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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신봉사 【선조 29년(1596) 겨울, 금오랑으로 산거(散居)해 있을 때.】(丙申封事 【宣祖二十九年冬, 金吾郞散居時.】)
금성삼고(錦城三稿) / 소포유고 / 소(疏)
병신봉사 【선조 29년(1596) 겨울, 금오랑주 228)으로 산거(散居)해 있을 때.】
삼가 아룁니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사람에게 달려있고, 인심의 향배(向背)는 하늘에 호응하는 것이니, 하늘이 반드시 사랑하고 돌보아준 연후에 나라를 보호하고 안정하여 인심이 흩어지는 근심이 없을 것이고, 사람들의 마음이 반드시 돌아온 연후에 천명(天命)을 맞이하고 이어주 229) 하늘의 뜻이 순(順)한 자를 도와주는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진실로 하늘의 뜻을 돌아오게 하면 큰 환난을 이겨낼 것이니 재앙이 변하여 복이 되는 계기가 여기에 있고, 진실로 인심을 결속시키면 윗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것이니 적국을 제어하고 수치를 씻는 방책이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난리를 평정하는 방도는 하늘의 뜻을 감동시켜 돌아오게 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적국을 제어하는 방도는 인심을 굳게 결속시키는 것보다 간절한 것이 없으니, 인심을 굳게 결속시키고 하늘의 뜻을 감동시켜 돌아오게 하는 것은 오직 군주의 한 마음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신들이 이 두 가지의 말을 오늘날에도 늘 마음에 잊지 못한 것은주 230) 오직 우리나라에 하늘이 큰 재앙을 내려 섬나라 오랑캐가 틈을 타서 침략하니, 삼도(三都)주 231)가 연달아 함락되고 칠묘(七廟)주 232)가 몽진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성상의 계책에 힘입어 난리를 평정하고 이미 적병이 물러가는 날을 보게 되었으니, 중흥(中興)의 경사와 유신(維新)주 233)의 교화를 거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난리를 싫어하지 않아 왜적주 234)을 섬멸하지 못하고 흉악한 꾀가 더욱 방자하여 난리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으니 하늘의 뜻을 감동시켜 돌아오게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성곽에 올라가 피눈물을 흘리며 누가 사수(死綏)주 235)의 뜻으로 분발할 것이며, 싸움에 임하여서는 물결이 갈라지듯 먼저 갑옷을 버리고 달아날 마음을 품으니, 인심이 굳게 결속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뜻이 돌아오지 않으면 비록 백만의 무리가 있어도 오히려 그 난리를 평정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우리나라는 애당초 백만의 무리가 없었으니 말해 뭐하겠습니까? 인심이 결속되지 않으면 비록 이길 만한 형세가 있더라도 진실로 그 공을 이루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우리나라는 당시에 이길 만한 형세가 없었으니 말해 뭐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계책으로는 하늘의 뜻을 돌리고 인심을 결속하는 것보다 급한 것이 없을 따름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늘의 뜻을 감동시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까?
아! 위로 푸르른 것은 하늘이고 아래로 지극히 작은 것은 사람입니다. 높고 낮음이 현격하게 다르고, 보고 듣는 것이 미치지 못하여 처음에는 상관이 없는 것 같으나 한 이치로 서로 감응하는 것은 마치 한 집안에서의 부자(父子)와 같아 사람의 기운이 화평하면 하늘이 화평함으로써 호응하고, 사람의 기운이 어그러지면 하늘도 반드시 어그러짐으로써 호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개 국가에 재앙이 내려오는 것도 한 지아비가 원한을 품은 것으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으니,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하는 이치를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지난 기축(己丑 1589)년에 역적 정여립(鄭汝立)주 236)이 왕망(王莽)주 237)처럼 세상을 속이는 재주를 끼고 육당(陸棠)주 238)처럼 거짓으로 착한 척하며 명성을 가장(假裝)하니, 온 나라의 선비들이 모두 속았습니다. 더러는 그 이름을 아는 사람도 있었고, 더러는 그 얼굴을 본 사람이 있었으나, 그 마음에 반역의 행위주 239)가 있었는지는 몰랐습니다. 꿰미에 가득 찬주 240) 죄는 밝은 일월(日月) 아래에서 도망가기 어렵고, 흉악한 꾀와 큰 악행은 하루아침에 발각되니, 한때 속았던 선비들 중에 마음으로 놀라고 뼈 속까지 아파하며 대역적이 사람을 기만한 악행에 분하게 여기고 자신들이 밝지 못했던 죄를 후회하지 않은 자가 없으니, 이른바 그 이름을 알고 그 얼굴을 본 사람이 어떻게 모두 역적의 당파라 하겠습니까?
성상께서 위에 계시면서 감형(鑑衡)주 241)으로 스스로를 바르게 하시고, 항상 옥(玉)과 돌이 함께 불타는 것을주 242) 마음 아파하며 삼가 요수(要囚)를 크게 결단할 때주 243) 더욱 간절하고 신중히 분별할 것을 생각하셨으니 어떻게 청명함 아래에서 원통한 마음을 머금은 자가 있겠습니까? 다만 간신 정철(鄭澈)은 사납고 고약한 성질로 잔인하고 독한 마음을 품고 겉으로는 희학과 방탕으로 가식하고 속으로는 시기심이 가득 차니, 맑은 의론에 용납되지 않아 항상 만족하지 않고 분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 몰래 그 틈을 기다렸다가 필시 보복하는 자리에서 한 번 독한 성미를 마음껏 부리려고 하였습니다. 급기야 역적이 사대부의 사이에서 나왔다는 말을 듣고는 오늘에야 내 뜻을 이룰 수 있다고 스스로 다행으로 여기며 몸소 심문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에 일망타진할 계책을 이루고자 공법(公法)을 개인적인 원수를 보복하는 은밀한 함정으로 삼고, 의금부주 244)를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깊은 구덩이로 삼았습니다. 평소에 조금이라도 흘겨보는 눈초리가주 245) 있는 사람들을 모두 기록하여 주머니 속에 두었다가 죄가 있든 죄가 없든 성상의 총명을 가리고, 살리고 죽이는 것을 자신의 은혜와 원망으로써 하였습니다. 만일 성상의 감식안(鑑識眼)이 중천의 일월처럼 밝지 않았더라면 한 시대의 충성스럽고 현명한 사람들 중에 반드시 남은 무리가 없었을 것이니,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 일시에 원한을 품고 죽음에 나아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한 도(道)에서 가장 원통한 자로 말한다면 정개청(鄭介淸)주 246)은 행실이 진실되고 입각(立脚)주 247)한 것이 확고하며,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아주 248) 의리를 밝혀 사문(斯文)에 큰 공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훤히 보이건대 간신 정철은 한 시대의 상황을 그르쳐 항상 〈항백(巷伯)〉주 249)편처럼 악인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정철이 음험한 수단으로 남을 해치려 한 것이주 250)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유몽정(柳夢井)주 251)은 성품이 바르고 곧으며, 행실은 효성과 우애로 독실하였고, 조정에 들어가서는 구차히 영합(迎合)하는 태도가 없었으며, 백성을 다스릴 적에는 청렴근신(淸廉謹愼)한 실상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사헌부(司憲府)주 252)의 자리에 있으면서 문득 간얼(奸孽)의 싹을 자르니, 정철이 이를 갈며 분노한 것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이황종(李黃鍾)은 타고난 자질이 독실하고 식견이 뛰어났으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원수처럼 미워하였습니다. 당초에는 간신 정철과 죽마고우주 253)였는데 중년에 이르자 간사하고 괴이한 실상을 보고는 단번에 끊어버리고 일절 서로 만나지 않다가 마침내 최영경(崔永慶)주 254)과 마음으로 교유를 맺었는데, 정철이 평소에 시기하여 죽이고자 한 사람이 최영경이었습니다. 이황종이 정철을 버리고 최영경을 취하였으니, 정철이 원한을 품게 된 것은 진실로 당연한 일입니다.
조대중(曺大中)주 255)은 사람됨이 강개하고 뜻을 세움이 청고(淸苦)하여 권문세가의 옷자락을 끌어당기지 않고 매번 간사한 것을 막으려고 격렬하게 의론하니, 도(道) 안에서 고립되어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던 것입니다. 그가 좌막(佐幕)주 256)이 되어서는 정철의 집이 가까이 있어도 지나가지 않았고, 그가 거리낌 없이 지적하며 말하는 것은 모두 정철의 악이니 저들에게 노여움을 사게 된 것도 괴상할 것이 없습니다.
아! 얼음과 숯이 한 그릇에 있을 수 없고 간사함과 바름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소인의 도(道)가 왕성하면 군자의 도(道)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곧은 도리로 세상에 용납되기 어려운 군자가 사람을 해치고주 257) 간독(奸毒)을 자행하는 소인을 만났으니, 꿩이 그물에 걸리는 화주 258)를 어찌 모면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소인이 군자를 죽이려고 도모할 때에 혹은 근거 없는 말을 지어내고, 혹은 불측한 말로 얽어 남김없이 섬멸하여 반드시 나라를 텅 비게 한 뒤에야 그만두니 그 꾀가 참혹합니다.
아! 정개청의 절의설(節義說)주 259)은 선유(先儒)들의 정론에 의거하여 후학들의 허황된 습관을 금하는 것인데, 정철은 그 당파들을 사주하여 정개청이 저술한 설(說)에 임의로 '배(排)' 자를 더하여 '배절의(排節義)'라고 이름하고 마침내 북방 밖으로 귀양 보내 죽게 하였습니다. 유몽정은 역적과 비록 같은 도(道)라고 하지만 이미 친밀하거나 가까운 교분이 없었으며, 비록 얼굴을 보았다고 하지만 또한 교유하여 왕래하는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거늘, 정철은 평소에 자기와 다르다는 분노를 품고 오늘날 원수 갚을 꾀를 마음대로 하여 역적과 두터운 교분을 맺었다고 지목하여 마침내 형장 아래에서 죽게 하였습니다. 이황종이 최영경에게 보낸 편지에 정철을 '노간(老奸)'이라 하고, 정철을 '괴귀(怪鬼)'라고 한 것은 단지 그 '노간'과 '괴귀'에서 모습을 적절히 보고 글로 나타낸 것입니다. 일찍이 이름을 알거나 얼굴을 보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또 정확히 역적의 초사(招辭)주 260)에도 나오지 않았거늘, 정철은 자신의 심술이 군자의 바른 견해에 탄로 나는 것을 꺼려서 단지 한 조각 편지를 빙자하여 참혹한 형벌을 거듭 가하고 죽음에 나아가게 하였으나, 그 실상을 밝히지 못하였습니다.
조대중은 역적과 이미 같은 조정의 신하가 아니었고, 비록 안면을 아는 정도의 교분은 있었으나 원래 두텁게 교유하는 사이가 아니었으니, 반드시 죽음에 슬퍼할 정도의 마음은 없었을 터인데, 하물며 역적의 죽음에 어찌 여러 사람이 보는 곳에서 슬퍼하였겠습니까? 정철의 도당들이 정철의 비위를 맞추려고 근거 없는 사실을 날조하여 혹자는 역적을 위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하며, 혹자는 역적을 위하여 채식하였다고주 261) 하여 무고한 사람을 부당한 형벌에 죽게 하였으니 참담합니다. 소인이 어진 사람을 얽어서 죽인 것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아! 고금 천하에 비록 사림의 화가 있었지만, 어찌 오늘날과 같은 원통한 일이 있었겠습니까? 옛날 미천한 신하가 가슴을 두드리자 6월에 서리가 내렸고주 262), 서녀(庶女)가 하늘에 호소하자 3년 동안 가물었으니주 263), 보통 남녀의 원통함도 화평한 기운을 손상시켜 재앙을 이루게 하는 것이 이와 같았습니다. 하물며 지금 현인(賢人)과 군자 중에 죄 없이 죽음에 나아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니, 그 원통함이 어찌 동해의 한 아낙네와 연나라 감옥의 외로운 신하에게 특별하겠습니까? 여러 사람의 원한이 거듭 쌓여 하늘에 사무치니 하늘의 기운이 손상되어 화평한 것은 패려함으로 변하고, 요얼(妖孽)의 재앙이 겹겹이 나타나 선비의 기풍은 날로 상실되고 국가의 명맥은 날로 허물어졌습니다. 이어서 임진년(1592)에 변란이 일어나 2백 년 종묘사직이 하루아침에 비린내 나고 더럽혀져 수많은 백성은 간과 뇌가 땅에 문드러지듯 참혹히 죽게 되었고 계속된 병란으로 화를 불러옴이 이제 5년의 긴 세월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른바 큰 옥사 후에 반드시 큰 병란이 있다는 말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성상게서 재앙을 가져오는 실마리를주 264) 깊이 아시고 널리 누명을 씻는 은명(恩命)을 내리신 덕분에 최영경이 모함을 입은 일로 한밤중에 눈물을 흘렸다는 교지가 있어 특별히 그 원통함을 풀어주며 높은 벼슬을 포증(褒贈)주 265)하기에 이르렀으며, 나머지 귀양 가고 폐고(廢錮)주 266)된 자들도 아울러 은전을 입었으니, 이는 천지의 신과 사람의 복이요, 국가를 회복하는 기틀입니다. 그러나 왜적이 아직도 우리 강토에 주둔하고 있어 국운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막힌 것은 진실로 남은 원통함을 모두 씻어주지 못하고 하늘의 뜻을 모두 돌리지 못한 까닭입니다.
우리나라의 일을 돌아보건대, 인심이 이미 흩어지고 병력이 이미 고갈되었으니 이와 같은 형세로써 저와 같은 적을 제어하려면 별다른 방책이 없어 믿고 바라는 것은 오직 하늘의 뜻뿐입니다. 진실로 하늘의 뜻이 돌아보신다면 비록 막강한 적이 있을지라도 그들이 우리를 어찌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대체로 하늘의 뜻을 감동시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 지극함을 다하지 않음이 없어야 하니주 267) 감동시켜 돌아오게 하는 기틀은 오직 원통함을 풀어주는 한 가지 일뿐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해와 달 같은 밝은 빛을 넓혀 어두운 곳까지 비치지 않음이 없게 하시고, 천지와 같은 어진 은혜를 베풀어 하나의 사물도 받지 않음이 없도록 하시며 네 사람의 원통함을 통찰하시고, 한 번에 씻을 수 있는 덕음(德音)주 268)을 빨리 내리시어 위로는 하늘의 뜻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여망(輿望, 여러 사람의 기대)을 위로하시며, 구천주 269)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결초보은의 정성을 다투어 품게 하고, 많은 선비의 기상이 의로운 것을 따르는 뜻을 더욱 가다듬게 하시면 백성들의 마음이 이미 통쾌할 것이고 하늘의 뜻도 바야흐로 돌아올 것이니 자그마한 역적은 우리의 근심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발(李潑)주 270)과 이길(李洁)주 271)의 경우 망령되이 역적과 사귄 죄는 만 번 죽어도 용서할 수 없으나, 역적의 흉측한 꾀와 반역의 마음에 이르러서는 아마도 반드시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신들은 같은 도내에 있으면서 이발과 이길의 평생 효도와 우애가 천성에서 나와 집안에서의 행실이 옛 사람에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익히 들었습니다. 충신은 반드시 효자의 집안에서 찾으라주 272) 하였으니, 효도하면서 충성하지 않는 자는 없습니다. 다만 식견이 어두웠기 때문에 역적에게 속임 당하는 것을 면할 수 없었으니, 그 죄는 죽을 만하나 그 실정은 용서할 만합니다. 이발과 이길이 정철에게 평소 물과 불의 관계라는 것은 전하께서도 이미 아실 것입니다. 삼가 원컨대 전하께서는 아울러 굽어 살피소서. 어떻게 하면 인심을 굳게 결속시킬 수 있겠습니까?
아! 구중궁궐 위에 살며 백성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임금이요, 나라 안에 거처하며 한 사람의 명을 받든 사람은 백성입니다. 임금은 백성과 상하 관계이니 비록【아마도 '수(殊)'자의 오류인 듯하다.】 귀천의 현격한 형세로 막혀 있어 마치 서로 미치지 못하는 것 같으나, 그 마음은 풀과 바람주 273), 그림자와 메아리주 274)처럼 서로 호응합니다. 임금이 뜻을 정성스럽게 하면 백성 또한 정성으로 호응하고, 임금의 뜻이 게으르면 백성 또한 게으름으로 호응합니다. 대개 백성의 마음을 보합(保合)주 275)하는 요체는 임금이 정성껏 대하는 것에 기인하지 않음이 없고, 흩어지게 하는 폐단 또한 임금의 태만으로 기인하지 않음이 없으니 임금과 백성이 서로 호응하는 기틀을 어찌 소홀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소홀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우리나라는 성인과 현인이 계속해서 나와 보위(寶位)를 전한 것이 12대에 200년이 지났습니다. 백성을 쉬게 하고 길러주며,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고 함양하여 의로써 묶고 인으로써 결속시키니 그 발원이 깊고 뿌리내린 것이 견고합니다. 삼가 우리 전하에 이르러 마침내 선왕의 업을 따르고 선대의 공렬(功烈)을 아름답게 빛내며 다친 사람을 본 듯한주 276) 마음으로 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사에 대한주 277) 근심이 절실하였고, 보호하듯이 하는 정성으로 자주 산동(山東)처럼 조령(詔令)을 반포하시니주 278) 백성들이 모두 사랑하여 떠받들고 차마 배반할 수 없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나라의 근본이 공고해져서 이미 흔들릴 수 없는 형세를 이루었으나 한번 기축년의 변고를 겪으면서 하늘의 뜻은 이미 손상되고 백성들의 마음은 이미 와해되었습니다. 임진(壬辰 1592)년에 왜적이 이르러 아직 호경(鎬京)주 279)을 침범하지 않았으나 이미 흙이 무너지는 형세가 있었고, 금수(禽獸)가 달아나 숨듯 오직 구차하게 살아날 계책만 알았습니다. 임금이 욕을 당하고 신하가 죽었으나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없었고 오랑캐주 280)가 이르자 태왕(太王)이 빈(邠) 땅을 떠나듯 하였으니주 281) 어찌 강한 우리나라가 하루아침에 꺾여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아! 성곽과 해자가 높거나 깊지 않아서가 아니고 병기와 갑옷이 견고하거나 날카롭지 않아서가 아니며 쌀과 곡식이 많지 않아서가 아닙니다.주 282) 성상께서는 변방을 수비할 계책이 진실로 한나라 문제(文帝)보다 뒤지지 않거늘, 도성을 지키지 못함이 요(遼)와 금(金)이 하수(河水)를 건너는 날보다 심했으니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미 흩어진 인심은 수습하기 어려워 하늘도 사랑하여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전하께서 국난을 널리 구제하신 것에 힘입어 원릉(園陵)주 283)을 빨리 소제(掃除)하고 옛 도읍에 환궁하시어 오늘에 이르러서는 거의 회복될 기미가 보였으나 승냥이 같이 탐욕스러운 자들이 아직도 날뛰고 뱀처럼 똬리를 틀고 풀지 않고 있습니다.
근래에 또 국경에 왜구가 온다는 소문이 있자 도성 밖 인심이 흉흉하여 안정되지 못하고 모두 와해되려는 뜻이 있었습니다.【아마도 '의(宜)'자가 빠진듯하다.】 이제 분산된 마음을 진정하고 수습하기에 이르렀으나 길가에 떠돌아다니는 소문을 듣자니 성상께서 확고하게 정해진 뜻이 없이 전교(傳敎)주 284)를 발의하면 도읍의 인심이 더욱 어지러워질 것이며 도성 밖에 있는 사람도 따라서 소동이 일어나니 앞선 소문으로 겁먹는 바가 오히려 이와 같습니다. 만약 말을 몰고 전진하여 마구 들어오는 형세가 있다면 무엇으로 적을 막을 것이며 무엇으로 나라를 지킬 것입니까? 말이 여기에 이르니 지극히 통곡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아! 성상께서 위에 있고 조정에 사람이 있으니 오랑캐를 방어할 상책을 버려둘 일은 없을 것이나 초야의 사이에도 취할만한 견해주 285)가 없을 수 없으니 감히 먼지와 이슬 같은 하찮은 말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도 '부(夫)'자가 빠진듯하다.】천하의 일에는 완급이 있으니 마땅히 천천히 할 일에 급하게 하면 일이 전도(顚倒)되어 어쩔 줄 모르는 근심이 있게 되고, 마땅히 급히 할 일에 천천히 하게 되면 후회해도 소용없는주 286) 뉘우침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마땅히 천천히 할 때는 조치하고 대비하는 계책을 강구하여 만전을 도모함이 좋습니다. 일을 급히 해야 할 때는 반드시 한번 죽기를 각오하고 그 어려움을 구제하는 것이 또한 좋습니다. 오늘의 일로 살펴보자면 급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옛 사람들의 말에 "일이 급하면 천천히 걸어갈 수 없고, 마음이 아프면 느긋하게 말할 수 없다.주 287)"라고 하였습니다. 신들이 이런 위급한 때를 당하여 어찌 조정에서 아직도 아무 말이 없다고 하여 또한 전하의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잠잠히 있겠습니까?
신들은 예사롭지 않는 변란을 만난 뒤에 예사롭지 않는 경사가 있고, 예사롭지 않는 일이 있은 뒤에 예사롭지 않는 공을 세운다고 들었습니다. 옛날 주(周)나라 선왕(宣王)은 몸소 창을 들고 적을 물리쳤고, 당(唐)나라 숙종(肅宗)은 몸소 갑주(甲冑, 갑옷과 투구)를 입고 적군을 평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이 급급한 날을 당하면 반드시 몸소 정벌하는 일이 있은 뒤에야 인심이 격동할 수 있고, 천토(天討)주 288)가 행해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 백성의 마음을 만약 감동하게 하거나 격려할 방도가 없다면 비록 아침에 장수 하나를 보내고 저녁에 장수 하나를 보낸다 한들 반드시 이 백성으로 하여금 감히 목숨 바칠 마음으로 나아가 저 적군을 섬멸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아마도 '의(矣)'자가 빠진듯하다.】
지금을 위한 계책으로는 빨리 애통해하는 교시(敎示)를 내리시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측은히 여기고 애통해하는 정성으로 위로는 종묘에 고하고, 아래로는 신하와 백성들을 유시(諭示)한 뒤 몸소 임금의 수레주 289)를 몰고 삼군(三軍)에게 명령을 내려 남쪽 지방에 어가를 머물며 요새에 의거하여 험지(險地)를 지키면서 도내 수령에게 각각의 병마(兵馬)를 거느리게 한다면 백성들이 숲처럼 모이고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할 것입니다. 백성들을 불러 맹세한 말을 모두 듣게 하고 목숨을 바치려는 충성으로 앞 다투어 분발한다면 백성들은 임금의 거마(車馬) 소리를 듣고 임금의 아름다운 깃발을 보고 모두 흔연(欣然)히 기뻐하는 낯빛으로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께서 정벌을 나가시니 우리가 무슨 근심을 하겠는가? 우리 왕께서 여기 계시니 우리가 어디로 떠나가겠는가?"라고 하며 비록 궁벽한 산야의 어린아이나 늙은이라도 임금과 함께 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주 290) 함께 일어나서 임금을 위하여 앞으로 달려가면 우리가 무위(武威)를 떨치고 임금께서 위엄을 더욱 떨쳐 적군의 간담을 부수고 적군의 혼백을 흩어버리기에 족하며 적장(賊將)의 머리를 북쪽 궁궐 아래에 매달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호남은 물력이 풍부하고 창고가 완전하여 분탕(焚蕩)질 당한 지역과 다릅니다. 또 산성이 천혜의 험준하고 견고한 곳에 만들어져 있으니 어떻게 3리 되는 성과 7리 되는 외성을 포위하여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주 291) 국가의 근본이 오로지 여기에 달려있고, 회복하는 일 또한 여기에 달려있으니 중대한 이 지역이 어찌 강회(江淮)의 보장(保障)주 292)과, 세류영(細柳營)에서 군대를 위로하려고 임한 행차주 293)와, 단연(澶淵)주 294)에서 적을 물리치고자 주둔한 행차 일뿐이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마땅히 급히 할 일과 천천히 할 일의 형세를 살피시고 (몸소 창 든)선왕(宣王)과 (몸소 갑주를 입은)숙종(肅宗)을 법으로 삼아 당장에 편한 것만 취하는 계책을 삼지 마시고【아마도 '중(中)'자의 오류인 듯하다.】 중흥의 일을 살피셔야 합니다. 만약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강약의 형세가 달라진다면 마땅히 진(秦)나라에서 통곡하던 신포서의 정성을 본받고, 형(邢)나라를 구원했던 것처럼 군대를 내어주기를 청하여주 295) 힘을 모아 일제히 거행한다면 저 적들이 반드시 이기고 우리 병사들은 반드시 패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송(宋)나라 신하 종택(宗澤)주 296)의 상소에 "하늘이 진실로 송나라를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큰일을 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소순(蘇洵)주 297)이 또 말하기를 "백 번 싸워 이기면 상대가 비록 굴복하더라도 우리 또한 수고로울 것이다.주 298)"라고 하였습니다. 저 적의 군대는 늙고 병사는 피폐하며, 하늘이 버리셨고 귀신까지 벌을 내렸으니 멀리서 건너올 수는 있으나 소리나 형체의 움직임에 미리 겁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아! 소강(少康)주 299)은 군사 500명【아마도 '중(衆)'자가 빠진듯하다.】으로 중흥하였고, 포서(包胥)는 3호로【아마도 '오백승(五百乘)'의 오류인 듯하다.】 초(楚)나라를 보존하였습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병사가 적다고 하여 걱정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신들은 인심을 수습하고 적군을 섬멸하는 것이 급하니 감히 구준(寇準)이 강을 건너고자 했던 소원과 장준(張浚)주 300)이 스스로 장군이 되고자 했던 청을 본받겠습니다. 그러나 옛 사람의 말에 "천금의 자식은 마루 끝에 앉히지 않는다.주 301)"라고 하였으며, 또 "적로(賊虜)를 처리하는 일을 군부(君父)에게 남겨드리지 않는다.주 302)"라고 하였으니 신들이 어찌 감히 전하께서 몸소 시석(矢石)주 303)의 사이에서 위험을 무릅쓰기를 바라겠습니까? 단포(丹浦)의 승리를 위해 군주가 몸소 철계(澈溪)에 이르러 정벌할 필요가 없으니 중신(重臣)을 택하여 보내시는 것이 좋습니다.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한 사람이 원수(元帥)의 직임을 겸임하게 하여 활을 당길 수 있는 백성을 다 취하여 원문(轅門)주 304)에 모아 한결같이 강습하고, 여러 곳으로 흩어져 때에 임하여 낭패의 환난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또 벼슬하지 않는 선비 가운데 재주와 지략이 있는 사람을 찾아서 막하(幕下)에 두어 계책을 묻고 함께 계획을 세우면 완급의 사이에서 적군에 대응할 걱정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 하늘의 뜻이 감응(感應)하면 반드시 사람을 감응시키고, 인심이 감응하면 반드시 하늘에 통하니 하늘의 뜻이 감응하는 것이 곧 인심이 감응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지극한 정성으로 귀신을 감동시킨 우(禹) 임금은 완악한 묘족(苗族)이 복종하는 것을 보았고주 305), 애통한 조서주 306)를 내린 당(唐)나라 덕종(德宗)은 봉천(奉天)으로 가는 수레를 돌이킬 수 있었으니, 참으로 하늘의 뜻을 되돌리고 인심을 결속시키는 것은 적을 토벌하고 나라를 부흥시키는 기틀에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아! 신들이 임진년의 변란이 기축년의 원통함으로 초래되었다고 여겨 이 어지러운 날에 반드시 억울함을 씻고자 한 것이 전하께서 즉위한 이래로 이제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덕을 잃은 것이 하늘에 죄를 얻지 아니하였거늘, 오늘날 막대한 변란이 있으니 이 어찌 전하 때문이겠습니까? 실로 간신이 현자(賢者)를 해치고 나라를 병들게 하여 화평한 기운을 손상시킨 탓입니다. 이 때문에 신들은 변란을 안정시키는 방책을 하늘의 뜻을 감동시켜 돌리는 데 귀착시키고, 하늘의 뜻을 감동시켜 돌아오게 하는 일은 원통함을 밝게 씻겨주는 데 귀착시키니 전하를 위하여 거듭 말씀드립니다.
신들은 또 적의 침략을【아마도 빠진 글자가 있는 듯하다.】 인심이 흩어졌기 때문이라고 여겨 반드시 군대의 사이에 직접 거둥하시기를 청하는 것이니 어찌 성상을 위험한 곳에 이르시게 하려는 것이겠습니까? 만약 친히 거둥하시어 군사를 어루만지지 않으시면 민심을 고무할 수 없을 것이고, 적의 흉악한 병기가 다시 일어나 개미집이 강물에 터진 듯하면 우리나라의 형세도 다시는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니, 신들이 적의 칼날에 죽는 것은 진실로 아까울 것이 없으나 전하께서 어디로 돌아가시며, 종묘사직이 어디에 의지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때문에 신들은 적을 토벌하는 요체가 인심을 굳게 결속시키는 것에 귀결되고, 인심을 굳게 결속시키기 위하여 임금의 수레가 친히 거둥하기를 바라기에 전하를 위하여 거듭 말씀드립니다. 삼가 전하께서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
신들은 모두 초야의 미친 서생으로 감히 만 번 죽기를 무릅쓰고 구중궁궐에 우러러 호소하는 것은 진실로 국가 흥망의 기틀에 관계되기 따름입니다. 삼가 성상을 사모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정성을 이기지 못하여 문득 망녕되고 참람됨을 잊어버리고 마음속에 있는 바를 토로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 특별히 밝게 살피시어 조금이라도 받아들이신다면 신들에게 다행일 뿐만 아니라 또한 종묘사직의 복이기도 합니다. 신들은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고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 주석 228)금오랑(金吾郞)
-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의 별칭으로 금부랑(禁府郎)이라고도 한다.
- 주석 229)너희의 …… 이어주려 하니
- 《서경(書經)》 〈반경 중(盤庚中)〉에 "나는 너희들의 명을 하늘에서 맞이하고 이어 주려 하노니, 내가 어찌 너희들을 위협하겠는가. 너희들을 받들어 기르려고 하는 것이다.〔予迓續乃命于天, 予豈汝威. 用奉畜汝衆.〕"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 주석 230)늘 …… 것은
- 권권(眷眷)은 '권권(睠睠)'으로 쓰는데, 마음속에 잊지 않고 있는 모양, 헤어지기를 못해 아쉬워하는 모양 등을 뜻하는 말이다. 《시경》 〈소아(小雅)ㆍ소명(小明)〉 "저 공인을 생각하니, 아쉬워 돌아보며 그리워하네.〔念彼共人, 睠睠懷顧.〕"라고 하였다.
- 주석 231)삼도(三道)
- 한성(漢城)·개성(開城)·평양(平壤)을 가리킨다.
- 주석 232)칠묘(七廟)
- 천자(天子)의 종묘(宗廟)로, 시조(始祖)의 사당에 삼소(三昭)와 삼목(三穆)을 합쳐서 7묘가 된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의 종묘를 가리킨다.
- 주석 233)유신(維新)
- 구법(舊法)을 혁신하고 새로운 정사를 펼친다는 것으로, 《시경(詩經)》 〈문왕(文王)〉에 "문왕이 위에 계시어 아, 하늘에 밝게 계시니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천명은 새롭도다. 주나라가 드러나지 않을까 상제의 명이 때에 맞지 않을까 문왕의 오르내리심이 상제의 좌우에 계시니라.〔文王在上, 於昭于天. 周雖舊邦, 其命維新. 有周不顯, 帝命不時. 文王陟降, 在帝左右.〕"고 하였다.
- 주석 234)왜적
- 원문의 '경예(鯨鯢)'는 고래의 수컷과 암컷을 가리키는 말로, 소국(小國)을 병탄(幷呑)하려는 흉악무도한 자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적을 가리킨다. 《春秋左氏傳 宣公12年》
- 주석 235)사수(死綏)
- 군사가 패하면 장수는 마땅히 죽어야 함을 뜻하는 말이다. 《좌전(左傳)》 문공(文公) 12년에 "사마법(司馬法)에 장군은 수레에 오르는 끈을 잡고 죽는다.〔死綏〕"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주석 236)정여립(鄭汝立)
- 1546∼1589.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자는 인백(仁伯)이다. 본래 서인(西人)으로,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으나, 이이가 죽은 뒤에는 당시 집권 세력인 동인(東人)에 가담하여 이이를 배반하고 박순(朴淳)ㆍ성혼을 비판하면서 동인의 이발(李潑)과 특히 친하게 지냈다. 선조가 이를 불쾌히 여기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전라도로 돌아가, 진안(鎭安) 죽도(竹島)에 서실(書室)을 지어 놓고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매달 사회(射會)를 여는 등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 뒤 대동계의 조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황해도 안악(安岳)의 변숭복(邊崇福)ㆍ박연령(朴延齡), 해주(海州)의 지함두(池涵斗), 운봉(雲峰)의 승려 의연(義衍) 등 기인(奇人)과 모사(謀士)의 세력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던 중 선조 22년에 이들의 기밀이 누설되어 관련자들이 차례로 체포되었으며, 정여립은 죽도로 피신하였다가 자살하였다.
- 주석 237)왕망(王莽)
- 전한(前漢) 말기 평제(平帝)를 독살한 뒤 두 살 된 유영(劉嬰)을 추대하고, 당시 유행하던 오행참위설(五行讖緯說)을 교묘히 이용하면서 인심을 모았다. 후에 결국 유영을 몰아낸 후 국호를 신(新)이라 고치고 황제가 되었으나, 한말(漢末)의 사회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부하에게 죽음을 당함으로써 건국한 지 15년에 멸망하였다.
- 주석 238)육당(陸棠)
- 육당은 송(宋)나라 양시(楊時)의 사위이다. 처음에 양시가 육당의 용모가 매우 단정하고 앉은 자세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것을 보고는 호인(好人)이라 하여 그를 사위로 삼았다. 그러나 후에 범여위(范汝爲)가 난을 일으켰을 때에 그의 당(黨)이 되었기 때문에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꾸민 사람으로 평가되었다. 《朱子語類 卷133 本朝7》
- 주석 239)반역의 행위
- 원문의 '불궤(不軌)'는 마땅히 좇아야 할 법이나 도리에 벗어났다는 뜻으로, 모반이나 반역을 뜻한다. 한(漢)나라 가의(賈誼)의 〈과진론(過秦論)〉에 "비록 교활한 백성이 있더라도 주상을 떠난 마음이 없다면, 불궤(不軌)의 신하가 그 간사한 지혜를 꾸밀 길이 없어서 포란(暴亂)의 간사함이 그쳐집니다.〔雖有狡猾之民 無離上之心 則不軌之臣無以飾其智 而暴亂之奸弭矣〕"라고 하였다.
- 주석 240)꿰미에 가득 찬
- 원문의 '관영(貫盈)'은 '죄악관영(罪惡貫盈)'이란 말의 준말로, 죄악이 찰대로 가득 차서 마치 돈이 꿰미의 마지막까지 가득 찬 것에 비유한 것이다.
- 주석 241)감형(鑑衡)
- 거울과 저울을 말한다. 거울은 연추(姸醜)를 비추어 보는 것이고 저울은 경중을 다는 것이므로, 시비(是非)와 호오(好惡)를 가리는 마음ㆍ기준 등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임금의 사물을 감별하는 안목을 말한다.
- 주석 242)옥(玉)과 …… 것을
- 선인과 악인이 모두 함께 재앙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서경(書經)》 〈하서(夏書) 윤정(胤征)〉에, "불이 곤륜산을 태우면 옥과 돌이 다함께 불타고, 임금이 덕을 잃으면 사나운 불보다 더 무섭다.〔火炎崑岡, 玉石俱焚, 天使逸德, 烈于猛火.〕"라고 하였다.
- 주석 243)요수(要囚)를 …… 때
- 요수(要囚)는 옥사를 처결할 때 죄인의 진술을 잘 살펴서 그 정실(情實)을 파악하는 것을 이른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강고(康誥)〉에서, "요수하는 데 5, 6일을 생각하며 열흘이나 한 철을 신중히 생각해서 명확하게 판결하라.〔要囚, 服念五六日, 至于旬時, 丕蔽要囚.〕"라고 하였다.
- 주석 244)의금부
- 원문의 '왕옥(王獄)'은 의금부(義禁府)의 별칭이다.
- 주석 245)흘겨보는 눈초리가
- 원문의 '睚眦(애자)'는 사소한 원한을 뜻한다. 전국 시대 위(魏) 나라 사람으로 진(秦) 나라에 망명한 범저(范雎)는 출세한 뒤, 자신에게 밥 한 그릇 준 사람에게도 반드시 보상하고 눈 한번 흘긴 사람에게도 반드시 보복했다고 한다. 《史記 卷79 范睢列傳》
- 주석 246)정개청(鄭介淸)
- 1529∼1590. 자는 의백(義伯), 호는 곤재(困齋)이다. 서인(西人) 박순(朴淳)의 문인이었으나, 박순이 영의정(領議政)에서 파직되자 동인(東人) 이발(李潑)ㆍ정여립(鄭汝立)과 교분을 맺었다. 스승 박순을 배반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자 절의청담변(節義淸談辨)을 지어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니, 정철(鄭澈) 등 많은 사람으로부터 배절의론(排節義論)이란 비난을 받았다. 그러다가 정여립의 모반 사건이 일어나 연루되어 죽었다.
- 주석 247)입각(立脚)
- 다리를 세운다는 말로,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몸을 의연히 지키는 것을 말한다.
- 주석 248)가르치기를 …… 않아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옛날에 자공이 공자에게 묻기를 '선생님은 성인이십니다.'라고 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성인은 내가 능하지 못하지만 나는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昔者, 子貢問於孔子曰, 夫子聖矣乎. 孔子曰, 聖則吾不能, 我學不厭而敎不倦也.〕"에서 나온 말이다.
- 주석 249)항백(巷伯)
- 참소하여 작은 허물을 가지고 큰 죄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시경》 〈항백(巷伯)〉에 "조그마한 무늬로 이 자개 비단을 이루도다. 저 남을 참소하는 자여, 또한 너무 심하구나.〔萋兮斐兮, 成是貝錦. 彼讒人者, 亦已大甚.〕" 하였다.
- 주석 250)음험한 …… 것이
- 원문의 '함사(含沙)'는 함사역(含沙蜮)과 같은 말로 흉독을 품고 남을 음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시경집전(詩經集傳)》 〈하인사(何人斯)〉에 "저 사람은 도깨비도 되었다가 또 물여우도 되었구나.[爲鬼爲蜮]"라고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註)에 "이 물여우가 입에 모래를 머금고 물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를 쏘면 그것에 맞은 사람은 바로 병에 걸리지만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能含沙以射水中人影 其人輒病 而不見其形也〕"라고 하였다.
- 주석 251)유몽정(柳夢井)
- 1529∼1590.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청계(淸溪)이다. 생원 진사시에 합격했고, 유일(遺逸)로 집의 지냈고, 남원 부사로 있다가 기축옥사로 국문을 받고 죽었다.
- 주석 252)사헌부(司憲府)
- 원문의 '풍헌(風憲)'은 풍교와 헌장이라는 뜻으로, 백관의 비리를 탄핵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직책을 이르는 말이다. 당(唐)나라 원결(元結)의 〈사감찰어사표(辭監察御史表)〉에 "신이 일반 백성의 신분으로 출사한 지 몇 달이 안 되어서 풍헌의 벼슬을 하여 군사를 사찰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 주석 253)죽마고우
- 원문의 '총죽(蔥竹)'은 파로 만든 피리와 죽마(竹馬)이다. 총죽지교(蔥竹之交)라 하여 죽마고우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 주석 254)최영경(崔永慶)
- 1529∼1590.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효원(孝元), 호는 수우당(守愚堂)이다.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학문이 뛰어나 명망이 높았으며, 여러 차례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나가지 않다가 1584년(선조17) 교정청 낭관(校正廳郞官)이 되어 《경서훈해(經書訓解)》의 교정(校正)에 참여하고 곧 낙향하였으나 1589년(선조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 때 무고로 투옥되어 정적(政敵)인 서인(西人) 정철(鄭澈)의 국문을 받다가 옥사(獄死)하였다. 그 후 신원(伸寃)되어 대사헌(大司憲)에 추증(追贈)되었고, 진주(晉州) 덕천서원(德泉書院)에 배향되었다.
- 주석 255)조대중(趙大中)
- 1549∼1590.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화우(和宇), 호는 정곡(鼎谷)이다. 1589년 전라도도사로 지방을 순시하던 중 보성에 이르러 부안에서 데려온 관기(官妓)와 이별하며 눈물을 흘렸는데, 이것이 당시 반란의 음모로 처형된 정여립(鄭汝立)의 죽음을 슬퍼한 것으로 오해되어, 정여립의 일파로 몰려 국문을 받다가 이듬해 장살(杖殺)되었다. 국문을 받던 중 읊은 시가 '난언(亂言)'이라 하여 죽은 뒤 추형(追刑)을 당하였다.
- 주석 256)좌막(佐幕)
- 각 도의 도사(都事)를 말한다.
- 주석 257)사람을 해치고
- 원문의 '석영(射影)'은 물여우의 별칭으로 남모르게 사람을 해친다는 뜻이다. 《시경》 소아(小雅) 〈하인사(何人斯)〉에 "귀신이 되기도 하고 물여우가 되기도 한다.〔爲鬼爲蜮〕"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주에서 '역(蜮)'을 설명하면서 "이 물여우는 입에 모래를 머금고 사람의 그림자에 뿜으면 그 사람에게 바로 피부병이 생긴다."라고 하였다.
- 주석 258)꿩이 그물에 걸리는 화
- 원문의 '치리지화(雉罹之禍)'는 토저치리(兎罝雉理)와 같은 말로 토끼그물에 꿩이 걸린 것이니 무고한 사람이 횡액에 걸린 것을 말한다.
- 주석 259)절의설(節義說)
- 정개청이 지은 동한절의진송청담설(東漢節義晉宋淸談說)을 말한다. 정개청은 본디 서인(西人) 박순(朴淳)의 문인이었으나 박순이 영의정에서 파직되자, 동인(東人) 이발(李潑)ㆍ정여립과 교분을 맺음으로써 스승을 배반했다는 비난을 받고는 절의청담변을 지어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니, 정철(鄭澈) 등 서인들로부터 배절의론이라는 비난을 얻었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卷40.
- 주석 260)초사(招辭)
- 죄인이 법관의 신문(訊問)에 따라 범죄 사실을 진술한 말로 공초(供招), 공사(供辭)와 같은 의미이다.
- 주석 261)채식하였다고
- 원문의 '행소(行素)'는 상을 당하여 고기나 고기가 든 음식을 먹지 않고 채식(菜食)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고기를 먹는 것은 개소(開素)라고 한다.
- 주석 262)미천한 …… 내렸고
- 전국 시대 제(齊)나라 추연(鄒衍)이 연(燕)나라에서 무함을 받고 하옥되어, 하늘을 우러러 억울함을 호소하며 통곡을 하니, 5월에 하늘에서 서리가 내렸다는 고사가 전하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유월비상(六月飛霜)이 원옥(冤獄)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後漢書 卷57 劉瑜列傳》 남조(南朝) 양(梁)의 강엄(江淹)이 지은 〈예건평왕상서(詣建平王上書)〉에 "옛날에 천신이 가슴을 두드리자, 하늘이 연나라 땅에 서리를 내렸다.〔昔者賤臣叩心 飛霜擊於燕地〕"라는 표현이 나온다.
- 주석 263)서녀(庶女)가 …… 가물었으니
- 중국의 한(漢)나라 때 동해 효부(東海孝婦)의 고사를 가리킨다. 한(漢)나라 때 동해(東海)에 사는 수절 과부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시어머니는 자기 때문에 며느리가 개가하지 못한다고 여겨 스스로 목을 매 죽었는데, 이에 시누이는 며느리가 핍박하여 시어머니를 죽게 했다고 고소하였다. 이때 우공(于公)이 옥리(獄吏)로 있으면서 힘껏 변호했으나 며느리는 변명할 길이 없어 죄를 시인하고 죽게 되었다. 그후 동해 지방이 3년 동안 가물었고, 나중에 동해 태수(東海太守)가 새로 부임하자, 우공이 그 사실을 말하여 그 며느리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주게 하니, 곧 비가 내렸다고 한다. 후에 우공의 아들 우정국(于定國)이 승상에 올랐는데, 바로 우공이 옥리로 있으면서 쌓은 음덕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史略 卷2 西漢》
- 주석 264)재앙을 가져오는 실마리
- 《시경》 〈상유(桑柔)〉의 "누가 화의 계제를 만들어 지금에 이르도록 병들게 하였는가.[誰生厲階 至今爲梗]"라는 구절에 나오는 말이다.
- 주석 265)포증(褒贈)
- 나라에서 포창하여 관직을 추증하는 것이다.
- 주석 266)폐고(廢錮)
- 관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하는 것을 말한다.
- 주석 267)그 지극함을 …… 하니
- 《대학장구》 전2장에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그 지극함을 다하지 않음이 없다.〔是故, 君子無所不用其極.〕"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 주석 268)덕음(德音)
-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는 것이라는 뜻에서 군주가 내리는 명령이나 조칙을 뜻한다.
- 주석 269)구천
- 원문의 '중천(重泉)'은 구천(九泉)과 같은 말로 죽은 뒤에 넋이 돌아가는 곳 즉 저승을 가리킨다.
- 주석 270)이발(李潑)
- 1544∼1589.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동암(東巖)·북산(北山)이다. 1589년 정여립의 모반을 계기로 일어난 기축옥사에서 모반에 가담하였다 하여 모진 고문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인조반정 후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의 상소로 신원되었다.
- 주석 271)이길(李洁)
- 1547∼1589.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연(景淵), 호는 남계(南溪)이다. 1577년 태묘별시 문과(太廟別試文科)에 급제하고, 사인을 거쳐 벼슬이 응교에 이르렀다. 정여립의 모반 사건을 계기로 희천으로 귀양 갔다가 뒤에 죽음을 당하였다. 1694년에 신원되고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 주석 272)충신은 …… 찾으라
- 《후한서(後漢書)》 권26 〈위표열전(韋彪列傳)〉에 "어버이를 효도로 섬기는 까닭에 충성을 임금에게 옮길 수가 있다. 그래서 충신은 반드시 효자의 집안에서 구하는 것이다.〔事親孝故忠可移於君. 是以求忠臣必於孝子之門.〕"라는 공자(孔子)의 말이 인용한 것이다.
- 주석 273)풀과 바람
- 바람이 불면 풀이 쓸리듯이 윗사람이 인도하면 아랫사람이 따른다는 말이다.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이르기를,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아서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된다.〔君子之德風也, 小人之德草也, 草尙之風, 必偃.〕"라고 하였다.
- 주석 274)그림자와 메아리
- 형성에 따르는 그림자와 소리에 따르는 울림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서로 밀접하게 호응하는 일에 비유하고 있다.
- 주석 275)보합(保合)
- 안정시키고 화합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역》 〈건괘(乾卦) 단(彖)〉에 "하늘의 도가 변화함에 각각 성명을 바르게 하여 큰 화기를 보전케 해 준다.〔乾道變化, 各正性命, 保合大和.〕"라고 하였다.
- 주석 276)다친 사람을 본 듯한
- 원문의 '여상(如傷)'은 백성들을 보기를 마치 다친 사람 대하듯이 걱정한다는 말이다.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에, "문왕은 백성 보기를 마치 다친 사람처럼 하였다.〔文王視民如傷〕"라고 하였다.
- 주석 277)아침부터 …… 정사에 대한
- 원문의 '宵肝(소간)'은 소의간식(霄衣肝食)의 준말로 날이 새기 전에 일어나 옷 입고, 해가 진 후에 늦게 저녁을 먹는다는 뜻으로, 군주가 정사에 부지런함을 뜻하는 말한다.
- 주석 278)산동(山東)처럼 …… 반포하시니
-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 박사제자(博士弟子) 가산(賈山)이 천자를 간(諫)하기 위해 지은 〈지언(至言)〉가운데 "산동의 관리가 조령을 포고하자, 아무리 늙고 병든 백성이라도 모두 지팡이를 짚고 와서 들으면서, 잠시나마 죽지 않고 더 살아 덕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간절히 보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山東吏布詔令, 民雖老羸癃疾, 扶杖而往聽之, 願須臾毋死, 思見德化之成.]"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漢書 卷51 賈山傳》
- 주석 279)호경(鎬京)
- 주(周) 나라에서 호경(鎬京)을 서경(西京)이라 하고 낙양(洛陽)을 동경(東京)이라 하였으므로, 이것을 모방하여 평양을 호경이라 하였다.
- 주석 280)오랑캐
- 원문의 '험윤(玁狁)'은 중국 북방의 오랑캐 종족인 흉노족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오랑캐를 통칭한다.
- 주석 281)태왕(太王)이 …… 하였으니
- 빈은 주(周)나라의 근거지로, 옛날 주 태왕(周太王)이 빈 땅에 거주할 적에 적인(狄人)이 침략하자 그곳을 버리고 기산(岐山) 아래로 갔다는 말이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나온다. 여기서는 임금이 난을 피해 옮겨 간다는 의미로 쓰였다.
- 주석 282)성곽과 …… 아닙니다.
- 《맹자(孟子)》 〈공손추하(公孫丑下)〉에서 "성이 높지 않은 것도 아니고 해자가 깊지 않은 것도 아니며, 무기와 갑옷이 견고하고 날카롭지 않은 것도 아니며, 양식이 많지 않은 것도 아니다. 〔城非不高也, 池非不深也, 兵革非不堅利也, 米粟非不多也.〕"라고 한 말에 나온다.
- 주석 283)원릉(園陵)
- 일반적으로 왕실의 묘를 통칭하여 원릉이라 한다. 원은 세자ㆍ세자빈, 또는 왕의 후궁(後宮)인 왕의 생모(生母)의 무덤이고,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 주석 284)전교(傳敎)
- 임금이 명령을 내리는 일이나 그 명령을 이르던 말이다.
- 주석 285)어리석은 견해
- 원문의 '일득지우(一得之愚)'는 자신의 견해에 대한 겸사이다. 천 번을 생각하여 하나를 얻는 어리석음이라는 말로, 《사기(史記)》 권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에 반드시 한 번쯤의 실수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은 얻는 것이 있다."라고 하였다.
- 주석 286)후회해도 소용없는
- 원문의 '서제(噬臍)'는 사람이 자기 배꼽을 씹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일이 잘못된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장공(莊公) 6년에 "초 문왕(楚文王)이 신국(申國)을 토벌하러 가면서 등(鄧)나라를 지나니 등나라 기후(祈侯)가 초 문왕을 머무르게 하고 대접하였다. 추생(騅甥), 담생(聃甥), 양생(養甥)이 초 문왕을 죽이라고 요청하였으나 등후가 듣지 않았다. 삼생(三甥)이 등나라를 망칠 자는 반드시 이 사람일 것이니 '만약 미리 도모하지 않으면 나중에 배꼽을 씹으려 한들 되겠습니까.〔若不早圖 後君噬臍 其及之乎〕'라고 하였으나 등후가 듣지 않다가 초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라고 하였다.
- 주석 287)일이 급하면 …… 수 없다
- 왕암수(王巖叟)의 〈상신종왕안석(上神宗王安石)〉에서는 원문의 '불가(不可)'가 '무(無)'로 되어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원문에 의거하여 국역하였다. "신이 듣자니 일이 급한 자는 천천히 걸을 수 없고, 심장이 아픈 사람은 느긋하게 소리를 낼 수 없다.〔臣聞事之急者, 無徐行, 心之痛者, 無緩聲〕"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宋代名臣奏議 卷116》
- 주석 288)천토(天討)
- 천토유죄(天討有罪)의 줄임말로 하늘이 죄 있는 사람을 응징하고 다스리는 일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그 일을 임금이 대행하는 것이다. 《서경》 〈고요모(皐陶謨)〉에 법관인 고요가 우(禹) 임금에게 건의하면서 "하늘이 죄 있는 자를 토벌하려 하시거든, 왕께서는 다섯 가지 등급의 형벌을 적용하여 그들을 처벌하십시오.〔天討有罪 五刑五用哉〕"라고 하였다.
- 주석 289)임금의 수레
- 원문의 '육비(六飛)'는 여섯 필의 빠른 말이라는 뜻으로, 임금의 수레를 끄는 말을 이른다. 당(唐)나라 두목(杜牧)의 〈장안잡제장구(長安雜題長句)〉에 "육비(六飛)가 남쪽으로 부용원으로 행차한다〔六飛南幸芙蓉苑〕"라고 하였다.
- 주석 290)백성들은 …… 할 것입니다
- 《맹자》 〈양혜왕장구 하〉에 "지금 이곳에서 사냥을 하시면 백성들이 왕의 수레 소리, 말소리를 들으며 깃발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모두 흔연히 기뻐하는 기색을 띠며 서로 말하기를 '우리 왕이 질병이 없으신가. 어떻게 사냥을 다 하시는가.' 한다면,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백성과 더불어 즐거워하시기 때문입니다.〔今王田獵於此, 百姓聞王, 車馬之音, 見羽旄之美,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庶幾無疾病與. 何以能田獵也. 此無他, 與民同樂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주석 291)3리 …… 있겠습니까?
- 《맹자》 〈공손추 하〉에서 "3리 되는 성과 7리 되는 외성을 포위하여 공격해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포위하여 공격하면 반드시 천시(天時)를 얻을 때가 있으련마는, 그런데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천시가 지리만 못하기 때문이다.〔三里之城、七里之郭, 環而攻之而不勝. 夫環而攻之, 必有得天時者矣, 然而不勝者, 是天時不如地利也.〕"라고 하였다. 여기서 3리와 7리는 성곽이 작은 것을 뜻한다.
- 주석 292)강회(江淮)의 보장(保障)
- 원문의 '강회(江淮)'는 강수 회수를 말하나, 여기에서는 호남(湖南)을 가리킨다. 참고로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수양성(睢陽城)이 반란군에 포위되었다. 성 안에 양식이 고갈되자 사람들은 모두 성을 버리고 도주하자고 하였으나 장순(張巡)과 허원(許遠)은 "수양은 강회(江淮)의 보장(保障)이다. 만약 이 성을 버리고 떠나면 적이 반드시 승세를 타고 깊이 쳐들어올 것이니, 그렇게 되면 강회는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끝까지 수양을 지키다 전사하였다. 《新唐書 卷192 張巡列傳》
- 주석 293)세류영(細柳營)에서 …… 행차
- 한나라 문제(文帝) 때에 주발(周勃)이 장군이 되어 군사를 세류(細柳)에 주둔해 놓고 흉노를 방비하였다. 문제가 직접 가서 군사를 위로하려고 군문에 이르렀으나 위에서 명령한 바가 없다는 이유로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문제가 사자(使者)에게 병부(兵符)를 주어 장군에게 명을 내리자 주발이 명을 내려 문을 열고 군례(軍禮)로 뵙기를 요청하였다. 문제가 군영으로 들어가 돌아보고 말하기를 "정말 장군다운 장군이다. 엊그제 패상(霸上) 극문(棘門)의 군대는 어린아이가 장난하는 것 같았다."라고 하였다. 《史記 卷57 周勃世家》
- 주석 294)단연(澶淵)
-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지명으로, 송(宋) 나라 때 구준(寇準)이 거란(契丹)을 물리친 곳이다. 송 나라 진종(眞宗)이 즉위한 함평(咸平) 초년에 거란군이 침입해 오자, 다른 사람들은 모두 황제에게 남쪽으로 피해 가 있을 것을 청하였으나, 구준만은 친정(親征)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진종이 친정을 결정하였으나, 남성(南城)에 이르러서는 군사를 주둔한 채 강을 건너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구준이 다시 강을 건너기를 고집하여 황제가 할 수 없이 강을 건넜는데, 이로 인해 사기가 고무되어 거란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거란을 물리친 뒤 거란에서 화친을 요청하자, 구준은 이에 반대하였으나 황제가 구준의 말을 듣지 않고 화친하였다. 《宋史 卷281 寇準列傳》
- 주석 295)진(秦)나라에서 …… 내어주기를 청하여
- 춘추 시대 초(楚)나라 오자서(伍子胥)가 일찍이 초왕(楚王)이 자기 가족을 주멸(誅滅)할 때에 홀로 오(吳)나라로 도망가 있다가 뒤에 그 보복(報復)을 하기 위해 오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초나라로 쳐들어가자, 초나라의 신하 신포서(申包胥)가 진(秦)나라에 가서 원병(援兵)을 요청했으나 허락하지 않으므로, 그가 정장(庭墻)에 기대서서 7일 밤낮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통곡을 계속하니, 진나라에서 그의 정성에 감동되어 마침내 원병을 보내서 초나라를 구원해 주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 주석 296)종택(宗澤)
- 1060∼1128. 북송 말 남송 초의 명신으로, 자는 여림(汝霖)이다. 동경 유수(東京留守)로 재직할 때 20여 차례에 걸쳐 고종(高宗) 조구(趙構)에게 상소하여 남경(南京)에서 동경 즉 개봉(開封)으로 환도할 것을 주장하고 중원을 수복할 방책을 제정하자고 건의하였는데,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화병이 났고, 7개월 뒤 임종할 때에 "황하를 건너라.〔過河〕"라는 말을 세 번 외치고 죽었다고 한다. 《宋史 卷360 宗澤列傳》
- 주석 297)소순(蘇洵)
- 1009∼1066. 중국 송(宋)나라의 문인ㆍ학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예리한 논법(論法)과 정열적인 평론(評論)으로 구양수(歐陽脩)의 인정을 받아 명성을 떨쳤으며, 아들 소식(蘇軾)ㆍ소철(蘇轍)과 함께 '삼소(三蘇)'로 일컬어진다.
- 주석 298)백 번 …… 것이다.
- 《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 소순(蘇洵) 편 〈심적론(審敵論)〉 "우리가 백 번을 싸워 상대를 이겨서, 상대가 굴복하더라도 우리 또한 수고로울 것이다.〔我百戰而勝人, 人雖屈, 而我亦勞.〕라고 한 말에 나온다.
- 주석 299)소강(少康)
- 상(相)의 유복자로, 한착(寒浞)을 죽여 아비의 원수를 갚고 하나라를 중흥시킨 임금이다. 《春秋左氏傳 襄公4年, 哀公元年》 후예(后羿)가 태강(太康)을 내쫓고 중강(仲康)을 세우고서 정권을 독단하였고, 그의 신하 한착이 후예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였고, 한착의 아들 오(奡)가 상을 시해하였는데, 상의 아들 소강(少康)이 5백 명의 군사로 오를 멸망시키고 나라를 회복하였다.
- 주석 300)장준(張浚)
- 1097∼1164. 남송의 정치가이자 학자이다. 금(金)나라 군대가 침입하자 고종(高宗)은 항주(杭州)로 피신하였는데, 고종을 호위하던 묘부, 유정언 등이 고종에게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장준이 한세충(韓世忠) 등과 군사를 내어 난을 토벌하고 고종을 복위시켰다. 《宋史 卷361 張浚列傳》
- 주석 301)천금의 …… 않는다.
- 임금이 험난한 곳에 가지 말라는 뜻이다. 참고로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말을 타고 험한 언덕을 치달리려 하자, 원앙(袁盎)이 "귀한 집 아들은 마루 끝에 앉지 않는 법이다.〔千金之子, 坐不垂堂.〕"라고 하면서 만류했던 고사가 있다. 《史記 卷101 袁盎列傳》
- 주석 302)적로(賊虜)를 …… 남겨드리지 않는다
-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가 노(魯)에 있을 적에, 경감(耿弇)이 장보(張步)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구원하기 위해 직접 출동하였는데, 이에 진준(陳俊)이 경감에게 상의 군대가 도착할 때까지 잠깐 전투를 멈추고 기다리자고 건의하자, 경감이 "승여가 곧 도착할 터이니, 신자로서는 응당 소를 잡고 술을 걸러서 백관을 기다려야 할 것인데, 거꾸로 적로를 처리하는 일을 군부에게 남겨 드린단 말인가.〔乘輿且到, 臣子當擊牛釃酒以待百官, 反欲以賊虜遺君父邪.〕"라고 하고는 크게 싸워서 적을 대파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80 耿弇列傳》
- 주석 303)시석(矢石)
- 화살과 쇠뇌로 발사하는 돌을 이른 말로, 전하여 전쟁을 뜻한다.
- 주석 304)원문(轅門)
- 수레의 끌채를 마주 세워 문의 모양을 만든 것으로, 병영(兵營)의 문을 가리킨다.
- 주석 305)우(禹)임금은……보았고
- 우 임금이 군대를 거느리고 묘족을 복종시키려 하였으나 한 달이 지나도록 묘족이 지형의 험고(險固)함과 군대의 강함을 믿고서 항복하지 않았다. 이에 익(益)의 간언을 받아들여 군대를 철수하고 덕교(德敎)를 숭상하는 의미에서 간척(干戚)과 우모(羽毛)를 들고 춤을 추자 70일 만에 묘족이 스스로 항복하여 왔다. 《書經 大禹謨》
- 주석 306)애통한 조서(詔書)
- 당 덕종(唐德宗)이 주자(朱泚)의 난(亂)을 피하여 봉천(奉天)으로 파천(播遷)하였는데, 육지(陸贄)가 덕종에게 아뢰어 황제 자신을 책하는 애통조(哀痛詔)를 내리게 하였다. 《당서(唐書)》에 보인다.
丙申封事 【宣祖二十九年冬, 金吾郞散居時.】
伏以國家之興衰在於人, 人心之向背應乎天, 天必眷顧, 然後足以保定爾邦, 而無人心渙散之憂, 人必歸心, 然後可以迓續乃命, 而有天意助順之理. 是以苟回天意, 則克戡大難, 而轉禍爲福之機在乎是, 苟結人心, 則可使死長, 而制敵雪羞之策在乎是. 然則戡亂之方, 莫先於感回天意, 制敵之道, 莫切於固結人心, 而人心之固結, 天意之感回, 惟在於人主之一心耳. 臣等以此兩說, 眷眷於今日者, 惟我國家, 天降大割, 島夷乘之, 三都繼陷, 七廟蒙塵. 幸賴睿謨撥亂, 已覩寇退之日, 則中興之慶, 維新之化, 庶幾見之, 而天不厭難, 鯨鯢未翦, 兇謨益肆, 亂未有定, 則可謂天意之感回乎? 登城泣血, 誰奮死綏之志, 臨戰浪坼, 爭懷棄甲之心, 則可謂人心之固結乎? 天意未回, 則雖有百萬之衆, 猶不得濟其亂, 況我國家, 初無百萬之衆乎? 人心未結, 則雖有可勝之勢, 固不得成其功, 況我國家, 時無可勝之勢乎? 然則爲今之計, 莫急於回天意結人心而已. 何以則感回天意耶? 嗚呼! 蒼然於上者天也, 眇然於下者人也. 高卑懸絶, 視聽莫及, 初若不相關, 而一理之相感, 若家人父子, 人之氣和, 則天應之以和, 人之氣乖, 則天必應之以乖. 故凡國家災孼之降, 莫不由於一夫之含冤, 則天人相感之理, 焉可誣哉? 焉可誣哉? 往在己丑, 逆賊鄭汝立, 挾王莽欺世之才, 詐陸棠假善之名, 一國士類, 盡爲所欺. 或有知其名者, 或有見其面者, 而不知厥心之不軌也. 貫盈之罪, 難逃於大明之下, 凶謀巨惡, 一朝敗露, 則一時受欺之士, 莫不心驚骨痛, 而憤大賊瞞人之惡, 悔自己不明之罪, 則其所謂知其名見其面者, 豈盡爲逆賊之黨耶? 聖明在上, 鑑衡自正, 睿念常軫於玉石之俱焚, 愼簡益切於要囚之丕蔽, 則豈有含冤痛於淸明之下哉? 第以奸臣鄭澈以狠愎之資, 懷慘毒之心, 外假謔浪, 內實猜忌, 爲淸議所不容, 常有怏怏憤憤之心, 陰俟其隙, 欲一肆毒於必報之地, 及聞逆賊出於搢紳之間, 自幸今日可遂吾志, 身爲按問之任. 乃成網打之計, 以公法爲復私讎之陰穽, 以王獄爲殺無辜之深坑. 平日之少有睚眥者, 率以錄置囊中, 有罪無罪, 蔽九重之聰明, 生之殺之, 以一己之恩怨. 倘非聖鑑如日月之中天, 一世之忠賢, 必將無遺類矣. 可不寒心哉? 可不寒心哉? 嗚呼! 一時之抱冤就死者, 不知其幾許. 而以臣等所居一道之最爲冤痛者言之, 則鄭介淸踐履眞實, 立脚堅確, 不倦不厭, 闡明義理, 有大造於斯文, 而洞見奸澈誤了一世之狀, 常有巷伯惡惡之心, 則澈之含沙者非一日矣. 柳夢井性稟耿介, 行篤孝友, 入朝無苟合之態, 臨民有淸謹之實. 一居風憲之地, 便折奸孼之萌, 則澈之切齒者, 爲如何哉? 李黃鍾, 天資篤實, 識見高邁, 一心好善, 嫉惡如讎, 而初與奸澈爲蔥竹之交, 及其中年, 見其奸怪之狀, 斷然絶之, 一不相接, 遂與崔永慶, 托爲心契, 則澈之平日所忌而欲殺者, 永慶也. 黃鐘棄澈而取永慶, 澈之含憤, 固其宜也. 曺大中, 爲人慷慨, 立志淸苦, 不曳權門之裾, 每激拒奸之論, 孤立一道, 衆口咻之. 及其佐幕, 澈家在近, 亦不經過, 而其所斥言而不諱者, 皆澈之惡, 則逢彼之怒, 無足怪也. 噫! 氷炭不同器, 邪正不兩立, 故小人道長, 則君子道消. 以直道難容之君子, 逢射影肆毒之小人, 則雉離之禍, 豈能免於道消之日乎? 是以小人謀殺君子, 或造無根之說, 或構不測之言, 殲滅無遺, 必至空國而乃已, 其爲計慘矣. 嗚呼! 介淸節義之說, 據先儒已定之論, 禁後學浮誕之習, 而澈也嗾其黨類, 於其所著說上, 任加排字, 名之曰排節義, 終致竄死於朔北之外. 夢井與逆賊, 雖曰同道, 旣無親厚切近之分, 雖曰見面, 又無交遊往來之好, 而澈也挾平昔異己之憤, 逞今日報怨之謀, 目之以與逆賊交厚, 竟令殞命於杖下. 黃鍾與永慶書, 以澈爲老奸, 以澈爲怪鬼者, 只是的見其老奸怪鬼之狀, 而發之於書辭者也. 曾不是知名見面之類, 又不出於賊招, 而澈也忌其心術之呈露於君子之正見, 只憑一片之書, 重加慘酷之刑, 使之就死, 莫白其情. 大中與逆賊, 旣無同朝之臣, 雖有識面之分, 元非交厚之間, 則必無哀死之心, 況於逆賊之死, 豈有悲傷於人人所見之處乎? 澈之徒黨, 承望澈意, 捏造無形. 或以爲爲賊涕泣, 或以爲爲賊行素, 令其無辜, 斃於淫刑慘矣. 小人之構殺仁賢, 至此極也. 嗚呼! 古今天下雖有士林之禍, 豈有如今日之冤也哉? 昔者賤臣叩心, 六日飛霜, 庶女號天, 三年枯旱, 則匹夫匹婦之冤, 亦足以感傷和氣, 致災降戾, 有如此者. 況今賢人君子無罪就戮者, 不知其幾, 則其冤豈特東海之一婦燕獄之孤臣也哉? 衆冤積鬱, 蒸薄于天, 天氣感傷, 和變爲戾, 妖孼之災, 疊現層出, 士氣日以鎖鑠, 國脈日以憊毀. 仍致壬辰之變, 使二百年宗社, 一朝腥穢. 億萬姓蒼生, 肝腦塗地, 兵連禍結, 今至五年之久, 所謂大獄之餘, 必有大兵, 豈不信哉? 幸賴聖明, 深知厲階之由, 渙降昭雪之命, 以永慶受誣之事, 至有中夜泣下之旨, 特伸其冤, 褒贈崇秩. 其餘竄逐廢錮之輩, 竝蒙恩宥, 此天地神人之福, 而國家恢復之機也. 然而海醜尙屯於境上, 國運猶否於今日者, 實由餘冤未盡雪而天意未盡回也. 顧念我國之事, 人心已散, 兵力已竭, 以如此之勢, 制如彼之賊, 更無其策, 則所可恃而仰望者, 惟天意而已. 苟得天意之眷顧, 則雖有莫强之敵, 其於予何哉? 然則凡所以感回天意者, 宜無所不用其極, 而感回之機, 則惟在於伸冤一事而已. 伏願殿下廓日月之明, 無幽不燭. 垂天地之仁, 無物不被, 洞察四人之冤, 枉亟下一雪之德音, 上答天意, 下慰輿望. 使重泉之人, 爭懷結草之誠, 多士之氣, 益勵仗義之志, 則人情已快, 天意方回, 而蕞爾之賊, 不足爲吾憂矣. 至若李潑李洁, 妄交逆賊之罪, 萬死無赦, 至於逆賊之兇謀異志, 則恐未必知之也. 臣等同在一道, 飽聞潑洁一生孝友, 出於天性, 居家之行無愧古人. 求忠臣必於孝子之門, 則未有孝而不忠者也. 只緣識見昏暗, 未免爲逆賊之所欺, 其罪則可誅, 而其情則可原. 潑洁之於澈也, 平日水火, 殿下亦已知矣. 伏願殿下竝垂矜察焉. 何以則固結人心? 嗚呼! 居九重之上, 而爲萬民之主者君也, 處方域之內, 而奉一人之命者民也. 君之於民也上下, 雖【恐殊字之誤】隔貴賤遼絶勢, 若不相及, 而其心之相應, 如風草影響. 君之意誠, 則民亦應之以誠, 君之意怠, 則民亦應之以怠. 凡民心保合之要, 莫不由於人主之推誠, 渙散之弊, 亦莫不由於人主之怠慢, 君民相應之機, 其可忽哉? 其可忽哉? 恭惟我國家, 賢聖繼作, 傳祚十二, 歷年二百. 休養生靈, 撫綏涵育, 維之以義, 結之以仁, 則其發源也深矣, 植根也固矣. 式克至于我殿下, 聿遵先業, 休有前烈, 如傷之念, 每切於宵肝之憂, 若保之誠, 累著於山東之詔, 民皆愛戴, 咸有不忍叛之心. 邦本鞏固, 已成不可動之勢, 一經己丑之變, 天意已傷, 民心已解. 及乎壬辰之賊, 未侵鎬京, 已有土崩之勢, 禽奔獸遁, 唯知偸活之計. 主辱臣死, 未見授命之人, 至使玁狁及方太王去邠, 是何我國之强, 而一朝摧創, 至此極也? 嗚呼! 城池非不高深也, 兵甲非不堅利也, 米粟非不多也, 則聖上備邊之策, 固無讓於漢文, 而京師之不守, 則甚於遼金渡河之日, 其故何也? 已散之人心, 難可維係, 而天亦不爲愛佑也. 然而尙賴殿下弘濟艱難, 迅掃園陵, 還御舊都. 得至今日, 庶見恢復, 而狼貪尙肆, 蛇屯未解. 近日, 又有掃境來寇之聲, 京外之人心, 恟恟未定, 皆有瓦解之意.【恐脫宜字】 及今鎭定收拾渙散之心, 而流聞道路, 自上亦無堅定之意, 至發於傳敎之際, 使都下人心益致紛擾. 而在外之人, 亦隨而騷動, 先聲所劫. 猶尙如此. 脫有長驅闌入之勢, 則其何以禦賊, 其何以守國? 言之至此, 不勝痛哭之至. 嗚呼! 聖明在上, 廟堂有人, 禦戎上策, 必無遺矣. 而草野之間, 亦不無一得之愚, 敢言塵露之說. 【恐脫夫字】天下之事, 有緩有急, 當緩而急之, 則有顚倒失措之患, 當急而緩之, 則致噬臍莫及之悔. 是故當其可緩之時, 則宜講措備之策, 以圖萬全可也. 及其事急之時, 則必決一死, 以濟其難亦可也. 以今日之事觀之, 則可不謂不急乎? 古人有言曰: "事急不可徐行, 心痛不可緩聲." 臣等當此危急之時, 豈以爲朝庭之未發言, 而亦含默於殿下之前哉? 臣等聞遇非常之變, 然後有非常之慶, 有非常之擧, 然後立非常之功. 昔周宣王親執殳而薄伐, 唐肅宗躬甲冑而削平. 故人君當汲汲之日, 必有親征之擧. 然後人心可激, 而天討可行矣. 今此民心, 若無感動激勵之方, 則雖朝遣一將暮遣一將, 必不能使斯民, 出敢死之心, 而殲彼賊.【恐脫矣字】 爲今之計, 莫如亟下哀痛之敎示. 以惻怛之誠, 上告宗廟, 下諭臣民. 親御六飛, 申令三軍, 駐蹕南州, 據要守險, 使道內守令, 各率其兵馬, 其會如林, 一乃心力. 咸聽格汝之誓, 爭奮效死之忠, 則"百姓聞王車馬之音, 見王羽旄之美, 擧欣欣然有喜色而相告曰: "吾王出征, 吾何以爲憂? 吾王在此, 吾何以去?" 雖窮山僻野黎童白叟, 莫不欲與子. 偕作爲王前驅, 則我武維揚, 王威震疊, 足以破賊之膽, 禠賊之魄, 而賊酋之頭, 可懸於北闕之下矣. 況此湖南, 物力之衆, 倉庫之完, 非如焚蕩之地. 又有山城, 天設險固, 豈是三里之城七里之郭, 可圍而攻之者哉? 國家本根, 專在於此, 恢復之業, 亦在於此, 此地之重, 豈特江淮之保障, 細柳勞軍之行可臨, 而澶淵却敵之駕可駐矣. 伏願殿下, 察當急當緩之勢, 以宣王肅宗爲法, 而無爲姑息之計, 以作候【恐中字之誤】興之擧也. 倘或衆寡不敵, 强弱異勢, 則宜奮哭秦之誠, 請出救邢之師. 合力而齊擧, 則焉保彼賊必勝, 而我兵必敗也哉? 宋臣宗澤之疏曰: "天苟不欲絶宋, 則猶可爲也." 蘇洵又曰: "百戰而勝之, 人雖屈而我亦勞." 彼賊師老兵廢, 天厭鬼誅. 亦可遙度, 不可先劫於聲形之動也. 噫! 少康以一旅【恐脫衆字】中興, 包胥以三戶【恐五百乘之誤】存楚. 伏願殿下, 勿以兵少爲慮焉. 臣等急於收拾人心, 殲滅賊醜, 敢將寇準過河之願, 以效張浚自將之請. 然古人有言曰: "千金之子, 坐不垂堂." 又曰: "不以賊遺於君父." 臣等亦豈敢望親冒於矢石之間哉? 丹浦之捷, 不必親到澈溪之征, 可以汝往擇遣重臣, 民所見膽者一人, 兼帶元帥之職, 悉取引弓之民, 聚于轅門, 一以講習, 無使散在諸處, 以致臨時狼狽之患. 又求韋布中有才智者, 置諸幕下, 諮諏謀猷, 以相劃策, 則緩急之際, 庶無應賊之憂矣. 嗚呼! 天意有感, 則必應人, 人心有感, 則必通天, 天意之所應, 卽人心之所感也. 是故至誠感神, 大禹見頑苗之格, 哀痛有詔, 唐宗回奉天之駕, 信乎回天意結人心, 大有關於討賊興復之機也. 嗚呼! 臣等以壬辰之變, 爲己丑之冤所召, 而必欲伸雪於搶攘之日者, 自殿下臨御以來, 三十年于玆矣. 而少無失德獲戾于天, 而有今日莫大之變, 是豈殿下之故也? 實是奸臣賊賢病國, 感傷和氣之所致. 是故臣等, 以靖亂之策, 歸之於感回天意, 以感回天意, 歸之於昭雪冤枉, 而爲殿下申申焉. 臣等又以致寇之至【恐有脫字】, 爲人心之散所由, 而必請親臨於行陣之間者, 豈欲致君父於阽危之地? 若非親幸撫軍, 則無以鼓舞民心, 而兇鋒再擧, 河決蟻封, 我國之勢無復可爲, 而臣等之血肉於賊刃, 固無足惜, 未知主上何歸, 宗社何依. 是故臣等以討賊之要, 歸之於固結人心, 以固結人心, 望之於車駕親臨, 而爲殿下申申焉. 伏願殿下留神焉. 臣等俱以草野狂生, 敢冒萬死, 仰叫九重者, 誠以係國家興亡之機耳. 竊不勝愛君憂國之誠, 輒忘狂僭, 刳瀝肺肝. 伏惟殿下特垂明察, 少有採納, 則非獨臣等之幸, 抑亦宗社之福也. 臣等不勝惶恐之至, 謹昧死以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