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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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행록(西行錄)
  • 1832년(임진)
  • 윤9월(閏九月)
  • 24일(二十四日)

서행록(西行錄) / 1832년(임진) / 윤9월(閏九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5.0001.TXT.0003
24일
○동이 틀 무렵 출발하여 낙수(洛水)주 2) 객점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낙수교(洛水橋)를 건너며 절구 1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집 떠난 지 삼일 만에(移發三之日)
행차가 낙수교에 다다랐네(行臨洛水橋)
물 깊이를 익숙히 아는 길이라(慣知深淺路)
역장(驛長)을 굳이 부르지 않았네(亭長不須招)

무열 씨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나라의 교화 덕분에 사람들 강 건널 걱정 없으니(人無病涉賴邦敎)
시월에 완성된 도강주 3)이 바로 이 다리라네(十月徒杠卽此橋)
낙수로 향하는 우리 행차가 같은 날 건너니(向吾行同日渡)
뱃사공을 부르는주 4)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네(不勞舟子也招招)

심형(心泂)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행차가 낙수 가에 이르니(行到之上)
긴 시내에 짧은 다리가 놓여있네(長川浮短橋)
오는 길에는 물소리가 세차(來路水聲立)
뱃사공을 부를 수가 없네(舟人不可招)

제호(霽浩)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이곳은 서울 가는 노정이라(此去京城路)
푸른 구름이 낙교에 비추네(靑雲映洛橋)
큰 시내 우리가 건너기 편해(大川吾利涉)
뱃사공을 부리지 않았네(舟子不招招)

광청(廣淸)주 5) 객점에 이르러 잠시 쉰 후, 먼저 출발하여 귀정(歸亭)주 6)에 들러 조정화(趙廷燁)의 궤연에 조문하였다. 잠시 외종 형수를 뵙고 곧바로 출발하였다. 석곡(石谷)주 7)에 이르러 일행을 만나, 요기를 하였다. 율정(栗亭)주 8)에 이르러 길에서 고창진(高昌鎭) 부자를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용계(龍溪)주 9) 객점에 이르렀다. 어제 광청 객점을 지나며 무열 씨가 먼저 다음과 같이 읊었다.

손을 잡고 떠난 먼 여행길 광청에 이르도록(携手長程到廣淸)
지리지에 나온 강과 이름난 산을 보며 지났네(閱過水誌與山名)
다만 족보 일로 인해 서울 가는 날이기에(徒緣譜事之日)
몸이 고달픈 건 생각지 않고 걸어서 가네(不計身勞作步行)

내가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

한 줄기 장강은 넓고도 맑으니(一派長江廣又淸)
지금도 옛날 남겨진 이름으로 불리네(至今稱說古遺名)
막힌 길을 긴 다리를 통해 건너니(長橋以濟不通路)
오가는 유람객이 머물지 않고 가네(來去遊人莫住行)
주석 2)낙수(洛水)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낙수리이다. 옛날 낙수역(洛水驛)이라는 역참이 있었다.
주석 3)도강(徒杠)
걸어서 건너는 다리이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자산(子産)이 자신의 수레로 강에서 백성들을 건네주자, 맹자가 "은혜로우나 정치를 하는 법을 모른다. 11월에 도강이 이루어지고 12월에 여량이 이루어지면 백성들이 물 건너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는다.[惠而不知爲政. 歲十一月 徒杠成, 十二月輿梁成, 民未病涉也. ]"라고 하였다.
주석 4)뱃사공을 부르는
《시경》 〈포유고엽(匏有苦葉)〉에, "손짓하며 부르는 뱃사공에게 남들은 건너도 나는 건너지 않노라. 남은 건너도 나는 건너지 않음은, 나는 내 짝을 기다려서이다.[招招舟子, 人涉卬否. 人涉卬否, 卬須我友. ]" 하였다.
주석 5)광청(廣淸)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창촌리 부근으로 추정된다.
주석 6)귀정(歸亭)
순천시 주암면 마전리에 있던 영귀정(詠歸亭)으로 보인다. 삼탄(三灘) 조태망(趙泰望 1678~?)이 지은 별업이다.
주석 7)석곡(石谷)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석곡리이다.
주석 8)율정(栗亭)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학정리 율정 마을이다.
주석 9)용계(龍溪)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용계리이다.
二十四日
○平明發程, 抵洛水店朝飯。 渡洛水橋, 吟一絶曰: "移發三之日, 行臨洛水橋。 慣知深淺路, 亭長不須招。" 武說氏次曰: "人無病涉賴邦敎, 十月徒杠卽此橋。 向吾行同日渡, 不勞舟子也招招。" 心泂次曰: "行到之上, 長川浮短橋。 來路水聲立, 舟人不可招。" 霽浩次曰: "此去京城路, 靑雲映洛橋。 大川吾利涉, 舟子不招招。" 抵廣淸店暫憩後, 先行入歸亭, 吊趙廷燁几筵。 暫見外從嫂, 卽發。 抵石谷逢同行, 仍爲療飢。 抵栗亭, 路上逢高昌鎭父子暫話。 抵龍溪店。 昨日過廣淸店, 武說氏先吟曰: "携手長程到廣淸, 閱過水誌與山名。 徒緣譜事之京日, 不計身勞作步行。" 余次曰: "一派長江廣又淸, 至今稱說古遺名。 長橋以濟不通路。 來去遊人莫住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