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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 1639년 3월 19일 도착 관문(關文)(己卯三月十九日到付 關文)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자료ID HIKS_OB_F1047-01-220201.TXT.0110
1639년 3월 19일 도착 관문(關文)
110 병조가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에게 보낸 관문(關文)
: 박한남(朴翰男)은 승진시켜 임용하고 이인노(李仁老)는 표리(表裏) 1벌을 하사하도록 재가받음.

기묘년(1639, 인조 17) 3월 19일 도착.

병조가 살펴서 시행하는 일 때문에 보낸다.
"이번에 재가하신 본도(本道)의 서장(書狀)에 의거하여주 233) 올린 비변사의 계목(啓目)에 아뢰기를,
'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박한남(朴翰男)과 이인노(李仁老) 등이 전선(戰船)을 개조하거나 제작하고 군기(軍器)를 보수하는 등 나라를 위해 마음을 다한 정상은 모두 가상하니, 병조에서 경중을 참작하여 주상께 여쭈어 시행하게 하소서. 다만 수군은 세습하는 직임이므로 육군과 서로 바꾸는 것은 몹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만약 제물(濟物)과 초지(草芝) 등의 지역에 살고 있는 수군을 모두 본진(本鎭)으로 옮겨가서 살게 한다면, 상번(上番)할 차례가 아니더라도 다급한 상황에서 징발하여 쓸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각각 고향을 그리워하는 법인 데다가 이처럼 흉년을 당한 때에는 경솔히 의논하기가 더욱 어려우니, 우선 다른 때를 기다렸다가 다시 의논하여 처리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이러한 뜻으로 공문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주 234)
라고 하니, 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2월 29일에 동부승지(同副承旨) 신(臣) 정태화(鄭太和)가 담당하여,
'「아뢴 대로 윤허한다.」라고 재가받았다.'
라고 판부(判付)하였다. 그 판부에 의거하여 본조(本曹)가 올린 계목에 아뢰기를,
'재가받은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앞서 박한남과 이인노 등이 이처럼 변란에 대비하는 시기에 전선을 개조하거나 제작하고 군기를 보수한 정상은 대단히 가상합니다. 따라서 경중을 나누어 시상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만, 은혜를 베푸는 것과 관계되는 일이니, 주상께서 재결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하니, 숭덕 4년 3월 5일에 우부승지(右副承旨) 신 이후원(李厚源)이 담당하여,
'「전례를 살펴서 나에게 물어 처리하라.」라고 재가받았다.'
라고 판하(判下)하였다. 그 판하에 의거하여 본조가 올린 계목에 아뢰기를,
'판하하신 문서를 첨부하였습니다. 전례를 살펴보았으나 군기 등의 물품을 마련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 수량에 따라서 가자(加資)하거나 승진하여 임용하거나 말을 하사하는 규정이 있지만, 선박을 개조하거나 제작한 사람에 대해서는 시상한 규정이 없습니다. 주상께서 재결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하니, 숭덕 4년 3월 4일에 우부승지 신 이후원이 담당하여,
'「박한남은 승진시켜 임용하고, 이인노는 표리(表裏) 1벌을 하사하라.」라고 재가받았다.'
라고 판하하였다. 판하한 내용을 모두 잘 살펴서 시행하라."
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 어휘 해설 ◀
❶ 가자(加資) : 관원의 자급(資級)을 올려주거나 당하관(堂下官)을 당상관(堂上官)으로 올려주는 것을 가리킨다. 가자의 원래 의미는 관원의 자급을 한 두 자급 올려주는 것을 가리켰으나, 당하관을 당상관으로 올려주는 것도 가자라고 표현하였다.
❷ 표리(表裏) : 옷의 안감과 겉감을 가리킨다. 『육전조례(六典條例)』 「호전(戶典)」 〈호조(戶曹)〉 '별례방(別例房) 상전(賞典)'에 의하면, 신하에게 시상하는 표리로는 백면주(白綿紬) 2필을 하사하였다. 한편 『육전조례』 「호전」 〈호조〉 '전례방(前例房) 사전궁원공상(四殿宮元供上)'에 의하면 탄일(誕日), 정조(正朝), 동지(冬至)가 될 때마다 임금에게는 백면포(白綿布) 8필과 백토주(白吐紬) 8필을, 중궁전(中宮殿)에는 백면포 5필과 백토주 5필을 각각 표리로 올렸다.
주석 233)
'105 나덕헌의 장계' 참조.
주석 234)
'109 비변사의 관문' 참조.
己卯三月十九日到付 關文
己卯三月十九日到付.
兵曹爲相考事.
"節啓下敎本道書狀據備邊司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朴翰男、李仁老等, 造作戰船, 修補軍器, 爲國盡心之狀, 俱爲可嘉, 令該曹參酌輕重, 稟旨施賞爲白乎矣. 水軍, 世傳之任, 與陸軍相換, 勢甚未易, 若令濟物、草芝等處水軍, 竝爲移入本鎭, 則雖非番次, 亦可臨急調用是白乎矣. 人心各戀本土, 當此凶年, 尤難輕議, 姑待他日, 更議處置, 宜當. 此意行移, 何如?' 崇德四年二月二十九日, 同副承旨臣鄭太和次知, '啓, 「依允.」'事據曹啓目, '粘連啓下是白有亦. 向前朴翰男、李仁老等, 當此待變之日, 戰船造作軍器修補之狀, 極爲可嘉. 似當有分輕重論賞之事, 而係干恩令, 上裁, 何如?' 崇德四年三月初五日, 右副承旨臣李厚源次知, '啓, 「前例相考稟處.」爲良如敎.'事判下據曹啓目, '粘連判下是白有亦. 前例相考爲白乎矣, 軍器等物措備者, 則從其多寡, 有或加資或陞敍或賜馬之規, 而造作船隻者, 則無論賞之規. 上裁, 何如?' 崇德四年三月初四日, 右副承旨臣李厚源次知, '啓, 「朴翰男陞敍, 李仁老表裏一襲賜給.」爲良如敎.'事判下敎是置. 判下內事意, 幷以奉審施行向事."
崇德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