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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봉유사》의 뒤에 쓰다(題錦峰遺事後)

금성삼고(錦城三稿) / 소포유고부록

자료ID HIKS_OB_F9008-01-240502.0005.TXT.0004
《금봉유사》의 뒤에 쓰다
나의 외가인 나주 나 씨(羅州羅氏) 상사(上舍)주 84) 나두동(羅斗冬) 종형과 삼종 나두흥(羅斗興) 아우가 함께 나에게 보낸 편지를 보니, 선고조(先高祖) 금호공(錦湖公), 증조 금암공(錦巖公), 금봉공(錦峰公) 형제의 행적에 대해 추술(追述)한 일을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이에 나는 지극한 뜻과 부지런하고 정성스러움에 감동하여 감히 임자가 아니라는 핑계로 감히 사양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보내준 여러 기록을 상고하여 외람되이 그 사이를 고쳐주 85), 금호와 금암 2대의 〈사실기(事實記)〉를 지었다. 돌아보건대 금봉의 사적은 상사 종형이 장초(狀草)한 것으로 절로 편의 체제를 이루어 처음과 끝이 차서가 있고 어의(語義)에 흠이 없었다. 끝부분에 증조 금암공의 제문을 인용하고 그에 대하여 "여러 번 이 글을 읽어보니 나도 모르게 엄숙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흐른다."라고 쓴 글 또한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다만 도외시하지 않는 뜻에서 그 가운데 나아가 더러는 한 글자를 빼기도 하고 더러는 한 글자를 바꾸기도 한 곳이 약간 있었을 뿐이니 어찌 굳이 고칠 필요가 있겠는가.
삼가 살펴보건대 금봉은 금암보다 네 살 어린 동생이지만, 부친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이 같고, 스승을 따른 바가 같고, 추구한 바의 뜻이 같고, 강론한 바의 학문이 같고, 힘쓴 바의 행실이 같고, 세상의 변란을 만난 바와 어려움을 겪은 바도 같다. 어려서는 공손하고 장성해서는 글을 짓고 늙어서는 덕을 쌓아 당세 훌륭한 사람과 군자들에게 어질다는 칭송을 들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름이 없었으나, 다른 것이라고는 생사의 연월과 벼슬 경력과 계급 차서에 불과하였다. 옛날 이천 선생(伊川先生)주 86)이 명도(明道)주 87)의 행장(行狀)을 쓰고 문인들에게 "나의 도는 거의 명도와 같으니 나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이 글에서 구하는 것이 옳다."라고 하였다. 지금 금봉의 뜻과 학업, 품행과 도의는 그 평생을 개괄해 볼 때 실로 금암과 같다. 나는 금암의 사실기를 지은 뒤 또 붓을 옮겨 금봉의 사실기를 짓고자 했으나 한 편의 같은 글로 귀결되었다.
나는 상사 종형에게 장초한 글의 제목을 고칠 것을 청하며 "금봉의 사실기와 금암의 사실기가 모두 전하니,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두 글을 합하여 서로 참고하여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하고 마침내 이러한 말을 책 뒤에 써서 돌려보낸다. 나는 금암의 생증손(甥曾孫)이다.
임인년(1662) 봄 3월 하순에 외손 팔계(八溪) 정중원(鄭重元) 쓰다.
주석 84)상사(上舍)
생원이나 진사를 일컫는 말이다.
주석 85)고쳐
원문 '은괄(檃括)'은 기울어지고 굽은 것을 바로잡는 기구를 말하니, 여기에서는 다소의 수정을 가했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굽은 것을 잡는 것을 은(檃)이라 하고, 모난 것을 잡는 것은 괄(括)이라 한다. 《회남자(淮南子)》에, "그 굽은 것이 발라지게 되는 것은 은괄의 힘이다.〔其曲中規, 櫽括之力.〕" 하였다.
주석 86)이천 선생(伊川先生)
자는 정숙(正叔), 호는 이천(伊川)으로, 정이(程頤, 1033~1107)를 말한다. 북송(北宋) 중기의 유학자이다.
주석 87)명도(明道)
자는 백순(伯淳), 호는 명도(明道)로, 정호(程顥, 1032~1085)를 말한다. 북송(北宋) 중기의 유학자이다.
題錦峰遺事後
吾外氏錦城羅上舍斗冬從兄曁三從斗興弟, 幷抵重元書, 見層以先高祖錦湖公 曾祖錦巖 錦峰兄弟公行蹟追述事. 重元感至意勤懇, 不敢辭以非其人, 按所寄示諸錄, 猥檃括其間, 爲錦湖 錦巖兩世事實記. 顧錦峰事, 上舍兄所爲狀草, 自成篇體, 首尾有次, 語意無欠, 至末端引祭曾祖錦岩公文而爲之語曰 : "三復斯言, 不覺潛然出涕"云者, 亦足令人感動. 第以不自外之意, 就其中或有省一字易一字若干處而已, 何必改作爲哉. 竊觀錦峰少錦岩四歲爲弟, 受庭訓同, 遊師門同, 所求之志同, 所講之學同, 所勉之行同, 遭罹世變, 履險涉艱又同. 幼而遜弟, 長而有述, 老而蓄德, 于躬爲當世鉅人君子之所賢, 始終無不同, 其所不同者, 不過生卒年月官歷階次焉耳矣. 昔伊川先生狀明道行, 與門人言 "我之道, 蓋與明道同, 欲知我者, 求之此文, 可也." 今夫錦峰之志業行誼, 槪其平生, 實與錦巖同. 重元旣爲錦巖事實記, 又轉其筆, 欲爲錦峰有所云云, 則歸疊一件文字也. 已請以上舍兄所爲狀草改題目曰 : "錦峰事實記與錦巖事實記, 俱傳, 使觀者, 合兩文有以互看參考之爲善也." 遂以是說書其後歸之. 重元, 錦巖之甥曾孫也. 歲壬寅春三月下澣, 外後屬八溪鄭重元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