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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 1638년 7월 2일 함답(緘答)(戊寅七月初二日 緘答)

충렬공삼도통어영록(忠烈公三道統禦營錄)

자료ID HIKS_OB_F1047-01-220201.TXT.0071
1638년 7월 2일 함답(緘答)
071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 나덕헌이 사헌부(司憲府)에 보낸 함답(緘答)
: 올해 춘하등포폄(春夏等褒貶)에서 하고(下考)로 평가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 추고(推考)를 당한 데 대해 진술함.

무인년(1638, 인조16) 7월 2일에 작성한 함답(緘答) 초본.
"이번에 받은 공함(公緘)에 이르기를,
'사헌부에 재가하신 본부(本府)의 계목(啓目)에 아뢰기를,
「경기수사(京畿水使)에 대해서는, 올해 춘하등포폄(春夏等褒貶)에서 하고(下考)로 평가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 전최(殿最)를 엄격하고 분명하게 한다는 취지가 너무나 없으니 행공추고(行公推考)하소서.」주 125)
라고 하였다. 과실을 인정한다고 진술을 바치고 의공(議功)과 의친(議親)을 분간하여 사실대로 기술하라.'
라는 공함이었습니다. 근래에는 조정에서 변장(邊將)을 각별히 신칙하였으므로 변장들도 각자 유념하여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가 관할하는 5곳의 진보(鎭堡) 중 정포만호(井浦萬戶) 정연(鄭𤥻)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제수되었는데, 비상 사태가 발생하자 참전하였고 방비하는 등의 일을 날마다 새롭게 수행하였으며 군졸을 침탈하는 일은 별달리 없었습니다. 기타 4곳 진보의 변장들은 모두 남한산성(南漢山城)에 호종(扈從)하여 공로가 있는 사람으로서 전쟁 이후에 제수되었는데, 흩어지고 도망한 토착 군병들을 소집하는 등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조금도 태만하지 않아서 근무 상태를 별달리 조사할 것이 없었습니다. 전최를 엄격하고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법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취사선택한다면 번거롭게 교체하는 폐단만 불러올 뿐이기 때문에 하등으로 평가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위와 같은 곡절을 분간하여 시행해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날 작성한 공함.
"사헌부의 관문(關文)에 이르기를,주 126)
'변장에 대한 이번 춘하등포폄에서 하고로 평가한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된 곡절을 다시 사실대로 기술하라.'
라는 공함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곡절에 대해 과실이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의친을 적용할 대상은 아니며, 의공은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1등입니다."
수군절도사 나덕헌.

▶ 어휘 해설 ◀
❶ 함답(緘答) : 추고(推考)를 당하는 관원이 함사(緘辭)를 받고서 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한 문서이다. 함사란 추고를 담당하는 관사에서 추고할 대상에게 보내는 심문 내용이 적힌 문서를 가리키며, 공함(公緘)이라고도 하였다. 추고를 당하는 관원은 함답을 통해 혐의를 인정하기도 하고 반박하기도 하였다. 『전율통보(典律通補)』 「별편(別編)」 〈본조문자식(本朝文字式)〉에는 '외관함답식(外官緘答式)'과 '경관함답식(京官緘答式)'이 수록되어 있다.
❷ 공함(公緘) : 추고를 담당하는 관사에서 추고할 대상에게 보내는 심문 내용이 적힌 문서를 가리키며, 함사라고도 하였다.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에는 '외관추고발함식(外官推考發緘式)'이 수록되어 있다.
❸ 행공추고(行公推考) : 추고를 당하는 관원이 정상적으로 공무를 행하면서 추고를 받는 제도이다. 추고할 관원에 대해서는 추고가 완료될 때까지 공무를 중지시키고서 결과를 기다리게 했는데, 그러다 보니 사무가 지체되는 등의 폐단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행공추고의 제도가 새롭게 도입되었다. 행공추고는 중종 2년(1507)부터 보이기 시작하는데, 후일에는 추고가 실질적인 징벌 기능을 상실하고 형식적인 징벌로 추락하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
❹ 의공(議功) : 공신(功臣)이나 공신의 후손으로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처벌 수위를 낮추어주는 것을 가리킨다. 봉건시대에는 죄인의 형량을 특별히 감해줄 수 있는 대상을 8가지로 규정하고 팔의(八議)라고 불렀는데, 의공은 그중의 하나이다.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외관함답식'과 '경관함답식'에 의하면, 함답의 말미에 의공을 먼저 적고 이어서 의친을 적었다. 의공에 해당할 경우에는 당사자나 당사자의 조상 몇 대조가 무슨 공신인지를 적었다.
❺ 의친(議親) : 국왕 및 왕비와 친척 관계인 사람으로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처벌 수위를 낮추어주는 것을 가리킨다. 의친도 팔의 중의 하나이다. 『전율통보』 「별편」 〈본조문자식〉 '외관함답식'과 '경관함답식'에 의하면, 함답의 말미에 의공을 먼저 적고 이어서 의친을 적었다. 의친에 해당할 경우에는 작호(爵號)나 촌수(寸數) 등을 적었다. '경관함답식'에는 법사(法司)가 조율(調律)하여 임금에게 보고할 때 첨부해서 올리던 공의단자(功議單子)의 작성 방식이 수록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의공과 의친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할 경우에는 의공을 먼저 적고 의친을 이어서 적었으며, 의공만 해당하고 의친은 해당하지 않을 경우에는 의공의 내용을 적고 나서 '의친을 적용할 대상이 아님[非議親]'이라고 적으며, 의친만 적용하고 의공은 적용할 대상이 아닌 경우에는 '의공을 적용할 대상이 아님[非功臣]'이라고 적고 의친만 적었다.
주석 125)
『속대전(續大典)』의 「이전(吏典)」 〈포폄(褒貶)〉과 「병전(兵典)」 〈포폄〉에 의하면, 각 도의 관찰사와 절도사가 각각 수령(守令)과 변장(邊將)에 대해 포폄(褒貶)할 때 하고(下考)로 평가한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추고(推考)하도록 하였다. '062 나덕헌의 계본'에 의하면, 경기수사(京畿水使)인 나덕헌이 관할하는 변장에 대한 포폄계본(褒貶啓本)에 하고로 평가된 변장이 한 명도 없다. 그러므로 추고를 담당하는 관사인 사헌부가 인조의 허락을 받아 나덕헌에게 공함(公緘)을 보낸 것이다.
주석 126)
저본에는 원문 '乙' 1자가 누락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戊寅七月初二日 緘答
戊寅七月初二日緘答草.
"節公緘, '司憲府啓下敎府啓目, 「水使當爲, 今春夏等褒貶, 無一人居下, 殊無嚴明殿最之意, 行公推考.」 遲晩取招, 功議分揀, 從實記下向事.'公緘是白有亦. 近來自朝廷各別申飭邊將是白乎等以, 邊將等各自惕念奉職叱分不喩. 所管五堡中, 井浦萬戶鄭𤥻段, 亂前除授爲白有乎矣, 臨急赴難, 防備等事乙, 日新修治, 別無侵虐軍卒之事. 其他四浦邊將等段, 皆以南漢扈從有功勞之人, 亂後除授, 或召集散亡土兵, 恪謹供職, 小不懈怠, 別無勤慢査覈. 非不知嚴明殿最之法, 而若不審取捨, 則徒煩遞易之弊乙仍于, 無一人下等爲白有置. 右良辭緣, 分揀施行敎事."
同日公緘內, "司憲府關內乙用良, '今春夏等邊將褒貶, 無一人居下辭緣, 更良記下向事.'公緘是白有亦. 右良辭緣, 遲晩亦使內白乎在亦. 非議親, 功段, 振武原從一等."
水軍節度使羅.
❶ 乙 : 저본에는 원문이 누락되어 있으나, 전후의 문맥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