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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행록(西行錄)
  • 1828년(무자)
  • 4월(戊子)
  • 20일(二十日)

서행록(西行錄) / 1828년(무자) / 4월(戊子)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3.0001.TXT.0018
20일
○일찍 출발하여 칠원(柒原)에서 아침을 먹고, 오매(烏梅)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중도에서 절구 한 수를 읊었다.

가는 곳마다 풍광은 면면이 처음 보는 곳인데(到這風烟面面初)
밝고 수려한 산수에 인후한 마을주 8) 자리하였네(山明水麗里仁居)
지팡이 끝에 하늘로 솟구치는 솔개의 그림자 날고(杖頭飛影凌天鳶)
다리 아래 물 만난 물고기 맘껏 헤엄치네(橋下浮沈率性魚)

사원(士原)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북두의 번화한 서울은 처음 와보는데(北斗華生面初)
상자가 당시에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네(向子當年卜此居)
객점의 여인 술값 요구할 줄만 아니(店娥但知酒索錢)
호남 길손은 고기 없는 밥상에주 9) 한숨만 쉬네(客惟恨食無魚)

여옥(汝玉)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만나는 이들마다 객사에서 처음 보는데(面目無非逆旅初)
산천 속에 이런 선비도 살고 있었구나(山川有是士夫居)
옆 사람은 무슨 생각에 앞길을 재촉하는 걸까(傍人底意催前路)
아마도 화성의 문 닫힐까 염려하는 것이리(恐或華城鎖鑰魚)

자윤(子胤)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우리 세 사람 이러한 장관 처음 보는데(年維三人壯觀初)
나라의 기내 천리 땅 거처하는 곳도 넓구나(千里邦畿亦廣居)
간간이 꽃과 주막에 술과 고기까지 있으니(往往花壚兼酒肉)
북쪽에서 어찌 남방의 물고기를 부러워하리(北來何羨南方魚)

대황교(大皇橋)에서 잠시 쉬었다가 이어 출발하였다. 또 절구 한 수를 읊었다.

버들이 어둠 속으로 묻히려는데 서쪽 하늘 붉게 타오르고(柳欲藏陰烈洞西)
소나무는 폭포소리 들으며 맑은 시내에 드리우네(松能聽瀑倒淸溪)
석양이 질 무렵 화성에 다다르니(夕陽歸路華城到)
지주 같은 푸른 산 먼 듯 가까운 듯하네(一柱靑山遠近齊)

사원(士元)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서쪽 가는 길에 왕성이 어디에 있는가 묻노라(王城何在問路西)
모습을 바꾼 산하에 굽이굽이 시냇물 흐르네(換面山河曲曲溪)
은택을 입은 수양버들 좌우로 휘늘어져 있고(被恩垂柳左右分)
찌는 더위에 고달픈 길손들 앞뒤로 나란하네(惱熱行客先後齊)

율지(聿之)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지팡이 짚고 다리에 오니 해는 이미 저물어(杖策橋邊日已西)
나는 갓끈을 씻으려 맑은 시내를 건너네(我纓欲濯渡淸溪)
그 속의 고운 풍광 어떠한가 묻노라면(箇中光景問如何)
양 언덕에 버들과 느티나무 일색이라오(兩岸柳槐一色齊)

여옥(汝玉)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궁중 버들 그늘은 동쪽으로 해 그림자는 서쪽으로(御柳陰東日影西)
산악에 조회주 10)하니 시내에 다 함께 모였여라(朝宗山嶽會同溪)
기자 현인 이후 명이의 나라주 11)(箕賢以後明夷國)
해내의 밥 짓는 연기처럼 아홉 점의 운무인 듯하네주 12)(環海人烟九點齊)

사윤(士胤)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산은 동쪽으로 그늘지고 해는 서쪽으로 지니(山自東陰日自西)
꽃을 찾아 버들을 따라 맑은 시내를 지나네(訪花隨柳過淸溪)
말을 타다 걷다 하는데 마치 하늘 길 가는 듯(或騎或步如天道)
다만 흠인 건 인생과 같지 않는 것일 뿐이라(只欠人生不與齊)

내원(乃元)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화성 길에 들어서니 날이 이미 저물어(路入華城日已西)
파릇파릇한 버들가지 대황 시냇가에 늘어졌네(靑靑楊柳大皇溪)
고향산천 점차 멀어지고 왕성이 가까우니(家山漸遠王城近)
동남의 연나라 조나라인 듯하여 크게 웃어보네(高笑東南燕趙齊)

저녁에 화성 북문 밖에 이르러 묵었다. 80리를 갔다. 여옥이 절구 한 수를 읊었다.

누대와 성곽의 반은 도성에 있구나(樓臺城郭半華)
겹겹이 연달아 몇 만의 집들이 즐비하네(匝匝連連幾萬家)
행궁주 13)이 여기에 머물렀는지 알고 싶었는데(欲識行宮留在此)
휘휘 늘어진 수양버들 길 어긋남이 없구나(依依楊柳路無差)
주석 8)인후한 마을
원문의 '이인(里仁)'은 인후(仁厚)한 풍속이 있는 마을로, 《논어》 〈이인(里仁)〉에 공자가 "이인이 아름다우니, 가려서 어진 곳에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 할 수 있으리오.[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라고 하였다.
주석 9)밥상엔……없으니
전국 시대 제(齊)나라 풍환(馮驩)이 맹상군(孟嘗君)의 식객(食客)이 되었을 때, 밥상에 고기반찬이 없자 장검의 칼자루〔長鋏〕를 두드리면서 "장검이여 돌아가자, 밥상에 고기가 없으니.[長鋏歸來乎, 食無魚.]"라고 노래했다는 고사가 있다. 《戰國策 齊策4》
주석 10)조회
원문의 '조종(朝宗)'은 고례(古禮)에 제후가 천자를 봄에 찾아뵙는 것을 조(朝)라 하고, 가을에 찾아뵙는 것을 종(宗)이라 하며, 《시경》 소아(小雅) 면수(沔水)에, "넘실대며 흐르는 저 물이여, 바다에 조종하도다.[沔彼流水 朝宗于海]" 하였다.
주석 11)기자……나라
'명이(明夷)'는 동방의 일출지역인 한반도를 지칭한다. 기자(箕子)가, 은(殷)나라가 무도(無道)할 때 밝음을 감추어 화를 면하였고, 마침내 동방으로 와서 도를 전하였고 한다. 《주역》의 〈명이괘(明夷卦) 육오(六五)〉에 "육오는 기자가 밝음을 감춤이니, 곧게 지킴이 이롭다.[六五 箕子之明夷 利貞]"라고 하였는데, 이는 기자가 조선에 이주한 사실을 기록한 가장 이른 문헌 자료이다. 《史記 卷38 宋微子世家》
주석 12)아홉 점 운무인 듯하네
높은 하늘 위에서 바라보이는 세상이 아홉 점의 운무(雲霧)처럼 작게 보인다는 말이다. 당나라 이하(李賀)의 시 〈몽천(夢天)〉에 "중국을 멀리 바라보니 아홉 점의 연기 같고, 한 웅덩이 바닷물도 한 잔 물을 쏟아부은 듯하네.[遙望齊州九點煙, 一泓海水杯中瀉.]"라는 구절이 있다.
주석 13)행궁(行宮)
임금이 대궐을 떠나서 머무는 곳으로, 행재조(行在所)와 같다.
二十日
○早發抵柒原朝飯, 抵烏梅中火。 路中吟一絶曰: "到這風烟面面初, 山明水麗里仁居。 杖頭飛影凌天鳶, 橋下浮沈率性魚。" 士原次曰: "北斗華生面初, 何子當年卜此居。 店娥但知酒索錢, 湖客惟恨食無魚。" 汝玉次曰: "面目無非逆旅初, 山川有是士夫居。 傍人底意催前路, 恐或華城鎖鑰魚。" 子胤次曰: "年維三人壯觀初, 千里邦畿亦廣居。 往往花壚兼酒肉, 北來何羨南方魚。" 抵大皇橋, 小憩後仍發。 又吟一絶曰: "柳欲藏陰烈洞西, 松能聽瀑倒淸溪。 夕陽歸路華城到, 一柱靑山遠近齊。" 士元次曰: "王城何在問路西, 換面山河曲曲溪。 被恩垂柳左右分, 惱熱行客先後齊。" 聿之次曰: "杖策橋邊日已西, 我纓欲濯渡淸溪。 箇中光景問如何, 兩岸柳槐一色齊。" 汝玉次曰: "御柳陰東日影西, 朝宗山嶽會同溪。 箕賢以後明夷國, 環海人烟九點齊。" 士胤次曰: "山自東陰日自西, 訪花隨柳過淸溪。 或騎或步如天道, 只欠人生不與齊。" 乃元次曰: "路入華城日已西, 靑靑楊柳大皇溪。 家山漸遠王城近, 高笑東南燕趙齊。" 暮抵華城北門外留宿。 行八十里。 汝玉吟一絶曰: "樓臺城郭半華, 匝匝連連幾萬家。 欲識行宮留在此, 依依楊柳路無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