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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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행록(西行錄)
  • 1792년(임자)
  • 10월(十月)
  • 10일(初十日)

서행록(西行錄) / 1792년(임자) / 10월(十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01.0002.TXT.0010
10일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다. 소교점(燒橋店)·안성발소(安城撥所)·차령(車嶺)·세교(細橋)·병풍암(屛風巖)을 지나 서흥(瑞興, 황해도 중북부에 있는 군) 읍내까지 50리를 갔다.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이며 그 평원의 넓은 들판을 살펴보니 논은 한 뙈기도 없고 온통 밭이었다. 남중(南中, 호남) 사람의 소견으로 말하자면, 만들어 놓은 논이 곳곳에 있긴 하지만 애초에 수답(水畓)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그 밭에서 나오는 것이 논보다 낫기 때문일 것이다.
서흥읍은 민가가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경기(京畿)에서부터 지나온 고을은 송도(松都)를 빼고는 작은 고을이 아닌 곳이 없었는데, 이 서흥읍은 매우 큰 고을이었다. 북쪽에 있는 산성은 그 둘레와 터가 평산(平山)의 태백성(太白城)에 비해서는 자못 웅장했으나, 송도(松都)의 대흥산성(大興山城)주 47)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이름은 태양(太陽)이라고 했다. 말에게 꼴을 먹인 뒤에 수월점(水越店)·차령(車嶺)·서산발소(西山撥所)·흥수원(興水院)·검수(黔數) 등 40리를 가서 묵었다. 이날 90리를 갔다.
대개 산천의 기세가 장파(長坡)에 크게 미치지 못하였는데, 혹 산세(山勢)가 좌우로 서로 이어지고 둘러쌓여 물이 흐르는 곳이 없었으니 매우 괴이하다. 그 가운데 움푹 파인 구멍이 있어 빗물이 쏟아지면 반드시 그 구멍으로 새니 괴이하고도 괴이하였다.
주석 47)대흥산성(大興山城)
개성부(開城府)의 천마산(天磨山)과 성거산(聖居山) 중간에 있는 석축(石築) 산성으로 1676년(숙종2)에 축조되었다.
初十日
凌晨上程。 過燒橋店、安城撥所車嶺細橋屛風巖, 至瑞興邑內五十里。 朝飯秣馬, 觀其平原曠野, 無一片水田, 皆是田也。 以南中所見言之, 則作畓處處有之, 而初無水畓者, 盖其田之所出, 勝於畓故也。 之爲邑, 閭閻擳比。 自至此所過之邑, 惟松都外無非殘邑, 而此邑則極雄府也。 北有山城, 其周回基址, 比於平山之太白, 頗雄壯, 而不及松都之大興, 名謂太陽云矣。 秣馬後, 過水越店、車嶺西山撥所興水院黔數四十里留宿。 是日行九十里。 盖山川氣勢, 太不及長坡, 或有山勢左右相連回抱, 無水流之處, 甚可怪也。 其中空陷有穴, 天水所注, 必漏其穴, 可怪可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