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역/표점
- 국역
- 서행록(西行錄)
- 1828년(무자)
- 4월(戊子)
- 12일(十二日)
서행록(西行錄) / 1828년(무자) / 4월(戊子)
12일
○일찍 출발하여 고개 아래에 이르러 아침을 먹었다. 전석치(磚石峙)를 넘어 절구 한 수를 읊었다.
푸른 벼랑의 흰 바위 가장 높은 봉우리에(蒼崖白石最高峯)
그대에게 묻노니 어떤 승려가 소나무를 심었는가(問爾何僧手植松)
방성의 웅장한 형세를 굽어보니(俯瞰方城雄壯勢)
범이 꿇어앉은 듯 용이 웅크린 듯하여라(況如蹲虎又盤龍)
율지(聿之)가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전석치 봉우리 백보 오르고 또 오르니(百步登登磚石峯)
보이는 건 면면이 이어지는 높고 낮은 소나무뿐(但看面面高低松)
그대에게 청하노니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일랑 꾸지 말게(請君莫作還鄕夢)
마음속에 경영한 구상대로주 5) 계룡으로 향하세나(意匠經營向鷄龍)
여옥(汝玉)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아침햇살 속에 천천히 걸어 저 언덕에 오르니(倦步朝陽陟彼岸)
우뚝 솟은 오래된 바위 길고 짧은 소나무 있네(崢巆老石短長松)
살펴보니 곤륜산 줄기임을 알겠거니(看來認是崐崘脈)
굽이굽이마다 산의 정령 용호를 달리게 하네(屈曲精神走虎龍)
자윤(子允)이 다음과 같이 차운하였다.
힘겹게 지팡이 잡고 저 언덕에 오르니(强把鳩笻登彼岸)
푸른 회화나무 그늘 가에 소나무도 푸르러라(綠槐陰畔又靑松)
풍광은 길가는 사람 발길을 멈추게 하니(風光能使行人住)
앉아서 뭇 산에 웅크린 용들을 바라보노라(坐見群山某某龍)
오수(獒樹)에 이르러 요기하고 각각 길을 나섰다. 나는 국평(菊坪) 송기렴(宋基濂)의 집에 들어갔으나, 하서가 출타 중이어서 만나지 못하고, 그 아들 송전(宋椣)만 만나보고 출발하였다. 야당(野塘)의 송필동(宋必東) 집에 들어가서 그 외아들 상(喪) 당한 것을 조문하였다. 또 송계천(宋啓天)을 조문한 다음 마을 앞 정자(亭子) 아래로 내려오니 하서가 마침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인이 한사코 만류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머무르기로 하고, 주막(酒幕)으로 나와서 주점(酒店)에 두 벗을 머물게 한 다음, 율지와 야당으로 들어가 송연영(宋連英)의 집에 머물렀다. 오늘 밤은 선고(先考)의 기일(忌日)이다. 지난해에는 서울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기일에 제사를 지내지 못했었는데, 올해도 이와 같은 상황이니 슬픈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 주석 5)마음속에 경영한 구상대로
- 원문의 '의장(意匠)'은 고안(考案)을 실제로 응용하는 일을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에 "경영하는 가운데 의장이 참담하다.[意匠慘淡經營中]"라고 하였다.
十二日
○早發抵嶺下店朝飯, 越磚石峙, 吟一絶曰: "蒼崖白石最高峯, 問爾何僧手植松。 俯暇方城雄壯勢, 況如蹲虎又盤龍。" 聿之次曰: "百步登登磚石峯, 伹看面面高低松。 請君莫作還鄕夢, 意匠經營向鷄龍。" 汝玉次曰: "倦步朝陽陟彼岸, 崢巆老石短長松。 看來認是崐崘脈, 屈曲精神走虎龍。" 子允次曰: "强把鳩笻登彼岸, 綠槐陰畔又靑松。 風光能使行人住, 坐見群山某某龍。" 抵獒樹療飢, 各爲登程。 余則入菊坪 宋基濂家, 則夏瑞出他不見, 只見其子椣而發。 入野塘 宋必東家, 吊遭其獨子喪。 又吊宋啓天, 下來村前亭下, 則夏瑞適來, 仍與相話。 以主人之堅挽, 仍留爲計之, 出來酒幕, 留兩友於酒店, 與聿之入野塘, 留宋連英家。 今夜則先考忌日也, 而前年以京行之致, 不得將事於忌日, 今年又如此, 心懷之愴然, 不可言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