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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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행록(西行錄)
  • 1828년(무자)
  • 5월(五月)
  • 15일(十五日)

서행록(西行錄) / 1828년(무자) / 5월(五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3.0002.TXT.0014
15일
상인(喪人, 상중에 있는 사람)이 맡은 일이 아직 해결되지 않는 바람에 일행과 뒤처져 율지, 여옥(汝玉), 자윤과 동행하였다. 아침 먹기 전에 비가 내렸다. 아침을 먹고 난 뒤에 비가 조금 갤 기미가 있어 그냥 짐을 꾸려 출발하였다. 청파(靑坡, 서울 용산구 청파동)영대(永大) 집에 이르러 잠시 쉬고 나서 출발하였다. 강가에 이르니 비가 다시 내렸다. 비를 무릅쓰고 강을 건넜다. 승방(僧房)주 41) 객점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 남태령(南泰嶺)주 42)을 넘어 과천(果川) 고을 앞 주막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30리를 갔다.
주석 41)승방(僧房)
승방평(僧房坪)으로 보인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있던 마을로서, 마을 뒷산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고, 그 절 앞들에 있던 마을인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승방뚤ㆍ심방뜰이라고도 불렀다.
주석 42)남태령(南泰嶺)
서울에서 과천을 지나 수원으로 가던 길로, 삼남대로의 첫 번째 큰고개이다. 이 고개의 원래 이름은 호현(狐峴)인데 정조가 사도세자 묘를 참배하러 가는 도중에 이 고개 이름을 물었을 때 '여우고개'라는 이름을 요망스럽다 여겨 거명하지 못했는데 과천 아전이 "남태령"이라고 대답하였다. 이후 '남태령'으로 개명되었다.
十五日
喪人以所營事未決之致, 仍爲落後, 與聿之汝玉子允作伴。 朝前雨。 朝飯後, 稍有開霽之望, 仍治發。 抵靑坡永大家, 暫憩後, 仍爲發程。 抵江頭, 則雨更作。 冒雨越江。 抵僧房店暫憩。 越南泰嶺, 抵果川邑前酒店留宿。 行三十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