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역/표점
- 국역
- 서행록(西行錄)
- 1823년(계미)
- 9월(九月)
- 18일(十八日)
서행록(西行錄) / 1823년(계미) / 9월(九月)
18일
아침을 먹고 9월 제술시험이 시(詩)라는 소식을 들었다. 느즈막이 우 참봉(禹參奉)의 집에 들어갔으나, 정 진사는 일찍 밥을 먹고 떠났다. 그길로 성균관으로 갔더니 명륜당(明倫堂) 안팎이 모두 유생들로 가득차서 동접들을 만날 수가 없어 배회하고 있을 때에 보성(寶城)의 윤 석사(尹碩士)가 정여흠(丁汝欠)과 공서(公瑞)가 앉아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가서 만났을 때, 마침 소낙비가 쏟아져 자리를 옮기려고 나와서 대문(大門) 사이에 있는 한 사람 옆에 앉았는데, 그 구차한 상황을 형언할 수가 없었다. 차문(借文, 남을 시켜 시문을 짓게 함)하여 써서 보냈지만, 시험관주 73)이 들어가는 바람에 납번(納番)할 수가 없었다. 저물녘에 주인집으로 나왔다
- 주석 73)시험관
- 저본의 '識'는 문맥상 '試'의 오기로 보고 고쳐서 번역하였다.
十八日
朝飯聞九月製之詩。 晩後入去禹參奉家, 則丁進士早食去矣。 仍往成均館, 則明倫堂內外皆滿, 不得相逢同接, 徘徊之際, 寶城 尹碩士指示汝欠與公瑞坐處。 往見之際, 適驟雨, 移接出來, 坐一者之大門間者, 其苟且之狀, 不可形言。 借文書送矣, 以試官之入去, 不得納番。 乘暮出來主人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