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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삼고(錦城三稿)
- 금암습유
- 세 아들 찬소, 계소, 위소에게 경계하다(戒三子纘素繼素緯素)
금성삼고(錦城三稿) / 금암습유
세 아들 찬소, 계소, 위소에게 경계하다
장남은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고, 차남은 허술하여 실속이 없으며, 막내는 협애(狹隘)한데, 모두 식견(識見)이 없다. 그리고 또한 각자의 기질에 병통이 있으니 만약 학문의 공과 변화의 힘을 이루는 데 급급하지 않으면 단지 옛 기량에만 의지한 채 향상되는 점을 보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은 나이가 서른에 가까운데 아직 뜻을 세우지 못하고 답습에만 골몰하여 시골 사람과 똑같은 모양이니 부모와 형제의 책망이 이른 것이다. 옛 사람이 말하지 않았느냐? "말이 충신(忠信)하지 못함이 하등인이고, 행실이 독후하고 공경하지 않음이 하등인이다."주 34)라고 하등의 말을 듣고 하등의 일을 하니 너희들은 장차 하등의 인물이 되는 데 그치려고 하느냐?
아! 이미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자질이 아름답고 또 부지런히 교육하였으나 아직 작은 효과도 보지 못하고 세월만 흘러가 장차 어찌할까? 어버이를 섬기는 절차며 몸을 행하는 방법이며 말하고 행동하는 사이에 속세의 하등인과 똑같다면 풍모와 절조가 늠름하고 준엄하며 학문이 높고 밝음은 더욱 바랄 수 없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힘써 사우(師友)를 따르고 도의(義議)를 강론하였으나 아직도 진실한 공부를 하지 못하였고, 때때로 또 불우(不遇)하여 궁려(窮廬)의 탄식주 35)만 하니, 너희들은 늙은 아비를 경계로 삼아 후회가 없어야 한다. 너희들은 몸을 세우고 뜻을 독실히 하여 존심양성(存心養性)주 36)을 몸소 알고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실천하는 것을 배운다면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고, 오히려 향상되고 진보되는 점이 있을 것이다. 분수 밖에서 몸을 영화롭게 하고 집에 거처하면서 편안히 있는 것을 군자는 부끄럽게 여기니,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경계하고 경계하며 반드시 겸손하고 공경하면서 스스로 수양하고 맑은 절조로 스스로 힘써 《소학(小學)》을 읽고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배워 몸을 검속(檢束)하는 방도로 삼아라. 사서(四書)를 말미암아 육경(六經)에 통달하는 것을 학문하는 방법으로 삼고, 여러 서책을 널리 통섭하여 이치에 밝고 의리를 정밀히 하면 어찌 옛사람에게 미치지 못하겠느냐? 너희들이 만약 우둔하고 완악하여 가르칠 수 없다면 그만이니 꾸짖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자질은 가르칠만한 훌륭한 점이 있는 것 같고, 학문은 조금 문리에 통한 점이 있는 것 같으니, 지금 만약 뜻을 세워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오히려 기대할 만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뜻을 세우지 않으며 배움에 독실하지도 않아 이와 같이 끝나버릴 뿐이라면 결국 소인으로 귀착되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은 분명하다. 삼재(三才)주 37)에 참여한 이 몸이 가엾지 않느냐? 원컨대 너희들은 마음을 고치고 반성하여 늙은 아비의 보잘 것 없는 지극한 바람에 부응하라.
돌아보건대 너희들은 가엾게도 일찍 어미주 38)를 여의어 어여삐 여겨 가르치지 않았더니 엄숙하게 공경하는 마음이 매우 부족하였다. 그래서 예(禮)가 없고 의(義)가 없어 도리어 이치에 어긋난 일을 하니, 이것은 자식의 죄가 아니라 실로 아비의 허물이다. 하물며 아비가 비록 자애롭지 않을지라도 자식은 효도하지 않아서는 안 되고, 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가 없으니주 39),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의리는 크다고 할 것이다. 하늘의 법과 땅의 의리,주 40) 삼강오상(三綱五常),주 41) 윤리와 기강의 중차대한 것이며, 온갖 행실의 근원이요 인도(人道)의 떳떳함이니, 배우려는 사람은 이를 배울 따름이고, 행하는 사람은 이를 행할 뿐이다. 효도하는 집안에서 충신을 찾는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너희들의 식견이 여기까지 이르지 못하였으니 더욱 더 생각하고 힘써라. 내가 말한 바를 빈 말로 돌리지 않는다면 사람이 사람 되는 도리를 다할 것이요, 성인을 배우고 현인에 이를 것이다.
임인(壬寅 1602)년 11월 16일 노부 금암이 병석에서 썼으니 만력 30년이다.
- 주석 34)말이 …… 하등인이다.
- 《소학》 〈가언(嘉言)〉에 "말이 충신하지 못함이 하등인이요, 행실이 독후하고 공경하지 않음이 하등인이요, 잘못을 저지르고서 후회할 줄 모르는 것이 하등인이요, 뉘우치되 고칠 줄을 모르는 것이 하등인이다. 하등인의 말을 듣고 하등인의 일을 행하면 비유하건대 마치 방 가운데에 앉아서 사면이 모두 담벽인 것과 같으니, 비록 열어 밝게 하고자 하나 될 수 없을 것이다.[言不忠信, 下等人也, 行不篤敬, 下等人也, 過而不知悔, 下等人也, 悔而不知改, 下等人也. 聞下等之語, 爲下等之事, 譬如坐於房舍之中, 四面皆墻壁也, 雖欲開明, 不可得矣.]"라고 보인다.
- 주석 35)궁려(窮廬)의 탄식
- 허송세월을 하는 데 대한 탄식을 말한다. 궁려는 가난한 사람이 사는 집이다. 제갈량(諸葛亮)의 〈계자서(誡子書)〉에, "나이는 시절과 더불어 치달아 가고 뜻은 날짜와 더불어 떠나가 마침내 쇠락하니 그때 가서 궁려에서 비탄에 잠겨 본들 장차 무슨 수로 되돌릴 수 있겠는가.〔年與時馳 意與歲去 遂成枯落 將復何及也〕"라고 하였다.
- 주석 36)존심양성(存心養性)
- 원문의 '존심(存心)'은 존심양성의 준말로 본래의 순수한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배양한다는 뜻인데 성리학에 있어 심성 수양론을 대표하는 말이다. 《맹자집주》 〈진심장구 상(盡心章句上)〉에 "그 마음을 다하는 자는 그 성(性)을 아니, 그 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 그 마음을 보존하여 그 성을 기름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라고 하였다.
- 주석 37)삼재(三才)
- 천(天)ㆍ지(地)ㆍ인(人)을 가리키는 말로,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하늘의 도(道)를 세움은 음(陰)과 양(陽)이요, 땅의 도를 세움은 유(柔)와 강(剛)이요, 사람의 도를 세움은 인(仁)과 의(義)이니, 삼재를 겸하여 두 번 하였기 때문에 역(易)이 여섯 번 그어서 괘(卦)가 이루어진다.[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 立人之道曰仁與義, 兼三才而兩之, 故易六畫而成卦.]"라고 하였다.
- 주석 38)어미
- 원문의 '천지(天只)'는 어머니의 별칭이다. 《시경》 〈백주(柏舟)〉에 "하늘같은 어머님이 이토록 사람 마음 몰라주시는가.〔母也天只, 不諒人只.〕"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 주석 39)아버지가 …… 없으니
- 《동몽선습(童蒙先習)》 〈부자유친(父子有親)〉 "천하에 옳지 않은 부모가 없으니 부모가 사랑하지 않으나 자식은 불효를 해서는 안 된다.〔天下無不是底父母, 父雖不慈, 子不可以不孝.〕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 주석 40)하늘의 …… 의리
- 원문의 '천경지의(天經地義)'는 천지간의 변경할 수 없는 당연한 도리를 이른다. 《춘추좌씨전》 소공(昭公) 25년 조에 "예는 하늘의 법칙이고 땅의 도리이고 사람들이 본받아 이행하는 것이다.〔夫禮 天之經也 地之義也 民之行也〕"라고 하였다. 《효경》 〈삼재(三才)〉에 "효는 하늘의 법칙이고 땅의 도리이다.〔夫孝 天之經也 地之義也〕"라고 하였다.
- 주석 41)삼강오상(三綱五常)
- 원문의 '강상(綱常)'은 유교 도덕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인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말한다. 삼강은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이고 오상은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이다.
戒三子纘素繼素緯素
長乎固滯, 仲也踈虛, 季則阨狹, 俱無見識, 而亦各有氣質病痛, 若不急急致學問之功變化之力, 則只依舊技倆, 未見有長進之處矣. 而輩年近三十, 尙未竪志, 因循汨沒, 與鄕人一樣, 則父兄責望, 到此左矣. 古不云乎? 言不忠信, 下等人也, 行不篤敬, 下等人也. 聞下等之語, 爲下等之事, 則汝等將作何等人物而止乎? 噫! 旣受天質之美, 又有敎育之勤, 未見有寸效, 而歲月如流, 其將奈何? 至若事親之節行身之方言語之間云爲之際, 只是一般俗下人, 則其風節之凜峻問學之高明, 更不可望矣. 吾亦自少厲學, 從師友講道義, 未有眞實工夫, 時又不遇, 徒有窮廬之歎, 汝等戒老父, 未能之悔立而志篤, 乃學存心體認克己踐形, 庶可以變化其氣質, 而猶有所向進矣. 如分外榮身, 居室有便, 君子恥之, 非吾所願欲也. 戒之警之, 須以謙恭自牧, 淸節自厲, 讀《小學》學《家禮》, 以爲檢身之方. 由四書達六經, 以爲爲學之法, 博通群書, 理明義精, 則何古人之不可及哉? 而等若鈍頑, 不可敎則已矣, 不足責, 以質則似有可敎之美, 以學則稍有文理之通, 今若立志, 更進一步, 則猶有所可望矣. 不然而志不立學不篤, 如是而終焉而已也, 則卒未免爲小人之歸也, 昭矣. 參三此身, 可不惜哉? 願汝曹改心存省, 以副老父區區至望也. 顧憐汝曹, 早失天只, 慈而不敎, 殊欠嚴敬之心, 無禮無義, 反致違理之事, 是非子之罪, 實父之過也. 況父雖不慈, 子不可以不孝, 天下無不是底父母, 子之於親, 孝之義大矣. 如天經地義綱常倫紀之重且大者, 而百行之源人道之常, 所以學之者, 學此而已, 行之者, 行此而已, 求忠臣於孝子之門者, 此也. 汝等識見, 未到此地頭, 更加念之勉之. 勿以吾所言, 歸之於空言, 則人之, 而聖可學而賢可至矣. 歲在壬寅 至月初生魄, 老父錦巖病草, 萬曆三十年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