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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삼고(錦城三稿) / 금암습유
또
너희들은 모두 약관(弱冠) 남짓의 나이인데 재주가 오히려 지금 사람들의 과거(科擧) 글에 미치지 못하니 어찌 과거에 급제하여 몸을 영화롭게 하고 쇠약한 우리 가문을 부지 하겠느냐? 단지 한 가지 기량으로는 천지 사이에서 한낱 용렬한 사람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너희들의 기질과 품성이 맑고 순수함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또한 바탕이 있어 배울 수 있으니, 만약 옛 사람의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뜻을 세워 안으로는 마음을 다스리며 밖으로는 용모를 단정하게 하여 반드시 '경근(敬勤)' 두 글자로 시작하고 이를 따라서 올라가면 조존성찰(操存省察)주 42)하여 이윤(伊尹)이 뜻한 바에 뜻을 두고 안연(顏淵)이 배운 바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주 43) 힘쓰고 힘써 순서를 따르며 부지런히 글을 읽어 마음을 열고 이치를 밝히며, 공경히 존양(存養)하여 자기 사사로움을 제거하면 옛 사람의 문정(門庭)을 거의 엿볼 수 있으니, 어찌 스스로 향리 속의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게 될까 걱정하느냐?
아! 사람이 사람이 된 까닭은 보잘 것 없는 몸으로 천지에 참여하여 나란히 서 있으니 그 책임이 지극히 중대하다. 그러나 그 뜻을 세우지 못하고 답습에만 골몰하여 쉽게 자포자기에 이르는 사람이 된다면 어찌 애통하고 애석한 일이 아니겠느냐? 나 또한 18, 19세부터 개연(慨然)히 도를 구하려는 뜻이 있어 집안사람들의 생산 작업은 일삼지 않고 사우(師友)의 뒤를 따라 몸을 맡겨 종사하였다. 뜻을 독실히 하였던 처음에는 성현을 배워 이를 수 있다고 여겼으니, 어찌 오늘날 용렬하게 무너짐이 너무 심하여 다시는 초심을 떨쳐 일으키지 못하리라 생각이나 했겠느냐? 마침내 평생을 시세(時勢)에 따르다가주 44) 뜻을 세운 대본(大本)과 사우에게 얻은 것을 여기에 이르러 다 잃어버렸으니, 한밤중에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두렵고 너희들에게 저절로 부끄러웠다.
이미 네 아비는 배운 것이 없어 텅 빈 것 같다. 또 먹고 입는 생각으로 근심하나 먹고 입는 것은 지극히 미미하고 지엽적인 일이니, 못 얻었다고 해서 반드시 죽지는 않는다. 예로부터 젊은 나이의 학자가 어찌 차마 이 속에서 스스로 골몰하는가라는 분명한 훈계가 있었다. 옛날에 자공(子貢)은 넉넉함과 검소함의 사이에 마음을 두었으나 재물과 이익의 해가 심하여 안자(顔子)와 증자(曾子)에 미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후학들이 살펴 유념해야 할 곳이다. 바라건대 너희들이 외물의 유혹에 초연하여 새로운 마음을 일으키고 뜻과 학문을 독실하게 하여 선대의 뜻과 공업을 잘 계술(繼述)한다면주 45) 내가 비록 죽더라도 지하에서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세 아들에게 바라건대 경계하고 경계하며 게을리 태만하지 말라. 인의(仁義)와 충신(忠信)은 사람의 본성이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공손히 따르는 것은 사람의 행실이니, 배우는 것은 이것을 배울 따름이니 어찌 이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겠느냐? 다시 말하건대 학문을 강론하여 이치를 밝히고 극기복례하여 실천하는 것을 내면의 자기 공부로 삼는다면 진실로 지금 사람이 옛 사람처럼 되어 몸도 이미 대장부요 마음도 대장부일 것이다. 부디 너희들에게 바라는 점이니 너희들은 경계하라.
- 주석 42)조존성찰(操存省察)
- 마음을 잡아 보존하고 성찰하는 공부를 말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져 일정한 시간과 방향 없이 움직이는 것이 마음이다."라고 하였다.
- 주석 43)이윤(伊尹)이 …… 것이다
- 《근사록(近思錄)》 권2 〈위학류(爲學類)〉에 "이윤이 뜻을 두었던 것에 뜻을 두고 안연이 배웠던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여 이들을 능가하면 바로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요, 제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비록 따라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명성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志伊尹之所志, 學顔子之所學, 過則聖, 及則賢, 不及則亦不失於令名.〕"라는 송유(宋儒) 주돈이(周敦頤)의 말이 나온다.
- 주석 44)시세(時勢)에 따르다가
- 원문의 '건몰(乾沒)'은 《사기집해(史記集解)》 권122 〈혹리열전(酷吏列傳) 장탕전(張湯傳)〉 주(注)에 "시세에 따라 부침(浮沈)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 주석 45)선대의 …… 계술(繼述)하면
- 원문은 '선계선술(善繼善述)'인데, 선계는 선대의 뜻을 잘 계승하는 것을 말하며, 선술은 선대의 공업을 잘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효도란 것은 어버이의 뜻을 잘 계승하며, 어버이의 사업을 잘 따라 행하는 것일 뿐이다.[夫孝者,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라고 하였다. 《中庸章句 第19章》
又
而輩年皆弱冠餘, 以才則猶不逮今之人科擧之文, 其何以決科榮身, 以扶持我衰門耶? 只是一種伎倆, 天地間一庸人而止耳. 然而汝輩氣稟, 雖不至於淸粹, 亦可以有質而可學, 若竪志於古人爲己之學, 內以治心, 外以整容, 須着敬勤二字, 循之以上, 則操存省察, 足以志伊尹之所志, 學顏淵之所學, 勉勉循循, 勤以讀書, 開心明理, 敬以存養, 克去己私, 則庶可以覬覦古人門庭, 何患乎自歸了鄕里中常人乎? 噫! 人之所以爲人, 以渺然之身, 參天地而並立, 則其責至重至大, 但其志不立, 因循汨沒, 甘爲自棄底人, 寧不痛惜? 吾人亦自年十八九, 慨然有求道之志, 不事家人生産作業, 追從師友, 委己從事, 篤志初頭, 以爲聖賢可學而至, 豈意今日庸頹已甚, 無復振起初心. 畢竟是乾沒平生, 立志之大, 師友之得, 到此喪盡, 每中夜思之, 惕然自愧汝輩. 旣無汝父之學, 而空空如也. 又病於衣食之念, 衣食至微末事, 不得未必死. 古有明訓, 年少學子, 何忍自汨了這裡耶. 昔子貢留心於豐約之間, 而財利之害甚, 至於不及顔曾, 則宜後學省念處. 幸汝輩超然外誘, 以起新意思, 篤志篤學, 善繼善述, 則吾雖死矣, 亦可以瞑目於地下矣. 願吾三子, 戒之警之, 毋怠毋荒. 至若仁義忠信, 人之性也, 孝親悌順, 人之行也, 所以學者, 學此而已, 豈可外求於他乎? 復以講學明理克己踐形, 爲向裏自做底工夫, 則實今人之古人, 身旣丈夫, 心亦丈夫, 須有望於汝輩也. 汝輩戒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