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 국역/표점
  • 국역
  • 금성삼고(錦城三稿)
  • 소포유고
  • 서(書)
  • 정 참봉에게 보내는 편지(與鄭參奉書)

금성삼고(錦城三稿) / 소포유고 / 서(書)

자료ID HIKS_OB_F9008-01-240502.0002.0010.TXT.0003
정 참봉에게 보내는 편지
지난번 산사(山寺)에서 이미 술에 취한 데다 또한 덕으로 배가 불렀습니다.주 213) 이따금 글 읽는 것보다 나은 말을 보내주시어 자못 일깨워주는 점이 있으니 더욱 마음에 몹시 감격하여 감사함을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성학(聖學)을 논하신 한 단락에 대하여서는 삼가 제가 의혹을 품고 있습니다.
성인은 하나이나 태어나면서 알기도 하고 배워서 알기도 합니다.주 214) 태어나면서 아는 자는 요(堯), 순(舜), 주(周), 공(孔)이고, 배워서 아는 자는 우(禹), 탕(湯)입니다. "능히 생각하고[克念] 생각이 없다[罔念]주 215)"라고 말한 것은 모두 스스로 배워서 아는 측면에서 말한 것이니 만약에 태어나면서 안다면 어찌 이러한 공부의 과정이 있겠습니까? 시청언동(視聽言動)은 혼연(渾然)한 천리(天理)이니 어떻게 감히 사물(四勿)주 216)을 그 사이에 두겠습니까? 전자의 성인들 또한 견지(堅持)하는 곳이 있다고 하셨는데, 경을 위주로 하는 공부를 섭렵해야 할 듯합니다. 이것이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몸과 마음을 수습하고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다른 쪽으로 흩어지지 않게 하여주 217) 사물의 이치가 극진한 곳에 이르게 합니다. 무엇이 천리이며, 무엇이 인욕(人欲)이겠습니까? 택선고집(擇善固執)주 218)과 고수기궁(固守其窮)주 219)이 성인이 되는 길을 열어주는 열쇠입니다. 태어나면서 아는 성인은 성으로 말미암아 밝아진 사람이니주 220) 온화한 천리가 마음에 가득 채워져 발하는 것이 모두 절도에 맞고 경이 그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에는 효도해야 한다고 하며, 임금에게는 충성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천지의 성(誠)이 심원하여 그치지 않는 것은 사계절의 춥고 더움이 자연에서 들으면 털끝만큼도 경영할 의사(意思)가 없는 것과 같으니, 경(敬)이 아니면 배나무에서 복숭아꽃이 피고 복숭아나무에서 배꽃이 피어 뒤섞여 무질서하게 되는 실수가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심원하여 그치지 않아 초목이 각각 그 바름을 얻는 것은 천지의 성(誠)과 경(敬)이요 발하는 것이 모두 천리이고 사물이 그 자리를 어기지 않는 것은 성인의 성과 경입니다. 성과 경을 위주로 하지 않았는데 성과 경이 저절로 운행되니 이것은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고, 하지 않았는데 행해진 것입니다. 어찌 이 마음을 관섭(管攝)하여 내려놓지 않는 것이 배우는 자들의 경(敬)이라 하겠습니까? 만약 성인의 마음이 오로지 주재한 바가 없는 것이라 한다면 성인의 마음 잡고 빈 껍떼기로 돌아갈 테니 어찌 함께 의론하겠습니까?
생각건대 노형께서 논하신 바는 성인께서도 견지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거경(居敬)하고 힘쓰라는 저의에 벗어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배워서 아는 것이고 우와 탕이 이런 사람입니다. 우와 탕이 그것과 반대로 하여 혼연(渾然)함에 이르렀다면 견지하는 수단이 없었을 터인데 견지하는 것은 배우는 자의 일입니다. 안자(顔子) 같은 경우 3개월 동안 인(仁)을 떠나지 않다가주 221) 3개월 후 물처럼 일렁이려 하자 곧바로 존양(存養)을 견지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3개월 안이라고 하면 안자 또한 대화(大化)주 222)의 영역이 있었으니 문득 견지하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물며 태어나면서 아는 성인 중에 주공과 공자 같은 분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또 일설에는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천하를 주면서 "진실로 그 중도를 잡으라."라고 하였으니 순임금은 태어나면서 안 사람인지라 요임금의 말이 비록 미치지 않았더라도 순임금이 어찌 분명히 알지 못했겠습니까? 천하를 주고받은 것과 성인이 서로 전하는 도가 마땅히 이와 같습니다. 순임금은 우임금에게 천하를 주면서 다시 세 마디 말주 223)을 덧붙였으니, 모두 신사(愼思), 명변(明辨)주 224), 택집(擇執), 고수(固守)의 학문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임금은 그것을 반대로 한 성인이시니 유정유일(惟精惟一)의 뜻을 어찌 순임금께서 경계하여 고한 말을 기다려 알았겠습니까? 순임금도 이같이 운운하였으니 성인이 서로 전하는 도입니다. 만약 이것으로 우임금을 가리켜 경을 위주로 하는 공부가 있었다고 한다면 일찍이 우임금께서 도를 전하는 성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태어나서 아는 것이나 배워서 아는 것이 성공을 이루기에 이르면 똑같습니다. 성인은 사물의 위에서 천리를 유행시켜 자연의 경이 그 가운데 있으니 관섭(管攝)하고 그것을 위주로 하는 공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그 덕이 부합하고, 귀신과 그 길흉이 부합하며, 일월과 그 밝음이 부합한다."주 225)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벗어나면 성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노형의 앎이 여기에 이르지 않음이 아니나 다만 성인께서 견지하는 곳이 없다는 말이 배우는 사람의 경(敬)을 위주로 하는 일에 가까움으로 감히 하찮은주 226) 견해를 펼쳤으니, 좌우에 질정하여 취하십시오. 삼가 바라건대 비루하게 여기지 마시고 맑은 가르침을 내려주시어 막힌 마음주 227)을 열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주석 213)이미 …… 불렀습니다.
《시경》 〈대아(大雅) 기취(旣醉)〉에 "이미 술에 흠뻑 취하였고 이미 덕에 배가 불렀도다. 군자께선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시기를.[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라고 한 말을 인용하였다.
주석 214)태어나면서 …… 합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혹은 태어나면서 알고, 혹은 배워서 알고, 혹은 곤란을 겪은 뒤에 아니, 그 앎에 미쳐서는 마찬가지이다. 혹은 편안히 행하고, 혹은 이롭게 여겨서 행하고, 혹은 억지로 힘써서 행하니, 그 성공함에 미쳐서는 마찬가지이다.〔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或困而知之, 及其知之一也. 或安而行之, 或利而行之, 或勉强而行之, 及其成功一也.〕"라고 하였다. 《中庸章句 第20章》
주석 215)능히 생각하고[克念] 생각이 없다[忘念]
《서경》〈주서(周書) 다방(多方)〉에 "오직 성인도 생각이 없으면 미치광이가 되고 미치광이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惟聖罔念作狂, 惟狂克念作聖.〕"라고 하였다.
주석 216)사물(四勿)
네 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논어》 〈안연(顔淵)〉에,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이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조목을 묻자,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한 데서 보인다.
주석 217)마음을 …… 하여
원문의 '주일무적(主一無適)'은 정자(程子)가 경(敬)을 설명한 말로,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다른 쪽으로 흩어지지 않게 한다.'라는 뜻이다. 주희가 이 말을 계승하여, 《논어》 〈학이(學而)〉의 '경사이신(敬事而信)'에 대한 주희(朱熹)의 〈집주(集註)〉에 "경은 주일무적을 의미한다.[敬者, 主一無適之謂.]"라는 말이 나온다.
주석 218)택선고집(擇善固執)
성(誠)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중용장구》 제20장 "성실함은 하늘의 도요, 성실히 하려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성실한 자는 힘쓰지 않고도 도에 맞으며 생각하지 않고도 도에 맞으니 성인이요, 성실히 하려는 자는 선을 택하여 굳게 잡는 자이다.〔誠者天之道也, 誠之者人之道也. 誠者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誠之者擇善而固執之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석 219)고수기궁(固守其窮)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군자는 진실로 궁할 때가 있는 것이니, 소인은 궁하면 죄를 짓는다.〔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라고 하였는데, 정자(程子)는 고궁(固窮)을 '궁함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固守其窮.〕'라고 하였는바, 여기서는 바로 정자의 해석에 따라서, 군자는 곤궁하거나 현달하거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잘 지킨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論語 衛靈公》
주석 220)성으로 …… 사람이니
원문의 '자성명(自誠明)'은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1장에 보이는 구절로, 본성이 거짓이 없이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이를 환히 아는 것이다. 이는 천성으로 덕을 간직한 성인(聖人)의 경우를 뜻한다.
주석 221)안자(顔子)……않았다
《논어》 〈옹야〉 5장에 공자가 "안회는 그 마음이 3개월 동안 인을 떠나지 않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하루나 한 달에 한 번 인에 이를 뿐이다.[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 則日月至焉而已矣.]"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주석 222)대화(大化)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네 단계의 큰 변화로, 유아기, 청년기, 노년기 그리고 죽음을 말한다. 《列子 天瑞》
주석 223)세 마디 말
'윤집궐중(允執厥中)'은 요 임금이 순 임금한테 전한 말인데, 순 임금이 세 마디를 덧붙여서 우(禹)에게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약하니, 오직 정밀하게 살피면서 한결같이 행해야만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수 있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당부였다. 《書經 大禹謨》
주석 224)신사(愼思)·명변(明辨)
《중용장구》 제20장에 학문을 하는 데서는 "널리 배우며,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며, 밝게 분변하며, 독실히 행하여야 한다.〔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석 225)"성인은 …… 부합한다."
주돈이의 〈태극도설〉에 "성인은 천지와 덕이 부합하며 일월과 밝음이 부합하며 사시와 차례가 부합하며 귀신과 길흉이 부합하는 것이다.[聖人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라고 하였다. 《近思錄 卷1 道體》
주석 226)하찮은
원문의 '작화(爝火)'는 횃불이라는 의미로, 흔히 자신의 능력을 겸손히 낮추는 말로 쓰인다. 요(堯) 임금이 천하를 허유(許由)에게 넘겨주려고 하면서 "해와 달이 나와 밝은데, 횃불을 끄지 않는다면 그 빛은 빛나기 어렵지 않겠는가.〔日月出矣而爝火不息 其於光也 不亦難乎〕"라고 말한 데서 유래하였다. 《莊子 逍遙遊》
주석 227)막힌 마음
원문의 '모색(茅塞)'은 띠풀이 자라서 길을 막는 것으로, 사욕에 가려진 마음을 비유한다. 맹자(孟子)가 고자(高子)에게 이르기를 "산속의 오솔길이 잠깐 사용하면 길을 이루고, 한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띠풀이 자라 길을 막나니, 지금 띠풀이 그대의 마음을 꽉 막고 있구나.[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則茅塞之矣. 今茅塞子之心矣.]"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孟子 盡心下》
與鄭參奉書
頃於山寺, 旣醉以酒, 又飽以德. 時輸勝讀之語, 頗有喚醒之, 益感極于心, 謝不容口. 但論聖學一段, 愚竊惑焉. 聖一也而有生知學知. 生知者, 堯舜周孔也, 學知者, 禹湯也. 其曰: "克念罔念.", 皆自學知上說來, 若生知則, 安有這工程也? 視·聽·言·動, 渾然天理, 何敢以四勿下於其間. 前者聖人, 亦有把持處云云, 似涉主敬工夫. 此學者收拾身心, 主一無適, 極致事物. 何者天理, 何者人欲. 擇執固守, 以爲作聖之開鍵也. 生知之聖, 則自誠明者也, 藹然天理充積於內, 發皆中節, 而敬在其中. 故在父曰孝, 在君曰忠. 比如天地之誠於穆不已, 四時寒暑, 聽於自然, 無一毫經營上意思, 而非敬, 則梨樹桃花, 桃樹梨花, 有錯雜無序之失矣. 然則於穆不已, 而草木各得其正者, 天地之誠敬也, 發皆天理, 而事物不舛其位者, 聖人之誠敬也. 不主於誠敬, 而誠敬自行, 此自然而然, 無爲而爲者也. 寧有管攝此心, 不使放下, 如學者之敬乎. 若曰聖心, 專無主宰, 則把聖人腔子, 歸之於空殼也, 何足與議. 惟老兄所論, 聖人亦有把持處云云, 以愚思之, 未免有居敬思勉底意, 此學知也, 禹湯是也. 禹湯反之, 及至渾然, 則亦無把持上手段, 把持者, 學者事也. 如顔子三月不違仁, 三月之後, 如水欲波, 便卽把持存養, 以此之三月之內, 則顔子亦在大化之域, 頓無把持者矣. 況生知聖人, 如周孔者哉. 且有一說, 堯授舜曰: "允執厥中", 舜生知也, 堯言雖不及此, 舜豈不的然有獲. 以天下受授, 聖人相傳之道, 當如是也. 舜授禹, 復益之以三言, 皆愼思·明辨·擇執·固守之學, 始於此矣. 然禹反之之聖也, 精一之意, 何待舜之告戒而知耶? 舜之如是云云, 亦聖人相傳之道也. 若以此指禹有主敬工夫云爾, 則曾謂禹爲傳道之聖乎? 生知學知, 及其成功, 則一也. 聖人者, 事物之上, 天理流行, 自然之敬, 存於其中, 其有攝而主之之功哉. 故曰: "聖人與天地合其德, 鬼神合其吉凶, 日月合其明." 外此則不可言聖人也. 老兄之知, 非不到此, 而第聖人無不把持處說話, 近於學者主敬之事, 故敢陳爝火之見, 取正於左右. 伏冀勿鄙夷之, 特垂淸誨, 以開茅塞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