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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의정 한음 이덕형에게 올린 편지 【1610년】(上領相李漢陰德馨書 【庚戌】)
금성삼고(錦城三稿) / 금봉습고
영의정 한음 이덕형주 99)에게 올린 편지 【1610년】
가을 기운이 싸늘한데, 삼가 대감의 기거가 평안하고 강녕하십니까?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하여 대감의 덕스러운 모습을 흠앙하였던 한결같은 제 마음은 감히 잠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제 가문은 불행히도 흉화(凶禍)가 거듭 닥쳐와서 아우의 초상을 치른 지 오래되지 않아 형이 또 세상을 등졌으니 슬프고 참혹하여 스스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연로한 어머니의 노년에 양식을 마련할 길이 없어 구차하게 우관(郵官)주 100)을 보전하며 보잘것없는 것에 머뭇거리고 있으니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가만히 들으니 상국께서 밀어주고 끌어주신 뜻이 매우 크다고 하는데, 용렬한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지극한 뜻에 부응하겠습니까? 한갓 감회만 깊을 뿐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원통함을 푸는 일은 이윽고 임금의 뜻을 돌려 이승과 저승을 지극히 감동시켰으며 경사가 사림(士林)에 관계되는 일이니, 무릇 혈기가 있는 자 중에 누구인들 흔쾌히 여기며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조정의 처리와 결말이 어떠할지 모르겠으나 관직만 회복시키고 적몰(籍沒)주 101)했던 재산만 지급해주는 정도라면 어떻게 민심을 기쁘게 하고 정기가 펼쳐지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경함(景涵)【이발(李潑)의 자(字).】 형제는 효성스럽고 공손한 사람인데 대궐문에 머리를 나란히 하고 죽음을 당하였으니 그 원통함이 아마도 천지에 다 하였을 것입니다. 곤재(困齋) 선생은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경서를 궁구하고 항상 스승의 도리로 자임하였으나 함께 잔혹한 수단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아우 정대청은 슬픔을 머금고 상복을 입은 채 결국 말라 죽게 되었으니 천고의 고통 중에 무엇이 이보다 더 심하겠습니까? 수우당(守憂堂) 최영경(崔永慶)은 오로지 기상과 의리를 숭상하여 한결같은 절조를 지닌 고상한 선비에 지나지 않았으며 포증(褒贈)주 102)이 이미 지극하였습니다. 곤재 선생께서 평생토록 이룩한 학문의 조예는 한 가지 절조만 지닌 선비와 견줄 수 없거늘, 세상에 도(道)를 아는 자가 없으니 누가 이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생각건대 상공께서 선을 좋아하고 선비들을 사랑하심은 진심에서 우러나왔고, 억울함을 슬퍼하며 풀어주심은 정성스러운 마음에서 절로 나왔으니, 이러한 큰 기회를 맞이하여 마땅히 몸과 마음을 다해 덕을 드러내고 후세에 밝히심이 좋을 것입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고명께서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선진(先進)들께서는 쇠락(衰落)하거나 거의 다 돌아가셨는데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주 103), 두암(斗巖) 조방(趙垹)주 104), 사순(士純)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자(字).】, 숙부(肅夫)주 105) 【동강(東岡) 김우옹(金宇顒)의 자(字).】와 같은 여러 현인들도 이미 고인(故人)이 되셨으니 한 시대의 인물들을 돌아보면 아득해지니, 적을 물리쳐 깨끗이 소탕하는 공(功)을 상공께 바라지 않으면 누구에게 기대하겠습니까? 깊이 생각하시되 빨리 도모하시어 사우(士友)들의 마음에 부응해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저처럼 온갖 걱정과 환란 속에서 갖가지 염려들을 덜어내려면 죽음을 각오할 뿐이며 다른 것에는 겨를이 없습니다. 【두 글자가 결락되었다.】 사우(師友)들의 뜻이 중하고 인정상 차마하지 못하였는데 황공하게도 알아주시고 장려해주셔서 마음속에 하나의 떡처럼 맺힌 부분을 직접 토로한 것이니, 다시 바라건대 너그러이 포용하시고 헤아려주십시오. 삼가 절하며 드립니다.
- 주석 99)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漢陰)이다.
- 주석 100)우관(郵官)
- 우편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벼슬아치로, 역(驛)의 찰방(察訪), 역승(驛丞)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 주석 101)적몰(籍沒)
- 적록(籍錄)하여 몰수(沒收)하는 일을 말하는데, 중죄인의 재산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재산을 관가의 문적(文籍)에 적고 모두 거둬들이는 것을 말한다.
- 주석 102)포증(褒贈)
- 나라에서 포창하여 관직을 추증하는 것이다.
- 주석 103)이산해(李山海)
- 1539~1609.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로, 1561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이 대제학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고 북인의 영수가 되었다. 1591년(선조24) 서인 측 대신인 좌의정 정철(鄭澈)로 하여금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도록 건의하게 만들고, 이를 빌미로 정철, 윤두수(尹斗壽), 윤근수(尹根壽) 등 서인의 주요 인물들을 대거 축출하고 권력을 잡아 서인으로부터 소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 주석 104)조방(趙垹)
- 1557~1638.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극정(克精) 호는 두암(斗巖)·반구정(伴鷗亭)이다. 생육신 조려(趙旅)의 현손이다.
- 주석 105)숙부(肅夫)
- 김우옹(金宇顒, 1540~1603)의 자(字)이다. 호는 동강(東岡)이며 시호는 문정(文貞). 조식(曹植)의 문인이며 경상북도 성주 출신으로 조선시대 병조참판, 예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上領相李漢陰德馨書 【庚戌】
秋氣凉肅, 伏惟台候起居神相休福. 久不聞問, 仰德一心, 不敢少置. 德潤私門, 不幸凶禍荐至, 喪弟未久, 兄又見背, 哀傷慘惻, 不自堪忍. 老母臨年, 辦養無由, 苟保郵官, 碌碌逡巡, 他無足喩者. 仄聞相國推輓之意甚盛, 自惟蹇劣, 將何以副至意? 感懷徒深. 竊念伸寃事, 已得回天, 感極幽明, 慶關士林, 凡有血氣, 孰不欣忭. 第未知朝家處置結末如何, 只復其官, 只給籍沒, 則奚足以快人心, 而伸正氣乎. 景涵【李潑字也】兄弟, 以孝悌之人, 閤門騈首就戮, 其爲寃抑, 窮天極地. 至於困齋, 白首窮經, 常以師道自任, 而並爲毒手所陷. 其弟大淸, 含哀服素, 竟至枯死, 千古之痛, 孰甚於斯. 守愚堂專尙氣義, 不過一節之高士, 而褒贈已極. 困齋平生, 學問造詣, 非一節之可擬, 世無知道者, 誰能識此人. 惟相公好善愛士, 發於赤心, 悼屈伸枉, 出自悃愊, 當此大機會, 宜盡心力, 暴揚其德, 昭揚後世, 可也. 不審高明之秤量如何. 先進凋落殆盡, 如鵝溪斗巖士純【金鶴峯字也】肅夫【金東岡宇顒字也】諸賢, 皆已作古人, 顧瞻一世人物渺然. 摧陷廓淸之功, 非有望於相公而何願. 熟思而亟圖之, 以副士友之心, 幸甚幸甚. 如德潤憂患叢中, 百念消歇, 分死而已, 他無暇.【缺兩字】 師友義重, 情不自忍, 辱荷知獎, 直吐出胸中一餠結, 更冀寬容以裁之. 謹拜以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