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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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행록(西行錄)
  • 1792년(임자)
  • 9월(九月)
  • 21일(二十一日)

서행록(西行錄) / 1792년(임자) / 9월(九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01.0001.TXT.0007
21일
파루(破漏)주 8)를 칠 때에 길을 나서 삼례(參禮)에 이르니 동쪽이 비로소 밝아 왔다. 능측(陵側)주 9)까지 50리를 가서 말에게 꼴을 먹였다. 은진(恩津)주 10)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100리를 갔다.
주석 8)파루(破漏)
오경 삼점(五更三點)에 종각의 종을 33번 치던 일을 말한다. 이 쇠북을 치고 나면 도성(都城) 안의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주석 9)능측(陵側)
삼례와 여산의 중간지점인 것으로 보아 위에서 말한 능은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백제시대 무덤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으로 보인다. 이 능은 마한(馬韓)의 무강왕(武康王)과 그 왕비의 능이라고도 하며, 백제 무왕(武王)과 선화비(善花妃)의 능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주석 10)은진(恩津)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옛 지명으로, 은진이라는 지명은 덕은(德恩)과 시진(市津)의 두 현이 합쳐서 생긴 것이다.
二十一日
破漏時登程, 至參禮, 東方始明。 至陵側五十里秣馬。 至恩津留宿。 是日行百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