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 국역/표점
  • 국역
  • 서행록(西行錄)
  • 1839년(기해), 영행일기
  • 3월(三月)
  • 12일(十二日)

서행록(西行錄) / 1839년(기해), 영행일기 / 3월(三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6.0001.TXT.0001
12일
기해년(1839, 헌종 5) 3월 12일. 영남으로 가려고 내기(乃記), 학윤(學允)과 짝을 지어 출발하였다. 벌교(筏橋)에 이르러 요기를 하였다. 저물녘 순천(順天) 수덕(修德)주 1) 마을의 정생(丁生) 집에 이르렀다. 정생은 성리(城里)에서 이 마을로 이거한 사람이다. 정생이 출타하여 주인이 없는 바람에, 물리치고 들이지 않아서 나왔다. 안채에서 우리가 간 것을 알고 다시 들어오라고 청하였으므로 도로 들어가 유숙하였다. 60리를 갔다. 쫓겨나올 때 절구 1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저물녘 수덕 마을에 도착하였는데(暮到村修德)
주인은 가장 인정 없는 사람이네(主人最不仁)
온 마을이 다 물리쳐 쫓아내니(一里皆揮却)
응당 좋은 손님이 적게 모이겠네(應少會佳賓)
주석 1)수덕(修德)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수덕리이다.
十二日
己亥三月十二日。 作嶺行, 與乃記學允作伴發程。 抵筏橋療飢。 暮抵順天修德村生家。 生卽自城里移居于此村者也。 生出去他以無主之致, 退却不納, 故出來矣。 自內間知吾行, 更爲請入, 故還入仍留宿。 行六十里。 退出之際, 吟一絶曰: "暮到村修德, 主人最不仁。 一里皆揮却, 應少會佳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