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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행록(西行錄)
  • 1823년(계미)
  • 4월(四月)
  • 신안서원장51)(新安書院狀)

서행록(西行錄) / 1823년(계미) / 4월(四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1.0002.TXT.0031
신안서원장주 51)
전라도 유생 유학(幼學) 최관현(崔寬賢) 등이 삼가 목욕재계하고 재배 후에 대종백(大宗閣, 예조판서를 달리 일컫는 말) 합하(閤下)께 글을 올립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임실현(任實縣) 신안사(新安祠)는 바로 주 부자(朱夫子)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제사를 지낸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향사(鄕祠)주 52)와 사액(賜額)주 53)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선후의 다름이 있지만, 현인을 높이 받들고 도를 사모하는 정성만은 같습니다. 이미 현인을 높이 받들고 도를 사모함은 조정의 고관(高官)과 사림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액(賜額)을 요청하는 문제는 일단 앞날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지만 숭봉(崇奉)하는 일의 체모와 거행하는 의절(儀節) 같은 경우는 원래 피차의 구별이 없습니다. 더구나 주부자(朱夫子)의 사우(祠宇)는 우리나라의 제현과 더욱 달라서 천성(千聖)의 적통(嫡統)이 이에 빛나고 만세의 사도(師道)가 매우 엄하니, 특히나 십분 더 공경을 다하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이번 신안서원의 사례(事例)는 전부터 함평(咸平)의 자양사(紫陽祠)주 54)와 대략 엇비슷하므로 제반 의문(儀文, 의례에 관한 법도)을 견주어 동일하게 하였습니다. 봄가을의 제수(祭需)는 이미 본도(本道)의 순영(巡營)에서 많은 선비들의 정문(呈文)주 55)으로 인하여 본손(本孫)에게 관문(關文)주 56)을 보내 신칙하였는데, 자양사(紫陽祠)의 예에 의거하여 관(官)에서 제물을 갖추어 보내고, 원생(院生, 서원의 생도)과 보노(保奴)주 57)의 무리도 조치한 바가 있었습니다. 이는 모두 영읍(營邑)에서 정도(正道)를 지키는 성대한 뜻인데, 본원의 모양새가 조금 이루어져 규모와 제향 의례주 58)에 정성과 공경을 다하였으니, 삼가 사문(斯文)의 다행스러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삼가 생각건대, 팔도의 사원(祠院)은 모두 예조 관할입니다. 그리고 예조에 《사원록(祠院錄)》이 있으니 이미 사액(賜額)하고 사액하지 않은 것을 막론하고 각각 부책(簿冊, 장부)이 있고, 그 중요한 도원(道院)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은 돌보고 보호하는 것이 각별하니, 대개 또한 우리나라가 유학을 중시하고 도를 숭상하는 상전(常典)을 우러러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이에 감히 우러러 호소하노니, 삼가 바라건대 공의(公議)를 굽어 살피시어 임실(任實)의 신안사(新安祠)를 본조(本曹)의 《사원록》에 실어 일의 체모를 중히 하고 사림을 빛내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임오년(1822, 순조22) 10월.
주석 51)신안서원(新安書院)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리에 있는 서원. 1588년(선조21)에 한호겸(韓好謙)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제자가 신안사(新安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669년(현종10)에 중건하였으며, 1788년(정조12)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송경원(宋慶元)·한필성(韓必聖)·한명유(韓鳴愈)·강백진(康伯珍)·송시태(宋時態)를 추가 배향(配享)하였다. 1819년(순조19)에는 함평의 자양서원(紫陽書院)에 안치된 주희(朱熹)의 영정을 이곳으로 옮겨와 주벽(主壁)으로 봉안함과 동시에 '신안(新安)'이라고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주석 52)향사(鄕祠)
이름난 학자, 충신 등의 공적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집을 세우고 제사지내는 사당(祠堂)을 말한다. 조선 중기에 학문의 권장을 위하여 지방에 서원과 정사(精舍)가 생겨나고 자기 조상들을 위하여 사우(祠宇)가 많이 건립될 때 생겨난 특징 있는 주민들의 사당이다.
주석 53)사액(賜額)
임금이 사당(祠堂)이나 서원(書院), 누문(樓門)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扁額)을 내리던 일이다.
주석 54)자양사(紫陽祠)
전남 함평에 있었던 사당으로, 주희(朱熹)를 향사(享祀)한 사당이다. 1783년에는 송시열(宋時烈)의 영정도 봉안했었다.
주석 55)정문(呈文)
백성이 관청에, 또는 하급 기관에서 상급 기관에 제출하는 문서를 말한다.
주석 56)관문(關文)
원문의 '관칙(關飭)'은 관문(關文)으로, 상급 관아에서 하급 관아에 보내는 공문(公文)이다. 감결(甘結), 예칙(禮飭)이라고도 한다.
주석 57)보노(保奴)
조선 시대 병영이나 관아 또는 서원 등에 딸리어 잡역에 종사하던 하례(下隷)를 말한다.
주석 58)제향의 의례
원문의 '향의(享儀)'는 제향(祭享) 후 음식을 대접하는 의식을 말한다.
新安書院狀
全羅道儒生幼學崔寬賢等, 謹齋沐再拜, 上書于大宗伯閤下。 伏以任實縣 新安祠, 卽朱夫子影幀奉安之所, 而俎豆之享之有年矣。 鄕祠與賜額, 有公私先後之別, 而其爲尊賢慕道之誠則一也。 旣有尊賢慕道, 則縉紳與士林亦一也。 是以請額一款, 不得不姑俟來頭, 而至若崇奉之事體, 擧行之儀節, 元無彼此之區別矣。 況朱夫子祠宇, 尤異於我東諸賢, 千聖之嫡統斯光, 萬世之師道至嚴, 尤當十分致敬, 不容疎忽處也。 今此新安事例, 自前與咸平紫陽祠, 略相髣髴, 故諸般儀文, 比而同之。 春秋祭需, 已自本道巡營, 因多士呈文, 關飭本孫, 依紫陽祠例, 自官備送, 而院生保奴之屬, 亦有所措置者, 是皆營邑衛道之盛意, 而院樣稍成, 規模享儀, 庶盡誠敬, 竊不勝斯文之幸。 第伏念八路祠院, 俱是春曹所管, 而春曹有《祠院錄》, 無論已賜額未賜額, 各有簿冊, 其重道院所重, 則顧護自別, 盖亦仰體我國家重儒崇道之常典也。 生等玆敢仰籲, 伏願俯察公議, 以任實新安祠, 載入於本曹《祠院錄》, 以重事面, 以光士林, 幸甚。
壬午十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