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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강 김우옹 문장의 〈우분시〉에 삼가 차운하다(敬次金東岡文丈憂憤詩韻 【壬辰五月, 東岡自謫所蒙放, 赴行在所時.】)

금성삼고(錦城三稿) / 금봉습고

자료ID HIKS_OB_F9008-01-240502.0004.TXT.0012
동강 김우옹 문장주 135)의 〈우분시〉주 136)에 삼가 차운하다
【1592년 5월 동강이 적소에서 사면되어 풀려나 행재소주 137)로 나아갔을 때이다.】

만년에 어쩌면 이리도 기구했던지 末路一何奇
보름이 거듭되어 육십 삼세 되었네 三五重七九
온갖 흉악함으로 눈앞이 번잡하니 百兇叢目下
내가 뒤늦게 태어남이 슬프구나 哀哉我生後
왕망주 138) 때처럼 이미 내분이 일어나거늘 賊莽旣內訌
추한 오랑캐가 밖에서 짓밟네 醜虜又外蹂
어찌 생각이라도 했겠나 이백년 기업이 何圖二百基
하루아침에 경계수비를 잃을 줄을 一朝失警守
원대한 계책주 139) 세운 자 누구의 아들인지 訏謨者誰子
부끄러운 그 얼굴 어찌 그리 두꺼울까 忸怩顔何厚
나라의 근본에 대한 계책 일삼지 않고 不事邦本計
다만 우리 임금 기만하는 것만 잘하네 徒能瞞我后
백성들 오래도록 원망으로 떠들썩한데 赤子久嗷嗷
부모를 받드는 일을 어찌 알겠나 焉知戴父母
조정의 계획은 이전 계책을 잃어버렸으니 廟算失前籌
어떻게 호랑이처럼 헌걸차게 돕겠는가 有何補虎赳
임금님 수레가 홀연히 몽진을 하시니 乘輿忽蒙塵
신료들은 차고 있던 인끈 벗어 던졌네 臣僚捐綰綬
이리저리 흩어져 세력을 떨치지 못하니 離披勢不振
의로운 군대 누가 규합할 수 있겠는가 義旅孰能糾
살아있는 백성 모두 어육이 되고 生民儘魚肉
남녀 모두 놀라서 달아나기만 할뿐이네 士女但驚走
누가 무목주 140)의 마음을 품고 誰懷武穆心
누가 문상주 141)의 손을 잡을까 孰握文相手
의관이 모두 엎어지고 넘어져 衣冠盡顚倒
대궐 연못주 142)에는 초목만 무성히 우거졌네 鳳池生灌莽
당당하던 우리나라 조정이 堂堂我國朝
어찌 차마 왜적에게 시달릴 줄이야 豈忍困海醜
옥에 갇힌 신하는 새로운 은총을 입으나 纍臣荷新恩
근심과 울분이 우두성주 143)을 찌르네 憂憤衝牛斗
원하건대 장차 재앙을 야기한 이유를 願將階禍由
양쪽을 들어서 다 말하고자 하시니주 144) 欲竭兩端叩
간악한 자를 주벌하고 요사한 기운 쓸어내 誅奸掃氛祲
우리 백성들 크게 위로하여 주소서 大慰吾黔首
선생께서는 도가 서로 같으니 先生道相同
충직한 단심으로 피를 토하며 忠赤垂血嘔
제 몸 잊은 채 왕 계신 곳으로 가시니 忘身赴王所
선택받은 그 의미주 145) 저버리지 마소서 不背熊魚取
본분에 맞는 행위주 146) 이미 정해졌으니 素履已先定
마음을 저버리지 마소서주 147) 毋令負心肘
주석 135)문장(文丈)
재주가 높고 덕이 뛰어나면서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한 존칭이다.
주석 136)〈우분시〉
《동강선생문집(東岡先生文集)》에는 〈壬辰五月聞倭賊大擧入寇京城不守〉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주석 137)행재소(行在所)
임금이 궁을 떠나 멀리 나들이 할 때 머무르던 곳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임진왜란 때 임금의 피난처를 가리킨다.
주석 138)왕망
전한(前漢) 말기 평제(平帝)를 독살한 뒤 두 살 된 유영(劉嬰)을 추대하고, 당시 유행하던 오행참위설(五行讖緯說)을 교묘히 이용하면서 인심을 모았다. 후에 결국 유영을 몰아낸 후 국호를 신(新)이라 고치고 황제가 되었으나, 한말(漢末)의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부하에게 죽음을 당함으로써 건국한 지 15년에 멸망하였다.
주석 139)원대한 계책
원문의 '우모(訏謨)'는 우모정명(訏謨定命)으로, 《시경》 〈억(抑)〉의 "원대한 계책으로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며, 장구한 계획을 세우고 때맞추어 알린다.〔訏謨定命, 遠猶辰告.〕"에서 인용한 것이다.
주석 140)무목
'무목(武穆)'은 남송(南宋)의 명장 악비(岳飛, 1103~1142)로, 자는 붕거(鵬擧), 시호는 무목이다. 금(金)나라의 남하(南下)에 대항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정충악비(精忠岳飛)'라고 쓰인 사자기(四字旗)를 하사받을 정도로 고종(高宗)의 신임이 두터웠으나 진회(秦檜)의 참소로 결국 옥사(獄死)하였다.
주석 141)문상(文相)
송나라의 문천상(文天祥, 1236년~1282년)을 이르는 말이다. 송(宋)과 원(元)의 전쟁 중 원나라에 사로잡혔다.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그를 이용하여 송나라의 잔당을 치려했으나 문상은 충절을 굽히지 않았고 3년 간의 옥살이 끝에 살해되었다.
주석 142)대궐 연못
'봉지(鳳池)'는 위진 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에 금원(禁苑)에 파 놓았던 연못인 봉황지(鳳凰池)를 가리키는 말인데, 전하여 대궐 안의 연못을 의미한다.
주석 143)우두성(牛斗星)
견우성(牽牛星)과 북두성(北斗星)을 말한다.
주석 144)양쪽을 …… 하시니
《논어(論語)》 〈자한(子罕)〉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지만 비루한 사람이 나에게 묻되 그가 아무리 무식하다 하더라도 나는 그 양단을 들어서 다 말해주노라.〔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주석 145)선택받은 그 의미
원문의 '웅어취(熊魚取)'는 좋은 것을 선택한다는 뜻. 《맹자》 〈고자상(告子上)〉에 "고기[魚]도 갖고 싶고 곰 발도 갖고 싶지만 두 개를 모두 가질 수 없을 때에는 고기를 버리고 곰 발을 갖는다." 하였다.
주석 146)본분에 맞는 행위
소리(素履)는 본분대로 행함을 의미한다. 《주역》 〈이괘(履卦) 초구(初九)〉에 "본래의 행함으로 가면 허물이 없으리라.〔素履, 往, 無咎.〕"라고 하였다.
주석 147)마음을 저버리지 마소서
원문에는 '肘(주)' 아래에 "아마도 오류의 글자가 있는 듯하다.〔恐有誤字〕"라는 소주가 붙어 있다.
敬次金東岡文丈憂憤詩韻 【壬辰五月, 東岡自謫所蒙放, 赴行在所時.】
末路一何奇, 三五重七九.
百兇叢目下, 哀哉我生後.
賊莽旣內訌, 醜虜又外蹂.
何圖二百基, 一朝失警守,
訏謨者誰子, 忸怩顔何厚.
不事邦本計, 徒能瞞我后.
赤子久嗷嗷, 焉知戴父母.
廟算失前籌, 有何補虎赳.
乘輿忽蒙塵, 臣僚捐綰綬.
離披勢不振, 義旅孰能糾.
生民儘魚肉, 士女但驚走.
誰懷武穆心, 孰握文相手.
衣冠盡顚倒, 鳳池生灌莽.
堂堂我國朝, 豈忍困海醜.
纍臣荷新恩, 憂憤衝牛斗.
願將階禍由, 欲竭兩端叩,
誅奸掃氛祲, 大慰吾黔首.
先生道相同, 忠赤垂血嘔,
忘身赴王所, 不背熊魚取.
素履已先定, 毋令負心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