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 국역/표점
  • 국역
  • 서행록(西行錄)
  • 1823년(계미)
  • 4월(四月)
  • 23일(二十三日)

서행록(西行錄) / 1823년(계미) / 4월(四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1.0002.TXT.0023
23일
아침을 먹고 늦게 길을 떠나 광암(廣岩) 주막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자생(者省) 도산(道山)주 45)에 들어갈 때 김이준(金履俊) 부자와 김계한(金啓漢)이 뒤쫓아 와서 만났는데, 이들은 말이 병이 나서 여산(礪山) 땅에서 뒤처졌던 사람들이었다. 적막한 가운데 이렇게 동향(同鄕) 사람을 만났으니 그 기쁘고 다행스러운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이어 그의 말에 옷 보따리를 맡기고 곡성(谷城) 읍내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도산(道山)의 족질(族姪)인 필흥(弼興)의 집에 들렀으나, 필흥(弼興)이 마침 부재중이라 아이를 보내서 불러 오게 했다. 먼저 책자가 왔는가를 물었더니, 즉시 왔다고 하니 다행스러웠다. 책자는 올라갈 때 이 집안에 전달해 달라고 주주막(周酒幕)에 부탁한 것이다. 전달되지 않았으리라주 46) 생각했는데, 마침 왔다고 하니 몇 마디 말을 한 뒤에 곧바로 출발하여 중진원(中津院)주 47)을 건넜다. 저녁에 곡성 읍내에 도착해서 동행을 만나 함께 묵었다. 70리를 갔다.
주석 45)자생(者省) 도산(道山)
자생과 도산은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근처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주석 46)전달되지 않았으리라
원문의 '부침(浮沈)'은 인편으로 보내 편지가 전해지지 않은 것을 말한다. 진(晉)나라 은선(殷羨)이 예장군(豫章郡)의 태수로 있다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즈음에 사람들이 1백여 통의 편지를 주면서 경성에 전달해 줄 것을 청하였는데, 석두(石頭)까지 와서 모조리 물속에 던져 놓고는 "가라앉을 놈은 가라앉고 떠오를 놈은 떠올라라. 은홍교가 우편배달부 노릇을 할 수는 없다.[沈者自沈, 浮者自浮, 殷洪喬不能作致書郵.]"라고 말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世說新語 任誕》
주석 47)중진원(中津院)
중진(中津)은 순자진(鶉子津)으로, 곡성군 북쪽으로 10리 되는 남원(南原) 경계의 대로(大路)에 있었고, 순자원(鶉子院)은 순자진(鶉子津) 언덕 위에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섬진강을 건널 수 있게 설치된 중진원교(中津院橋)가 있었다.
二十三日
仍朝飯晩後發程, 抵廣岩酒幕午飯。 入者省 道山之際, 金履俊父子及金啓漢追來相逢, 此則馬病落後於礪山地者也。 寂寥之中, 逢此同鄕之人, 其喜幸可斗。 仍付衣褓於其馬, 約以谷城邑內相逢。 入道山族姪弼興家, 則弼興適不在, 送兒請來。 先問冊子來云, 則卽來云幸幸。 冊子上去時, 以此家傳致之意, 付託於周酒幕也。 意謂浮沈矣, 果來云, 數語後, 卽發渡中津院。 暮抵谷城邑內, 逢同行同留宿。 行七十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