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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 1639년 2월 8일 장계(狀啓) 초본(崇德四年二月初八日 狀草)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자료ID HIKS_OB_F1047-01-220201.TXT.0102
1639년 2월 8일 장계(狀啓) 초본
102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인조에게 보낸 장계(狀啓) 초본
: 군관(軍官)인 전유일(全惟一)을 유진장(留鎭將)으로 차정하고 이달 12일에 수로(水路)로 내려가서 순행하며 각 진포(鎭浦)의 전선(戰船)과 병선(兵船) 등을 점검할 계획임.

장계의 초본.
"신이 지난 정축년(1637, 인조 15) 6월 11일 수영(水營)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관할하는 각 진보(鎭堡)를 순찰하여 변장(邊將)의 근무 상태와 선박의 성능을 사실대로 적간(摘奸)하고 주상께 보고하여 결정을 받았습니다.주 217) 막 난리를 거치고 난 각 진포(鎭浦)의 입방(入防)하는 군병도 비변사가 복계(覆啓)한 문서에 따라 9월부터 시작해서 입방하라고 분부하였습니다.주 218) 그 뿐만 아니라 본영(本營) 및 각 진포의 수군(水軍) 중 사로잡혀가거나 살해된 숫자와 도망하거나 사망한 숫자가 대부분이고 현재 남아있는 수군도 다른 지역에서 떠돌아다니고 아직 돌아와 모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변장 등이 약간의 입방하는 수군만으로는 난리 중에 망가진 전선과 병선을 수리하거나 제작하지 못하였습니다. 더욱이 칙사(勅使)의 행차 시기까지 겹쳐서 변장 등이 전원 차출되어 역참(驛站)에 나가 대령하였다가 12월에야 진보로 돌아왔으나, 얼음이 얼 시기가 이어져 떠도는 얼음덩어리가 나루를 막았으므로 뱃길로 순찰할 수가 없었습니다.
작년에 봄이 되자마자 바로 순찰하려고 계획하였는데, 철곶[鐵串]은 새로 설치한 진보라서 방패선만 있을 뿐이고 전선은 난리를 겪고 난 뒤에 아직 제작하지 못하였으며, 기타 4곳 진포의 변장도 전선과 병선의 수리에 들어가는 공장(工匠)의 요포(料布)를 마련할 길이 없어 즉시 완료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의 본영 전선 3척, 방패선 1척, 병선 4척, 사후선 7척도 썩어 파손되어 개삭(改槊)할 차례가 되었으나, 그중 전선 1척, 병선 3척, 사후선 2척은 –판독 불능- 개조하였고, 그 나머지의 병선 1척, 사후선 5척, 방패선 1척, 전선 2척은 차례대로 나무를 덧대 개삭하였으며, 그 연유를 전에 급히 보고하였습니다.주 219) 신이 직접 감독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노고해야 할 일이 많아 작년 가을에서야 겨우 개수하는 일을 완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각종 집물(什物)을 절반 넘게 새로 갖추거나 예전 것을 보수하였는데, 다방면으로 애써 비용을 마련한 데다가 공사가 거창하여 여러 진보를 순찰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10월에 신의 군관(軍官)을 정해서 각 진포에 보내 전선과 병선의 수리 여부를 하나하나 점검하고 감독하게 하였더니 군관이 보고하기를,
'철곶첨사[鐵串僉使] 박한남(朴翰男)이 비변사에 보고하고 스스로 안면곶[安眠串]에 내려가서 전선 1척을 새로 제작한 뒤 돌아와서 정박시키고 이제야 공사를 마쳤습니다.'
라고 하였으며,
'기타 4곳 진포의 변장 등도 전선과 병선의 집물(楫物)을 모두 거의 다 수리하였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육로로 순행하며 점검하는 것은 일행에게 필요한 약간의 마부와 말을 징발하는 과정에서 쇠잔한 각 고을에 폐해를 끼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의 군관인 전(前) 판관(判官) 전유일(全惟一)을 유진장(留鎭將)으로 차정하였고, 이달 12일에 배를 타고 바다를 따라 내려가서 각 진포의 전선과 병선 등을 새로 제작한 것과 개조한 것 및 각종 집물을 보수했는지의 여부를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에 직접 조사 점검하려고 하며, 순찰 점검을 마치고 난 뒤에는 변장 등의 근무 상태를 추후에 급히 보고할 계획입니다. 차례대로 잘 아뢰어 주시기 바랍니다."
숭덕(崇德) 4년(1639, 인조 17) 2월 8일.

▶ 어휘 해설◀
❶ 유진장(留鎭將) : 진보(鎭堡)에 남아서 지키는 장수를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경기수사(京畿水使) 나덕헌이 각 진보의 전선과 병선 등을 점검하기 위해 순행을 떠나기 때문에 수영(水營)에 남아서 지킬 유진장을 차출한 것이다.
주석 217)
'005 나덕헌의 장계' 참조.
주석 218)
'011 나덕헌의 장계', '016 비변사의 관문', '019 나덕헌의 관문' 참조.
주석 219)
'064 나덕헌의 장계' 참조.
崇德四年二月初八日 狀草
啓草
"臣去丁丑六月十一日到營卽時, 巡審所管各鎭堡, 邊將勤慢、舟緝利鈍, 從實摘奸, 啓聞定奪事是白乎矣. 纔經兵亂各浦防軍段置, 因備邊司覆啓公事, 九月爲始入防亦, 分付叱分不喩. 本營及各浦水軍擄殺、逃故之數居多, 時存段置, 流離他境, 未及還集是白乎等以. 邊將等, 若干入防水軍叱分以, 亂離中, 頹敗戰、兵船乙, 未及修造. 而又値勅使之行, 邊將等沒數逢差出站, 十二月還鎭, 仍致合氷, 流澌塞津是白乎等以, 船路以, 未得巡審爲白有如乎. 上年開春卽時巡審計料爲白乎矣, 鐵串段, 新設之鎭以, 只有防牌船叱分是白遣, 戰船段, 經亂之後, 未及造作, 其他四浦邊將段置, 戰、兵船修緝工匠料布, 辦出無路, 未卽完就叱分不喩. 臣矣本營戰船三隻、防牌船一隻、兵船四隻、伺候船七隻段置, 或腐破改槊當次是白去乙. 其中戰船一隻、兵船三隻、伺候船二隻段, ▣▣改造, 其餘兵船一隻、伺候船五隻、防牌船一隻、戰船二隻段, 鱗次添木改槊, 緣由乙, 前已馳啓爲白有在果. 臣躬親監董, 事多役役, 上年秋, 僅以完了修改之役. 而各樣什物, 過半新備, 或仍修補, 多般拮据, 功役浩大, 無暇巡審列堡爲白有如乎. 上年十月分, 臣矣軍官發定各浦, 戰、兵船修緝與否, 一一檢督, 則'鐵串僉使朴翰男, 報備邊司, 親自下去安眠串, 新造戰船一隻回泊, 今始畢役.'是如爲白乎旀, '其他四浦邊將等段置, 戰、兵船楫物, 幷以幾盡修緝.'是如爲白有臥乎等以. 臣陸路巡檢, 則一行若干夫馬責立之際, 殘弊各邑, 不無其弊是白乎去, 臣矣軍官前判官全惟一, 以留鎭將差定爲白遣, 本月十二日乘船下海, 各鎭浦戰兵船等新造·改造、各樣楫物修補與否乙, 未農前親自査點, 畢巡檢後, 邊將等勤慢乙, 追乎馳啓計料爲白去乎. 詮次善啓向敎是事."
崇德四年二月初八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