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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행록(西行錄) / 1831년(신묘) / 10월(十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4.0001.TXT.0012
12일
○몹시 추웠다. 재회(齋會)에 많은 선비가 차례로 들어왔다. 윤경이찬이 도포를 입고 서원 마당에서 배알하고, 그길로 들어가 봉심하였다. 곧 목은(牧隱, 이색(李穡))을 수위(首位)에 두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ㆍ야은(冶隱, 길재(吉再))ㆍ황보 선생(황보인(皇甫仁))ㆍ 선생(김종서(金宗瑞))ㆍ 선생(정분(鄭苯))ㆍ 선생(성삼문(成三問))ㆍ 선생(박팽년(朴彭年))ㆍ 선생(하위지(河緯地))ㆍ 선생(이개(李塏))ㆍ 선생(유성원(柳誠源))ㆍ 선생(유응부(兪應孚))ㆍ계림 백(鷄林伯) 박 선생(朴先生)주 23)이 배향되어 있었다. 사우(祠宇)는 5량 5칸으로 새로 지어서 단청이 선명하였다. 강당은 4칸만 겨우 세워지고 아직 기와를 올리지 않았다. 동재와 서재가 모두 정갈하였다. 많은 선비가 해가 질 때까지 많이 모여들었다.
주석 23)박 선생(朴先生)
신라 제19대 눌지왕 때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이다.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의 후손으로 눌지왕의 동생을 왜와 고구려에서 구하였다.
十二日
○極寒。 齋주 4)會多士次次入來矣。 與允卿而贊着道袍, 參謁院庭, 仍入奉審。 則以牧隱首位, 圃隱、冶隱、皇甫先生、先生、先生、先生、先生、先生、先生、先生、先生、鷄林伯先生則曲配。 而祠宇, 則五樑五間新造, 丹靑鮮明。 講堂, 則四間纔立, 而尙未盖瓦。 東、西齋, 皆精灑矣。 多士限日暮多會。
주석 4)
저본에는 '齊'로 되어있으나 문맥에 따라 '齋'로 수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