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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행록(西行錄)
  • 1794년(갑인)
  • 정월(正月)
  • 29일(卄九日)

서행록(西行錄) / 1794년(갑인) / 정월(正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03.0001.TXT.0014
29일
꼭두새벽에 길을 나서 부내(府內)에 이르러 아침을 먹고 삼례(參禮)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우연히 절구 한 수를 읊어 용성(龍城)의 석사(碩士) 장계회(張啓晦)에게 주었는데, 대개 오수(獒樹)에서부터 동행하였기 때문이다.

객사에서 만난 백면서생(逆旅相逢白面郞)
용성 걸사의 성씨 당당도 하여라(龍城杰士姓堂堂)
천 리 길 동행하며 나랏길 구경하였는데(千里同行觀國路)
그대는 호두주 3)의 향기 지닌 사람이구려(高名抉許虎頭香)

만마동(萬馬洞)주 4)에서 율시 한 수를 읊었다.

만마를 어느 해에 지나갔던가(萬馬何年過)
야윈 말 타고 이날을 증명해 보네(羸驂此日證)
깊은 골짜기라 하늘이 작아 보이고(洞深天爲小)
개간된 산이라 길이 평평하네(山闢路因平)
촌락은 벼랑 따라 늘어져 있고(村落緣崖仄)
사천은 눈으로 뒤덮여 더욱 맑네(沙川助雪淸)
고인 냇물에 산 기운은 빼어나니(水渟山氣秀)
통하는 곳에 완영이 자리하였네(通處是完營)
주석 3)호두
호두(虎頭)는 당당하고 위엄이 있는 귀인의 상을 말한다. 후한(後漢) 때 관상 보는 사람이 반초(班超)를 보고 말하기를 "그대는 제비의 턱이고 범의 머리인지라 날아서 고기를 먹을 것이니, 이는 만리후에 봉해질 상이다.[燕頷虎頭, 飛而食肉, 此萬里侯相也.]"라고 하였는데, 그 후에 과연 그 말대로 서역(西域)을 평정하고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주석 4)만마동(萬馬洞)
현재 전북 완주군 남관으로, 남원에서 전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만마관(萬馬關)이 있어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로 인하여 전주천을 만마탄(萬馬灘)이라고도 한다.
卄九日
曉頭登程, 至府內朝飯, 至參禮留宿。 是日偶吟一絶, 贈龍城 碩士 啓晦, 盖自獒樹同行故也。 "逆旅相逢白面郞, 龍城杰士姓堂堂。 千里同行觀國路, 高名抉許虎頭香。" 於萬馬洞吟一律曰, "萬馬何年過? 羸驂此日証。 洞深天爲小, 山闢路因平。 村落緣崖仄, 沙川助雪淸。 水渟山氣秀, 通處是完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