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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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행록(西行錄)
  • 1828년(무자)
  • 4월(戊子)
  • 22일(二十二日)

서행록(西行錄) / 1828년(무자) / 4월(戊子)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3.0001.TXT.0020
22일
○여독(旅毒) 때문에 일찍 출발하지 못했다. 오후에 차동(車洞) 민 석사(閔碩士)에게 갔으나 날이 밝을 무렵 마침 고향으로 떠나서 그 아들만 잠시 만나 보았다. 아래 사랑 주인(舍廊主人)인 치항(致恒)이 마침 있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서소문(西小門)으로 들어갔다. 정동(貞洞)의 석사 이희(李) 집에 갔으나 주인이 부재중이어서 만나지 못하고, 찾아온 율지와 확교(確橋)주 14)에 들어가 진사 유영도(柳榮度)의 집에 방문하였더니, 어서각동(御書閣洞)으로 이사하였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의 집으로 찾아가 달부(達夫)씨의 서간(書簡)을 전달하고 주인집으로 돌아왔다.
주석 14)확교(確橋)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과 신창동(새창골) 북쪽에 있던 다리이다. 1966년 발간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이 고을에 학다리가 있어 마을 이름이 학교동(鶴橋洞)이 되었다고 하며, 일명 확교(確橋)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이 일대를 학다리골이라 하였는데, 성리학자 퇴계 이황이 살았던 곳이라고도 한다.
二十二日
○以路憊不得早發。 午後往車洞 碩士, 被明適作鄕行, 只有其子暫見。 往下舍廊主人致恒果在, 暫話後。 入西小門。 往貞洞 碩士 家, 主人不在故不見, 而來訪與聿之入確橋, 訪進士 榮度家, 則移居于御書閣洞云, 故尋往其家, 傳達夫氏書簡, 還來主人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