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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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행록(西行錄)
  • 1792년(임자)
  • 9월(九月)
  • 18일(十八日)

서행록(西行錄) / 1792년(임자) / 9월(九月)

자료ID HIKS_OB_F9008-01-202010.0001.0001.TXT.0004
18일
일찍 밥을 먹고 길을 나서 영정(咏亭)에 이르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주 3) 그 모습이 너무 가련해서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즉시 길을 돌려 지신천변(智申川邊)에 이르러 언갑(彦甲)을 만나 길에서 옷 보따리를 전해 주었다. 채찍을 재촉하여 용계(龍溪)주 4)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나니 해가 이미 저물었다. 동막(東幕)마을주 5) 어귀에서 최장선(崔長善)박성헌(朴成憲)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채찍을 재촉하여 역동(驛洞)에 이르니 이미 해가 지고 어스름할 때였는데, 마구간이 없었기 때문에 어둠을 무릅쓰고 곡성(谷城) 읍내에 이르러 묵었다. 이날 60리를 갔다.
주석 3)영정(咏亭)에……나누었는데
영정은 영귀정(詠歸亭)으로 순천시 주암면의 영귀마을에 있다. 이곳에 사매(舍妹)가 살고 있었는데 당시 온 가족이 병을 앓아 고통 받고 있어 이에 대한 이야기를 사매와 나누며 마음 아파한 것 같다.
주석 4)용계(龍溪)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용계리이다.
주석 5)동막(東幕)마을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서계리를 말한다. 서계리는 읍의 제일 위쪽에 있다하여 동막(東幕) 마을이라 하였는데, 서쪽에 계곡이 있다하여 서계리로 바뀌었다. 동막은 마을 서편의 형제봉(兄弟峰)이 동쪽을 향하여 장막을 쳐 놓은 듯한 형국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지형이 형제장군이 군막을 치고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유래 되었다 전해지고 있다.
十八日
早飯登程, 至咏亭暫話, 而見其景象, 極爲可憐, 寧不忍見。 卽爲回程, 至智申川邊, 逢彦甲, 路中傳給其衣褓。 促鞭至龍溪中火, 日已夕矣。 至東幕村前, 逢崔長善朴成憲, 立談後, 促鞭至驛洞, 已黃昏時分, 而無馬廐, 故冒昏至谷城邑內留宿。 是日行六十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