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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행록(西行錄)
  • 1828년(무자)
  • 5월(五月)
  • 5일(初五日)

서행록(西行錄) / 1828년(무자) / 5월(五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3.0002.TXT.0005
5일
○밥을 먹기 전에 율지(聿之)와 함께 정동으로 가서 잠시 얘기를 하고 돌아왔다. 밥을 먹은 뒤 낙동(洛洞)으로 가 참판 이광문(李光文)주 24)을 만나려고 하였다. 그 집 문 앞에서 참판의 아들 진사를 만나서 그의 부친이 집에 계신지 물으니, 오늘 제관(祭官) 일 때문에 수원에 갔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랫집에 들러 참판 이광정(李光貞)을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용동으로 와 잠시 얘기를 나눈 뒤에 율지, 영규(榮奎)와 함께 회동(晦洞)주 25)장성 현감(長城縣監)을 지낸 송운재(宋雲載)주 26) 집으로 갔는데 장성주 27)이 집에 없었다. 다만 그 재종(再從, 6촌)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완북(完北, 전주 북문)의 송민수(宋民洙)의 서간을 전한 뒤에 그길로 나왔다. 송지순(宋持淳) 집을 찾아가 잠시 얘기를 나누고 나왔다. 오는 길에 가랑비를 만나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주석 24)이광문(李光文)
1778~1838. 자는 경박(景博), 호는 소화(小華). 본관은 우봉(牛峰)이다. 증조는 이재(李縡)이며, 부친은 아버지는 호조 참판 이채(李采)이다. 1801년(순조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807년 식년 문과에 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와 예문관검열에 이어, 전라감사 등 내ㆍ외직을 두루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주석 25)회동(晦洞)
서울 중구 충무로4가・인현동1가・인현동2가에 걸쳐 있던 마을이다.
주석 26)송운재(宋雲載)
1760~?. 자는 치회(稺會)이고,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거주지는 서울이다. 1789년 식년시에 합격한 후 장성 부사, 전주 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주석 27)송 장성
성(姓) 뒤에다 직책을 붙이는 방식인데, 지방 현감을 지낸 경우, 그 지명을 붙여 직책을 대신하였으며, 성을 빼고 지명만 써서 표현하기도 하였다.
初五日
○食前, 與聿之貞洞, 暫話而來。 食後, 往洛洞欲見參判光文。 至其門外, 逢參判之子進士, 問其大人有無, 則以今日祭官, 往水原云。 故入下家, 見參判光貞暫話。 來龍洞暫話 後, 與聿之榮奎晦洞長城雲載家, 則長城不在。 只與其再從暫話, 傳宋民洙書簡後, 仍爲出來。 尋宋持淳家, 暫話後出來。 中路逢微雨, 還來主人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