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역/표점
- 국역
- 금성삼고(錦城三稿)
- 금봉습고
- 오현서원 봉안 제문(五賢書院奉安祭文 【金鶴峰誠一知州時, 創建書院於州西大谷洞, 未訖工. 任公允臣來代踵成 以萬曆丁亥十一月二十二日奉安】)
금성삼고(錦城三稿) / 금봉습고
오현서원주 122) 봉안 제문
【학봉 김성일이 나주 목사주 123) 시절 나주의 서쪽 대곡동주 124)에 서원을 창건하였는데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임윤신주 125)이 후임으로 부임하여 공사를 이어 완성하여 만력 1587년 11월 22일에 봉안하였다.주 126)】
기자의 홍범주 127)이 전해지지 않아 箕範失傳
문장과 충심은 실마리가 끊어졌는데 文忠絶緖
오직 우리 다섯 현인들께서 惟我五賢
우리나라에서 앞장서서 도를 이끄셨네 倡道東方
《소학》의 글 속에서 小學書中
천기주 128)를 신묘하게 깨달았네 【한훤당 김굉필】 妙契天機【寒暄】
깊은 공부로 벗에게 도움을 주고주 129) 功深麗澤
덕이 온전하여 효도하고 공경하였네 【일두 정여창】 德全孝悌【一蠹】
그 근원이 분명하여 有的其源
우리나라를 동주로 기약하였네주 130)【정암 조광조】 期我東周【靜庵】
독실한 학문으로 경계하고 경계하며 學篤箴警
간절한 뜻으로 임금께 계옥하였네주 131) 【회재 이언적】 志切啟沃【晦齋】
성현의 깊은 도를 천명하여 闡揚聖蘊
진실로 집대성 하였네【퇴계 이황】 展也大成【退溪】
태어난 시대는 비록 다르지만 生雖異時
도는 한가지로 귀결되니 道則同歸
우리 소자주 132)로 하여금 俾我小子
밤이 아침이 돌아오듯 하게 하네 如夜復朝
진실로 선생들께서는 允矣先生
만세의 법도를 만들어 萬歲作程
잘 받들어주 133) 어긋남이 없었으니 靈承不爽
마치 물이 땅 위에 흐르는 것과 같았네 如水在地
이에 비로소 계획하여 爰始爰謨
이 재실에 함께 배향하고자 合享斯室
좋은 날과 좋은 때를 잡았으니 吉日辰良
서원의 모습 벌써 엄숙해보이네 廟貌旣嚴
정결한 제수주 134)가 향기로워 蘋藻維馨
정성스러운 뜻에 감통하네 誠意感通
경건히 진설하여 제수를 올리니 式陳明薦
강림하여 굽어 살펴주소서 尙克鑑臨
- 주석 122)오현서원(五賢書院)
- 1583년, 유림이 상소를 올려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김굉필(金宏弼)을 모실 서원 창건을 허락받았다. 당시 나주 목사로 있던 김성일(1538~1593)이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이듬해인 1584년에 금양서원(錦陽書院)이라는 이름으로 완공되었다. 김성일에 이어 나주목사로 임윤신이 부임해오자 나덕준 등이 발의하여 1589년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등 4위를 추가로 배향하고 명칭을 오현사(五賢祠)로 바꾸었다가 정유재란 때 소실된 뒤, 1608년(광해군 원년)에 중건하고 1609년 사액서원이 되면서 '경현(景賢)'이라는 액호를 받았다.
- 주석 123)나주 목사
- 김성일은 선조 1584년에 나주 목사(羅州牧使)로 부임하였다가 1586년에 나주 사직단(社稷壇)의 화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 주석 124)대곡동
- 현재는 나주의 경현동 부근을 말한다.
- 주석 125)임윤신
- 1529~1588.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경룡(景龍)이다. 1585년에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587년에 나주 목사로 부임하였다.
- 주석 126)학봉 김성일이 …… 봉안하였다.
- 《일두집(一蠧集)》 부록(附錄)에 "학봉 김성일이 나주(羅州) 수령이 되어 오현(五賢)을 추모하여 주(州)의 서쪽 대곡동(大谷洞)에 경현서원(景賢書院)을 건립하였는데, 공사를 마치지 못하였다. 임윤신(任允臣)이 후임으로 부임하여 공사를 이어 마무리하고 제사를 올리고, 선비들의 학문 수양 장소로 삼았다. 〔鶴峯金誠一知羅州, 追慕五賢, 建景賢書院于州西大谷洞, 未訖而任允臣來代踵成, 設俎豆, 以爲士子藏修之所.〕"는 기록이 나온다.
- 주석 127)기자(箕子)의 홍범(洪範)
- 원문의 '기범(箕範)'은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에게 전해준 《서경》 홍범구주(洪範九疇)을 가리킨다.
- 주석 128)천기(天機)
- 만물 속에 내재(內在)한 하늘의 기틀, 즉 자연의 이법(理法)을 뜻한다.
- 주석 129)벗에게 도움을 주고
- 원문의 '이택(麗澤)'은 붕우(朋友)가 함께 학문을 강습하여 서로 이익을 줌을 뜻한다. 《주역》 〈태괘(兌卦)〉에 "두 못이 연결되어 있는 형상이 태(兌)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붕우 간에 강습한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 주석 130)동주(東周)로 기약하였네
- 이상적인 나라인 옛 주(周)나라의 문물제도를 우리나라에 다시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이른다. 동주는 본디 동쪽 노(魯)나라에 주나라의 도(道)를 일으키겠다는 말로,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인 공산불요(公山弗擾)가 일찍이 공자를 불렀을 때 공자가 가려고 하자, 자로(子路)가 하필 공산씨(公山氏)에게 갈 것이 있느냐고 못마땅하게 여기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공연히 불렀겠는가. 만일 나를 써 주는 자가 있다면 나는 동쪽 주나라를 만들 것이다.[夫召我者 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陽貨》
- 주석 131)계옥하였네
- 선도(善道)를 개진하여 임금을 인도하고 보좌한다는 뜻이다. 《서경(書經)》 〈열명(說命)〉에,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그대의 마음을 열어 나의 마음을 적셔라.〔啓乃心, 沃朕心.〕"라고 하였다.
- 주석 132)소자(小子)
- 원문의 '소자(小子)'는 일반적으로 제자, 자식, 임금의 겸칭어로 사용되나, 여기에서 말하는 소자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고 후학의 의미로 보인다.
- 주석 133)잘 받들어
- 원문의 '영승(靈承)'은 《서경》 〈다방(多方)〉에 "능히 백성을 잘 받들지 못하며[不克靈承于旅]"라고 한 말에 나온다.
- 주석 134)경결한 제수
- 원문의 '빈조(蘋藻)'는 모두 물풀의 이름으로, 옛 사람들은 이를 채취하여 제수로 사용하였다. 《시경(詩經)》 〈채빈(采蘋)〉에 "남간의 물가에서 빈을 캐고, 저 도랑에서 조를 채취해 오네.〔于以采蘋, 南澗之濱. 于以采藻, 于彼行潦.〕"라는 구절이 있다.
五賢書院奉安祭文 【金鶴峰誠一知州時, 創建書院於州西大谷洞, 未訖工. 任公允臣來代踵成 以萬曆丁亥十一月二十二日奉安】
箕範失傳, 文忠絶緖,
惟我五賢, 倡道東方.
小學書中, 妙契天機.【寒暄】
功深麗澤, 德全孝悌.【一蠹】
有的其源, 期我東周.【靜庵】
學篤箴警, 志切啟沃.【晦齋】
闡揚聖蘊, 展也大成.【退溪】
生雖異時, 道則同歸,
俾我小子, 如夜復朝.
允矣先生, 萬歲作程,
靈承不爽, 如水在地.
爰始爰謨, 合享斯室,
吉日辰良, 廟貌旣嚴.
蘋藻維馨, 誠意感通.
式陳明薦, 尙克鑑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