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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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행록(西行錄)
  • 1832년(임진)
  • 10월(十月)
  • 23일(二十三日)

서행록(西行錄) / 1832년(임진) / 10월(十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5.0002.TXT.0023
23일
○일행과 출발하였다. 청파영대 집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행장을 꾸려 길가로 나오니 임실의 일행은 먼저 출발하였다. 노량(露梁, 서울 노량진)으로 가니 내년 동가(動駕)주 45) 때 쓸 배다리[舟橋]주 46)를 만들기 위해 모든 배가 다 와서 강 가운데 정박해 있어, 가히 장관이라 이를 만하였다. 그길로 강을 건너기 위해 강기슭 육신묘(六臣墓)주 47) 앞에 이르러 육신묘비(六臣墓碑)주 48)를 봤다. 산소를 둘러보고, 망배(望拜)하고 싶었지만, 눈이 쌓여 묘정(墓庭)을 막아 성묘를 할 수 없었다. 가다가 시흥(始興) 읍내에 이르러 콩죽을 사서 요기를 하였다. 군포천(軍布川) 주막에 이르러 임실 일행을 만나 함께 유숙하였다. 이날 밤에 큰 눈이 왔다.
주석 45)동가(動駕)
임금이 탄 수레가 대궐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
주석 46)배다리[舟橋]
작은 배를 잇달아 띄워 놓고 그 위에 널판을 건너질러 깐 다리이다.
주석 47)육신묘(六臣墓)
서울 노량진에 있는 단종 복위 사건으로 죽은 박팽년(朴彭年)ㆍ성삼문(成三問)ㆍ하위지(河緯地)ㆍ이개(李塏)ㆍ유성원(柳誠源)ㆍ유응부(兪應孚)의 묘이다.
주석 48)육신묘비(六臣墓碑)
서울 노량진 남쪽 기슭에 있는 사육신(死六臣)의 묘비로 1782년에 세워졌으며, 조관빈(趙觀彬, 1691~1757)이 찬(撰)하고 이휘지(李徽之, 1715~1785)가 글씨를 썼다.
二十三日
○朝前, 與同行發程。 抵靑坡永大家, 仍朝飯。 治發行裝, 出來路邊, 則任實同行先去矣。 行去露梁, 則以明年動駕時舟橋次, 船隻盡爲來泊於江中, 可謂壯觀矣。 仍爲越江, 抵江岸六臣墓前, 見六臣墓碑。 周觀山所欲爲望拜, 而以雪塞墓庭, 不得省拜。 行至始興邑內。 買太粥療飢 抵軍布川酒幕, 逢任實同行, 仍爲同留。 是夜大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