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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행록(西行錄)
  • 1831년(신묘)
  • 10월(十月)
  • 18일(十八日)

서행록(西行錄) / 1831년(신묘) / 10월(十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4.0001.TXT.0018
18일
송흠준(宋欽俊), 박광승(朴光昇)이 동구 밖까지 나와 작별하였다. 밀목치를 넘어 신도(新都)를 지나 연산(連山) 읍 앞에 이르렀다. 요기 차 한 주막에 들어가니 주막 안이 몹시 북적거리고 어수선하였다. 그 연고를 물으니, 이 읍의 향회(鄕會)주 28)가 열려, 유향(儒鄕)주 29)과 이교(吏校)주 30)가 많이 모였다고 하였다. 술과 안주와 떡과 국을 얻어먹고 곧바로 출발하였다. 밤이 되어 전당(錢塘)에 도착하였다. 어젯밤 서원에 머무를 때 박광승이 《동학원(東學院)》 시축을 꺼내 보여 주었다. 원운은 생원의 시로 다음과 같다.

땅이 감추고 하늘이 아끼는 몇 이랑 언덕에(地秘天慳數畝邱)
청산은 우뚝 서 있고 물은 유유히 흘러가네(靑山屹立水長流)
드디어 열두 선생의 사당을 완성하였으니(終成十二先生廟)
나무에서 이는 바람 소리 만고토록 유장하리(樹得風聲萬古悠)

평생토록 부지런히 우러렀는데주 31)(平生勤仰止)
오늘 저녁 다행히 바람대로 되었네(今夕幸望依)
도학은 푸른 산처럼 우뚝 서 있고(道學靑山立)
순수한 충정은 밝은 해처럼 빛나네(精忠白日輝)
매월당의 풍모는 감개가 무량하고(梅翁風感慨)
세조의 뜻은 깊고 은미하였네(光廟旨深微)
일 년 만에 황폐해진 곳을 수리하니(一載修荒廢)
우리가 귀의할 곳이 만들어졌네(吾徒有所歸)

내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동학사를 새로이 이 언덕에 세우니(東學新祠闢此邱)
앞 시내 굽이굽이 반드시 동으로 흐르네(前川萬折必東流)
우리 또한 충신의 후예로서(而吾亦是忠賢後)
지금 조정에 망배하니 만감이 아득하네(望拜今朝百感悠)

동학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으니(有洞名東學)
이곳에 제각(祭閣)과 사당이 지어졌네(此間閣廟依)
충혼은 위 아래가 같으니(忠魂同上下)
화려한 제도 아울러 밝게 빛나네(華制幷光輝)
우리 선조 배향하지 못한 게 한이니(恨未吾先配)
도리어 뜻이 미약했음을 참담히 느끼네(還慚感意微)
오늘의 행차에 충분한 뜻이 있으니(今行餘意在)
졸구를 읊고서 돌아가네(拙句詠而歸)

이찬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벼랑을 끼고 시내와 이어진 옛 언덕을 찾으니(拚壁緣溪訪古邱)
깎아지른 제각과 사당이 푸른 시내를 굽어보네(巍然閣廟俯淸溪)
오늘에 와서 임금과 신하가 일체가 될 즈음(于今一體君臣際)
뜻있는 선비의 천추 감회가 아련히 배가되네(志士千秋感倍悠)

오늘 계룡산 골짜기에(是日鷄山洞)
임금과 신하가 의지한 곳 있네(君臣有所依)
서교주 32)의 피는 붉게 남아 있고(西橋血有赤)
동봉주 33)의 달은 더욱 밝게 빛나네(東峯月更輝)
충절은 밝은 해를 관통하였고(忠節貫白日)
충혼각엔 자미가 빙 둘러있네(魂閣繞紫微)
만약 우리 선조를 배향하면(若配吾先祖)
영령이 저절로 돌아오리라(英靈自越歸)
주석 28)향회(鄕會)
지방에 거주하는 사족이 중심이 되어 운영한 지방자치회이다. 사족이 향안(鄕案)을 기반으로 향촌에 대한 지배를 실현하기 위한 장치로서 구성하여 운영하였다.
주석 29)유향(儒鄕)
유생(儒生)과 향청(鄕廳)의 직원을 이른 말이다.
주석 30)이교(吏校)
관아의 하급관리인 이서와 군교를 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주석 31)평생토록 …… 우러렀는데
존경할 만한 선현(先賢)을 사모할 때 쓰는 표현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차할(車舝)에 "저 높은 산봉우리 우러러보며, 큰길을 향해 나아가노라.[高山仰止, 景行行止. ]"라는 말이 나온다.
주석 32)서교
서재(西齋) 송간(宋侃)을 가리킨다.
주석 33)동봉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을 가리킨다.
十八日
○與宋欽俊朴光昇出洞口外作別。 越密木峙, 歷新都, 至連山邑前。 療飢次入一幕, 則幕中頗煩撓。 故問其故, 則此邑鄕會云, 而儒鄕及吏校多會云。 酒肴及餠羹得食, 卽爲發程。 乘夜得達錢塘。 昨夜留院時, 朴光昇出見《東學院》韻軸。 而元韻卽生員韻。 "地秘天慳數畝邱, 靑山屹立水長流。 終成十二先生廟, 樹得風聲萬古悠。" "平生勤仰止, 今夕幸望依。 道學靑山立, 精忠白日輝。 梅翁風感慨, 光廟旨深微。 一載修荒廢, 吾徒有所歸。" 余拙次曰: "東學新祠闢此邱, 前川萬折必東流。 而吾亦是忠賢後, 望拜今朝百感悠。" "有洞名東學, 此間閣廟依。 忠魂同上下, 華制幷光輝。 恨未吾先配, 還慚感意微。 今行餘意在, 拙句詠而歸。" 而贊次曰: "拚壁緣溪訪古邱, 巍然閣廟俯淸溪。 于今一體君臣際, 志士千秋感倍悠。" "是日鷄山洞, 君臣有所依。 西橋血有赤, 東峯月更輝。 忠節貫白日, 魂閣繞紫微。 若配吾先祖, 英靈自越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