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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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행록(西行錄)
  • 1792년(임자)
  • 9월(九月)
  • 24일(二十四日)

서행록(西行錄) / 1792년(임자) / 9월(九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01.0001.TXT.0010
24일
새벽에 길을 나서 성환(成歡)주 15)까지 40리를 가서 아침을 먹고 말에게 꼴을 먹였다. 갈원(葛院)주 16)에 이르자 비가 내렸는데, 크게 쏟아질 것 같지 않아서 채찍을 재촉하여 희도치(希道峙)에 이르렀다. 대개 이때부터 비가 그치지 않고 내리니 말 세 마리가 나란히 갈 수 없어 석사가 먼저 갔다. 고개(古介)에 이르러서는 녹도의 하인이 뒤처져 두어 마장 떨어졌고, 우리 일행은 가장 뒤처져 1리쯤 더 떨어졌다.
멀리서 보니 석사가 말에서 내려 두서너 사람과 비를 맞고 서 있기에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채찍을 재촉하여 가는데, 녹도의 하인이 또한 그곳에 당도하여 즉시 그 자들을 추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 사람은 달아나 산에 오르고 한 사람은 달아나 짐을 내려놓으며 창황히 바삐 움직이니 비로소 도적놈이라는 것을 알았다. 서둘러 가보니 본래 이들은 세 놈으로, 두 놈은 이미 달아나고 한 놈은 아직도 맞서 버티면서 서로 옷을 잡고 싸우기를 그치지 않았다. 우리 세 사람이 뒤미처 도착하자 그도 생각하지 못한 터라 비로소 스스로 기가 꺾이는 모양새였다. 이에 함께 동행하여 서둘러 진위(振威, 경기도 평택의 옛 지명) 읍내에 이르렀다. 비가 쏟아질 것 같아 주막에 들어가 편히 쉬었다. 그 사이에 위태로웠던 상황이야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이날 90리를 갔다.
주석 15)성환(成歡)
천안시 서북부에 있는 읍 이름이다. 성환읍 성환리에 성환역(成歡驛)이 있었다.
주석 16)갈원(葛院)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갈원리로, 옛 관원들이 묵어가던 숙소가 있던 곳이다.
二十四日
啓明登程, 至成歡四十里, 朝飯秣馬。 至葛院雨作, 而似無大注之意, 故促鞭至希道峙。 盖是時雨下不息, 三馬不得聯轡, 碩士最先行。 至古介, 鹿島下人落後數馬場, 吾行最落後一里許矣。 遙見碩士下馬, 與數三人, 立於雨中, 故意謂路逢相知人與之酬酢。 促鞭前進之際, 見鹿島下人, 亦當於其處, 卽以左右追擊, 一人走之上山, 一人走之下擔, 倉黃奔走, 始知爲賊漢。 促行當之, 則本是三漢, 二漢已走, 一漢猶與相拒, 互執衣襟, 爭閧不止。 及吾三人追至, 則渠亦出其不意, 始有自沮之態。 因與同行, 促至振威邑內。 雨下如注, 入幕安歇。 其間危凜之狀不可言。 是日行九十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