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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삼고(錦城三稿)
- 소포유고
- 오언율시(五言四韻)
- 아버지의 명으로 목백 임윤신의 시에 대신 차운하다(以嚴君命代次牧伯任公允臣韻)
금성삼고(錦城三稿) / 소포유고 / 오언율시(五言四韻)
아버지의 명으로 목백 임윤신주 53)의 시에 대신 차운하다
수령주 54)이 금각주 55)을 떠나 鳧舃辭琴閣
표연하게 산수의 사이에 있네 飄然水石間
안개와 노을 낀 기다란 길 고요하고 煙霞脩逕靜
술동이 있는 작은 집 한가롭네 樽酒小齋閑
하늘의 밝은 태양 얼마나 아득한가 白日天何逈
들녘의 푸르른 모가 스스로 위로하네 靑秧野自寬
쇠약한 백성들은 흰 머리 흩날리며 殘民揚素髮
두 손으로 빛나는 안장에 절을 하네 雙手拜華鞍
- 주석 53)임윤신
- 1529~1588.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경룡(景龍)이다. 1559년 기미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에 급제하고 부제학, 동래부사를 지내다가 1587년 나주목사를 역임하였다.
- 주석 54)수령
- 원문의 '부석(鳧舃)'은 신선들이 신는 신발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지방의 수령들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였다. 《후한서(後漢書)》 〈방술열전 상(方術列傳上) 왕교전(王喬傳)〉에 "왕교는 하동(河東) 사람인데 현종(顯宗) 때 섭현 영(葉縣令)이 되었다. 왕교는 신술(神術)이 있어서 매달 삭망(朔望)에 대(臺)에 나와 조회하였다. 황제가 그가 자주 오는데도 수레가 보이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 태사(太史)로 하여금 몰래 엿보게 하니, 태사가 그가 올 때에는 두 마리의 오리가 동남쪽에서 날아온다고 하였다. 이에 오리가 오는 것을 보고 그물을 펴서 잡으니, 단지 신발 한 짝만 있었다. 상방(尙方)에 명하여 자세히 살펴보게 하니 전에 상서원(尙書院)의 관속들에게 하사한 신발이었다." 하였다.
- 주석 55)금각
- 수령이 정사하는 곳을 말하는데 금당(琴堂)이라고도 한다. 옛날 복자천(宓子賤)이라는 어진 수령이 선보(單父)라는 고을을 다스릴 때 거문고를 타면서 마루 아래에 내려온 일이 없었으나 선보현은 잘 다스려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以嚴君命代次牧伯任公允臣韻
鳧舃辭琴閣, 飄然水石間.
煙霞脩逕靜, 樽酒小齋閑.
白日天何逈, 靑秧野自寬.
殘民揚素髮, 雙手拜華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