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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의정 오리 이원익에게 올리는 편지 【1600년 봄】(上左相李梧里元翼書 【庚子春】)

금성삼고(錦城三稿) / 소포유고 / 서(書)

자료ID HIKS_OB_F9008-01-240502.0002.0010.TXT.0002
좌의정 오리 이원익주 203)에게 올리는 편지 【1600년 봄】
예전에 여관에서 비로소 한번 뵙고 싶었던 소원을 이루었는데 상국(相國)께서 포의(布衣, 평민)라고 경시하지 않고 따뜻한 말씀을 해주시면서 남다르게 대우하시니 저는 마음에 감격하여 어떻게 보답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삼가 대감의 뜻을 살펴보니 도탄에 빠진 백성을 지성으로 구제하고, 상국께서 남쪽 지방을 왕명으로 몸소 살펴 백성의 병폐를 힘써 제거하며 국가의 근본을 굳건하게 한 것은 상국의 어짊입니다. 문교(文敎)를 붙들어 세우고 풍화(風化)를 떨쳐 일으킨 것은 상국의 지혜입니다. 제가 비록 무식하나 감히 흠앙(欽仰)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저도 사람들 축에 끼어 있기에 알리고자 하는 것이 있으니 산처럼 우러러보는 마음이 이에 이르러 더욱 간절합니다.
오직 백성 지키는 한 가지 일만은 상국과 여러 집정자가 잘 헤아리고 생각하시어 이미 세워두신 계획이 있을 테니, 우활(迂闊)한 서생이 어찌 그 계획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선비 중에 어진 자의 말을 듣고 싶으시다면 저 또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남쪽 선비 중에 아무개가 효자이고 아무개가 현자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바이니, 상국께서도 일찍이 들으신 것이 한 둘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유명한 사람이라 해서 반드시 모두 어질지 않고, 유명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서 반드시 모두 어리석지 않다고 여깁니다.
삼가 생각건대 상국께서는 덕이 크고 지혜가 높으시며, 현자(賢者)를 숭상하고 유능한 자를 천거하시니 한강 이남에서도 이미 감화되어 도의가 행해지고 있거늘주 204) 누가 청황(靑黃)주 205)의 선비를 대인군자에게 속여 추천하겠습니까? 혹여 있을지라도 밝은 거울 아래에서는 곱고 추함이 저절로 구별됩니다. 저처럼 무상(無狀)한 사람이 외람되이 대감의 문하를 바라고 만약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말한다면 의리상 마땅히 문하에서 거절을 당할 따름입니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사람은 남들이 알지 못하고도 남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윽한 난초주 206)가 골짜기에 있는데 맑은 바람이 불지 않으니 그윽한 향기를 누가 맡겠습니까?
저의 친구 이유경(李有慶)은 어려서부터 지조가 있었고, 장성해서는 학문과 품행에 힘썼습니다. 저와 10년을 함께 공부하면서 속마음 털어놓기를 자기 일처럼 하였으니 과연 충효(忠孝)하고 독실한 선비였습니다. 교유를 좋아하지 않고 오직 부모님 섬기는 것에만 정성을 다하였는데 혼정신성(昏定晨省)하는 겨를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 경사자집(經史子集)에 통달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나이가 50이 넘었거늘 미관말직도 받지 못하였으니 또한 성스러운 시대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나덕현(羅德顯)주 207)은 제 동생입니다. 마음이 한결같게 밝고 깨끗하여 악(惡)을 원수처럼 미워하고, 문을 닫고 서책을 읽으면서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집안에서 효도하고 우애하는 행실을 형으로서 감히 말할 수 없으나 성취한 것이 빼어납니다. 사람들의 이목에 있는 것으로 말하자면 기축년(1589)년 겨울에 양천경(梁千頃) 등이 무리를 모아 상소를 올려 어진 재상과 선비들을 모함할 때 나덕현은 그 아우 나덕헌(羅德憲)주 208)과 그 모임에 쳐들어가 큰소리로 배척하니 양천경 등이 상소 내용 가운데 함께 넣어 나추(拿推)주 209)를 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아마도 '청(請)'자가 빠진듯하다】 그때 위관(委官)주 210)이 양천경의 사주를 듣고 상소를 저지하고 도모함을 헤아려 법률에 따라 북관(北關)으로 유배를 보냈으며 영사(令使) 김성일(金誠一)주 211)은 항상 그의 의열(義烈)에 감복하고 칭찬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상국께서도 이 일을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생각건대 상국께서 반드시 독실한 선비에 대해 듣고자 하시기 때문에 저는 옛사람들이 거자(擧子)주 212)를 위해 추천하던 뜻을 본받아 문득 외람되이 말씀드립니다.
이 두 사람은 실로 이름은 없지만 행실이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상국께서 이끌어 이르게 하여 더욱 자세히 살펴보신다면 틀림없이 칭찬하고 권장하는 마음을 가지실 것입니다. 저는 진실로 밝은 구슬이 모래에 더럽혀지는 것을 참지 못하여 상국의 상자에 거두어지기를 바라니, 이 또한 덕을 우러러보는 사사로운 마음인데 상국의 뜻이 어떠하신지는 모르겠습니다.
주석 203)이원익
1547∼1634.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梧里),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604년(선조37) 호성 공신(扈聖功臣)에 녹훈되고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에 봉해졌다.
주석 204)삼가 …… 있거늘
한유(韓愈)의 〈상병부이시랑서(上兵部李侍郞書)〉 "삼가 생각건대 합하께서는 내심(內心)이 인자하고 외행(外行)이 의로우시며, 행실이 고상하고 덕이 크시며, 현자를 높이고 유능한 자를 薦擧하시며, 곤궁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억울한 사람을 가엾게 여기시니, 강남 서도(西道)의 백성들이 이미 감화되어 도의(道義)가 행합니다.〔伏以閤下內仁而外義, 行高而德鉅, 尙賢而與能, 哀窮而悼屈, 自江而西, 旣化而行矣.〕"의 말을 인용하였다.
주석 205)청황(靑黃)
화려한 관직 생활을 뜻한다. 《장자》 천지(天地)에 "백 년 된 나무를 베어서 제기(祭器)를 만들고 그 위에 청황(靑黃)의 문채로 장식한 뒤에는 나머지 나무토막들을 구렁 속에 내버리는데,[其斷在溝中] 제기와 나무토막 사이에 아름답고 추하게 된 차이는 있다 하겠지만, 나무의 본성을 잃은 점에 있어서는 똑같다고 하겠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청황은 벼슬을 가리키고 구목(溝木), 즉 구렁 속의 나무토막은 벼슬을 잃고서 실의에 빠진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주석 206)그윽한 난초
원문의 '유란(幽蘭)'은 빈 골짝에 피어난 난초로, 세상이 알아주지 않지만 홀로 향기를 내뿜는 초야의 군자(君子)를 상징한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집집마다 쑥을 허리춤에 가득 차고 다니면서 유란은 찰 것이 못 된다고 한다네.[戶服艾以盈腰兮, 謂幽蘭其不可佩.]"라고 하였다.
주석 207)나덕현(羅德顯)
1565∼1625. 자는 회지(晦之), 호는 반계(潘溪)이다. 유희춘, 이이, 박순, 청개청 등에게 배웠다.
주석 208)나덕헌(羅德憲)
1573∼1640. 자는 헌지(憲之), 호는 장암(壯巖),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1603년 무과에 급제하였고,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 도원수 장만(張晩)을 도와 안현(鞍峴) 싸움에서 공을 세우고, 진무원종(振武原從)의 훈공을 받았다.
주석 209)나추(拿推)
범죄 혐의자를 의금부(義禁府)의 옥에 가두고 의금부의 당상관(堂上官) 등이 회좌(會座)하여 신문하는 것을 말한다.
주석 210)위관(委官)
죄인을 추국(推鞫)할 때, 의정대신(議政大臣) 가운데서 임시로 뽑아서 임명하는 재판장으로 당시 정철(鄭澈)이 담당하였다.
주석 211)김성일(金誠一)
1538∼1593.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峯),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568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경상 우도 병마절도사, 경상 우도 관찰사, 순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학봉집(鶴峯集)》 등이 있다.
주석 212)거자(擧子)
과거(科擧) 때에 추천을 받아 응시하는 선비를 거자(擧子)라 칭한다. 《구당서(舊唐書)》 고적전(高適傳)에, "고적이 유도과(有道科)에 합격하였는데, 그 당시 정승 이임보(李林甫)가 문아(文雅)가 경박하여 오직 거자(擧子)로만 대우했다." 하였다.
上左相李梧里元翼書 【庚子春】
前於旅館, 始遂一識之願, 而蒙相國不以布衣鄙薄, 賜語溫款, 見遇殊常, 生感激于心, 不知所報. 竊瞯台意, 塗炭生靈, 血誠拯濟, 神相南州, 王命體察, 務去民瘼, 以固邦本, 相國之仁也, 扶植文敎, 振起風化, 相國之智也. 生雖無識, 敢不欽聳. 且以生比數於人, 而有欲聞者, 山仰之懷, 到此益重. 惟保民一事, 相國與諸執政, 商確斤兩, 已有成算. 迂闊書生, 何敢容籌. 如欲聞士之仁者, 則生亦有言. 第念南士之某也孝, 某也賢, 衆人之所共知, 相國之所嘗聞者, 不一其數, 而愚則以爲有名者未必皆賢, 無名者未必皆愚. 伏以相國德鉅而智高, 尙賢而與能, 漢江以南, 旣化而行矣, 誰得以靑黃之士, 誣薦於大人君子耶. 雖或有之, 明鏡之下, 姸醜自別. 如生無狀, 幸叨台門, 若徇私以告之, 則義當見絶於門下耳. 生之所欲薦者, 人不知而實有餘者也. 幽蘭在谷, 淸風不吹, 暗香誰聞. 生之友李有慶, 幼有志操, 長懋學行. 生十年同榻, 肝膽如己, 果忠孝篤實士也. 不喜交遊, 唯事親盡誠, 定省之暇, 手不釋書, 經史子集, 無不通曉, 年踰五十, 不霑一命, 亦聖代之所恥也. 羅德顯, 生之弟也. 一心皎潔, 嫉惡如讐, 杜門讀書, 不求人知, 家間孝友之行, 兄也未敢言, 而就卓卓. 在人耳目者言之, 則己丑冬, 梁千頃輩, 聚黨封疏, 謀陷賢相與士流時, 德顯與其弟德憲, 撞入其會, 大言排之, 千頃等, 幷入疏中, 至【恐脫請字】拿推. 其時委官聽千頃之嗾, 照謀沮封疏, 律竄配北關. 金令使誠一氏, 常服其義烈, 稱道不已, 相國亦嘗聞乎? 惟相國必欲聞篤實之士, 故生體古人擧子之義, 輒冒言之. 玆二人實無名而有行者也. 倘相國引而致之, 密加識察, 則必有嘉獎之心矣. 生誠不忍明珠穢沙, 欲收入於相國之篋櫝, 是亦仰德之私衷也. 不審相國之意, 以爲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