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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행록(西行錄)
  • 1831년(신묘)
  • 10월(十月)
  • 10일(初十日)

서행록(西行錄) / 1831년(신묘) / 10월(十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4.0001.TXT.0010
10일
○《성묘록(省墓錄)》에 이름을 적었다. 밤에 〈성묘〉 시 1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우리 선조의 산소에 성묘를 하면서(省拜吾先墓)
어찌 근본에 보답하는주 18) 마음 없으리(孰無報本心)
때는 서리 이슬 내리는 계절이니(時維霜露節)
추모의 감회를 서글퍼 억누르기 어렵네(追感愴難禁)

이찬이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

듣기로 선조의 산소를 돌보는 계절이라는데(聞得先壠守護節)
산소에 들어서니 후손의 마음 부끄럽기 그지없네(入山多愧後孫心)
사패지의 경계가 칠 리라는 유언이 남아있기에(環封七里遺言在)
조서가 언제쯤 대궐에서 내려졌는지 생각하네(思詔何時降紫禁)

윤경이 차운하여 다음과 같이 읊었다.

우리의 관향은 호산이니(吾人貫鄕是壺山)
어제 저물녘 투숙함은 근본에 보답하는 마음에서네(昨暮投宿報本心)
귀두가 떨어져 나간 옛 유적 남아 있건만(龜頭剝落遺古蹟)
묘소 모양은 새롭게 변해 한탄을 금치 못하겠네(墓貌維新恨不禁)

이에 아침을 먹고 출발하였다. 소로(小路)를 거쳐 대로(大路) 객점에 이르니 심천(深川)에 사는 일가 철(澈)필(泌) 두 사람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한 터에 오늘 이렇게 만나니 기쁘고 행복하였다. 그 산송(山訟)에 대해 듣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분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닭과 술을 내와서 참으로 고마웠다. 출발하여 올정(兀項)에 이르기 전, 내려가는 사람이 길보사교(沙橋)주 19)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기별을 전하였다. 그래서 급히 사교로 갔는데, 길보는 그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말을 재촉하여 전당(錢塘)길보 집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학동(學洞) 소식을 물으니, 재회(齋會)가 20일로 정해졌다고 하여 몹시 기대되었다.
주석 18)근본에 보답하는
원문의 '보본(報本)'은 조상의 은혜를 갚는 것으로 제사를 이른다. 옛날 가을에 서리가 내려 초목의 잎이 모두 떨어지면 조상을 추모하여 제향을 올렸다.
주석 19)사교(沙橋)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교리이다.
初十日
○書名《省墓錄》。 夜間吟《省墓》韻一絶曰: "省拜吾先墓, 孰無報本心。 時維霜露節, 追感愴難禁。" 而贊次曰: "聞得先壠守護節, 入山多愧後孫心。 環封七里遺言在, 思詔何時降紫禁。" 允卿次曰: "吾人貫鄕是壺山, 昨暮投宿報本心。 龜頭剝落遺古蹟, 墓貌維新恨不禁。" 仍朝飯發程。 由小路抵大路酒店, 則深川居宗人兩人來待, 而積年阻面之餘, 今此逢面 忻幸。 聞其山訟事, 憤不勝言。 移時談話。 仍進鷄酒, 可賀可賀。 發程, 未及兀項, 下去之人, 傳吉甫留待沙橋之奇。 故急來沙橋, 則吉甫入去其家矣。 仍促鞭, 得達錢塘吉甫家留宿。 問주 3)學洞消息, 則齊會以十二日爲定, 故苦待苦待矣。
주석 3)
저본에는 '聞'으로 되어있으나 문맥에 따라 '問'으로 수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