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역/표점
- 국역
- 서행록(西行錄)
- 1794년(갑인)
- 4월(四月)
- 3일(初三日)
서행록(西行錄) / 1794년(갑인) / 4월(四月)
3일
욱여(旭汝) 삼종형제(三從兄弟), 건(健)·순(順) 형제와 뇌암(磊巖)에 가서 회포를 풀었는데, 여러 젊은이들이 오언 율시를 먼저 지었으므로 나도 갑작스럽게 율시를 지어냈다.
걸어서 서문 밖으로 나오니(步出西門外)
시내 따라 그윽한 경치 펼쳐지네(沿溪境始幽)
꽃을 보다가 늙은 이 몸 부끄럽고(看花羞老漢)
애써 시구 찾다가 시를 양보하였네(覓句讓詩流)
지팡이 짚고 산기슭을 따라서(携杖依山脚)
갓끈을 씻으려 물가에 앉았네(濯纓坐水頭)
내 나이 반백 년이 지났으니(吾年經半百)
즐거운 일은 유람하는 것이네(樂事是傲遊)
또 다음과 같다.
북쪽 산기슭에 방초의 향내 뜸해지니(北麓芳菲歇)
서쪽 시내에 즐거운 일 아득하구나(西溪樂事幽)
앉았노라니 산이 더욱 푸르르고(坐來山愈碧)
가는 곳마다 물이 다투어 흐르네(行處水爭流)
시를 짓노라니 저마다 푸른 눈빛이오주 47)(覓句惟靑眼)
술동이를 드니 모두 검은 머리주 48)로세(携樽摠黑頭)
명승지에서 맛보는 끝없는 흥취(名區無限興)
우리들의 이런 유람에 있어라(吾輩有斯遊)
송로(松老)
또 다음과 같다.
꽃이 떨어지자 소나무 숲은 무성해지고(花落多松樹)
명승지는 한적하고 고요하기만 하네(名區閑且幽)
재잘재잘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활기차고(嚶嚶啼鳥活)
굽이굽이 시냇물은 어지러이 흘러가네(曲曲亂溪流)
푸른 방초 둑 위에 파릇파릇 돋아나고(綠草芳堤上)
취하여 부르는 노래 언덕 위에서 끊어지네(酣歌斷岸頭)
새로 시를 지어 벽면에 써 붙이니(新詩題壁面)
이처럼 멋진 유람을 누가 알겠는가(誰識是眞遊)
임계(林溪)
또 다음과 같다.
높다란 층층바위 열 길이나 솟아있고(層巖十丈下)
그윽한 솔 그늘에 한가로이 앉아 있네(閑坐松陰幽)
예쁜 새들은 숲속에서 시끄럽게 울어대고(好鳥林中聒)
맑은 시냇물은 골짜기 안으로 흐르네(淸溪洞裡流)
저녁노을은 벼랑에 붉게 돋아나는데(夕陽生壁面)
봄빛은 산꼭대기에서 다해 가는구나(春色盡山頭)
가지고 온 술병에 남은 술이 있으니(携酒有餘酒)
시를 읊조리며 온종일 노닐어 보세(吟詩永日遊)
취암(醉菴)
- 주석 47)푸른 눈빛이오
- 원문의 '청안(靑眼)'은 반가운 눈길로, 뜻이 맞는 친구와의 만남을 뜻한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완적(阮籍)이 속된 사람을 만나면 백안(白眼) 즉 흰 눈자위를 드러내어 경멸하는 뜻을 보이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을 만나면 청안 즉 검은 눈동자로 대하여 반가운 뜻을 드러낸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簡傲》
- 주석 48)검은 머리
- 원문의 '흑두(黑頭)'는 검은 머리란 뜻으로, 곧 젊은 나이를 말한다.
初三日
與旭汝三從兄弟及健、順, 往磊巖暢懷, 而諸年少, 出五律先成, 故猝構曰: "步出西門外, 沿溪境始幽。 看花羞老漢, 覓句讓詩流。 携杖依山脚, 濯纓坐水頭。 吾年經半百, 樂輩是傲遊。" 又 "北麓芳菲歇, 西溪樂事幽。 坐來山愈碧, 行處水爭流。 覓句惟靑眼, 携樽摠黑頭。 名區無限興, 吾輩有斯遊。" 松老。 又 "花落多松樹, 名區閑且幽。 嚶嚶啼鳥活, 曲曲亂溪流。 緣草芳堤上, 酣歌斷岸頭。 新詩題壁面, 誰識是眞遊。" 林溪。 又, "層巖十丈下, 閑坐松陰幽。 好鳥林中聒, 淸溪洞裡流。 夕陽生壁面, 春色盡山頭。 携酒有餘酒, 吟詩永日遊。" 醉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