【1915년】(傳鉢說辨 【乙卯】)
- 오진영이 이원재에게 답한 편지에 대한 변론 【1927년 10월】(吾震泳答李遠齋書辨 【丁卯十月】)
- 오진영이 오사익에게 답한 편지에 대한 변론 【1939년】(吳震泳答吳士益書辨 【己卯】)
- 권순명이 이원재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변론 【1927년】(權純命與李遠齋書辨 【丁卯】)
- 오진영이 사림에 화를 끼쳤을 때의 완행일기(震泳禍士日完行日記)
- 또(又)
- 여안에게 고함 【1925년 11월 29일】(告汝安 【乙丑十一月二十九日】)
- 나를 따라 공부한 여러 제자들에게 고함 【1925년 12월 10일】(告從學諸子 【乙丑十二月十日】)
- 여안 및 어려움을 함께한 집안의 자제들에게 고함 【1925년 12월】(告汝安及同難家子弟 【乙丑十二月】)
- 둘째와 셋째 두 아우에게 고함 【1925년 12월 10일】(告仲叔二弟 【乙丑十二月十日】)
- 큰아이 형복에게 고함 【1925년 12월 10일】(告長兒炯復 【乙丑十二月十日】)
- 둘째 아이 형태에게 고함 【1925년 12월 10일】(告次兒炯泰 【乙丑十二月十日】)
- 세째 아이 형관에게 고함 【1925년 12월 10일】(告參兒炯觀 【乙丑十二月十日】)
- 오진영 당의 여러 사람에게 고하려고 함 【1925년 12월 10일】(擬告震黨諸人 【乙丑十二月十日】)
- 검사에게 보내려던 편지 【1925년 12월 20일】(擬與檢事書 乙丑十二月二十日)
- 오진영이 오사익에게 답한 편지에 대한 변론 【1938년】(吳震泳答吳士益書辨 【戊寅】)
- 김세기의 흉악한 글을 보고나서 【1937년】(觀世基凶文 【丁丑】)
- 오진영이 김성장에게 답한 편지를 보고나서 【1938년】(觀吳震泳答金聖章書 【戊寅】)
- 전사견의 〈오진영이 김성장에게 답한 편지를 보고나서〉를 제2조로 첨부함 【1936년】(附田士狷〈觀吳震泳答金聖章書〉第二條 【丙子】)
- 전사순이 이신헌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나서 【1937년】(觀田士順與李愼軒書 【丁丑】)
- 선사의 문고를 읽고 느낌이 있어 표출하고 삼가 안설을 붙이다 【1938년】(讀先師文稿有感而表出之謹附按說 【戊寅】)
- 《송자대전》을 읽고 느낌이 있어 표출하고 삼가 안설을 붙이다 【1938년】(讀《宋子大全》有感而表出之謹附按說 【戊寅】)
- 오준선 씨의 유고 중에 어떤 사람에게 답한 편지를 보고나서 【1940년】(觀吳氏駿善稿中答人書 【庚辰】)
- 간재 선생 사고 습유 편집 범례 【1940년】(艮齋先生私稿拾遺編輯凡例 【庚辰】)
- 간재 선생 연보 편집 범례 【1951년】(艮齋先生年譜編輯凡例 【辛卯】)
- 정미재의 문집을 보고나서 【1924년】(觀鄭薇齋集 【丙子】)
- 오진영이 찬술한 〈정절사전〉의 뒷부분 의논에 대하여 논하다 【1935년】(論吳震泳所撰〈鄭節士傳〉後論 【乙亥】)
- 오진영이 김윤청에게 답한 편지를 보고나서 【1935년】(觀吳震泳答金允淸書 【乙亥】)
- 전사견이 김세기의 편지를 조목별로 변론한 것을 보고 빠진 부분을 보충하다 【1931년】(觀田士狷條辨金世基書補其缺漏 【辛未】)
- 《신라김씨세보》 중 의심스러운 점을 논변하다 【1937년】(《新羅金氏世譜》中辨疑 【丁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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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저(雜著)
- 권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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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 북으로 돌아가는 김예옥【선진】을 전송하는 서문 【병오년(1906)】(送金睿玉【璿鎭】北歸序 【丙午】)
- 회령으로 돌아가는 윤경습【영학】을 전송하는 서문 【병오년(1906)】(送尹卿習【永學】歸會寧序 【丙午】)
- 《성주이씨족보》 서문 【간재 선생을 대신하여 짓다. 임자년(1912)】(《星州李氏族譜》序 【代艮齋先生作. 壬子】)
- 북간도로 돌아가는 장명숙【진우】을 전송하는 서문 【임자년(1912)】(送張明叔【鎭宇】歸北艮序 【壬子】)
- 손우 선생 문집의 서문(遜愚先生文集序)
- 부령 김씨 문계안의 서문 【신유년(1921)】(扶寧 金氏門契案序 【辛酉】)
- 존의계안 서문 【갑자년(1924)】(尊義契案序 【甲子】)
- 모현재에서 제군들을 전송하는 서문 【갑자년(1924)】(慕賢齋送諸君序 【甲子】)
- 청제를 배송하는 서문 【을축년(1925)】(拜送靑帝序 【乙丑】)
- 《만은유고》 서문(《晩隱遺稿》序)
- 율옹집 중간 서문 【을축년(1925)】(栗翁集重刊序 【乙丑】)
- 《덕계유고》 서문 【을축년(1925)】(《德溪遺稿》序 【乙丑】)
- 《서초유고》 서문 【신사년(1941)】(《瑞樵遺稿》序 【辛巳】)
- 《성암유고》 서문 【경오년(1930)】(《省菴遺稿》序 【庚午】)
- 《평해황씨세적》 서문 【을유년(1945)】(《平海黃氏世蹟》序 【乙酉】)
- 《소심재유고》의 서문 【열재 소 어른을 대신해서 지음. 무인년(1938)】(《小心齋遺稿》序 【代悅齋 蘇丈作. 戊寅】)
- 《노가암유고》 서문 【갑신년(1944)】(《老可菴遺稿》序 【甲申】)
- 《중당유고》 서문 【갑신년(1944)】(《中堂遺稿》序 【甲申】)
- 《유만합고》 서문 【을유년(1945)】(《杻晩合稿》序 【乙酉】)
- 《만당시고》 서문 【갑신년(1944)】(《晩棠詩稿》序 【甲申】)
- 사경재문계안 서문 【임오년(1942)】(思敬齋門契案序 【壬午】)
- 상지계안 서문 【병인년(1926)】(尙志契案序 【丙寅】)
- 가승 서문 【임신년(1932)】(家乘序 【壬申】)
- 문안 서문 【무인년(1938)】(門案序 【戊寅】)
- 《무명재유고》 중간 서문 【갑오년(1954)】(《無名齋遺稿》重刊序 【甲午】)
- 《과동유고》의 서문 【을해년(1935)】(《果東遺稿》序 【乙亥】)
- 《난계유고》의 서문 【을해년(1935)】(《蘭溪遺稿》序 【乙亥】)
- 《부풍칠노회록》의 서문 【기축년(1949)】(《扶風七老會錄》序 【己丑】)
- 《진주강씨가승》의 서문 【임오년(1942)】(《晉州姜氏家乘》序 【壬午】)
- 《전주최씨가승》 서문 【신사년(1941)】(《全州崔氏家乘》序 【辛巳】)
- 《경주김씨가승》의 서문 【신사년(1941)】(《慶州金氏家乘》序 【辛巳】)
- 《부안장씨세보》의 서문 【기축년(1949)】(《扶安張氏世譜》序 【己丑】)
- 태하당계안의 서문 【무자년(1948)】(台下堂契案序 【戊子】)
- 채성만【동필】에게 주는 서문 【뒤에 동건으로 개명하였으며, 자는 중일이다. 병인년(1926)】(贈蔡聖萬【東必】序 【後改名東建, 字中一. 丙寅】)
- 이군【병노】을 전송하는 서문 【갑자년(1924)】(送李君【炳魯】序 【甲子】)
- 백군 중립【남주】에게 주는 서문 【기사년(1929)】(贈白君中立【南柱】序 【己巳】)
- 《가석유고》 서문(《可石遺稿》序)
- 화림동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사유 【한응】과 이별하며 주는 서문 【신사년(1941)】(花林洞歸路贈別李士裕【漢膺】序 【辛巳】)
- 이군 태원【인수】에게 주는 서문 【신미년(1931)】(贈李君 台元【仁洙】序 【辛未】)
- 이도형에게 주는 서문 【을해년(1935)】(贈李【道衡】序 【乙亥】)
- 《중화국통정변유무년표》의 서문(《中華國統正變有無年表》序)
- 대암서사에서 여러 군들에게 주는 서문 【당시 최재용의 손자 동선과 김락춘이 나를 따라 학문하였다. 병자년(1936)】(臺巖書社贈諸君序【時崔載鏞孫東宣、金洛春從余遊. 丙子】)
-
서(序)
- 권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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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記)
- 정송기 【정미년(1907)】(庭松記 【丁未】)
- 과암기 【정미년(1907)】(果菴記 【丁未】)
- 초은기 【계축년(1913)】(樵隱記 【癸丑】)
- 한후당기 【기미년(1919)】(寒後堂記 【己未】)
- 나재기 【기미년(1919)】(懶齋記 【己未】)
- 낙육재기 【경신년(1920)】(樂育齋記 【庚申】)
- 석음재기 【기미년(1919)】(惜陰齋記 【己未】)
- 종양재기 【을축년(1925)】(宗陽齋記 【乙丑】)
- 분재기 【임오년(1942)】(粉齋記 【壬午】)
- 이승재기 【임신년(1932)】(以承齋記 【壬申】)
- 순효비추기 【임신년(1932)】(純孝碑追記 【壬申】)
- 분재토보송림기 【을유년(1945)】(粉齋土堡松林記 【乙酉】)
- 순효비 이건기 【본손을 대신해서 짓다. 기묘년(1939)】(純孝碑移建記 【代本孫作. 己卯】)
- 화산재기 【계미년(1931)】(華山齋記 【癸未】)
- 봉덕재기 【갑신년(1944)】(鳳德齋記 【甲申】)
- 부망실기 【갑신년(1944)】(不忘室記 【甲申】)
- 모양재기 【경신년(1940)】(慕陽齋記 【庚辰】)
- 납하당기 【신사년(1941)】(納遐堂記 【辛巳】)
- 율와정기 【임오년(1942)】(栗窩亭記 【壬午】)
- 구덕재기 【기묘년(1939)】(求德齋記 【己卯】)
- 야귀재기 【무인년(1938)】(夜歸齋記 【戊寅】)
- 남계기 【무인년(1938)】(藍溪記 【戊寅】)
- 가석기 【임신년(1932)】(可石記 【壬申】)
- 용은기 【을유년(1945)】(舂隱記 【乙酉】)
- 척암기(惕菴記)
- 서암정기 【임진년(1952)】(棲巖亭記 【壬辰】)
- 복천기 【병자년(1936)】(復泉記 【丙子】)
- 미륵기 【병자년(1936)】(彌勒記 【丙子】)
- 성헌기 【갑술년(1934)】(惺軒記 【甲戌】)
- 일송재기 【갑술년(1934)】(一松齋記 【甲戌】)
- 몽양재기 【갑술년(1934)】(蒙養齋記 【甲戌】)
- 효당기(孝堂記)
- 안음행기 【신사년(1941)】(安陰行記 【辛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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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題跋)
- 사계전서 발문 【간재선생을 대신하여 지음. 경신년(1920)】(沙溪全書跋 【代艮齋先生作 庚申】)
- 묵암실기 발문 【병술년(1946)】(墨巖實紀跋 【丙戌】)
- 무동실기의 뒤에 쓰다 【임술년(1922)】(題茂東實紀後 【壬戌】)
- 농암유고 발문 【본손을 대신하여 지음. 신해년(1911)】(礱巖遺稿跋 【代本孫作 辛亥】)
- 선계당실기 발문【임신년(1932)】(善繼堂實紀跋 【壬申】)
- 신재실기 발문 【병인년(1926)】(新齋實紀跋 【丙寅】)
- 백수집 발문 【을축년(1925)】(白水集跋 【乙丑】)
- 금곡유고 발문 【경오년(1930)】(琴谷遺稿跋 【庚午】)
- 선사의 〈경서구옹어후〉 뒤에 삼가 쓰다 【계유년(1933)】(謹題先師敬書苟翁語後後 【癸酉】)
- 죽은 벗 박수경 채환의 글 뒤에 쓰다 【경진년(1940)】(題亡友朴受卿【彩煥】書後 【庚辰】)
- 문안의 발문 【무인년(1938)】(門案跋 【戊寅】)
- 일사계안의 발문(一事契案跋)
- 학산유고의 발문 【무인년(1938)】(學山遺稿跋 【戊寅】)
- 증조부 천태 부군이 초록한 《태을통종보감》 뒤에 삼가 쓰다(敬題曾祖考天台府君手鈔太乙統宗寶鑑後)
- 조부 우신재 부군께서 손수 베끼신 간독 뒤에 삼가 쓰다(敬題祖考又新齋府君手鈔簡牘後)
- 선고 벽봉 부군께서 손수 베끼신 《고문진보》 전집 뒤에 삼가 쓰다(敬題先考碧峯府君手鈔古文前集後)
- 선고의 《벽봉유고》 첫머리에 전문(傳文) 을 실은 후 삼가 쓰다(敬題先考碧峯遺稿首載傳文後)
- 선고의 《벽봉유고》 뒤에 삼가 쓰다(敬題先考碧峯遺稿後)
- 선고 벽봉 부군을 위한 《만뢰첩》 뒤에 삼가 쓰다(敬題先考碧峯府君挽誄帖後)
- 송인석의 독본 《천자문》 뒤에 쓰다 【병인년(1926)】(題宋仁錫讀本千字文後 【丙寅】)
-
명(銘)
- 고운 돗자리의 명 【임오년(1942, 대한민국24)】(細莞席銘 【壬午】)
- 향천명 【김재현 선비를 위해 지음. 무인년(1938)】(香泉銘 【爲金斯文在鉉作 戊寅】)
- 담헌명 【고종주를 위해 지음. 경인년(1950)】(澹軒銘 【爲高琮柱作 庚寅】)
- 척재명 【동생 김억술을 위해 지음. 경인년(1950)】(拓齋銘 【爲舍弟億述作 庚寅】)
- 노암명 【양극명(楊克明)을 위해 지음. 기사년(1939)】(魯菴銘 【爲楊克明作 己巳】)
- 용명 【을사년(1905)】(勇銘 【乙巳】)
- 홍화명 【송기창을 격려함. 을축년(1925)】(弘和銘 【勖宋基滄 乙丑】)
- 단숙명 【최광호를 계칙함. 을축년(1925)】(端肅銘 【戒崔光鎬 乙丑】)
- 상지명 【최재천에게 증정함. 병인년(1926)】(尙志銘 【贈崔在千 丙寅】)
- 공죽(筇竹)의 명 【경오년(1930)】(笻銘 【庚午】)
- 삼오헌명 【경인년(1950)】(三梧軒銘 【庚寅】)
- 정정명 【최백렬에게 증정함. 신미년(1931)】(靜精銘 【贈崔白烈 辛未】)
- 성근명 【최창식ㆍ최현식에게 증정함. 신미년(1931)】(誠勤銘 【贈崔昌植賢植 辛未】)
- 십서명 【갑신년(1944)】(十書銘 【甲申】)
- 봉석명 【최갑렬을 위해 지음】(蓬石銘 【爲崔甲烈作】)
- 잠(箴)
- 찬(贊)
- 혼서(昏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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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字辭)
- 황순집 서구의 자사 【갑신년(1944)】(黃舜輯【瑞九】字辭 【甲申】)
- 동생 여직의 자사 【신해년(1911)】(舍弟汝直字辭 【辛亥】)
- 김자유 인술의 자사 【신유년(1921, 대한민국3)】(金子由【仁述】字辭 【辛酉】)
- 이순경 선영의 자사 【갑인년(1914)】(李舜敬【璿榮】字辭 【甲寅】)
- 이우석 규영의 자사 【갑인년(1914)】(李禹錫【圭榮】字辭 【甲寅】)
- 이경수 상길의 자사 【신유년(1921)】(李敬修【相吉】字辭 【辛酉】)
- 황계일 건익의 자사 【갑신년(1944)】(黃啓一【鍵翼】字辭 【甲申】)
- 나자홍 진선의 자사 【정해년(1947)】(羅子弘【鎭璇】字辭 【丁亥】)
- 이성존 선범의 자사 【을축년(1925)】(李性尊【善範】字辭 【乙丑】)
- 박회재 근호의 자사 【정묘년(1927)】(朴晦哉【根浩】字辭 【丁卯】)
- 김이률 관술 자사 【무진년(1928)】(金而栗【寬述】字辭 【戊辰】)
- 김사유 정술의 자사 【무진년(1928)】(金士由【正述】字辭 【戊辰】)
- 허순약 여환의 자사 【병인년(1926)】(許舜若【予煥】字辭 【丙寅】)
- 송심연(宋心淵) 병석(秉錫)의 자사(字辭) 【병인년(1926, 대한민국8)】(宋心淵【秉錫】字辭 【丙寅】)
- 박경가 상길의 자사 【병인년(1926)】(朴敬可【相吉】字辭 【丙寅】)
- 김사문 흥술의 자사 【무진년(1928)】(金士聞【興述】字辭 【戊辰】)
- 박온재 진호의 자사 【기사년(1929)】(朴韞哉【珍浩】字辭 【己巳】)
- 최광백 창식의 자사 【경오년(1930)】(崔光伯【昌植】字辭 【庚午】)
- 최원경(崔元敬) 갑렬(甲烈)의 자사(字辭) 【신묘년(1951, 대한민국33)】(崔元敬【甲烈】字辭 【辛卯】)
- 김원중 병태의 자사 【을해년(1935)】(金元中【炳泰】字辭 【乙亥】)
- 전대유 석기의 자사 【신미년(1931)】(田大有【奭淇】字辭 【辛未】)
- 손창오 동선의 자사 【임오년(1942)】(孫昌午【東宣】字辭 【壬午】)
- 박명재 동호의 자사 【임신년(1932)】(朴明哉【東浩】字辭 【壬申】)
- 최사유 인석의 자사 【신묘년(1951)】(崔士由【仁錫】字辭 【辛卯】)
- 애사(哀辭)
-
기(記)
- 권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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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문(祭文)
- 간재 선생님께 올리는 제문(祭良齋先生文)
- 병암 선생 김공께 올리는 제문(祭炳庵先生金公文)
- 춘우정 김공께 올리는 제문 【기미년(1919)】(祭春雨亭金公文【辛亥】)
- 지산 김공께 올리는 제문(祭志山金公文)
- 창암 박공께 올리는 제문(祭蒼巖朴公文)
- 종숙부 태암 공께 올리는 제문(祭從叔台庵公文)
- 족숙 노가암 공께 올리는 제문(祭族叔老可菴公文)
- 소심재 황공께 올리는 제문(祭小心齋黃公文)
- 소심재 황공께 두 번째 올리는 제문(再祭小心齋黃公文)
- 열재 소공께 올리는 제문 【기축년(1949)】(祭悅齋蘇公文【己丑】)
- 족숙 함재 공께 올리는 제문 【을유년(1945)】(祭族叔涵齋公文【乙酉】)
- 족형 성암 공께 올리는 제문(祭族兄成菴公文)
- 중당 박공께 올리는 제문 【기미년(1919)】(祭中堂朴公文【己未】)
- 호은 조공께 올리는 제문 1(祭湖隱趙公文)
- 호은 조(趙)공께 올리는 제문 2 【간재 선생님을 대신하여 지음. 기미년(1919)】(又 【代艮齋先生作 己未】)
- 족숙 정재 공께 올리는 제문(祭族叔精齋公文)
- 정재 전공께 올리는 제문(祭靜齋田公文)
- 외종형 만당 김공께 올리는 제문 【신묘년(1951)】(祭外從兄晩棠金公文【辛卯】)
- 족숙 시암 공께 올리는 제문(祭族叔諟菴公文)
- 김광국 관수께 올리는 제문(祭金光國【觀洙】文)
- 박수경 채환께 올리는 제문 【임자년(1912)】(祭朴受卿【彩煥】文【壬子】)
- 방복지 환영께 올리는 제문(祭房福之【煥永】文)
- 김주백 종락께 올리는 제문 【글을 완성한 후 병이 나서 고하러 가지 못함. 계사년(1953)】(祭金周伯【宗洛】文【文成而病未往告 癸巳】)
- 넷째 외숙 최공께 올리는 제문(祭季舅崔公文)
- 최성무 장렬께 올리는 제문(祭崔性武【長烈】文)
- 전사견께 올리는 제문(祭田士狷文)
- 전사견께 두 번째 올리는 제문(再祭田士狷文)
- 이태현 절사께 올리는 제문 【임오년(1942, 대한민국24)】(祭李節士【台鉉】文【壬午】)
- 이사유 한응께 올리는 제문(祭李士裕【漢膺】文)
- 종친 아우인 자유 김인술에게 곡하며 올리는 글(哭宗弟子由【仁述】文)
- 족제 김재술을 애도하는 글(悼族弟在述文)
- 큰고모께 올리는 제문(祭伯姑文)
- 종숙모 우씨께 올리는 제문(祭從叔母禹氏文)
- 큰누님께 올리는 제문(祭長姊文)
- 둘째누님께 올리는 제문(祭次姊文)
- 중제 여호에게 올리는 제문(祭仲弟汝昊文)
- 숙제 여직에게 올리는 제문(祭叔弟汝直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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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축문(告祝文)
- 13대조 매죽당 부군의 묘갈을 다시 세운 데 대해 고하는 글【임오년(1942)】(告十三世祖梅竹堂府君墓碣改竪文【壬午】)
- 6대와 5대 조고비의 묘에 고하는 축문【정묘년(1927)】(告六世五世祖考妣墓祝文【丁卯】)
- 선고(先考)와 선비(先妣)의 묘에 고하는 글(告先考先妣墓文)
- 선비의 묘에 고하는 글(告先妣墓文)
- 선고와 선비의 묘에 고하는 글(告先考先妣墓文)
- 선고의 묘에 고하는 글(告先考墓文)
- 선고의 묘에 고하는 글(告先考墓文)
- 선사의 묘에 고하는 글(告先師墓文)
- 선사의 초상에 고하는 글(告先師遺像文)
- 선사의 초상에 고하는 글(告先師遺像文)
- 화도강당 제정축문【스승의 명을 받들어 지음. 을묘년(1915)】(華島講堂祭井祝文【奉師命作 乙卯】)
- 비양사에 춘우정 김공을 봉안할 때의 축문【을유년(1945)】(泌陽祠春雨亭金公奉安祝文【乙酉】)
- 비양사 정향축문(泌陽祠丁享祝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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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량문(上樑文)
- 정충사 유지에 강당을 중건하는 상량문【병자년(1936)】(旌忠祠遺址講堂重建上樑文【丙子】)
- 사경재 상량문【병인년(1926)】(思敬齋上樑文【丙寅】)
- 전주 최씨 숙사재 중건 상량문【계유년(1933)】(全州崔氏肅事齋重建上樑文【癸酉】)
- 이승재 상량문【병인년(1926)】(以承齋上樑文【丙寅】)
- 전주 최씨 종회각 상량문【무인년(1938)】(全州崔氏宗會閣上樑文【戊寅】)
- 김제 조씨 부용재 상량문【정축년(1937)】(金堤趙氏孚用齋上樑文【丁丑】)
- 이승재 이건 상량문【갑신년(1944)】(以承齋移建上梁文【甲申】)
- 둘째 아들 형태가 거처하는 집의 상량문【계유년(1933)】(次子烔泰居室上樑文【癸酉】)
- 비(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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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문(祭文)
- 권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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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갈명(墓碣銘)
- 조산대부 동복현감 최공 묘지명【서문을 함께 싣다】(朝散大夫同福縣監崔公墓碣銘【幷序】)
- 통훈대부 홍주목사 율정 김공 묘갈명 【서문을 함께 싣다】(通訓大夫洪州牧使栗亭金公墓碣銘【幷序】)
-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추증된 행조산대부 내자시 직장 은암 이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贈嘉善大夫戶曹參判行朝散大夫內資寺直長隱菴李公墓碣銘【幷序】)
- 성균관 진사 구암 이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成均進士龜菴李公墓碣銘【幷序】)
- 통정대부 중추부사 운파 김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通政大夫中樞府事雲坡金公墓碣銘【幷序】)
- 가선대부 한성부 좌윤에 추증된 임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贈嘉善大夫漢城府左尹林公墓碣銘【幷序】)
- 구암 황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龜巖黃公墓碣銘【幷序】)
- 만은 황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晩隱黃公墓碣銘【幷序】)
- 지당 강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止堂姜公墓碣銘【幷序】)
- 동몽교관에 추증된 경재 이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贈童蒙敎官敬齋李公墓碣銘【幷序】)
- 죽헌 조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竹軒趙公墓碣銘【幷序】)
-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된 김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金公墓碣銘【幷序】)
- 창유재 소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昌裕齋蘇公墓碣銘【幷序】)
- 송은 김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松隱金公墓碣銘【幷序】)
- 덕계 최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德溪崔公墓碣銘【幷序】)
- 송암 전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松菴田公墓碣銘【幷序】)
- 효자 최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孝子崔公墓碣銘【幷序】)
- 기산 황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箕山黃公墓碣銘【幷序】)
- 삼우당 강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三友堂姜公墓碣銘【幷序】)
- 위재공 김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危齋金公墓碣銘【幷序】)
- 긍재 김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兢齋金公墓碣銘【幷序】)
- 성헌 김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惺軒金公墓碣銘【幷序】)
- 후송 김공 묘갈명【서문을 함께 싣다】(後松金公墓碣銘【幷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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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갈명(墓碣銘)
- 권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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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갈명(墓碣銘)
- 묘명(墓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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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표(墓表)
- 11세조 죽계 선생 묘표 기축년(1949)(十一世祖竹溪先生墓表【己丑】)
- 선무랑 양공 묘표 정축년(1937)(宣務郞楊公墓表【丁丑】)
- 사복시 부정 최공 묘표 무자년(1948)(司僕寺副正崔公墓表【戊子】)
- 성균관 진사 설공 묘표 무자년(1948)(成均進士薛公墓表【戊子】)
- 운암 김공 묘표 계사년(1953)(雲菴金公墓表【癸巳】)
- 효자 서공 묘표 을해년(1935)(孝子徐公墓表【乙亥】)
- 효자 임공 묘표 갑술년(1934)(孝子林公墓表【甲戌】)
- 증조고 천태 부군 묘표(曾祖考天台府君墓表)
- 조고(祖考) 우신재 부군(又新齋府君) 묘표 –경진년(1940)-(祖考又新齋府君墓表【庚辰】)
- 학생 김공 묘표 병자년(1936)(學生金公墓表【丙子】)
- 복재 김공 묘표 병술년(1946)(復齋金公墓表【丙戌】)
- 율와 배공 묘표 임오년(1942)(栗窩裵公墓表【壬午】)
- 송암 김공 묘표 경인년(1950)(松菴金公墓表【庚寅】)
- 화전 김공 묘표 을유년(1945)(花田金公墓表【乙酉】)
- 학생 송공 묘표(學生宋公墓表)
- 영은 김공 묘표 을유년(1945)(瀛隱金公墓表【乙酉】)
- 백천 노공 묘표 계사년(1953)(百泉盧公墓表【癸巳】)
- 학생 김공 묘표 병인년(1926)(學生金公墓表【丙寅】)
- 구계 황공 묘표(龜溪黃公墓表)
- 과동 최공 묘표 무자년(1948)(果東崔公墓表【戊子】)
- 공인 김씨 묘표 경인년(1950)(恭人金氏墓表【庚寅】)
- 유인 김씨 묘표 갑신년(1944)(孺人金氏墓表【甲申】)
- 증조비 유인 송씨 묘표(曾祖妣孺人宋氏墓表)
- 조비 유인 김씨 묘표(祖妣孺人金氏墓表)
- 유인 강씨 묘표 병술년(1946)(孺人姜氏墓表【丙戌】)
- 효열부 유인 김씨 묘표 정축년(1937)(孝烈婦孺人金氏墓表【丁丑】)
- 열부 유인 이씨 묘표 갑술년(1934)(烈婦孺人李氏墓表【甲戌】)
- 효열부 유인 김씨 묘표 경인년(1950)(孝烈婦孺人金氏墓表【庚寅】)
- 권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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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장(行狀)
- 통정대부 승정원 우부승지 입암 손공 행장(通政大夫承政院右副承旨笠巖孫公行狀)
- 서주 방공의 행장 정묘년(1927)(西洲房公行狀【丁卯】)
-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용강 송공의 행장 경인년(1950)(折衡將軍僉知中樞府事龍岡宋公行狀【庚寅】)
- 구술당 김공 행장 병자년(1936)(構述堂金公行狀【丙子】)
- 화암 김공 행장 경인년(1950)(華巖金公行狀【庚寅】)
- 학천 김공 행장 을축년(1925)(鶴川金公行狀【乙丑】)
- 정의재 이공 행장 경오년(1930)(精毅齋李公行狀【庚午】)
- 가헌 박공 행장 을해년(1935)(可軒朴公行狀【乙亥】)
- 소심재 황공 행장 기묘년(1939)(小心齋黃公行狀【己卯】)
- 학생 김공 행장 –기미년(1919년)-(學生金公行狀【己未】)
- 일산 손공 행장(一山孫公行狀)
- 학생 최공 행장 기사년(1929)(學生崔公行狀【己巳】)
- 명와 김공 행장 신사년(1941)(明窩金公行狀【辛巳】)
- 성암 양공의 행장 병술년(1946)(星巖楊公行狀【丙戌】)
- 묵암 김공 행장(默菴金公行狀)
- 수산 오공 행장 계유년(1933)(壽山吳公行狀【癸酉】)
- 학생 최공 행장 병자년(1936)(學生崔公行狀【丙子】)
- 두암 최공 행장 갑신년(1944년)(斗菴崔公行狀【甲申】)
- 공인 허씨 행장 신유년(1921)(恭人許氏行狀【辛酉】)
- 가장(家狀)
- 전(傳)
-
행장(行狀)
- 권26
-
- 시(詩)
-
부록 선생 차운시(附 先生次韻)
- 김종현의 시에 차운함 김종현의 시어는 뜻이 매우 좋고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나 추앙하여 존중할 만하여, 사람들을 스스로 불안하게 만든다.(次金鍾賢【金若詩語意甚好, 而推重過當, 令人不自安.】)
- 앞 운자를 다시 씀(疊前韻)
- 앞의 운을 다시 사용하여 이재언, 김종현에게 답함 이군의 천성은 매우 순수하고, 김군 또한 청명하여 구하여 얻기 어려운 사람들이다.(再疊前韻答李在彦金鍾賢 【李君姿性甚醇, 金君又淸明難得.】)
- 봉서사에서 동짓날에 삼가 간재 선생의 시에 차운함(鳳棲寺南至日謹次艮齋先生韻)
- 성암 족형 연술 에게 전날 선생께 올린 시에 차운하여 올림(呈成菴族兄【淵述】用前日上先生韻)
- 봉서사에 제함(題鳳棲寺)
- 부록 선생 차운시(附 先生次韻)
- 삼가 선생의 시에 차운하여 스스로 경계삼다(敬次先生韻自警)
- 섣달그믐 밤에 간재 선생을 모시고 완남의 여관에 머물렀는데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있어 씀(除夕 陪艮齋先生 留完南旅舍 懷鄕有作)
- 삼가 간재 선생께서 오상에 대해 읊은 시에 차운함 2수 ○임인년(1902)(謹次艮齋先生五常詠 【二○壬寅】)
- 금재 최병심 께서 자책시를 내게 보여주었기에 차운하여 올림 계묘년(1903) ○이하 같음(欽齋【崔秉心】以自責詩示余次韻以呈 【癸卯○下同】)
- 우연히 읊음(偶吟)
- 단오날 삼려대부 굴원을 생각하며(端午懷屈三閭)
- 5월 15일에 유선암에 올라 을사년(1905) ○이하 같음(五月望日上遊仙菴 【乙巳○下同】)
- 선인봉(仙人峯)
- 구암사를 찾아가 스님 영호에게 줌(過龜巖寺贈僧暎湖)
- 삼가 부친의 악요당 원시에 차운함 병오년(1955) ○이하 같음(謹次家君樂要堂原韻 【丙午○下同】)
- 내장사 벽련암에서 삼가 선조 죽계부군의 시에 차운하여 서문을 같이 씀(內藏寺碧蓮菴 謹次先祖竹溪府君詩【幷序】)
- 선조 지포 선생의 묘를 참배한 뒤 느낀 바 있어 2수(拜先祖止浦先生墓有感【二】)
- 지지포(知止浦)
- 창암 박 어른 만환 의 영주정사의 시에 차운하여(次蒼巖朴丈【晩煥】瀛洲精舍韻)
- 벗 유대유 천종 에게 보냄 ○2수(贈劉友大有【千鍾○二】)
- 스스로 힘쓰다(自勉)
- 은거(幽居)
- 즉사 정미년(1967) ○이하 동일하다.(卽事 【丁未○下同】)
- 아우 만술에게 경계의 말을 씀(戒舍弟萬述)
- 회포를 씀(書懷)
- 단비(喜雨)
- 농사꾼(田夫)
- 바로 지음(卽事)
- 우연히 지음(偶題)
- 스스로 정함(自定)
- 뜻을 씀 2수(寫志 【二首】)
- 소나무(松)
- 대나무(竹)
- 국화(菊)
- 황화정을 찾아가(過皇華亭)
- 삼가 스승께서 퇴계의 가재 시에 차운한 작품에 차운함(謹次師門所次退溪石蟹韻)
- 안흥 망해사에 올라 태안에 있다.(登安興望海寺【在泰安】)
- 계곡가의 언덕(澗陸)
- 초겨울(初冬)
- 생각이 있어(有慮)
- 한 해 마지막(歲暮)
- 밤에 비가 내리기에(雨夜)
- 첫눈(初雪)
- 송 연재 선생의 대상에 슬픔에 젖어(宋淵齋先生大祥時感歎)
- 최면암 선생의 부고를 듣고(聞崔勉菴先生訃)
- 자정이 시를 보냈기에 원운으로 화답함(子貞贈詩步韻和之)
- 최성무 장렬 에게 줌(贈崔性武【長烈】)
- 오윤보 해선 와 익부 해붕 및 성무가 다시 와서 글을 읽는 것에 사례하며(謝吳允寶【海璿】翼夫【海鵬】及性武復來讀書)
- 원재 이 어른 희진 의 시에 차운하여 익부에게 줌(次遠齋李丈【喜璡】韻贈翼夫)
- 동짓날 즉석에서 지음(冬日卽事)
- 도를 구함(求道)
- 원제가 지은 이십이운 시에 차운하여 윤보에게 줌(次遠齋二十二韻贈允寶)
- 구산 선생을 추억하며(憶臼山先生)
- 평현이 다시 와서 글을 읽기에(平鉉重來讀書)
- 할머님의 85세 생신에 삼가 부친의 시에 차운하여(王母八十五歲晬辰 敬次家君詩)
- 소한 절기에(小寒日)
- 한 해 마지막에 즉석에서 지음(歲暮卽事)
- 서실에서 바로 지음(書室卽事)
- 자정이 찾아왔기에(子貞來訪)
- 어떤 이에게 줌(贈人)
- 서창에서 느낀 바 있어(書牕有感)
- 평현이 《중용》을 읽는 것을 보고 시를 지어 그를 권면함(見平鉉讀中庸 以詩勉之)
- 학천 김 어른 형재 이 방문하셨기에 무신년(1908) ○이하 같다.(鶴川金丈【衡載】見訪 【戊申○下同】)
- 삼가 간재 선생의 시에 차운하여 양계초를 논함 4수(敬次艮齋先生詩論梁啓超【四首】)
- 이른 가을 영주정사에 이르러 창암과 중당 박수 두 어른과 함께 연일 수창함 4수(早秋到瀛洲精舍同蒼巖中堂【朴銖】二丈連日唱酬 【四首】)
- 창암 어른께 올림(呈蒼巖丈)
- 벗 정화보 영하 를 이별하며 줌(贈別丁友華甫【永夏】)
- 가을비(秋雨)
- 강촌에서 음력 7월 보름에(江村白踵)
- 가을날 느낀 바 있어(秋日感懷)
- 중당이 부안으로부터 돌아왔기에 다시 함께 지음(中堂自扶風歸更與共賦)
- 제봉의 약천을 바라보며(望帝峯藥泉)
- 산에서 내려와(下山)
- 수박을 먹으며(食西瓜)
- 부질없이 지음 3수(漫題【三首】)
- 가을밤 여관에서(秋夜羇牕)
- 장행가(長行歌)
-
부록 선생의 차운시(附 先生次韻)
- 바다에 들어갈 때 최경존과 김종현이 부쳐준 시를 얻어 이를 차운하여 다시 올림(入海得崔敬存金鍾賢寄詩次韻却呈)
- 옛시를 본떠 20수(擬古【二十首】)
- 자정이 부쳐 준 칠언 절구에 화답함(和子貞所寄七絶)
- 뜨락의 매화를 보고 느낀 바 있어 임자년(1912) ○이하 동일하다.(見庭梅有感【壬子○下同】)
- 봄이 끝났기에 읊음(春後吟)
- 전답에서(田間)
- 가헌 박공 병하 만시 ○경술년(1910) 변고에 독을 마시고 죽었다.(挽可軒朴公【炳夏○庚戌之變 飮毒而沒】)
- 매하 김공 근배 만시 ○경술년에 저들이 준 금을 받지 않고 우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挽梅下金公【根培○庚戌不受彼金 投井而沒】)
- 유학자의 일 갑인(1914) ○이하 같다.(儒業 【甲寅○下同】)
- 척질 최이구 민열 가 방문하여(戚姪崔以求【敏烈】見訪)
- 4월 10일 천태산에 올라(四月十日登天台山)
- 스승의 74세 생신을 축하하며(師門七十四歲晬辰)
-
부록 선생 차운시(附 先生次韻)
- 김종현 군이 내 생일에 장수를 바라는 시를 적었기에 차운하여 감사를 표함(金君鍾賢以愚晬日爲詩祈壽次韻謝之)
- 9일에 높은 곳에 올라 주자의 천호 시에 차운함(九日登高次朱子天湖韻)
- 직소에서 여산폭포 시에 차운함 을묘년(1915) ○이하 같다.(直沼用廬山瀑布韻 【乙卯○下同】)
- 월명암에 묵음(宿月明菴)
- 낙조대(落照臺)
- 격포(格浦)
- 유천사 남은 터(柳川祠遺趾)
- 명덕정 시에 차운함 만재 소공 휘식이 지은 것을 그의 아들 열재 학규가 중건한 것이다.(次明德亭韻【晩齋蘇公輝植所作,其子悅齋學奎重建】)
- 우연한 탄식(偶歎)
- 김윤승 종섬 이 보낸 시에 화답함(和金允升【鍾暹】見贈)
- 전주부를 지나다(過全州府)
- 홍위헌 익유 과 이별함(別洪韋軒【翼裕】)
- 척심정 남은 터를 찾아서 친족 선조 매당공께서 그곳에서 휴양하였다. ○소재지는 고부군 오공동 동쪽 기슭에 있다.(過滌心亭遺墟【族先祖梅堂公休養之○所在古阜五公洞東麓】)
- 을묘년(1915) 재야에 간재 선생을 모시고 계초재에서 수세하는데, 그해 학문이 황폐해져 옛날을 애도하고 지금을 슬퍼해서 시를 지어 뜻을 말함(乙卯除夜 陪艮齋先生 守歲于繼草齋 年邁學荒 悼舊悵今 因拈韻言志)
- 이원재 어른께서 앞 시에 차운하여 보내주셨기에 첩운을 써서 감사의 마음을 보냄(遠齋李丈次前韻見贈 因疊韻回謝)
- 제야에 원재 어른의 시에 차운함(除夜次遠丈韻)
- 정성찬 홍섭 만사 ○스승의 명을 받잡아 쓰다.(挽鄭聖燦【洪燮○承師命作】)
- 화도 십영 서문을 함께 씀(華島十咏【幷序】)
- 지산 김 어른 복한 의 입춘에 축원하는 시에 차운하여 무오년(1918) 가을(次志山金丈【福漢】春祝韻【戊午秋】)
- 위관 김 어른 상덕 께서 보내주신 시에 차운하여 2수(次韋觀金丈【商悳】見贈韻【二首】)
- 여주에서 느낀 바 있어 4수(驪州有感【四首】)
- 한양성을 지나며(過漢陽城)
- 노원춘 동교 에게 보냄 ○북간도에 산다.(贈盧元春【東敎○居北艮島】)
- 공심 김 어른 진상 에 대한 만시(挽金丈公深【鎭庠】)
- 백천재에서 10월 8일 처음으로 어떤 이가 국화를 보내왔기에(百千齋十月八日始見人贈菊)
- 가을이 지나 우연히 읊음(秋後偶吟)
- 10월 15일 밤에 벗들과 만나 읊음(十月望夜遇友人吟)
- 일산 손 어른 종순 에 대한 만시(挽一山孫丈【鍾純】)
- 동짓날 벗과 함께 두초당 시에 차운함(南至日與友人次杜草堂韻)
- 백천재에서 여러분과 이별함 2수(百千齋別諸君【二首】)
- 우암 선생의 묘를 찾아뵙고 임술년(1922) ○이하 동일하다.(拜尤菴先生墓【壬戌○下同】)
- 화양동 유람(遊華陽洞)
- 만동묘(萬東廟)
- 읍궁암(泣弓巖)
- 암서재(巖棲齋)
- 김씨 선조 유적의 시에 차운함(次金氏先蹟韻)
- 계화재 친구들과 함께 청풍대에 올라(與繼華齋諸益 上淸風臺)
- 허암경 업 에 대한 만시(挽許巖卿【業】)
- 공부자의 묘에 우박 피해가 있었다는 소식이 스승님께 이르니 시를 지어 보냄 3수(夫子廟雹災報至師門 有詩步韻【三首】)
- 중복 다음 날 한씨 산재에서 자정과 함께 더위를 피함(中伏翼日韓氏山齋同子貞避暑)
- 천태산을 유람하며 느낀 바 있어(遊天台有懷)
- 《정절집》을 읽고(讀靖節集)
- 《구봉집》을 읽고(讀龜峯集)
- 동각회에서의 읊음(洞閣會吟)
- 이경좌에게 화답함(和李敬佐)
- 자정에게 화답함(和子貞)
- 유두일 성묘에(流頭日省楸)
- 산재에서 어떤 이에게 보냄(山齋贈人)
- 뜻을 말함(言志)
- 역사서를 읽음 6월(觀史 【六月】)
- 친족 원로 신조공 형기 의 장례에 스승을 위한 상복이 여전히 몸에 있어 만사를 짓지 못했는데 지금 비로소 뒤늦게나마 올림 갑자년(1924) 겨울 ○이하 동일하다.(族老信潮公【炯基】之葬也 師服在身 未致挽詞 今始追呈 【甲子冬○下同】)
- 문중 존장자 율재공 형관 을 뒤늦게 애도함(追挽宗老栗齋公【炯寬】)
- 남산재에 자정이 왔기에(南山齋子貞見訪)
- 남산재에서 여러분과 송별함(別南山齋諸君)
- 새벽 닭울음 소리를 듣고(聞曉鷄)
- 궁핍한 길 을축년(1925), 이하 동일하다.(窮途 【乙丑下同】)
- 우산에 올라(登牛山)
- 대암에 올라(上臺巖)
- 최군 국진을 면려함(勉崔君國鎭)
- 4월 보름날에 두승산에 오르려고 하였으나 비가 내려 그렇게 하지 못하였기에(淸和望日 欲上斗升山有雨未果)
- 다음날 두승산에 올라(翌日上斗升山)
- 채군 중일 동건 에게 보냄(贈蔡君中一【東建】)
- 초강에서의 목욕(浴楚江)
- 《우암집》을 읽고(讀尤菴集)
- 삼가 인종의 교졸시를 차운하여 소군 태화 진석 에게 보냄(敬次仁宗巧拙詩贈蘇君太化【鎭奭】)
- 만종서사 즉흥시(萬宗書社卽事)
- 자서하여 제군에게 보이다(自叙示諸君)
- 조철하에게 주다(贈趙澈夏)
- 밤에 앉아서(夜坐)
- 망제봉(望帝峯)
- 신헌이 방문해 이별한 후 뒤늦게 짓다(愼軒見訪 別後追題)
- 오월 오일 초강에서 노닐며(五月五日 遊楚江)
- 다음 날 만종서사에 자정이 방문하다(翼日 萬宗書社 子貞見訪)
- 무함한 자를 성토하고 배신자를 배척한 일을 벗 정경산 기성 이 도와준 것에 감사하며 2수(謝敬山鄭友【基聲】贊討誣斥倍 【二首】)
- 열재 소 어른 학규 을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했는데 소학규 어른이 시를 부쳐 사례를 해왔기에 보운하여 드리다(訪悅齋蘇丈【學奎】 不遇 蘇丈寄詩見謝 步韻却呈)
- 오진영에게 고소를 당한 뒤 막내 동생 여안의 시에 차운하다 6월(被震訴後 次舍季汝安韻 【六月】)
- 오진영의 화를 입었을 때 감회를 적다 12월 1일 ○2수(被震禍時 識感 【十二月十日○二首】)
- 근심이 있어서(有憂)
- 가증스러움(可憎)
- 망제봉을 읊다(咏望帝峯)
- 경무 족숙 낙기에게 드리다(贈敬武族叔【洛基】)
- 수재 허명갑을 면려하다(勉許秀才明甲)
- 위관 김영공 영궤에 곡하다(哭韋觀金令公靈几)
- 호서로 가는 길에 짓다(湖西路中作)
- 중양절 삼일 전에 만종서사를 속개하다(重陽前三日 續開萬宗書社)
- 김용락 군에게 주다(贈金君庸洛)
- 만사에서 제군과 함께 읊다(萬社共諸君吟)
- 망제봉에 올라 우연히 읊다 병인년(1926) 2월 ○아래도 같다.(上望帝峯 偶吟 【丙寅二月○下同】)
- 대암의 여흥 2수(臺巖旅興 【二首】)
- 봄비(春雨)
- 송파 족숙과 신헌이 내방했으나 만나지 못해 시로 추후에 사례하다(松坡族叔與愼軒來訪 未遇 以詩追謝)
- 송파가 다시 방문하여 함께 짓다(松坡復訪同賦)
- 송파 및 김태형 성하 와 망제봉에 올라서(同松坡及金台亨【性夏】 上望帝峯)
- 망제봉에서 옛 일을 생각하다(望帝峯懷古)
- 하산한 밤에 짓다(下山夜賦)
- 국상에 상복을 벗은 뒤 감회를 쓰다 무진년(1928), 아래도 같다.(國恤除服後 感題 【戊辰下同】)
- 사월 초하루(孟夏初吉)
- 장연풍 군에게 주다(贈張君然豊)
- 홍석규 군에게 주다(贈洪君錫奎)
- 경봉식 군에게 주다(贈景君奉植)
- 벗 변죽남 규원 이 방문했기에 함께 짓다 4수(竹南邊友【圭源】見訪共賦 【四首】)
- 시를 논하여 죽남에게 주다(論詩 贈竹南)
- 큰 가뭄에 작은 비가 내리다(亢旱小雨)
- 병석에서 자책하며(病枕自訟)
- 희숙을 그리며(懷希淑)
- 수재 백남주에게 주다(贈白秀才南柱)
- 정토산을 유람하는 제군을 보내며(送諸君遊淨土山)
- 사위 박진호에게 주다(贈朴甥珍浩)
- 관아에게 주어 면려하다(贈勉觀兒)
- 유월 그믐날(六月晦日)
- 칠월 오일 희숙과 문경이 방문했기에 함께 짓다 이 날은 선사의 제사 다음날이다.(七月五日 希淑文卿見訪 共賦【是日先師諱辰翼日】)
- 초가을에 즉흥으로 읊다(早秋 卽事)
- 칠월 칠석에 회포를 쓰다(七夕書懷)
- 여안에게 화답하다 3수(和汝安 【三首】)
- 홍석모 군에게 주다(贈洪君錫模)
- 이승재에서 제군에게 작별하며 주다(以承齋 贈別諸君)
- 중양절 다음날 밤에(重陽翌夜)
- 저 사람의 큰 잔칫날에 사의와 여안이 시에 개연히 차운하다 2수(彼人大宴日 士毅汝安有詩 慨然 次韻 【二首】)
- 분재에서 사의와 여안ㆍ전사견과 함께 짓다 5수(粉齋與士毅汝安田士狷 共賦 【五首】)
- 초겨울 눈보라(初冬 風雪)
- 수재 방철수에게 주다(贈房季才哲洙)
- 창동 강계일에 제군의 시에 차운하다(滄東講契日 次諸君韻)
- 의헌 족숙 낙청 을 애도하다(挽毅軒族叔【洛淸】)
- 동짓달 보름밤에(至月望夜)
- 외종형 김만당 어른 희현 이 방문하다(外從兄晩堂金丈【熺鉉】見訪)
- 성암 백형 남두 이 방문하다 기사년(1929) ○아래도 같다.(省菴白兄【南斗】見訪 【己巳○下同】)
- 백천재에서 희숙과 함께 읊다(百千齋 同希淑吟)
- 사견에게 주다(贈士狷)
- 높은 데 올라(登高)
- 만수동에 이르러 여러 벗과 함께 읊다 2수(到萬壽洞 同諸友吟 【二首】)
- 이회은에 사례하다(謝李晦隱)
- 전춘일에 천태산에 올라서(餞春日 上天台山)
- 사월 십일 천태산에 다시 올라서 2수(四月十日 再登天台山 【二首】)
- 이병로 군에게 주다(贈李君炳魯)
- 즉흥으로 읊다(卽事)
- 최여중 태일 의 별장에서 김견암 어른 태희 에게 드리다(崔汝重【泰鎰】庄上呈堅菴金丈【泰熙】)
- 전주 금양정사에 이르러(到全州錦陽精舍)
- 금양정사에서 이사유 한은ㆍ임병일ㆍ병렬 제군에 화답하다(錦陽精舍 和李士裕【漢膺】ㆍ林【秉一秉烈】諸君)
- 조경단(肇慶壇)
- 경기전(慶基殿)
- 오목대(梧木臺)
- 전주 명륜당에서 감회가 있어(全州明倫堂有感)
- 한벽당에서 판상의 시에 차운하다(寒碧堂 次板上韻)
- 관왕묘(關王廟)
- 지독한 더위 속에 박근호ㆍ김용락 군과 함께 짓다(苦熱中 與朴君根浩ㆍ金君庸洛 共賦)
- 이날 밤 다시 짓다(是夜更賦)
- 전연심 어른 희순 이 더위를 무릅쓰고 찾아왔기에 몹시 기뻐 함께 짓다(鍊心田丈【熙舜】冒暑來訪 喜甚 共賦)
- 선사의 기일에 홀로 앉아 밤을 세우며 2수(先師諱辰 獨坐達夜 【二首】)
- 만경대에서 포은 정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萬景臺 次圃隱鄭先生韻)
- 여안의 시에 차운하다 20수(次汝安詩 【二十首】)
- 가석 문생들의 계회 시에 차운하다(次可石門生契會韻)
- 영유재의 시에 차운하다(次永裕齋韻)
- 제생을 격려하며(勉諸生)
- 앞의 운을 거듭 써서 김수성 군에게 주다(疊前韻 贈金君秀聲)
- 서사를 설립한 날에 제군과 함께 읊다(設社日 共諸君吟)
- 권27
-
-
시(詩)
- 구월 십육일 삼가 선사의 〈구일 등고〉 시에 차운하다 기사년. 아래도 같다.(九月旣望 謹次先師九日登高韻【己巳下同】)
- 다음날 밤에 제생의 시에 보운하다(翌夜 步諸生韻)
- 시월 십사일 이승재에서의 좋은 모임(小春小望 以承齋雅會)
- 이백의 자극궁 시에 차운하다(次李白紫極官詩)
- 장난삼아 어떤 사람의 시에 화답하다 처음엔 8음(音) 글자를 쓰고 가운데는 28수(宿) 글자를 쓰고 맨 뒤에는 64괘 글자를 썼다.(戲和人詩【上用八音字, 中用二十八宿字, 下用六十四卦字.】)
- 죽남이 방문해서 2수(竹南見訪【二首】)
- 동지일에 삼가 선군의 시에 차운하다(南至日 謹次先君詩)
- 김기수 군에게 주다(贈金君基洙)
- 유만종 군에게 주다(贈劉君萬鍾)
- 제석에 선군의 〈무술년 제석〉 시의 운을 써서 여안을 그리워하다(除夕 用先君戊戌除夕韻 懷汝安)
- 경오년(1930) 정월 초하루 경오년 아래도 같다.(庚午元日【庚午下同】)
- 정월 초하루 다음날 밤에(元日翌夜)
- 회포를 쓰다(書懷)
- 새봄에 우연히 읊다(新春 偶吟)
- 앞의 운을 써서 여안에게 주다(用前韻 贈汝安)
- 봄을 축하하며(春祝)
- 입춘일(立春日)
- 인일(人日)
- 박 서방 진호에게 보이다(示朴甥珍浩)
- 고요함을 익히며(習靜)
- 삼종제 성술에게 보이다(示三從弟聲述)
- 태아에게 보이다(示泰兒)
- 관아에게 보이다(示觀兒)
- 산재에서 즉흥으로 읊다(山齋 卽事)
- 새봄 십삼일 밤 달을 읊다(詠新春十三夜月)
- 정월 대보름 전날 밤에(上元前夜)
- 정월 대보름날에 삼가 선군의 시에 차운하다(上元日 敬次先君詩)
- 더위 팔이하는 아이(賣暑兒)
- 정월 대보름 밤에 보름달을 보려 했으나 구름이 가려 보지 못하다(上元夕 欲看望月 雲蔽不見)
- 삼가 만당 외형을 그리워하며(奉懷晩棠外兄)
- 연심 어른이 보내온 시에 화답하다(和鍊心丈見贈)
- 포자동 여묘의 옛 터를 보고 느낀 바 있어서(見匏子洞廬墓舊址 有感)
- 김군장 한두 군의 집에 이르러 지어 주다(到金君君章【漢斗】家 有贈)
- 자정과 금강산을 유람하기로 약속하고(約子貞將遊金剛山)
- 금강산에 들어가 읊다(入金剛山吟)
- 표훈사에서 짓다(題表訓寺)
- 정양사 헐성루에서 정호음의 시를 생각하며 차운하다(正陽寺歇惺樓 思鄭湖陰詩 次韻)
- 또 판상의 시에 차운하다(又次板上韻)
- 신라 마의태자 유허를 보고 느낀 바 있어서(觀新羅麻衣太子遺墟 有感)
- 만폭동(萬瀑洞)
- 유점사(楡岾寺)
- 개잔령을 넘으며(踰開棧嶺)
- 해금강가(海金剛歌)
- 만물상가(萬物相歌)
- 비로봉에 올라서(上昆盧峯)
- 구룡연(九龍淵)
- 비봉폭(飛鳳瀑)
- 자정이 준 시에 차운하다(次子貞贈韻)
- 금강산에서 날마다 희숙을 그리며(金剛 日有懷希淑)
- 쌍수산성을 지나며(過雙樹山城)
- 전재 선생의 묘를 배알하다 공주에 있다.(謁全齋先生墓【在公州】)
- 의병 승장 영규의 정려를 지나며(過義兵僧將靈圭閭)
- 생일날 감회가 있어 짓다(生朝感題)
- 수재를 탄식하다(水災歎)
- 운암의 시우담을 지나며(過雲巖時雨潭)
- 성암 백형을 방문하고(訪省菴白兄)
- 청학동을 노닐며(遊靑鶴洞)
- 우당 족제 병재 와 벗 전현광 일중 과 함께 벗 손당촌 두선 의 별장을 방문하고 4수(同藕堂族弟【柄梓】玄狂田友【鎰中】 訪堂村孫友【斗宣】庄【四首】)
- 주천에서 이우와 함께 읊다(酒川 同李友吟)
- 옥산정사 광산 김씨 묘재 의 시에 차운하다(次玉山精舍【光山金氏墓齋】韻)
- 유삼종 군을 면려하며(勉劉君三鍾)
- 중추 초하루에 현광과 함께 읊다(仲秋初吉 同玄狂吟)
- 중추에 내린 산 비 2수(仲秋 山雨【二首】)
- 과암ㆍ현광과 함께 읊다(同果菴玄狂吟)
- 우연히 짓다 2수(偶題【二首】)
- 손자를 얻은 날에 짓다(得孫日有題)
- 아이들에게 보여주다(示兒曹)
- 서사의 생도들이 독서하는 것을 보고(見社生讀書)
- 중양일에 천태산에 올라서 선사의 〈등계화산〉 시에 차운하다 2수(重陽日 上天台山,次先師登繼華山韻【二首】)
- 까닭이 있어서 짓다 2수(有爲而作【二首】)
- 구월 십삼일 큰 천둥 번개가 치고 비바람에 우박이 내리다(九月十三日 大雷電風雨雹)
- 선비의 생신날에 느낀 바 있어서(先妣生日有感)
- 구월 보름밤(九月望夜)
- 주자의 생일(朱子生日)
- 달밤에 과암이 찾아오다(月夜 果菴來訪)
- 세상을 한탄하다(歎世)
- 바램(願言)
- 가을에 내린 눈(秋雪)
- 어떤 집의 소년을 한탄하며(歎人家少年)
- 자유를 방문하다(訪子由)
- 즉흥으로 읊다(卽事)
- 초겨울 달밤에 3수(初冬月夜【三首】)
- 관아를 면려하며(勉觀兒)
- 어느덧 흐른 세월(居然)
- 곡부의 참담한 소식을 듣고(聞曲阜慘報)
- 김겸재 어른 형재 를 애도하다(挽謙齋金丈【亨載】)
- 경오년 동지(庚午冬至)
- 대설(大雪)
- 뜻을 보이다(見志)
- 최명백 규삼 을 애도하다(挽崔明伯【圭三】)
- 영주 강계일에 여러 벗들과 함께 읊다 신미년(1931). 아래도 같다.(瀛洲講契日 同諸益吟【辛未下同】)
- 만오정 시에 차운하다 주인은 최원숙 만열이다.(次晩悟亭韻【主人崔元淑滿烈】)
- 막다른 길(窮途)
- 천태산에서 감회가 있어서 2수(天台山有懷【二首】)
- 천태산의 새 사찰(台山新寺)
- 선사의 문집 중 시의 운을 쓰다(用先師集中韻)
- 사견을 보내며(送士狷)
- 꾀꼬리 2장(黃鳥 二章)
- 빈가의 아낙네(貧家婦)
- 삼월 그믐날 높이 올라(三月晦日 登高)
- 앞의 운을 거듭 쓰다(疊前韻)
- 삼가 선사의 〈자경〉 시에 차운하다(謹次先師自警韻)
- 판곡에서 느낀 바 있어서 11세조 죽계공이 이곳에 터를 잡고 8세조 통덕랑 공에 이르러 창동으로 이거하였다.(板谷有感【十一世祖竹溪公卜居于此, 至八世祖通德郞公移居滄東,】)
- 부안 가는 도중에(扶安道中)
- 이 고경재 계옥 에 화답하다(和李顧敬齋【啓鉅】)
- 자정과 함께 회포를 논하며(同子貞論懷)
- 사월 보름날 천태산 상봉에 올라서(四月望日 上天台上峯)
- 풍호대에 제하다 천태산 제3봉 위의 큰 바위를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題風乎臺【台山第三峯上大石, 名之以此,】)
- 희숙이 변산에서 노닌 일을 생각하며(憶希淑遊邊山)
- 부질없이 읊다(謾吟)
- 이승재 원운(以承齋原韻)
- 사경재 강회 뒤에 지어서 희숙에게 부치다(思敬齋講會後 有作 寄希淑)
- 희숙의 월명암 시에 차운하다(次希淑月明菴韻)
- 경재 족숙 낙승 께 드리다(呈敬齋族叔【洛昇】)
- 정유석에게 수창하다 현호. 운계 뇌경의 8세손이다. ○2수(酬鄭流石【賢好, 雲溪雷卿八世孫.○二首】)
- 감회 2수(感懷【二首】)
- 박남대에게 주다(贈朴南大)
- 유두(流頭)
- 홍수를 보고(觀大水)
- 책을 말리며(曬書)
- 동곡에서 가을을 느끼며(東谷 感秋)
- 가을의 감회 회문체를 쓰다(感秋用回文體)
- 추석에 달을 보며(秋夕看月)
- 초겨울에 서사의 생도와 함께 회포를 논하며 2수(初冬 同社生 論懷【二首】)
- 최귀열 군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기에(待崔君龜烈 不至)
- 달밤에 국화를 감상하며(月夜 賞菊)
- 승유재 시를 차운하다 재의 주인은 김일재이다.(次承裕齋韻【齋主金日載】)
- 최씨 제군에게 주다(贈崔氏諸君)
- 전사견과 최여중의 방문을 받고(田士狷崔汝重見訪)
- 다시 앞의 운을 써서 최형식 복열 에게 주다(疊前韻 贈崔亨植【栿烈】)
- 장남손자 계손 아명은 하중을 본 날에 작년 가을에 썼던 '손'자 운을 거듭 쓰다 신미년(1931) 10월 6일(見長房孫繼孫【夏重兒名】日 疊昨秋孫字韻【辛未十月六日】)
- 이군 인수 의 시에 차운하다(次李君【仁洙】)
- 김오재에게 화답하다(和金梧齋)
- 임신년 설날 회포를 쓰다 임신년(1932) 아래도 같다.(壬申元日 書懷【壬申下同】)
- 여안의 시에 차운하다(次汝安)
- 가석의 시에 차운하다(次可石韻)
- 가석의 〈회여안〉 시에 차운하다(次可石懷汝安韻)
- 척형 김공 종현 송재의 시에 차운하다(次戚兄金公【綜鉉】松齋韻)
- 새벽 베갯머리에서(曉枕)
- 정월 보름날 밤에 객이 오다(上元夜 客至)
- 김 인기 에게 차운하여 주다(次贈金【仁基】)
- 앞의 운을 거듭 써서 정 병주 에게 주다(疊前韻贈鄭【昞柱】)
- 만당 외종형에게 드리다 2수(呈晩棠外兄【二首】)
- 종인 태경 천용 을 곡하다(哭宗人泰卿【千容】)
- 한탄스러운 일(有歎)
- 삼월 삼일에 현광과 함께 천태산에 올라 2수(三月三日 同玄狂 上天台山【二首】)
- 팔일에 다시 현광과 함께 읊다(八日 復同玄狂吟)
- 봄날 길을 가며(春日途中)
- 임정로 종원 군이 찾아와서(林君貞老【鍾元】見訪)
- 예천재에서 여러 벗들과 수창하다(禮川齋酬諸益)
- 여러 벗들과 두승산에 오르다(同諸益上斗升山)
- 늦봄에 가뭄을 걱정하며(暮春憫旱)
- 이튿날 단비가 내리다 2수(翌日喜雨【二首】)
- 성암 백형에게 부치다(寄省菴白兄)
- 먹을 것을 도모하는 세상 사람들을 한탄하며(歎世人謀食)
- 권우경 석주 군에게 주다(贈權君禹卿【錫柱】)
- 즉흥시 2수(卽事【二首】)
- 현광에게 화답하다(和玄狂)
- 봄을 아쉬워하며(惜春)
- 술이 없어(無酒)
- 오이를 심다(種瓜)
- 우연히 쓰다(偶題)
- 대보탕을 준 가석에게 이천의 시를 차운하여 사례하다(謝可石贈大補湯用伊川韻)
- 삼월 이십구일에(暮春小晦)
- 봄을 전별하며(餞春)
- 현광과 함께 산에 오르다 2수(同玄狂登高【二首】)
- 전주로 이사하는 현광을 전송하며(送玄狂移居全州)
- 망제봉에 올라 감회에 젖어(登望帝峯有懷)
- 요동 친구 서영농 문환 의 별장에 이르러 벗들의 시에 화답하다(到蓼洞徐友瀛儂【文煥】庄上 和諸友韻)
- 영농에게 주다(贈瀛儂)
- 최신암 만렬 이 작년 봄에 보내준 시에 차운하여 뒤늦게 화답하다(追和崔新菴【滿烈】去春贈韻)
- 말복에 족제 경능 이술 의 별장에서 말복일은 7월 16일이다.(末伏日族弟京能【利述】庄上【七月旣望】)
- 자유가 있는 여관을 방문하다(訪子由旅館)
- 만휴당공의 순효비를 석동으로 옮겨 세울 때 차운한 시(晩休堂公純孝碑移建席洞時次韻)
- 취성재를 수리할 때 지은 시(聚星齋修理韻)
- 서후태 군에게 주다(贈徐君厚泰)
- 칠월 그믐에 서당의 제군들을 전송하며(七月晦日 送社中諸君)
- 가을날 길에서 2수(秋日途中【二首】)
- 청덕령을 넘으며 2수(踰淸德嶺【二首】)
- 중양일 하루 전에 정북창의 시에 차운하다 2수(重陽前一日 次鄭北窓韻【二首】)
- 중양일에 가석의 별장에서 현광과 함께 읊다 2수(重陽日可石庄上 同玄狂吟【二首】)
- 영주에서 강계하던 날에 벗들과 함께 읊다(瀛洲講契日 同諸益吟)
- 이튿날에 또 읊다(翌日又吟)
- 이자승 병은 과 송군장 기면 이 찾아와서(李子乘【炳殷】、宋君章【基冕】來訪)
- 사견이 이사한 뒤에 찾아왔다 돌아가기에 시를 지어 주다(士狷搬移後來訪 其歸也以詩贈之)
- 김군 진옥 수성 이 오래 소식이 막힌 뒤에 찾아오기에(金君振玉【秀聲】 久阻餘見訪)
- 송파 족숙이 찾아와 2수(松坡族叔來訪【二首】)
- 보리를 파종하다(播麥)
- 백양사와 내장사 등 여러 명승지를 유람하는 서후태·박진호 군 및 관아를 전송하며(送徐君厚泰、朴郞珍浩及觀兒遊白羊、內藏諸勝)
- 이튿날 비바람이 치자 앞의 시에 첩운하여 백양사와 내장사의 유람객을 걱정하며(翼日風雨 疊前韻 慮羊、藏遊客)
- 전사견과 최여중이 찾아오기에 2수(田士狷、崔汝重見訪【二首】)
- 벗이 보내준 시에 화답하다(和友人寄示韻)
- 여중과 태아의 시를 보고 차운하여 부치다(見汝重和泰兒韻 因次寄之)
- 학문을 걱정하며(憂學)
- 긍재 족형 방술 에게 곡하다(哭兢齋族兄【邦述】)
- 현광과 수창하며(酬玄狂)
- 서사의 제군들을 경계하며 주다(戒贈書社諸君)
- 습정당의 시에 차운하다(次習靜堂韻)
- 곤궁하게 살며(窮居)
- 현광의 〈탄세음〉에 화답하다(和玄狂《歎世吟》)
- 참봉 최 전구 의 〈조선굴영유〉에 차운하다(次崔參奉【銓九】《朝鮮窟嶺儒》韻)
- 숨어 살다(幽居)
- 앞의 운자를 써서 현광에게 보여주다(用前韻 示玄狂)
- 앞의 운자를 써서 박남룡 군에게 주다(用前韻 贈朴君南龍)
- 제생들의 글솜씨를 보다(見諸生白戰)
- 제군들에게 주다(贈諸君)
- 즉흥시(卽事)
- 시국의 소식을 듣고(聞時報)
- 현광 및 제군들과 작별하며 4수(別玄狂及諸君【四首】)
- 김제로 길을 떠나려다 결행하지 못하고(作金堤行未果)
- 큰 눈이 내려(大雪)
- 납일에(臘日)
- 임경백 병일 군을 애도하다(悼林君敬伯【秉一】)
- 영농의 시에 차운하다(次瀛農韻)
- 임신년 섣달그믐에(壬申除夕)
-
시(詩)
- 권28
-
-
시(詩)
- 원재 이희진 어른을 추도하다 ○계유년(1873, 고종10)(追悼遠齋李丈【喜璡○癸酉】)
- 이태일 시택 의 별장에 도착하여(到李兌一【時澤】庄上)
- 여중의 〈탄치흑〉 다섯 수에 화답하다(和汝重《歎薙黑》五絶)
- 벗 백경현 낙영 을 애도하다(悼白友景賢【樂英】)
- 부풍으로 가는 도중에(扶風道中)
- 조포에서 놀면서(遊鳥浦)
- 증산의 홍석규 군과 홍석모 군의 별장에서 유숙하며 시를 주다(宿甑山洪君【錫奎、錫模】庄有贈)
- 와룡담에서(臥龍潭)
- 직소폭포에서(直沼瀑㳍)
- 실상사에서 현판 위의 시에 차운하다(實相寺次板上韻)
- 월명암에서 감회가 일어(月明菴有感)
- 바다를 보고 2수(觀海【二首】)
- 자미동에서 비로 지체되어(滋味洞滯雨)
- 변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연심 어른과 작별하며(邊山歸路別鍊心田丈)
- 벗 정지헌 상원 이 찾아오기에(鄭友芝軒【相源】來訪)
- 서후태 군이 오랜 이별 끝에 찾아와(徐君厚泰別久來訪)
- 정토사에 제하다(題淨土寺)
- 유춘정 익상 어른께 드리다(呈柳丈春汀【翼相】)
- 수재 정운봉에게 주다(贈鄭秀才雲鳳)
- 산골 집에 손님이 들어(山牕有客)
- 망종에 가랑비가 내려(芒種小雨)
- 달구경(見月)
- 열재 소씨 어른이 더위를 무릅쓰고 왕림하여(悅齋蘇丈冒暑枉臨)
- 열재 어른과 작별하는 길에 함께 최여중을 찾아가 정토사에서 놀다 2수(悅丈別路 同訪崔汝重 因遊淨土寺【二首】)
- 열재 어른이 출발하려다가 머물러 또 시를 짓다(悅丈欲發因留更賦)
- 열재 어른에게 절하고 작별하며(拜別悅丈)
- 연심재 전씨 어른과 수창하다 2수(酬鍊心田丈【二首】)
- 마을 앞의 한 그루 버드나무 고조할아버지가 손수 심었다.(村前獨柳【高祖考手植.】)
- 쉰 살 생일아침에 감회가 일어 8수(五十歲生朝有感【八首】)
- 제비 새끼를 보고 절구 2수(見乳燕【二絶】)
- 입추날에 도암 선생의 〈입자〉에 차운하다(立秋日次陶菴先生《立字》韻)
- 칠월 초하루에 여중이 찾아와 함께 시를 짓다 3수(七月一日汝重來訪共賦【三首】)
- 선사의 기일에 자정과 함께 밤새도록 있으면서(先師諱辰 同子貞達夜)
- 신암 최형이 부채를 보내준 것에 사례하며 절구 3수(謝新菴崔兄寄扇【三絶】)
- 가석을 찾아가(訪可石)
- 초가을 보름날 밤에 달을 보고 방옹의 시에 차운하다 절구 2수(早秋望夜見月次放翁韻【二絶】)
- 열재 어른이 전날 작별하고 돌아갈 때 읊은 시를 부쳐왔기에 화답시를 드리다(悅丈以前日別歸吟寄來 和韻以呈)
- 다시 앞의 운자로 회포를 적어 열재 어른께 드리다(疊前韻述懷 呈悅丈)
- 국사흠 용환 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애도하며(聞鞠士欽【庸煥】云亡有悼)
- 열재 어른의 〈자서〉에 차운하다(次悅丈《自敍》韻)
- 열재 어른의 〈견억〉에 차운하다(次悅丈《見憶》韻)
- 열재 어른의 〈추흥〉에 차운하다 2수(次悅丈《秋興》【二首】)
- 열재 어른의 병환이 회복되었음을 축하하며(賀悅丈愼節平復)
- 중구일에 현광이 때마침 와서(重九日玄狂適到)
- 족제 흥술에게 보여주다(示族弟興述)
- 시월 보름날에 계모임의 제군에게 속마음을 말하다 2수(十月望日 契會諸君話心【二首】)
- 여안에게 화답하다(和汝安)
- 열재 어른이 머리털 깎는 것을 한탄하기에 시를 드려 뜻을 보이다 2수(悅丈以薙黑爲歎 呈詩見意【二首】)
- 족질 문경 형익 의 〈탄치화음〉에 차운하다 2수(次族姪文卿【炯翼】《嘆薙禍吟》【二首】)
- 가석이 연강 아우와 많은 수창시를 남겼다는 얘기를 듣고 뒤늦게 차운하여 만나는 날을 기다려 보여주다 4수(聞可石與蓮岡舍弟多有唱酬 追步其韻 待相見日示之【四首】)
- 한강과 연강 아우가 수창한 시에 화답하다 2수(和寒江、蓮弟唱酬韻【二首】)
- 하수 영공 족숙 낙귀 이 여안에게 준 시에 차운하다(次河叟令公【族叔洛龜】贈汝安韻)
- 세밑에 열재 어른이 〈노회〉시 세 편을 부치면서 화답을 요구하기에 차운하여 드리다 3수(歲暮悅丈寄《老懷》詩三篇索和 次韻以呈【三首】)
- 다시 앞의 운자로 회포를 적어 가석에게 부칠 때 마침 섣달그믐 밤이어서(疊前韻述懷 寄可石時 適除夜)
- 하수 영공이 일흔두 살에 득남한 경사를 축하하며 갑술년(1874, 고종11)(賀河叟令公七十二歲璋慶【甲戌】)
- 인일에 열재 어른의 〈제석〉시를 얻어 차운하여 뒤늦게 화답하다(人日得悅丈《除夕》詩 步韻追和)
- 정월 십일일에 가석ㆍ한강과 이야기하며(元月十一日話可石、寒江)
- 생질 박진호에게 부치다(寄朴甥珍浩)
- 두류산에 갔을 때 율곡 선생의 〈증인〉에 차운하다(往頭流日 次栗谷先生《贈人》韻)
- 둔월치를 넘으며(踰屯月峙)
- 농암 선생의 묘소에 참배하고(拜礱巖先生墓)
- 순창으로 가는 길에(淳昌途中)
- 훈몽재에서 감회가 있어(訓蒙齋有感)
- 대학암에서(大學巖)
- 귀래정에서 송운 강공의 시에 차운하다(歸來亭次松雲姜公韻)
- 방씨의 사계정사에서 일재ㆍ남명ㆍ월사의 시에 차운하다(房氏沙溪精舍次一齋南冥月沙韻)
- 유천의 사려재에 이르러서(到楡川思勵齋)
- 용두정에 올라 민단암의 시에 차운하다(上龍頭亭次閔丹巖韻)
- 지당 마을을 들렀다가 감회가 일어(過池塘里有感)
- 방군 진 에게 화답하다(和房君【珍】)
- 광한루를 들러서(過廣漢樓)
- 목동에 이르러 족형 매산 어른 양식 에게 드리다(到木洞呈族兄晦山丈【亮植】)
- 회산의 편액 뒤에 제하다(題晦山扁額後)
- 황산대첩비를 읽고 갑술년(1943)(讀荒山大捷碑【甲戌】)
- 산 가득한 늙은 전나무(滿山老檜)
- 천왕봉에 오르다(上天王峯)
- 천왕봉에서 삼월 그믐날에(天王峯値三月晦日)
- 몸이 마음을 꾸짖다(身責心)
- 마음이 몸에게 답하다(心答身)
- 구름 걷힌 고개에서 길을 잃고(撥雲峙失路)
- 세이암에서(洗耳巖)
- 쌍계사에서 현판의 시에 차운하다(雙溪寺次板上韻)
- 청학루의 시에 차운하다(次靑鶴樓韻)
- 진감선사의 비석을 보고(觀眞鑑禪師碑)
- 화개로 가는 도중에 일두의 시에 차운하다(花開道中次一蠹韻)
- 화엄사에서 현판의 시에 차운하다(華巖寺次板上韻)
- 피서하는 서양 사람의 집에 들러(過西洋人避暑室)
- 두류산을 다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觀盡頭流歸路)
- 정자경 영식 에게 주다(贈鄭子敬【泳寔】)
- 맹동야의 시에 차운하다(次孟東野韻)
- 장마 끝에 달을 보니 마침 월식을 만났는데 때는 유두일이어서(積雨餘見月 適値月蝕 時則流頭)
- 구월 십일 계모임 날 밤에 벗들과 남아서 창수하다 2수(九月十日契會夜 留諸益唱酬【二首】)
- 이전의 운자를 써서 한강에게 주다(用前韻 贈寒江)
- 도동서원의 옛터에서 감회가 일어(道東書院遺址有感)
- 현광이 찾아와 함께 창려의 〈북극〉 시편에 차운하다(玄狂來訪共次昌黎《北極》篇)
- 동지에게 보여주다(示同志)
- 자정에게 화답하다 절구 2수(和子貞【二絶】)
- 농가의 늦가을에(田家晩秋)
- 자정ㆍ사견과 함께 읊다 2수(共子貞、士狷吟【二首】)
- 산에 걸린 달이 매우 밝고 뜰에 국화가 활짝 피니 느낌이 있어 쓰다(山月正明 庭菊盛開 有感而題)
- 차운하여 가석에게 주다(次贈可石)
- 탄식할 일이 있어(有歎)
- 생각이 있어서(有思)
- 현광과 함께 회포를 논하다(同玄狂論懷)
- 현광에게 주다(贈玄狂)
- 여안을 위로하며(慰汝安)
- 문밖으로 나가서(出門)
- 벗 최양오 태복 에게 화답하다(酬崔友亮五【泰卜】)
- 김회숙 종화 에게 화답하다(酬金晦叔【鍾華】)
- 양촌 어른 임 병룡 에게 드리다(呈林讓村丈【秉龍】)
- 시든 국화(枯菊)
- 전주 마을 집을 지나다가 글 읽는 소리를 듣고(過全州村舍 聞讀書聲)
- 청풍대의 시에 차운하다 계화도 10승 가운데 하나이다(次淸風臺韻【華島十勝之一】)
- 성산 임 종두 어른을 추모하며(追悼成山林丈【鍾斗】)
- 남안재에서 이고재 병은 와 함께 시를 읊다(南安齋同李顧齋【炳殷】吟)
- 의도하는 바가 있어 짓다(有爲而作)
- 스스로 권면하는 뜻을 여중에게 보여주다(自勉示汝重)
- 교목(喬木)
- 족질 경엽 영회 에게 주다(贈族姪景燁【榮晦】)
- 편지를 대신하여 집안어른 성헌 영우 에게 바치다(呈惺軒族老【榮禹】替折簡)
- 병들어 완산으로 돌아가는 현광을 세모에 전송하며(歲暮送玄狂病歸完山)
- 매화(梅花)
- 늙은 매화(古梅)
- 옹정에서 여러 종친들과 읊다(瓮井與諸宗吟)
- 건선제에서 여러 종친들과 낚시하며(建善堤同諸宗釣魚)
- 최여중의 집에서 늦은 봄에 계모임을 열고(崔汝重家暮春契會)
- 희숙에게 부치다(寄希叔)
- 삼오헌의 시에 차운하다(次三梧軒韻)
- 인척 형 최공 병권 에 대한 만시(挽戚兄崔公【秉權】)
- 김제 홍산에 이르러서(到金堤鴻山)
- 초가을에 벗을 만나 2수(早秋逢友人【二首】)
- 초가을에 내린 소낙비(早秋驟雨)
- 초가을에 감회가 일어(早秋感懷)
- 문밖으로 나와(出門)
- 스스로 적다(自題)
- 스승의 운자를 써서 스스로 기록하다(自誌用先師韻)
- 뒤늦게 지은 명당리의 족대부 영조 에 대한 만사(追挽明堂里族大父【永祚】)
- 여안을 그리워하며(懷汝安)
- 여안에게 부치다(寄汝安)
- 복아에게 부치다 4수(寄復兒【四首】)
- 스스로 부끄러워(自慙)
- 뜻을 보이다(示志)
- 중양일에 높은 산에 올라(重陽日登高)
- 두 손님에게 화답하다(和二客)
- 시월 오일에 가석의 별장에서(十月五日可石庄上)
- 가석과 한강 두 벗에게 화답하다(和石、江二友)
- 관아에게 부치다(寄觀兒)
- 말이 신뢰받지 못함을 탄식하며(歎言不見信)
- 만취 이 절사 광우 가 머리털 때문에 순절했다는 말을 듣고(聞晩翠李節士【廣雨】殉髮)
- 가석에게 화답하다(和可石)
- 스승의 묘소를 참배하며(拜先師墓)
- 백양사 쌍계루에서 포은 정 선생의 시에 차운하다 을해년(1935)(白羊寺雙溪樓次圃隱鄭先生韻【乙亥】)
- 운문암에서 자다 2수(宿雲門菴【二首】)
- 내장사에 제하다(題內藏寺)
- 내장사의 단풍을 읊다(詠內藏丹楓)
- 선조 죽계부군 유고에 내장사에서 매월당의 운자를 차운한 시가 있었는데 지금 유교가 쇠하고 나라가 망한 뒤 거듭 내장사에 들어가 가만히 선조의 시를 외우다가 감회가 일어 삼가 차운하다(先祖竹溪府君遺稿有內藏寺次梅月堂韻之詩 今於文喪社屋之後 重入藏寺 暗誦先祖詩 有感謹次)
- 구암사에 영호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龜巖寺訪暎湖不遇)
- 벗 경산 정 기성 의 시에 화답하다(和敬山鄭友【基聲】韻)
- 경산이 부쳐 준 여러 시에 차운하다 절구 9수(次敬山見寄諸韻【九絶】)
- 경산이 머리털을 위해 절개를 지킨 시에 차운하다(次敬山爲髮守節韻)
- 경산이 부쳐 준 시에 차운하다(次敬山見寄韻)
- 최여중을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해(訪崔汝重不遇)
- 정경산을 찾아가서(訪鄭敬山)
- 꿈에 스승을 뵙고 을해년(1935) 12월 25일 밤에(夢拜先師【乙亥十二月二十五日夜】)
- 경산이 나더러 시를 감상하는 눈이 있다고 하면서 시를 지어 칭찬하니 그 운에 따라 사례하다(敬山謂余有詩鑑 詩以贊之 步韻謝之)
- 경산이 꿈속에 내가 찾아온 것을 보았다고 하면서 시를 지어 기록하니 차운하여 사례하다(敬山謂夢中見余來訪 詩以記之 步韻謝之)
- 섣달 그믐날에 유감이 있어 6수(除夜有恨【六首】)
- 길을 가다가 병자년(1936)(道中【丙子】)
- 백양산에 있는 최성무의 묘소 아래를 지나다가(過白羊山崔性武墓下)
- 이만취의 영전에 곡하다(哭李晩翠靈几)
- 담양읍을 지나다가(過潭陽邑)
- 송강정에서 원운에 차운하다(松江亭次原韻)
- 서석산에 올라 왕양명이 용산을 유람한 시에 차운하다(登瑞石山 次王陽明遊龍山韻)
- 서석가(瑞石歌)
- 서석산에 올라 김 장군의 옛터를 바라보며(登瑞石山 望金將軍故墟)
- 하서 선생의 옛터를 지나다가 송강의 시에 차운하다(過河西先生遺墟 次松江韻)
- 필암서원에서 청음과 석주의 시에 차운하다 2수(筆巖書院次淸陰、石洲韻【二首】)
- 대암서사에서(臺巖書社)
- 최군 재용 에게 주다(贈崔君【載鏞】)
- 종인 낙춘 에게 주다(贈宗人【洛春】)
- 손창오 동선 군에게 주다(贈孫君昌午【東宣】)
- 우연히 쓰다(偶題)
- 대암의 석불(臺巖石佛)
- 즉흥시(卽事)
- 벽 위의 그림에 적다(題壁上畫)
- 스스로 괴이하게 여기며(自怪)
- 현광을 회상하며(憶玄狂)
- 서사의 제생들에게 주다 제생은 낙춘ㆍ재용ㆍ동선이다.(贈書社諸生【洛春、載鏞、東宣】)
- 즉흥시(卽事)
- 낙엽(落葉)
- 초겨울의 가랑비(初冬小雨)
- 창동에서 강회를 열던 날 2수(滄東講契日【二首】)
- 제생에게 주다(贈諸生)
- 세모에 감회가 일어(歲暮有感)
- 서사에서 우연히 읊다 2수(書社偶吟【二首】)
- 조용히 살다(靜居)
- 11월에 큰비가 내리다(仲冬大雨)
- 여러 유생을 권면하다(勉諸生)
- 대암에 있던 날 여중이 찾아와 함께 얘기하다 2수(臺巖日, 汝重來訪共話【二首】)
- 형겸을 훈계하다(戒炯謙)
- 동짓날에(冬至)
- 밤에 앉아서 2수(夜坐【二首】)
- 정경산에게 부치다(寄鄭敬山)
- 세기의 흉문에 대해 듣고(聞世基凶文)
- 화산(華山)
-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려 집에 돌아가지 못한 것을 한탄하다 11월 30일은 고조비(高祖妣)의 기일[忌辰]이다.(天降大雪, 歎未歸家【十一月三十日高祖妣忌辰】)
- 겸아의 삼가일에 병자년(1936) 12월 23일(謙兒三加日【丙子十二月二十三日】)
- 위재 김공 병주 을 애도하다(悼危齋金公【炳周】)
- 백졸의 〈어떤 사람에게 주다〉 시에 화운하다(和百拙《贈人》韻)
- 경산의 〈섣달 그믐〉 시에 화운하다(和敬山《歲除》韻)
- 신도를 보고 정축년(1937)(視新都【丁丑】)
- 공주의 공암을 지나며(過公州孔巖)
- 임씨의 독락정에 올라 2수(登林氏獨樂亭【二首】)
- 성전리를 지나며(過星田里)
- 병암의 고택에서 유숙하다(宿炳菴故宅)
- 청주를 지나며 감회가 일어 10세조 참봉공(參奉公)이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청주에 이르러 이미 강화(講和)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왔다.(過淸州有感【十世祖參奉公, 丙子亂倡義兵, 到淸州聞已講和, 痛哭而歸.】)
- 봉암 채공의 묘소를 지나며(過鳳巖蔡公墓)
- 남간정사에서 우암과 수암 두 선생의 초상화에 참배하다(南澗精舍, 拜尤遂二先生遺像)
- 기국정(杞菊亭)
- 열재 어른을 방문하였으나 만나지 못하다(訪悅齋丈不遇)
- 우연히 짓다(偶題)
- 수차(水車)
- 모기(蚊)
- 파리(蠅)
- 벼룩(蚤)
- 삼가 선사의 〈오서오경음〉에 차운하다(謹次先師《五書五經吟》)
- 신문을 보고(見新聞)
- 안 의사 재욱 의 일을 듣고 시를 지어 그를 장하게 여기다(聞安義士【在旭】事, 詩以壯之)
- 생일에(生朝)
- 한탄스러움이 있어(有嗟)
- 유두일에(流頭日)
- 여름날에 생각이 있어서(夏日有思)
- 대서일에(大暑日)
- 경산이 보내준 시에 화답하여 그 운을 넓혀 절구 10수를 짓다(和敬山見贈廣其韻, 成十絶)
- 종인 낙춘 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다(待宗人【洛春】不至)
- 성매죽헌의 〈이제묘〉 시에 차운하다 2수(次成梅竹軒《夷齊廟》詩【二首】)
- 매미 2수(蟬【二首】)
- 잠자리(蜻蜓)
- 과암의 〈연소〉 시에 차운하다(次果菴《蓮沼》韻)
- 박사 임장 상학 에 대한 만시(挽博士林丈【相鶴】)
- 집으로 돌아가는 낙춘을 전송하며(送洛春歸家)
- 경산의 〈증과암〉 시에 보운(步韻)하다 2수(步敬山《贈果菴》韻【二首】)
- 오극경의 〈야귀재〉 시에 차운하다(次吳極卿《夜歸齋》韻)
- 황치실 군이 멀리서 찾아왔다가 이별할 때에 최여중의 집에 함께 가서 세 사람이 회포를 펴다 무인년(1938)(黃君致實遠訪別時, 同至崔汝重家, 三人敍懷【戊寅】)
- 앞의 운을 써서 치실에게 주다(用前韻, 贈致實)
- 열재 어른께 드리다(呈悅齋丈)
- 자신에 대해 서술하며 앞의 운을 쓰다(自敍, 用前韻)
- 차운하여 강제칠 기석 에게 주다(次贈姜齊七【璣錫】)
- 뱁새의 둥지(鷦棲)
- 우연히 쓰다(偶題)
- 봄날의 감회(感春)
- 일이 생기다(有事)
- 제칠과 족손 진철에게 주다(贈齊七及族孫鎭喆)
- 2월에 궂은비가 내리다(仲春苦雨)
- 2월 그믐날에(仲春晦日)
- 서사의 여러 학생에게 주다(贈書社諸生)
- 최갑호 군에게 주다(贈崔君甲鎬)
- 3월 10일에 여러 벗과 높은 곳에 오르다(三月十日, 與諸益登高)
- 열재 어른이 산북리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聞悅齋丈到山北里)
- 열재 어른을 모시고 여중과 함께 정토사에서 놀다(陪悅丈, 同汝重, 遊淨土寺)
- 이평으로 가는 도중에 열재 어른의 시에 차운하다(梨坪途中, 和悅丈韻)
- 나의 집에서 열재 어른을 모시고 속마음을 얘기하다(弊廬, 陪悅丈話心)
- 평교로 가는 도중에(平橋途中)
- 수성(愁城)
- 초여름에 반가운 비가 내리다(初夏喜雨)
- 진철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다(待鎭喆不至)
- 뜰 앞의 늙고 큰 뽕나무(庭前老大桑)
- 녹음(綠陰)
- 달밤에 지은 즉흥시(月夜卽事)
- 4월 보름에 다시 천태산에 오르다(四月之望, 再上天台)
- 족숙 창암 어른 낙규 에 대한 만시(挽族叔鬯菴丈【洛奎】)
- 홀로 서서 읊다(獨立)
- 봄날의 감회(感春)
-
시(詩)
- 권29
-
-
시(詩)
- 5월 5일에 무인년(1938)(五月五日【戊寅】)
- 강절의 〈수미음〉에 차운하다 11수(次康節《首尾吟》【十一首】)
- 정경산에게 부쳐 보내고 화답을 구하다(寄鄭敬山求和)
- 농사를 걱정하다(憂農)
- 도중에(途中)
- 차운하여 최여중에게 주다(次贈崔汝重)
- 장춘리에서 증조고 천태 부군의 유허를 보고(長春里, 觀曾祖考天台府君遺墟)
- 무인년 생일에 감회가 일어 배율 1수를 짓다(戊寅生朝有感排律一首)
- 임실로 가는 도중에 자정과 이별하며 2수(任實途中, 別子貞【二首】)
- 임실읍을 지나며 감회가 일어(過任實邑有感)
- 이원호 기완 를 찾아갔다가 주인의 시에 차운하다 2수(訪李元浩【起完】, 次主人韻【二首】)
- 우당 서장 택환 에 대한 만시(挽愚堂徐丈【宅煥】)
- 이공 성오 치형 에게 주다(贈李公省吾【治衡】)
- 말복날에 정토사에서 놀다 2수(末庚日, 遊淨土寺【二首】)
- 다음날에 여중과 다시 읊다(翌日, 與汝重更賦)
- 선사의 제삿날에 자정이 시를 짓기에 차운하여 절구 7수를 짓다(先師諱辰, 子貞有詩, 次韻因成七絶)
- 백졸 여중 이 나의 시 〈선사휘신〉에 차운한 절구 8수에 화답하다(和百拙【汝重】次拙詩《先師諱辰八絶》)
- 백졸의 시에 차운하다(次百拙)
- 김치준의 〈호석정〉 시에 차운하다(次金□□【致駿】《湖石亭》韻)
- 강씨의 청계정사 시에 차운하다 고창(高敞)의 갑평(甲坪)에 있다.(次姜氏淸溪精舍韻【在高敞甲坪】)
- 수산에게 주다(贈壽山)
- 백성암을 만났다가 바로 이별하다(遇白省菴旋別)
- 진철을 권면하다(勉鎭喆)
- 선운사를 지나며(過禪雲寺)
- 선운사에서 돌아가던 길에(禪雲歸路)
- 다시 과암의 〈연소〉 시에 차운하다(再次果菴《蓮沼》韻)
- 벼루(硯)
- 9월에 큰 눈이 내리다(九月大雪)
- 오해준 군에게 주다(贈吳君海準)
- 김씨와 오씨 두 사람에게 주다(贈金吳二子)
- 강제칠이 오랫동안 병을 앓은 뒤에 찾아오다(姜齊七久病餘來見)
- 오금을 지나다가 감회가 일어(過梧琴有感)
- 도중에(道中)
- 여중을 찾아가다 2수(訪汝重【二首】)
- 병석에 누워(臥病)
- 완산으로 가는 태아를 전송하며(送泰兒往完山)
- 혹독한 추위에(極寒)
- 등불(燈)
- 세모(歲暮)
- 스스로 경계하다(自警)
- 여중이 찾아오다(汝重來訪)
- 종이 연(紙鳶)
- 걱정하는 마음(憂心)
- 즐거운 마음(樂意)
- 스스로 쓰다(自寫)
- 이단의 설이 도를 해치는 것을 한탄하다(歎異說害道)
- 강제칠에게 주다(贈姜齊七)
- 제칠과 진철에게 작별하며 준 시(贈別齊七及鎭喆)
- 해준에게 작별하며 준 시(贈別海準)
- 손군 주탁 이 약을 준 것에 사례하다(謝孫君【周卓】贈藥)
- 가석과 찬 강에서 함께 읊다(與可石寒江共賦)
- 곽등의 〈두어〉 시에 차운하다(次郭登《蠹魚》韻)
- 상사일에 천태산에 오르다 기묘년(1939)(上巳日, 上天台山【己卯】)
- 산북계회 2수(山北契會【二首】)
- 최춘정 윤섭 의 별장에서(崔春汀【潤燮】庄上)
- 농은의 원시에 차운하다(次聾隱原韻)
- 송사오 광엽 가 나에게 대암재에서 묵으라고 요구하다(宋士午【光燁】要余宿臺巖齋)
- 약천에 제하다 2수(題藥泉【二首】)
- 석탄정을 지나며 판상에 있는 간옹 선사의 시에 차운하다(過石灘亭, 次板上艮翁先師韻)
- 수산을 찾아가다(訪壽山)
- 추산리를 지나며 감회가 일어(過秋山里有感)
- 하서 선생의 묘소에 참배하다(拜河西先生墓)
- 오군 형구에게 주다(贈吳君炯球)
- 까닭이 있어서 짓다(有爲而作)
- 생일에(生朝)
- 중복날에(中伏日)
- 진철에게 주다(贈鎭喆)
- 극심한 가뭄 속에 잠깐 비가 내리다(亢旱中乍雨)
- 잠깐 비가 내렸던 다음날에(乍雨翼日)
- 띳집을 새로 짓다 바로 불망실(不忘室)이다.(茅堂新成【卽不忘室】)
- 백졸을 찾아가다(訪百拙)
- 정토산에 제하다(題淨土山)
- 정토사에서 더위를 피하다(淨寺避暑)
- 혹독한 더위(酷熱)
- 산에서 지내며 우연히 짓다(山棲偶成)
- 무서탄(無薯歎)
- 이원호의 〈망운탄〉에 차운하다(次李元浩《望雲嘆》)
- 유민탄(流民歎)
- 복아를 훈계하다(戒復兒)
- 태아를 훈계하다(戒泰兒)
- 관아를 훈계하다(戒觀兒)
- 겸아를 훈계하다(戒謙兒)
- 참외를 먹으며(食甛瓜)
- 선사의 기일에(先師諱辰)
- 진철에게 주다(贈鎭喆)
- 7월 13일에 백졸이 찾아오다(七月十三日, 百拙見訪)
- 가을비가 내리던 밤에 백졸과 함께 앉아서(秋雨夜, 與百拙同坐)
- 열장에게 부쳐 드리다(寄呈悅丈)
- 양극명 병회 을 찾아가다 절구 3수(訪楊克明【秉晦○三絶】)
- 구암정에서 송심석 어른의 시에 차운하다(龜巖亭, 次心石宋丈韻)
- 김소남 종일 과 함께 청덕령을 넘으며 2수(同金小南【鍾一】, 踰淸德嶺【二首】)
- 백졸의 절구 세 수에 화운하다 경진년(1940) 그때 성씨를 바꾸는 변고가 있었다.(和百拙三絶【庚辰○時有改姓之變】)
- 설 의사를 기리며 3수 설진영(薛鎭永)이 순창에서 거주하였는데 성씨를 바꾸는 변고가 생기자 우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贊薛義士【鎭永居淳昌, 改姓之變, 投井而死.○三首】)
- 백성암 형을 찾아가다(訪白兄省菴)
- 자평(自評)
- 양식을 구해 보내준 것에 사례하다(謝以求饋糧)
- 황치실 신연 과 이별하며 5수(別黃致實【信淵○五首】)
- 두견한(杜鵑恨)
- 우연히 천태산에 오르다 2수(偶上天台山【二首】)
- 선비들이 사심에 따라 의리를 어기는 것을 한탄하다(歎士子徇私悖義)
- 이재 족질 병주 의 원시에 차운하다(次怡齋【族姪炳柱】原韻)
- 벗 서규산 석환 에게 드리고 화답을 청하다(呈圭山徐友【錫煥】求和)
- 임지송 장우 이 찾아오다 3수(林砥松【章佑】來訪【三首】)
- 복달임(煮伏)
- 유포 4장(有匏四章)
- 종양에게 부치다 2수(寄宗陽【二首】)
- 유월 보름밤에 백졸을 그리워하며(六月望夜, 思百拙)
- 큰 비바람에 초당이 벗겨지고 부서졌기에 두 공부의 〈띳집이 가을바람에 부서진 것을 한탄하는 노래[茅屋爲秋風所破歌]〉에 화운하다(大風雨捲破草堂, 和杜工部《茅屋爲秋風所破歌》)
- 귀허탄(歸虛歎)
- 사경재에서 서늘한 바람을 쐬며 병을 조리하다 2수(思敬齋, 納凉調病【二首】)
- 사경재에서 대나무가 숲을 이룬 것을 보고 하수 영공을 그리워하다(思敬齋, 見竹成林, 憶河叟令公)
- 입추 밤에(立秋夜)
- 선사의 기일에 밤새 홀로 앉아서(先師諱辰, 獨坐達夜)
- 초가을에 여중을 찾아가다 2수(早秋, 訪汝重【二首】)
- 중원절에(中元節)
- 7월 16일에 여중과 정토사에서 놀다 2수(七月旣望, 與汝重遊淨土寺【二首】)
- 여중의 별장에서 읊은 즉흥시(汝重庄上卽事)
- 자정에게 보여 주다(示子貞)
- 규산이 찾아왔는데 과암도 자리에 있었다 2수(圭山見訪, 果菴亦在座【二首】)
- 경산에게 부치려고 지은 시 5수(擬寄敬山【五首】)
- 가암 김장 휴철 에 대한 만시(輓可菴金丈【休哲】)
- 추석에 자정과 얘기하다(秋夕, 話子貞)
- 김위재 여중 의 〈낙요정〉 시에 차운하다(次金危齋【麗中】《樂要亭》韻)
- 위재에게 드리다(呈危齋)
- 영광정을 지나며(過迎狂亭)
- 새벽에 떠나며(曉發)
- 순창으로 가는 도중에(淳昌途中)
- 양극명 병회 이 사는 곳을 바라보며(望楊克明【秉晦】所居)
- 방씨의 묘재를 지나며 여재를 그리워하다(過房氏墓齋, 憶勵齋)
- 교룡산성 옛터에서(蛟龍山城廢址)
- 성헌의 병 조리하는 자리에 드리다(呈惺軒調座)
- 풍곡재 족선조(族先祖) 충경공(忠景公)의 묘재(墓齋)이다.(風谷齋【族先祖忠景公墓齋】)
- 수용정 족선조 재간당(在澗堂)이 유식(遊息)하던 곳인데, 아래의 세이암(洗耳嚴)도 이와 같다.(水舂亭【族先祖在澗堂遊息之所, 下洗耳嚴同.】)
- 세이암(洗耳巖)
- 수침동에서 비에 막히다(水砧洞滯雨)
- 다음날에 일찍 길을 떠나며(翌日早行)
- 도중에 짓다(路中作)
- 벗 손두봉 성률 을 찾아가다(訪孫友斗峯【聖栗】)
- 손창오 군을 권면하다(勉孫君昌午)
- 어떤 사람의 〈영망건〉에 차운하다(次人《詠網巾》)
- 성재에서 수세하며 농은의 시에 차운하다(星齋守歲, 次聾隱韻)
- 뒤늦게 지은 봉초 임장 기문 에 대한 만시 신사년(1941)(追挽蓬樵林丈【基汶○辛巳】)
- 백졸을 그리워하며 4수(憶百拙【四首】)
- 백성암 형을 찾아가다 3수(訪省菴白兄【三首】)
- 열재 어른을 뵙고 작별할 때 지어 올리다 2수(拜悅齋丈, 臨別有呈【二首】)
- 익산에서 돌아오던 길에 여중을 찾아가다(益山歸路, 訪汝重)
- 여중을 위로하며(寬汝重)
- 지화옹(紙貨翁)
- 오두남과 내 집에서 수계할 때 김정재 종락 가 마침 이르렀다. 밤이 깊도록 몹시 즐기다가 정재가 비로소 돌아가다(與吳斗南修契弊廬, 金貞齋【宗洛】適到, 歡甚夜久, 貞齋始歸)
- 차정석의 교당 터를 지나며(過車正錫敎堂墟)
- 금성산을 지나며(過錦城山)
- 금산에 올라(登衾山)
- 윤씨의 임천정사에 제하다(題尹氏林泉精舍)
- 영하 윤형 도병 에게 드리다(呈潁下尹兄【道炳】)
- 정성암 병휴 의 산당을 찾아가다(訪鄭省菴【炳休】山堂)
- 원호가 찾아와 이전에 지은 시를 보여주기에 차운하여 드리다 3수(元浩來訪, 示以前作, 次韻以呈【三首】)
- 뒤늦게 지은 양촌 임장 병룡 에 대한 만시(追挽讓村林丈【秉龍】)
- 일이 없어(無事)
- 쑥을 먹으며(茹艾)
- 먼 길을 나선 날 여중의 별장에 찾아 들어가다 2수(遠行之日, 訪入汝重庄上【二首】)
- 산북리에서 비에 막히다(山北里滯雨)
- 여중에게 주며 서로 권면하다(贈汝重交勖)
- 족질 명여 형기 형제에게 주다(贈族姪明汝【炯箕】兄弟)
- 우연히 성산의 고상한 모임에 참여하다(偶參城山雅會)
- 정씨의 성산정사에 올라(登丁氏城山精舍)
- 우우정 시에 차운하다(次友于亭韻)
- 서산 이장 예호 을 찾아가다(訪瑞山李丈【澧鎬】)
- 이사유 한응 에게 화답하다(和李士裕【漢膺】)
- 장수로 가는 도중에 2수(長水途中【二首】)
- 가곡에서 묵으며(宿佳谷)
- 마전령을 넘으며(踰馬轉嶺)
- 추천에 이르러 족질 상집 형돈 을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다(到秋川, 訪族姪庠集【炯敦】不遇)
- 이구평을 지나다가 부자묘에 참배하다(過尼邱坪, 謁夫子廟)
- 거연정에서. 송연재·심석의 시에 차운하다(居然亭 次宋淵齋心石韻)
- 군자정에서. 송금곡의 시에 차운하다(君子亭 次宋錦谷韻)
- 군자정에서. 또 판상 시에 차운하다(君子亭 又次板上韻)
- 교수정에서. 덕곡의 한거잡영 시에 차운하다 5수(敎授亭 次德谷閒居雜詠韻【五首】)
- 남계서원에서(灆溪書院)
- 청계사에서(淸溪祠)
- 함양 도중에 과암을 그리워하다(咸陽途中 懷果菴)
- 동쪽을 유람하는 날에 벗 이강재를 그리워하다(東遊日 懷剛齋李友)
- 동쪽을 유람하는 날에 백졸을 그리워하다(東遊日 懷百拙)
- 고운림에 대한 노래(孤雲林歌)
- 족조 명은공 수민 의 유고를 읽다(讀族祖明隱公【壽民】遺稿)
- 족조 습정공 한충 의 유고를 읽다(讀族祖習靜公【漢忠】遺稿)
- 이씨 소년에 대한 노래(李氏少年行)
- 망월정에서. 입암 족숙-낙종-의 시에 차운하다-함양에 있다.-(望月亭 次立菴族叔【洛鍾】韻【在咸陽】)
- 백전동에서 족인들에게 작별하며 주다(栢田洞 贈別諸族)
- 동은의 시에 차운하다(次東隱韻)
- 최화봉 창렬 을 애도하다(悼崔華峯【滄烈】)
- 차운하여 이군 용상에게 주다(次贈李君龍相)
- '유천사의 유지에 많은 선비가 모여 노닐다' 시에 차운하다(次柳川祠遺址多士會遊韻)
- 여러 종친의 '화수동경계' 시에 차운하다(次僉宗花樹同庚契韻)
- 5월 21일에 높은 곳에 올라 홀로 읊다(五月二十一日 登高獨吟)
- 과암이 내가 산수를 관찰하는 것이 시의에 맞지 않다고 의심하기에 시를 지어 해명하다.(果菴以余觀山水疑其不當時義 詩以解之)
- 임지송의 '《주역》을 읽고 우연히 짓다' 시에 차운하다(次林砥松讀易偶成)
- 산당에서 밤마다 두견새 소리를 듣다(山堂 每夜聞鵑)
- 신사년(1941) 생일에 중제에게 주다 3수(辛巳生朝 贈仲弟【三首】)
- 이날 또 읊다(是日 又吟)
- 이른 가을 족숙 낙표 의 별장에 갔다가 벗을 만나다(早秋 到族叔【洛杓】庄上 逢友人)
-
시(詩)
- 권30
-
-
시(詩)
- 여중의 '곤궁한 유자를 읊다' 시에 차운하다 신사년(1941)(次汝重詠窮儒韻【辛巳】)
- 김유전 은동 의 별장에 갔다가 마침 고아한 모임이 있어(到金柳田【殷東】庄上 適有雅會)
- 폐허가 된 쌍수 산성을 보고(觀雙樹山城廢址)
- 강재에게 화답하다 2수(和剛齋【二首】)
- 과암이 내가 조용히 산당에 거처한다는 이유로 시를 지어 주기에 보운하여 사례하다(果庵以余靜處山堂 有詩見贈 步韻謝之)
- 예천재에 이르렀다가 오씨 여러 벗과 함께 읊다(到禮川齋 同吳氏諸友吟)
- 9월 보름밤에(九月望夜)
- 성암이 찾아와 주어 기뻐서(喜省菴來訪)
- 성헌옹을 애도하다(悼惺軒翁)
- 월호의 '국화를 읊다' 시에 차운하다(次月湖詠菊韻)
- 제석에. 농암의 시에 차운하다(除夕 次農巖韻)
- 3월 10일에 벗들과 정토산에 오르다 임오년(1942)(三月十日 與諸益上淨土山【壬午】)
- 3월 그믐에 흥덕의 고암에 오르다(三月晦日 上興德之鼓巖)
- 남종재에서 차운하여 황군 율파 서구 에게 주다(南宗齋 次贈黃君栗坡【瑞九】)
- 남종재에서 율파와 함께 감회를 서술하다(南宗齋 同栗坡敍懷)
- 백성암에게 부치다(寄白省庵)
- 단파정 시에 차운하다(次檀坡亭韻)
- 보고 느낀 것을 읊다(卽事)
- 순집이 선조의 문집을 간행하였는데 해가 가물어 흉년이 든 것을 근심하기에 시를 지어 달래주다(舜輯營刋先集 以歲旱無年爲憂 詩以寬之)
- 중복(中伏日)
- 차운하여 임예경 근호 에게 주다(次贈林禮卿【謹鎬】)
- 아주 심한 더위(苦熱)
- 가뭄을 걱정하다(憫旱)
- 무제(無題)
- 선사의 기일에 밤을 세울 때 진후산의 '향래일판향 경위증남풍' 시를 사용하여 분운해서 절구 시 10수를 짓다(先師諱辰 達夜時 用陳後山向來一瓣香敬爲曾南豐之詩 分韻得十絶)
- 이른 가을 남종재에서 돌아오다(早秋 歸自南宗齋)
- 정재가 지난봄 화답한 시를 보여주었는데 도기서향의 말이 있기에 삼가 차운하여 은혜에 사례하다(貞齋示以昨春所和詩 有道氣書香之語 奉次謝惠)
- 앞 시의 운을 사용하여 다시 정재 형에게 드리다(用前韻 復呈貞兄)
- 성오 이공 치형 을 애도하다 ○2수(悼省吾李公【治衡○二首】)
- 정경산의 '새로운 거처' 시에 차운하다(次鄭敬山新居韻)
- 척질 김중식 영찬 을 애도하고 이어 외종형 만당 어른을 위로하다(悼戚姪金重植【永鑽】 因慰外從兄晩棠丈)
- 익산에 이르러 열재 어른을 배알하려 했으나 하지 못하다 2수(到益山 擬拜悅齋丈 未果【二首】)
- 만당 외종형이 시를 지어 호의 뜻을 해석하기에 차운하여 드리다(晩棠外兄以詩解其號意 次韻以呈)
- 가을날에 뜻을 쓰다(秋日書志)
- 중양절 전날 밤에 국화와 달을 읊다(重陽前夜 詠菊月)
- 중양절 초당에 홀로 앉다. 주자의 시에 차운하다(重陽日 草堂獨坐 次朱子韻)
- 중양절 다음날에 전연심 어른, 벗 김정재 및 과암과 읊다(重陽翌日 與田丈鍊心金友貞齋及果菴吟)
- 흥덕의 세 황군 서구, 하영, 건익 이 찾아온 데 대해 사례하다 2수(謝興德三黃君【瑞九河永鍵翼】來訪【二首】)
- 득열 어른이 화답한 시에서 자신의 나이는 연로한데 시는 노성하지 않음을 탄식하다(得悅丈和詩 歎其年老而詩不老)
- 오군 윤일이 천 리에서 찾아왔기에 아주 기뻐서 주다(吳君允一千里見訪 喜甚有贈)
- 황치실이 평안하다는 소식을 듣고 아주 기뻐서 시를 지어 정을 보이다(聞黃致實安信喜甚 以詩見情)
- 동자 오원세에게 주다(贈吳童源世)
- 변산의 영은동에 이르렀다가 선조 복야부군의 유적에 느낌이 일어 삼가 부군이 지은 시에 차운하다 소서를 아울러 기록한다.(到邊山靈隱洞 有感先祖僕射府君遣蹟 謹次府君題詩韻【幷小序】)
- 석재사(釋在寺)에 오르다(上釋在)
- 윤일이 화답한 시에 '문하의 독서인이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구절이 있어 차운하여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드러내다(允一和詩 有願爲門下讀書人之句 次韻以表不敢當之意)
- 보고 느낀 것을 읊다(卽事)
- 남종재에 재차 이르러 일을 기록하다(重到南宗齋 記事)
- 12속체. 유병산을 본받다(十二屬軆 效劉屛山)
- 황어은 진익 과 임동리 근호 두 벗이 여행 중에 있는 나를 찾아오다(黃漁隱【璡翼】林東里【謹鎬】二友見訪旅中)
- 윤일이 돌아간 후에 생각이 일어(允一歸後有思)
- 기러기를 읊다(詠鴈)
- 부질없이 쓰다(漫題)
- 겨울밤에(冬夜)
- 가족을 생각하며 큰딸의 어려운 상황을 가엾게 여기다(思家 憫長媳艱狀)
- 여행 중에 여중을 그리워하다(旅中 懷汝重)
- 흥성에서 《이재집(頤齋集)》을 교정할 때 아들 형관(炯觀)이 와서 도와주었다가 11월 아무 날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다(校正頤集于興城也 觀兒來助 仲冬日送之歸家)
- 남종재의 원시에 차운하다 황씨의 묘사이다.(次南宗齋原韻【黃氏墓舍】)
- 노군 병후 에게 주다(贈盧君【秉厚】)
- 밤에 앉으니 생각이 일어(夜坐有思)
- 초승달을 보다(見新月)
- 이사유를 그리워하다(懷李士裕)
- 11월 8일에 눈 내린 뒤의 국화를 보다(仲冬初八 見雪後菊)
- 《황극경세서》를 읽다(讀《皇極經世書》)
- 《정몽》을 읽다(讀《正蒙》)
- 《율려신서》를 읽다(讀《律呂新書》)
- 《홍범황극》을 읽다(讀《洪範皇極》)
- 달밤에(月夜)
- 소지일에. 두 공부의 시에 차운하다(小至日 次杜工部韻)
- 동짓날에. 두 공부의 시에 차운하다(冬至日 次杜工部韻)
- 동짓날에. 소강절의 시에 차운하다(冬至日 次邵康節韻)
- 선사께서 신축년(1901, 고종38) 동짓날에 봉서사에서 회옹의 운에 차운한 시에 삼가 차운하다 소서를 아울러 기록한다.(謹次先師辛丑南至鳳棲寺所次晦翁韻【幷小序】)
- 수동에서 눈으로 길이 막히다. 두남의 시에 차운하다(阻雪壽洞 次斗南韻)
- 《이재집》에 실린 임공 항원 의 삼일당 시에 차운하다(次頤齋集林公【恒遠】三一堂韻)
- 산당에서 대설 중에 홀로 앉다(山堂 大雪中獨坐)
- 여중에게 화답하다 2수(和汝重【二首】)
- 앞 시에 첩운하여 여중을 면려하다(疊前韻 勉汝重)
- 아들 형태(炯泰)와 여중이 창화한 시에 차운하고 인하여 권면하다(次泰兒與汝重唱和韻 因以勖之)
- 세모에 만당 외형께 드리다(歲暮 呈晩棠外兄)
- 세모에 기뻐서(歲暮有喜)
- 제석 전날 밤에 홀로 앉다(除夕前夜 獨坐)
- 제석에(除夕)
- 원일에 입춘이 겹치다 계미년(1943)(元日兼立春【癸未】)
- 입춘축(春祝)
- 입춘 후에 눈바람이 치다(立春後 風雪)
- 능하기 어려워(難能)
- 벽에 그려진 소나무를 보다(見壁上畫松)
- 진동의 임씨 병사에 쓰다(題眞洞林氏丙舍)
- 임치선 낙순 의 별장에서(林致善【洛順】庄上)
- 전연심 어른 희순 에 대한 만사(挽鍊心田丈【熙舜】)
- 경산을 생각하다(憶敬山)
- 애석하구나(可惜)
- 백졸을 그리워하다(懷百拙)
- 경산에게 약을 보내주기를 청하다(請敬山送藥)
- 경산이 약을 보내온 데 대해 사례하다(謝敬山送藥)
- 막내딸이 기묘년(1939) 겨울에 난산으로 유산한 탓에 병이 들어 늘 안타까웠는데 작년 8월에 임신하여 오늘 사내아이를 낳았으니 지금은 근심이 풀렸다 계미년(1943) 5월 23일 ○ 2수(末媳己卯冬 以難産致敗 因以有病 恒以爲悶 自昨年八月任身 是日生丈夫子 今則可以釋慮【癸未五月二十三日○二首】)
- 변죽남이 실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를 지어 위로하다(聞邊竹南失明 詩以慰之)
- 회산 족형 양식 을 애도하다(悼晦山族兄【亮植】)
- 인재 황군 하영 의 별장에 쓰다(題認齋黃君【河永】庄)
- 소년 황정구를 면려하다(勉黃少年定九)
- 석전 황군 욱 에게 주다(贈石田黃君【旭】)
- 여행 중에 생일을 만났는데 이때 나이 육십 세였다(旅中逢生朝 時年六十)
- 노군에게 주다(贈盧君)
- 남이 부채를 읊은 시에 차운하다(次人詠扇)
- 남이 자명종을 읊은 시에 차운하다(次人詠自鳴鍾)
- 하국(夏菊)
- 산재에서 우중에(山齋雨中)
- 개구리 울음소리를 싫어하다(憎蛙鳴)
- 석전에게 화답하다 2수(和石田【二首】)
- 객창에서 우연히 쓰다(旅窓偶題)
- 여안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노역으로 아주 고달프니 인생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라는 말이 있어 그 때문에 안타까워서 시를 지어 위로하고 면려하다(汝安書來 有勞役甚苦人生幾何語 爲之憫然 詩以慰勉)
- 앞 시의 운을 사용하여 스스로 면려하다(用前韻自勉)
- 보고 느낀 것을 읊다(卽事)
- 6월 그믐에(六月晦日)
- 성암을 찾아가 자식을 곡한 데 대해 위로하다(訪省菴 慰哭子)
- 선사의 기일에 익부, 사익과 함께 밤새 추모하다(先師諱辰 與翼夫士益 達夜追慕)
- 백졸에게 부치다 5수(寄百拙【五首】)
- 병중에 읊다 2수(病中吟【二首】)
- 칠석에 지난 일을 추억하다(七夕追懷)
- 차조기 잎을 따다(摘紫蘇葉)
- 김염재가 은거하는 곳을 찾아갔다가 길을 잃어 가지 못해, 당나라 사람의 〈방양존사〉 시에 차운하다(訪金念齋隱居 失路未果 次唐人訪羊尊師韻)
- 정불우헌 선생의 묘소에 절하다(拜丁不憂軒先生墓)
- 경산의 '스스로 해명하다' 시에 차운하다(次敬山自解韻)
- 경산의 '9월 뜰의 매화' 시에 차운하다(次敬山九月庭梅韻)
- 선친의 '터를 잡은 뒤 60년이 지나 느낌이 일어' 시에 삼가 차운하다(敬次先子卜基回甲有感韻)
- 선친의 원고 중에 '불초를 경계하다' 시에 삼가 차운하다-3수-(敬次先子稿中戒不肖韻【三首】)
- 고회봉 어른 제규 에 대한 만사(挽晦峯高丈【濟奎】)
- 계미년(1943)에 수세하다(癸未守歲)
- 만당 외형이 '제야에 부질없이 읊다' 시를 부쳐왔기에 차운하여 삼가 드리다 갑신년(1944)(晩棠外兄寄除夜謾吟 次韻奉呈【甲申】)
- 만당 형이 내가 올해 회갑이라 하여 앞 운 그대로 시를 부쳐왔기에 또 차운하여 드리다 2수(晩棠兄以余今年回甲 仍前韻寄詩 又次呈上【二首】)
- 조경옥 일식 에 대한 만사(挽趙京玉【逸植】)
- 백졸이 찾아와 앞 시에 화답한 시를 주기에 바로 화운하여 보답하다(百拙來訪 贈以所和前韻 却步以酬)
- 이재 전집의 간행을 마치다. '다사' 시에 차운하다(頣齋全集刋訖 次多士韻)
- 도중에 보고 느낀 것을 읊다(道中卽事)
- 회갑 생일에 슬픈 회포를 쓰다(周甲弧日 書悲懷)
- 오늘. 6장 회갑일에 〈육아〉 시에 차운하다(此日六章【周甲日次蓼莪詩】)
- 회갑 생일에 둘째 누이를 생각하다(回甲生朝 思次姊)
- 근심이 끊이지 않다(憂不絶)
- 여중이 회갑 날 준 시에 화답하여 사례하다 3수(步謝汝重甲日見贈韻【三首】)
- 회갑 날에 관아가 헌수한 시를 받고 화운하여 보이다(甲晬日 得觀兒獻詩 步韻示之)
- 앞 시를 사용하여 겸아를 생각하다(用前韻 思謙兒)
- 불망실의 식물을 읊다. 10절(詠不忘室植物 十絶)
- 국화 줄기로 시초를 대신하다(菊莖代蓍)
- 도중에 관아와 작별하다(道中別觀兒)
- 유두일 전날 병으로 만수동에서 머물다(流頭前日 病滯萬壽洞)
- 두남에게 주다(贈斗南)
- 가뭄 끝에 비를 기뻐하다(旱餘喜雨)
- 비 온 뒤 세찬 바람이 불다(雨後大風)
- 《한음집》 가운데 '시시를 지나다가 느낌이 일어' 시에 차운하다(次漢陰集中過柴市有感韻)
- 화로봉(話露峯)
- 수동에서 돌아오던 날 등 적삼을 잃어버렸기에 사람을 보내 찾아오게 하고 시를 지어 사익에게 부치다(自壽洞歸日 忘却藤衫 遣人覓來 賦寄士益)
- 신경재 태용에 대한 만사(挽申敬齋【泰庸】)
- 솔방울을 줍다(拾松子)
- 김서를 심다(種金署)
- 종자 형낙을 그리워하다(思從子炯洛)
- 달밤에 홀로 앉다(月夜獨坐)
- 오염조 순근을 애도하다(悼吳念祖【純根】)
- 백졸을 찾아가다(訪百拙)
- 당나라 사람의 입추 시에 차운하다 2수(次唐人立秋詩【二首】)
- 백졸과 함께 정토사에 오르다(同百拙 上凈土寺)
- 우암의 '탄식이 있어' 시에 차운하다(次尤菴有歎詩)
- 정토사에서 조용히 앉다(凈寺靜坐)
- 입추 다다음날에. 명도의 '가을날 우연히 짓다' 시에 차운하다(立秋再翼 次明道秋日偶成韻)
- 백졸의 '안중근(安重根) 의사를 추후에 애도하다' 시에 차운하다 2수(次百拙追挽安義士韻【二首】)
- 백졸이 예전 지은 시에 차운하다 2수(次百拙舊作【二首】)
- 백졸과 이야기하다(話百拙)
- 평생(平生)
- 《매천집》 가운데 '만육의 유허를 지나다' 시를 보고 화운하여 그 뜻을 뒤집다 3수(見梅泉集中過晩六遺墟詩 步韻而反之【三首】)
- 객지에서 보고 느낀 것을 읊다(客中卽事)
- 우연히 읊다(偶吟)
- 백졸을 위로하다(慰百拙)
- 새벽에 부풍을 출발하다. 두공부의 '공안' 시에 차운하다(曉發扶風 次杜工部公安韻)
- 자형 유백원 동기의 옛 별장에 묵다(宿柳姊兄伯源【東起】舊庄)
- 말복에 성재에서의 종회(末伏日 星齋宗會)
- 사경재에서 더위를 피하다(思敬齋避暑)
- 도암 이문정공이 족조 취성당 수종의 초당에 쓴 시에 차운하다(次陶菴李文正公題族祖醉醒堂【守宗】草堂韻)
- 6월 30일에(六月三十日)
- 7월 1일에(七月一日)
- 도중에 본 것을 기록하다 9수(道中記見【九首】)
- 황폐한 고을 고부의 향교를 지나다 느낌이 일어(過古阜廢邑鄕校有感)
- 황폐한 고을 흥덕의 향교를 지나다(過興德廢邑鄕校)
- 객지에서 선사의 기일을 만나다(客中 遇先師諱辰)
- 남의 초당에 쓰다(題人草堂)
- 모양의 강연은 채영 별장에서 비에 발이 묶이다(牟陽姜蓮隱【采永】庄上滯雨)
- 불어난 물을 바라보다(觀漲)
- 《장서》를 보다(觀葬書)
- 석탄정에 오르다. 선사의 판상 시에 삼가 차운하다(登石灘亭 謹次先師板上韻)
- 7월 16일에(七月旣望)
- 기산에서 비에 길이 막혀 배율 한 편을 짓다(箕山阻雨 賦排律一篇)
- 백성암을 방문하여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읊다 2수(訪白省菴口占【二首】)
- 남이 차운한 왕개보 시에 차운하다(次人所次王介甫詩)
- 최신암이 부쳐 준 시에 화답하다(和崔新菴寄詩)
- 신암의 뛰어난 시를 찬미하다(美新菴工詩)
- 만오정에서 신암과 이야기하다(晩悟亭上 話新菴)
- 동곡 최성극 두열의 별장에서 묵다(宿東谷崔成克【斗烈】庄)
- 모현재를 지나며 자유를 생각하다 2수(過慕賢齋憶子由【二首】)
- 승부리에 도착하여 두 명의 유씨 벗과 이야기하다(到承富里 話二柳友)
- 춘정 유공 익상을 생각하다(憶春汀柳公【翼相】)
- 8월 14일 밤에 관아를 기다리다(八月十四夜 待觀兒)
- 연심 어른의 영연에 곡하고 인하여 그 집에 묵으면서 짓다. 전날의 만사 시운을 사용하다(哭鍊心丈靈筵 因宿其家有作 用前日挽詞韻)
- 남지일에 두공부의 시에 차운하다 2수(南至日 次杜工部韻【二首】)
- 밤에 천치를 넘다(夜踰天峙)
- 섣달 4일에(臘月初四日)
- 입춘에(立春日)
- 육십일 세의 제석에(六十一歲除夕)
- 자정을 위로하다(慰子貞)
- 벽성 도중에 당형을 찾아뵙다 2수 ○을유년(1945)(往拜棠兄 碧城途中【二首○乙酉】)
- 벽골제 비문을 보다(觀碧骨堤碑)
- 강양오 신륜을 애도하다(悼姜養五【信倫】)
- 이여우 석하를 애도하다(悼李汝禹【錫夏】)
- 익산으로 가는 중에 길을 헤매다(益山行迷路)
- 미산 3장. 선사 간옹을 추모하다(彌山三章 慕艮翁先師)
- 다가포에서 열장을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다(多佳浦訪悅丈 不遇)
- 청명 이후 5일 뒤 도중에 비를 만나다 2수(淸明後五日 道中遇雨【二首】)
- 도중에 우연히 짓다(道中偶成)
- 단산리를 지나다(過丹山里)
- 정국진의 희성당 시에 차운하다(次鄭國振希成堂韻)
- 정국진의 산수정 시에 차운하다(次鄭國振山水亭韻)
- 당형이 낚시하는 것을 보다(觀棠兄釣魚)
- 자정에게 충고하다 6절(忠告子貞【六絶】)
- 남의 말을 듣고 개연하여 쓰다 2수(聞人言慨然而題【二首】)
- 세도를 개탄하다. 횡거의 시에 차운하다(慨世, 次橫渠韻)
- 병든 몸으로 부안에 가려다가 결국 가지 못하다(病餘作扶安行, 不果)
- 김씨 삼강려를 지나며(過金氏三綱閭)
- 조령 도중에(鳥嶺途中)
- 이문량 주성이 찾아오다(李文良【周星】來訪)
- 5월 16일 한밤중에 천둥 번개가 치다(五月十六夜雷電)
- 방옹의 〈부생〉 시에 차운하다(次放翁《浮生》韻)
- 스스로 평가하다(自評)
- 복숭아나무 신을 깨우치다(喩桃樹神)
- 당 앞의 소나무 숲이 베어지자 모습이 드러난 영주산을 보다(堂前松林之斫, 見瀛山呈露)
- 4월 9일에 증조의 기제사를 장차 행하려다가 곽란증이 생기고, 5월 9일에 고조의 기제사를 이미 행한 뒤에 현훈증이 생겼는데, 제사를 받드는 정성이 없어 선령께 벌을 받을까 몹시 두렵기에, 시를 지어 아이들에게 보여주어 앞의 수레를 거울삼을 수 있도록 하다(四月九日曾祖忌祀將行而病霍亂, 五月九日高祖忌祀旣行而病眩暈, 深懼奉祀無誠, 獲罰先靈, 述詩示兒輩, 俾作前車之鑑)
- 백발의 몸(白頭)
- 선사의 기일에 밤새도록 회포가 있어(先師諱辰達夜有懷)
-
시(詩)
- 권31
-
-
시(詩)
- 을유년(1945) 7월 9일에 왜가 망하고 조국이 광복된다는 소식을 기쁘게 듣고 8수(乙酉七月九日 喜聞倭亡國復之報【八首】)
- 7월 15일(七月十五日)
- 태극기(太極旗)
- 김유전 은동(殷東)에 대한 만사 6수(挽金柳田【殷東○六首】)
- 김동강 영한(甯漢)의 〈기쁨을 기록하다〉에 차운하다 2수(次金東江【甯漢】《識喜》韻【二首】)
- 앞 시에 첩운하여 근심을 풀다(疊前韻 寫隱憂【二首】)
- 나의 졸시에 차운한 열재 어른의 시에 삼가 화운하다 –3수-(奉和悅齋丈所次拙詩韻【三首】)
- 방옹의 〈예순두 살에 읊다〉 시에 차운하다(次放翁六十二歲吟)
- 송익헌 우진(宇鎭) 을 방문하다 5수(訪宋益軒【宇鎭 ○五首】)
- 송익헌이 백지를 보내준 것에 사례하다(謝益軒惠白紙)
- 족제 문규 승술(承述) 을 방문하다 2수(訪族弟文奎【承述 ○二首】)
- 나군의 말을 듣고 시를 지어 보여 주다(聞羅君有言, 詩以示之)
- 네 가지 어려움에 대한 노래 4수(四難吟【四首】)
- 정금열에게 작별하며 주다 4수(贈別丁金烈【四首】)
- 황운로(黃雲路) 용익(龍翼) 에 대한 만사(挽黃雲路【龍翼】)
- 동짓날에 회포를 적다(至日書懷)
- 복아가 몽사의 스승이 된 것을 기뻐하며(喜復兒爲蒙士師)
- 겸아가 독서하는 것을 기뻐하며(喜謙兒讀書)
- 여안에게 부치다(寄汝安)
- 을유년(1945)에서 병술년(1946)으로 바뀌는 새해 정월 초하루에 일을 기록하다(乙丙獻發記事)
- 시국 소식을 듣고 개탄하다(聞時耗慨然)
- 취성재를 세운 지 두 번째 주갑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시 병소서 ○병술년(1946)(聚星齋再度周甲紀念詩【幷小序○丙戌】)
- 죽오 오장 택호(宅鎬) 에 대한 만사(挽竹塢吳丈【宅鎬】)
- 공적으로 근심하며(公憂)
- 사적으로 근심하며(私憂)
- 우연히 쓰다(偶題)
- 신원석이 김염재가 부쳐준 시를 보여주기에 차운하여 지어 주다(申元石示以金念齋所寄詩 次韻以贈)
- 신태인에서 비로 지체하며 족질 형일에게 지어 주다(滯雨新泰仁 贈族姪炯日)
- 6월 6일 공주에서 비로 지체하며 망제 여호를 애도하다(六月六日滯雨公州 悼亡弟汝昊)
- 김행해 노동 에게 지어 주다 2수(贈金杏海【魯東○二首】)
- 행해의 두 아들 철현과 청현에게 지어 주다(贈杏海二子澈顯淸顯)
- 공주 제천의 임간송 호철 을 방문하다 ○9수(公州濟川訪林澗松【浩喆○九首】)
- 오윤일의 별장에 이르다(到吳允一庄)
- 용소의 모정에 제하다(題龍沼茅亭)
- 오윤일과 이별을 읊다(與允一賦別)
- 이튿날 큰비가 내려 출발하지 못하다(翌日大雨未發)
- 오윤일을 위로하다(慰允一)
- 오군 원세에게 권면하다(勉吳君源世)
- 청주 인사가 효열부 김씨를 천양한 시에 차운하다(次淸州人士闡揚孝烈婦金氏韻)
- 소심재 어른의 세 아들을 방문하다(訪小心齋丈三子)
- 석전의 황군을 방문하다(訪石田黃君)
- 입석리의 족숙 낙찬 을 삼가 애도하다(敬悼立石里族叔【洛瓚】)
- 이만근에게 지어 주다(贈李萬根)
- 우연히 말이 어눌해지다(偶然言語鈍弱)
- 병중에 만당형장을 생각하며 3수(病中憶晩棠兄丈【三首】)
- 불망실에 제하다. 마땅히 갑신년(1944) 조에 있어야 한다.(題不忘室【當在甲申年條中】)
- 성군 구용 에게 지어 주다 ○3수(贈成君【九鏞○三首】)
- 병중에 석계에게 드리다 2수(病中呈石溪【二首】)
- 병중에 여중에게 부치다 4수(病中寄汝重【四首】)
- 병중에 이구에게 부치다 4수(病中寄以求【四首】)
- 눈 속의 고목(雪中古木)
- 외종형 김경문 태현 을 애도하다 ○무자년(1948)(悼外從兄金景文【泰鉉○戊子】)
- 의사 윤봉길행(尹義士奉吉行)
- 배 철원행(裵哲媛行)
- 봄이 저물려 하다(春將暮)
- 즐거운 곳(樂處)
- 산에 오르다(登高)
- 병상에 누워(病枕)
- 천태산에 오르다(上天台山)
- 우연히 읊다(偶吟)
- 최정석에게 지어 주다(贈崔正錫)
- 홀로 외로이 살다(孤棲)
- 여름날 즉흥으로 읊다(夏日卽事)
- 무더위(苦熱)
- 쉼 없이 흘러가다(滾滾)
- 선사 기일(先師諱辰)
- 송경률 노용에 대한 만사(挽宋景栗【魯容】)
- 병중에(病中)
- 가을날 감회가 있어 읊다(秋日感吟)
- 정석에게 지어 주어 권면하다(贈勉正錫)
- 권재경에게 지어 주어 권면하다(贈勉權在炅)
- 칠월 보름날(七月之望)
- 칠월 십팔일 밤에 달을 기다리며(七月十八夜待月)
- 달밤(月夜)
- 장군 세철 형덕 에게 지어 주다 ○기축년(1949)(贈張君世澈【炯德○己丑】)
- 백로절에 늦벼를 근심하며(白露節憫晩稻)
- 학문을 근심하다(憂學)
- 흠자의 설로 재차 장세철에게 지어 주다(欽字再贈張世澈)
- 즉흥으로 읊다(卽事)
- 달을 마주하며(對月)
- 서양 사조(西潮)
- 〈귀거래사〉를 읽다가 '거문고와 책을 스스로 즐기다'는 말에 감회가 있어(讀《歸去來辭》, 感琴書自娛之語)
- 공자의 무리(孔氏徒)
- 백로 이튿날에 찬 비가 내리다(白露翌日冷雨)
- 청산에 살다(棲碧)
- 전횡(田橫)
- 간곡사 유지에서 여러 선비의 시에 차운하다(次艮谷祠遺址多士韻)
- 초겨울에 즉흥으로 읊다(初冬卽事)
- 이군 기용이 방문해줌을 기뻐하며(喜李君【起容】見訪)
- 동지 칠일 전에(冬至前七日)
- 오두막집(白屋)
- 추위를 두려워하다(怕寒)
- 묵묵히 앉아(黙坐)
- 한 생각(一念)
- 눈 내린 달밤(雪月夜)
- 겨울비(冬雨)
- 이군 태우에게 보여 주다(示李君泰雨)
- 최병연 정석에게 지어 주다(贈崔秉硏正錫)
- 환경(環境)
- 진곡 시에 차운하다(次震谷詩韻)
- 진창길(泥程)
- 성(性)
- 심(心)
- 정(情)
- 송백(松柏)
- 회포가 있어 육언(有懷【六言】)
- 벗 이경순이 방문해주다(李友敬循見訪)
- 김금서에 대한 추후 만사(追挽金錦西)
- 대한 이튿날(大寒後翌日)
- 정석과 이별하다 2수(別正錫【二首】)
- 기축년 제야에 생각이 일다(己丑除夜有思)
- 이문량이 새해에 보내준 시에 차운하다 경인년(1950)(次李文良新年見贈【庚寅】)
- 달밤에 두 망제를 그리워하다(月夜思二亡弟)
- 선인의 이장을 끝내지 못함을 근심하다(憂先葬未完)
- 임남파 양호 의 〈초당〉 시에 차운하다(次林南坡【讓鎬】草堂韻)
- 남파가 보내준 시에 차운하다(次南坡見贈)
- 이신헌 기환 을 애도하다(悼李愼軒【起煥】)
- 사월 이일 2수(四月二日【二首】)
- 연파의 〈누실〉 원운에 차운하다 주인은 기노백이다.(次蓮坡陋室原韻【主人奇老栢】)
- 천태산에 오르다 2수(上天台山【二首】)
- 병중에 2수(病中【二首】)
- 병중에 만당형장을 그리워하며(病中懷晩棠兄丈)
- 손자 하중에게 보이다(示孫兒夏重)
- 벗 김대진 진근 을 곡하다(哭金友大眞【鎭根】)
- 제병 열 폭의 그림 뒤에 삼가 쓰다 병서 ○신묘년(1951)(敬題祭屛十幅圖畵後【幷序 ○辛卯】)
- 김추강에게 사례하다(謝金秋岡)
- 양우석에게 사례하다(謝楊愚石)
- 조군 정호 찬문 의 〈선고 묘소의 석물〉 시에 차운하다(次趙君正豪【燦文】先考墓石儀韻)
- 최군 원경 갑열 이 방문해주어 시를 주기에 차운하여 보여주다 4수(崔君元敬【甲烈】見訪有贈, 次韻示之【四首】)
- 최씨 사유 인석 가 찾아옴을 기뻐하여 시를 지어 주다(喜崔氏士由【仁錫】來訪 以詩贈之)
- 수재 최정석에게 부치다(寄崔秀才正錫)
- 자신에 대한 만사(自挽)
- 신묘년(1591) 봄날에 우연히 쓰다(辛卯春日偶書)
- 오랫동안 병을 앓다(久病)
- 두 누이를 애도하다(悼二姊)
- 통한하다(痛恨)
- 오윤일 구화 에게 지어 주고 화답을 구하다(贈吳允一 求和)
- 조카 이기호가 적삼과 바지 한 벌을 주기에 시를 지어 주어 학업을 권면하다(李姪奇鎬進以衫袴一襲 贈詩勉其學業)
- 병중에 도암의 일을 기억하고 스스로 탄식하다(病中記陶菴事自歎)
- 신묘년(1951) 선사 기일에 감회가 있어 일을 기록하다 7월 4일(辛卯先師諱辰感懷記事【七月四日】)
- 유석당 인성 에 대한 만사(挽柳石堂【寅晟】)
- 강연은 채영 에 대한 만사 여섯 절구(挽姜蓮隱【采永】六絶)
- 구월 십사일에 감회가 있어(九月十四日有感)
- 농아의 노래. 극재 강우 호영 에게 주다(啞而聾歌.贈克齋姜友【浩永】)
- 송파 족숙 낙순 을 애도하다(悼松坡族叔【洛舜】)
- 최재홍 규상 을 애도하다(哀崔載洪【圭相】)
- 병을 얻은 뒤로 일 년이 차다(得病後滿朞)
- 지재 족숙 낙주 이 시를 준 것에 대해 사례하다 임진년(1952)(謝止齋族叔【洛疇】贈詩【壬辰】)
- 지재의 〈인일〉 시에 차운하다(次止齋人日韻)
- 성암 백형 남두 을 애도하다(悼省菴白兄【南斗】)
- 이청련의 〈자극궁〉 시에 차운하여 족손 성철에게 주다(次李靑蓮紫極宮詩, 贈族孫炅喆)
- 벗 김주백 종락 에 대한 만사(挽金友周伯【宗洛】)
- 채군 동건이 문병 와서 시를 주기에 차운하여 사례하다(蔡君東建問病贈詩, 次韻謝之)
- 다시는 꿈에서 조비 및 선고와 선비를 뵙지 못하다(不復夢見祖妣先考先妣)
- 전의 이씨의 〈관경재〉 시에 차운하다(次全義李氏《觀敬齋》韻)
- 조카 형식에게 경계하여 주다(戒贈從子炯湜)
- 박군의 상제를 장려하다(獎朴喪製)
- 계사년(1953) 1월 1일 3수(癸巳正月一日【三首】)
- 〈삼호정〉 시에 차운하다 계사년(1953)(次三湖亭韻【癸巳】)
- 연전에 강극재에게 지어 준 나의 〈농아〉 시에 염재가 차운하여 보내주었기에 주필로 화답하다(念齋次余年前贈姜克齋啞聾詩寄送, 走筆和之)
- 염재의 시에 화운하다(和念齋)
- 매강 이형 쾌열 에 대한 만사 4수(挽梅岡李兄【快烈○四首】)
- 이소리를 추억하여 그의 손자 현기 에게 주다(憶李素履, 贈其孫【鉉基】)
- 벗 김경일 진회 에 대한 만사(挽金友敬一【鎭晦】)
- 후송 족숙 낙성 에 대한 만사(挽後松族叔【洛成】)
- 족질 형선에게 지어 주다(贈族姪炯善)
- 소년초(少年草)
- 태아가 겨울에 약을 구하는 것을 근심하다(憫泰兒冬天求藥)
- 최도열 승현 의 선비인 이씨의 효행을 듣고 찬탄하여 쓰다(聞崔道悅【承鉉】先妣李氏孝行, 贊嘆而題)
- 한스러운 마음이 일어(有恨)
- 병든 몸을 끌고 산당의 국화와 대나무를 보러 가다(扶病往見山堂菊竹)
- 부(賦)
- 사(辭)
-
시(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