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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 1639년 7월 1일 관문(關文)(崇德四年七月初一日 關文)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자료ID HIKS_OB_F1047-01-220201.TXT.0132
1639년 7월 1일 관문(關文)
132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 이행원(李行遠)이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 칙사(勅使)가 나올 때 필요한 우구(雨具)를 추가로 배정하였으므로 올려보낼 것.

기묘년(1639, 인조 17) 7월 2일 도착.

경기관찰사 겸 순찰사가 분담하여 배정하는 일 때문에 보낸다.
"칙사(勅使)가 나올 때 필요한 우구(雨具)인 초석(草席), 사의(簑衣), 입모(笠帽) 등을 전에 분담하여 배정하였다. 그런데 송도(松都)에 도착하였을 때 뜻하지 않게 비가 내려 두목(頭目)과 각 처에 나누어주었다가 서울로 들어간 뒤에 되찾으려고 하니 두목에게 빼앗겨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방기(房妓) 30여 명이 사용할 우구를 애당초 분담하여 배정하지 않았으므로 마지못해 추가로 분담하여 배정하고 후록(後錄)에 열거하였으니, 밤낮없이 서둘러 올려보내라. 그러므로 관문을 보낸다."
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주 261) 7월 1일.

후록 :
초석 2닢.
세겹바[三甲所] 2거리(二巨里).
사의와 입모 각 2건.
끝.

▶ 어휘 해설 ◀
❶ 사의(簑衣) : 짚이나 띠 따위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을 가리키며, 도롱이라고도 하였다.
❷ 입모(笠帽) : 비가 올 때 갓 위에 덮어쓰던 고깔과 비슷하게 생긴 물건으로, 비에 젖지 않도록 기름종이로 만들었다.
주석 261)
저본에는 원문 '四年' 2자가 누락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崇德四年七月初一日 關文
己卯七月初二日到付.
兼巡察使爲分定事.
"勅使時雨具草席、簑衣、笠帽等, 前已分定爲有如乎. 到松都, 不意下雨, 頭目及各處分給, 入京之後推尋, 則頭目處奪取, 不得推尋叱分不喩. 房妓三十餘人所着雨具, 初不分定乙仍于, 不得已加分定, 開後錄爲去乎, 罔晝夜上送向事. 合行云云."
崇德四年七月初一日.
後 :
草席二立.
三甲所二巨里.
簑衣、笠帽各二件.
印.
❶ 四年 : 저본에는 원문이 누락되어 있으나, 다수의 용례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