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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1년(신사)
  • 12월(十二月)
  • 3일(初三日)

서행록(西行錄) / 1821년(신사) / 12월(十二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10.0007.TXT.0003
3일
다시 들어가 알현하니 며칠 머무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기에 옷깃을 여미고서, "어찌 감히 분부대로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격몽요결(擊蒙要訣)》을 가지고 앞으로 가서 배움을 청하였더니, 장석(丈席)이 말씀하시기를, "옛날에 중봉(重峯) 조선생(趙先生)주 57)이 항상 《격몽요결(擊蒙要訣)》과 관솔주 58)을 가지고 다니면서 길을 가던 중이라도 만약 배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관솔로 불을 밝혀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었네. 내가 비록 남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은 아니지만 어찌 한 마디 가르침을 아끼겠는가?"라고 하셨다. 이어 교수(敎授)가 되어 은미한 말과 심오한 뜻으로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통하게 하셨다. 잠깐이나마 가르침을 받아도 마치 봄바람 속에 있는 듯한데, 더구나 오랫동안 직접 가르침을 받은 이들은 어떠하겠는가. 행랑으로 나와 세 군자와 함께 머물렀다.
주석 57)중봉(重峰) 조선생(趙先生)
조헌(趙憲, 1544~1592)으로,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 또는 후율(後栗)이며,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금산전투(錦山戰鬪) 때 전사하였다.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에게 배웠고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지지하여 이이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켰다. 저서에 《중봉집》이 있다.
주석 58)관솔
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로, 불이 잘 붙으므로 예전에는 여기에 불을 붙여 등불 대신 이용하였다.
初三日
更爲入謁, 則以數日留連爲可云, 斂袵而對曰: "敢不依敎?" 而持擊蒙要訣, 進前請業, 則丈席曰: "昔重峯 先生, 常載要訣與明松而行, 雖行路之中, 若有請業之人, 燃其明松, 敎之不倦, 則余雖無爲人之師, 何靳一敎乎?" 仍爲敎授, 微辭奧旨, 令人心神, 豁然貫通。 暫時薰陶, 如在春風中, 而況於親炙之久者乎? 出來廊底, 與三君子同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