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 국역/표점
  • 국역
  • 서행록(西行錄)
  • 1792년(임자)
  • 10월(十月)
  • 4일(初四日)

서행록(西行錄) / 1792년(임자) / 10월(十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01.0002.TXT.0004
4일
일찍 송현(松峴)주 29)으로 가서 안 교리(安校理)를 조문하고, 그길로 진사 집에 갔더니 부재중이었다. 그래서 예조에 갔는데 안리(安吏)는 궐에 들어가서 만나지 못했다. 다시 호동(壺洞)주 30)으로 갔으나 자직(子直)이 선산에 성묘를 가서 만나지 못하고, 그 아들만 보고서 돌아왔다. 다시 예조에 들어가 안리(安吏)를 만났는데, 다시 의논할 일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하니 가탄스럽다. 곧바로 나와 버렸다.
주석 29)송현(松峴)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사와 건너편 종로문화원 사이에 있던 고개로서, 소나무가 울창하여 솔재라 하고 한자명으로 송현이라고 하였다.
주석 30)호동(壺洞)
종로구 원남동에 있던 마을로서, 황참의다리 동북쪽에 있는데 모양이 호리병과 같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初四日
早往松峴, 吊校理, 因往進士家, 則不在, 故往禮曹, 則吏入闕不遇。 轉往壺洞子直作楸行未遇, 只見其子, 因爲回來。 更入禮曹吏, 則決無更議之擧云, 可歎。 卽爲出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