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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삼고(錦城三稿) / 금암습유

자료ID HIKS_OB_F9008-01-240502.0003.TXT.0004
너희들은 모두 약관(弱冠) 남짓의 나이인데 재주가 오히려 지금 사람들의 과거(科擧) 글에 미치지 못하니 어찌 과거에 급제하여 몸을 영화롭게 하고 쇠약한 우리 가문을 부지 하겠느냐? 단지 한 가지 기량으로는 천지 사이에서 한낱 용렬한 사람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너희들의 기질과 품성이 맑고 순수함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또한 바탕이 있어 배울 수 있으니, 만약 옛 사람의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세워 안으로는 마음을 다스리며 밖으로는 용모를 단정하게 하여 반드시 '경근(敬勤)' 두 글자로 시작하고 이를 따라서 올라가면 조존성찰(操存省察)주 42)하여 이윤(伊尹)이 뜻한 바에 뜻을 두고 안연(顏淵)이 배운 바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주 43) 힘쓰고 힘써 순서를 따르며 부지런히 글을 읽어 마음을 열고 이치를 밝히며, 공경히 존양(存養)하여 자기 사사로움을 제거하면 옛 사람의 문정(門庭)을 거의 엿볼 수 있으니, 어찌 스스로 향리 속의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게 될까 걱정하느냐?
아! 사람이 사람이 된 까닭은 보잘 것 없는 몸으로 천지에 참여하여 나란히 서 있으니 그 책임이 지극히 중대하다. 그러나 그 뜻을 세우지 못하고 답습에만 골몰하여 쉽게 자포자기에 이르는 사람이 된다면 어찌 애통하고 애석한 일이 아니겠느냐? 나 또한 18, 19세부터 개연(慨然)히 도를 구하려는 뜻이 있어 집안사람들의 생산 작업은 일삼지 않고 사우(師友)의 뒤를 따라 몸을 맡겨 종사하였다. 뜻을 독실히 하였던 처음에는 성현을 배워 이를 수 있다고 여겼으니, 어찌 오늘날 용렬하게 무너짐이 너무 심하여 다시는 초심을 떨쳐 일으키지 못하리라 생각이나 했겠느냐? 마침내 평생을 시세(時勢)에 따르다가주 44) 뜻을 세운 대본(大本)과 사우에게 얻은 것을 여기에 이르러 다 잃어버렸으니, 한밤중에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두렵고 너희들에게 저절로 부끄러웠다.
이미 네 아비는 배운 것이 없어 텅 빈 것 같다. 또 먹고 입는 생각으로 근심하나 먹고 입는 것은 지극히 미미하고 지엽적인 일이니, 못 얻었다고 해서 반드시 죽지는 않는다. 예로부터 젊은 나이의 학자가 어찌 차마 이 속에서 스스로 골몰하는가라는 분명한 훈계가 있었다. 옛날에 자공(子貢)은 넉넉함과 검소함의 사이에 마음을 두었으나 재물과 이익의 해가 심하여 안자(顔子)와 증자(曾子)에 미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후학들이 살펴 유념해야 할 곳이다. 바라건대 너희들이 외물의 유혹에 초연하여 새로운 마음을 일으키고 뜻과 학문을 독실하게 하여 선대의 뜻과 공업을 잘 계술(繼述)한다면주 45) 내가 비록 죽더라도 지하에서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세 아들에게 바라건대 경계하고 경계하며 게을리 태만하지 말라. 인의(仁義)와 충신(忠信)은 사람의 본성이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공손히 따르는 것은 사람의 행실이니, 배우는 것은 이것을 배울 따름이니 어찌 이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겠느냐? 다시 말하건대 학문을 강론하여 이치를 밝히고 극기복례하여 실천하는 것을 내면의 자기 공부로 삼는다면 진실로 지금 사람이 옛 사람처럼 되어 몸도 이미 대장부요 마음도 대장부일 것이다. 부디 너희들에게 바라는 점이니 너희들은 경계하라.
주석 42)조존성찰(操存省察)
마음을 잡아 보존하고 성찰하는 공부를 말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져 일정한 시간과 방향 없이 움직이는 것이 마음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43)이윤(伊尹)이 …… 것이다
《근사록(近思錄)》 권2 〈위학류(爲學類)〉에 "이윤이 뜻을 두었던 것에 뜻을 두고 안연이 배웠던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여 이들을 능가하면 바로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요, 제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비록 따라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명성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志伊尹之所志, 學顔子之所學, 過則聖, 及則賢, 不及則亦不失於令名.〕"라는 송유(宋儒) 주돈이(周敦頤)의 말이 나온다.
주석 44)시세(時勢)에 따르다가
원문의 '건몰(乾沒)'은 《사기집해(史記集解)》 권122 〈혹리열전(酷吏列傳) 장탕전(張湯傳)〉 주(注)에 "시세에 따라 부침(浮沈)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주석 45)선대의 …… 계술(繼述)하면
원문은 '선계선술(善繼善述)'인데, 선계는 선대의 뜻을 잘 계승하는 것을 말하며, 선술은 선대의 공업을 잘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효도란 것은 어버이의 뜻을 잘 계승하며, 어버이의 사업을 잘 따라 행하는 것일 뿐이다.[夫孝者,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라고 하였다. 《中庸章句 第19章》
而輩年皆弱冠餘, 以才則猶不逮今之人科擧之文, 其何以決科榮身, 以扶持我衰門耶? 只是一種伎倆, 天地間一庸人而止耳. 然而汝輩氣稟, 雖不至於淸粹, 亦可以有質而可學, 若竪志於古人爲己之學, 內以治心, 外以整容, 須着敬勤二字, 循之以上, 則操存省察, 足以志伊尹之所志, 學顏淵之所學, 勉勉循循, 勤以讀書, 開心明理, 敬以存養, 克去己私, 則庶可以覬覦古人門庭, 何患乎自歸了鄕里中常人乎? 噫! 人之所以爲人, 以渺然之身, 參天地而並立, 則其責至重至大, 但其志不立, 因循汨沒, 甘爲自棄底人, 寧不痛惜? 吾人亦自年十八九, 慨然有求道之志, 不事家人生産作業, 追從師友, 委己從事, 篤志初頭, 以爲聖賢可學而至, 豈意今日庸頹已甚, 無復振起初心. 畢竟是乾沒平生, 立志之大, 師友之得, 到此喪盡, 每中夜思之, 惕然自愧汝輩. 旣無汝父之學, 而空空如也. 又病於衣食之念, 衣食至微末事, 不得未必死. 古有明訓, 年少學子, 何忍自汨了這裡耶. 昔子貢留心於豐約之間, 而財利之害甚, 至於不及顔曾, 則宜後學省念處. 幸汝輩超然外誘, 以起新意思, 篤志篤學, 善繼善述, 則吾雖死矣, 亦可以瞑目於地下矣. 願吾三子, 戒之警之, 毋怠毋荒. 至若仁義忠信, 人之性也, 孝親悌順, 人之行也, 所以學者, 學此而已, 豈可外求於他乎? 復以講學明理克己踐形, 爲向裏自做底工夫, 則實今人之古人, 身旣丈夫, 心亦丈夫, 須有望於汝輩也. 汝輩戒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