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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자료ID HIKS_OB_F1047-01-220201.TXT.0096
장계(狀啓) 초본
096 경기감사 김남중(金南重)이 인조에게 보낸 2차 사직 장계 초본
: 대간(臺諫)의 탄핵 내용 중 잘못된 부분을 해명하며 체차해주기를 청함.

1. 2차 장계의 초본.
"신이 몸가짐이 형편없어 대간의 탄핵을 거듭 당하였으므로 감히 간절한 마음을 아뢰고서는 삭직하라는 명을 공손히 기다렸는데, 신의 죄를 묻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온화하게 타이르는 말씀을 내려주셨으니 신이 참으로 황공하고 민망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겠습니다. 대간이 신을 탄핵한 일로 말하면 그럴만한 곡절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유를 샅샅이 밝히려고 한다면 외람된 일입니다. 다만 대간이 논한 두 가지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대략적인 사정을 간략하게 아뢰겠습니다. 신이 작년 8월에 휴가를 받아 전주에 내려가서 어버이를 만났는데, 그 당시 전주부윤(全州府尹) 오단(吳端)이,
'그대가 난리가 일어난 초기에 부모와 서로 헤어져서 생사 여부를 모르다가 타향에서 재차 만났고, 게다가 멀리까지 행차하였으나 여행 중에 묵는 곳이 삭막하여 위로하고 기쁘게 해줄 수가 없다.'
라고 하고서는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하고 신의 늙은 어버이를 맞이하여, 한바탕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버이를 위해 술잔을 돌리던 중에 술이 몹시 취해 저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되었으니, 이것은 자식으로서의 인정과 도리상 자제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걸 가지고서 논쟁거리로 삼아 신의 죄로 삼으리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이번에 신의 생일 문제도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었습니다. 도사 안시현(安時賢)이 신에게 하리(下吏)를 보내 말을 전달하기를,
'감사의 생신에는 여러 고을에서 본래 생산되는 물품을 따라 물건을 바치는 규정이 있으니 규례에 근거하여 분부하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은
'자식이 어버이를 위한 도리로는 대단히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의례적으로 하는 것도 무방할 것 같으나, 물품을 품목별로 징수하도록 독촉하여 고을마다 배분하여 정한다면 매우 불가한 일이다.'
라고 생각하였으므로
'다소 완전한 몇몇 고을에만 간략하게 바치도록 하라.'
라고 답변을 보냈습니다. 그 뒤에 몇몇 고을에서 보내온 물품은 몹시 엉성하여 전례에 비해 10분의 1이나 2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은 참으로 타당하지 못한 일인데도 도사가 하는 것을 신이 만류하지 못하였으니, 대간이 탄핵한 것에 대해서는 신이 참으로 승복합니다. 그러나 애당초 신이 도사를 시켜서 고을에 통지하게 했다고 한 것은 실제의 정황이 아닙니다.
대체로 전후의 죄상은 모두 저 자신이 스스로 불러들인 일이니, 신이 참으로 황공하고 부끄러워서 몸둘 곳이 없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명색이 감사의 직임을 맡고 있어서 여러 고을의 법에 어긋난 일들을 살펴서 단속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조심하지 않고 방자한 죄를 스스로 저질렀으니, 어떻게 얼굴을 들고서 각 고을을 호령하겠습니까! 더구나 앞으로 포폄(褒貶)을 시행해야 할 터인데 등제(等第)하는 사이에 스스로를 돌아볼 때 부끄러워서, 여러 고을의 수령에 대해서는 평가하는 말 한 마디조차 결코 적기가 어려울 것이니, 신의 처지가 참으로 낭패스럽습니다. 신이 현재 추고의 징계를 받고 있는 중이어서 마무리되기 전에 지레 하나하나 아뢰는 것은 감히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사헌부가 현재 함사(緘辭)를 보내오지 않아 함사에 대해 진술할 때까지 기다리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하루라도 직무를 보지 않고 비워두면 사무가 많이 지체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의 병세가 매우 중해서 공무를 행할 가망이 전혀 없고 게다가 임기 만료의 시점도 다가오므로 설사 맡고 있는다고 해도 잠깐에 불과하니, 감히 이처럼 호소하여 전에 청했던 것을 되풀이합니다.주 193) 속히 체차해주셔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편안하게 해주소서."

이조의 회계(回啓).
"김남중은 엄중한 탄핵을 당한 신분으로 직무를 수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니, 그가 체차되기를 바라는 것은 인정과 도리상 당연합니다. 다만 번신(藩臣)에 대한 처분은 이조에서 마음대로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주상께서 재결하소서."

이조의 회계에 대한 비답(批答)
"회계(回啓)한 대로 시행하라."주 194)
주석 193)
저본에는 원문 '請' 1자가 '淸' 1자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근거하여 수정하였다.
주석 194)
김남중의 장계 및 그에 대한 인조의 답변이 관찬사료에 수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장계의 처리 절차나 결과를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일반적인 장계의 처리 절차를 참고할 때, 인조가 김남중의 장계를 이조에 계하(啓下)하자 이조가 위와 같은 내용으로 회계(回啓)하고 인조가 그에 대해 판부(判付)를 내렸을 것으로 보인다.
狀草
一. 再度狀啓草.
"臣持身無狀, 重被臺評, 敢陳危懇, 恭竢鐫削之命爲白有如乎, 不惟不罪, 反下溫諭, 臣誠惶悶, 不知所出是白齊. 臺論之發, 雖有曲折, 而欲原其由, 事涉猥屑. 第其所論兩款, 則不得不略陳梗槪爲白去乎. 臣於上年八月, 乞暇往覲于全州地, 其時府尹吳端, 以'臣亂初相失父母, 不知存沒, 再逢他鄕, 且有遠行, 而旅寓索莫, 無以慰悅.'是如, 略具小酌, 邀臣老親, 共成一場悲喜. 及其爲親行杯之際, 乃醉甚, 不覺歌舞之發, 此人子情理之不能自已者也. 豈料以此摭爲唇舌之資爲臣罪案乎! 今番臣生日段置, 都事安時賢, 伻其下吏送言曰'道主生辰, 列邑自有隨産呈物之規, 據例分付.'云是白去乙. 臣意以爲'人子爲親之道, 苟非大段害事, 則循例爲之, 亦似無妨, 而若督徵物目, 逐邑分定, 則事甚不可.'乙仍于, 以'若干稍完處叱分, 從略爲之.'意答送爲白有如乎. 厥後若干邑所送之物, 殊極零星, 比舊例十存其一二是白乎矣. 然此時此事, 實未妥當是白去乙, 都事所爲乙, 臣未止之, 則臺臣紏劾, 臣固服罪. 而謂之初自臣使都事行會云爾, 則非實狀也. 大抵前後罪狀, 無非滄浪自取, 臣實惶愧無地措躬爲白乎旀. 非但此也, 身居方面之任, 列邑舛法之事, 義當紏察, 而自陷於不謹縱恣之罪, 其何以擧顔號令於各官乎! 況前頭將有褒貶之擧, 其於等第之際, 自顧慚靦, 決難措一語是非列邑之官是白昆, 臣之情跡, 實爲狼狽是白在果. 臣方在推勘中, 徑先陳列, 極知不敢是白乎矣, 憲府時未發緘, 緘辭之供, 未易等待, 而一日曠職, 事務多滯叱分不喩. 臣病勢甚重, 少無行公之望, 瓜期且迫, 不過五日京兆, 敢此呼籲, 以申前請爲白去乎, 亟賜遞免, 以便公私爲白只爲云云."
"金南重身被重論, 勢難供職, 其欲遞免者, 情理固當爲白在果, 但藩臣處置, 自該曹擅便爲難爲白昆. 上裁."
"依回啓施行."
❶ 請 : 저본에는 원문이 '淸'으로 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근거하여 수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