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 국역/표점
  • 국역
  • 서행록(西行錄)
  • 1823년(계미)
  • 4월(四月)
  • 10일(初十日)

서행록(西行錄) / 1823년(계미) / 4월(四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1.0002.TXT.0010
10일
바로 정시(庭試)를 보는 날이다. 닭이 울 때 아침을 먹고 동접(同接)들과 월근문(月覲門)으로 들어갔다. 한참 뒤에 동이 트자 전좌(殿座)주 14)하는 곳과 과장(科場)을 설치한 길을 바라보니, 모두 백포장(白布帳)으로 둘러놓았다. 처음에는 왕이 친림한다는 말이 있었으나 결국에는 옥련(玉輦, 임금의 수레)만 나왔는데 군병과 기치(旗幟)와 창검(槍劍)은 왕이 거둥할 때와 다름이 없으니 평생에 한번 보는 장관(壯觀)이었다.
묘시(卯時)에 출제(出題)하였으니, 바로 '흠명문사안안(欽明文思安安)'주 15)이었다. 문욱 동접들과 이어 초안을 작성하였으나, 납번(納番, 답안지 제출)할 때에 혹 선비들이 밟혀 죽을까 하는 근심이 있어 마음이 몹시 두려웠다. 나 또한 납번하는 차례에 직접 들고 갔으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함께 온 동접 중에 소년을 시켜 납번하게 하였다. 낙안(樂安) 형님의 정초(正草)는 내가 가서 제출했는데, 그때에는 조금 덜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주인집으로 와서 잠시 쉰 뒤에 문욱을 기다리는데 끝내 나오지 않으므로 먼저 나와 정 진사(丁進士)의 주인집으로 가서 잠시 쉬다가 경주인 집으로 돌아왔다. 김계한(金啓漢)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같은 고향 사람들이 모두 모레 출발하겠다고 말하였다.
주석 14)전좌(殿座)
과거를 시행하거나 하례(賀禮)를 받는 것처럼 공식 행사가 있을 때 임금이 그곳에 마련된 어좌(御座)에 나와 앉는 것을 말한다.
주석 15)흠명문사안안(欽明文思安安)
《서경》 〈우서(虞書) 요전(堯典)〉에 나오는 말로, 요 임금의 덕을 찬양하면서 "공경하고 밝고 빛나고 사려가 깊은 것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왔다.[欽明文思安安]"라고 하였다. 일부러 힘쓰지 않아도 그 덕성(德性)의 아름다움이 다 자연스러운 속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初十日
卽庭試日也。 鷄鳴時仍朝飯, 與同接入月覲門。 良久開東, 望見殿座處與設場之道, 則皆以周設, 而初有親臨之言矣。 末乃只出玉輦, 而軍兵與旗幟槍劍, 無異擧動時也, 平生一壯觀也。 卯時出題, 卽'欽明文思安安'。 與文旭同接, 仍爲構草, 而納番之時, 或有士子踏死之患, 心甚悚然。 余亦納番次躬往矣, 不得前進, 來接中使少年納番。 樂安兄主正草, 則余往納之, 其時則稍歇故也。 卽爲出來主人家, 暫憩後待文旭, 則終不出來, 故先爲出來進士主人暫憩, 來入京主人家。 與金啓漢暫話, 而同鄕之人, 皆以再明日發程爲言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