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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남집(吾南集)
오남집(吾南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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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태서지권수제吾南先生文集판심제吾南先生文集간종목활자본(木活字本)간행년미상권책13권 7책행자10행 22자어미內向2葉花紋魚尾소장처국립중앙도서관선간집수■ 저자성명김한섭(金漢燮)생년1838년(헌종 4)몰년1894년(고종 31)자치용(致容)호오남(吾南)본관영광(靈光)특기사항동학농민운동 때 강진에서 관군과 수성하다 사망함.■ 가계도金台用(시조)工曺典書金㻫吏曹參判金光遠(13대조)吏文習讀官高祖 金夢龍曾祖 金常衡祖 金瑗父 金魯鉉海南尹氏尹商說의 女金漢燮金仁植金鳳植金鶴植女李斗林濟州梁氏梁相淑의 女■ 행력왕력서기간지연호연령기사헌종41838戊戌道光181장흥 부산면에서 태어났다.철종131862壬戌同治125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다.고종141877丁丑光緖340강진 月角山 大明洞에서 寒泉精舍를 지었다.고종161879己卯光緖542봄 秋陽契의 일로 영암 道岬寺에서 講會를 열었다.고종191882壬午光緖845차남 鳳植을 智島의 金平默에게 보내 수학하게 하였다.고종201883癸未光緖946스승 任憲晦의 문집 간행일로 인해 高敞에서 지냈다.고종211884甲申光緖1047「衣制辨」을 짓고 洋夷가 세상에 날뛰는 것을 한탄했다.고종221885乙酉光緖1148차남 鳳植이 사망했다.고종311894甲午光緖2057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관군과 함께 강진을 戍城하다 사망했다. ◎ 강진군 朱雀山에 장사지내고, 장흥 興龍洞에 設壇하여 중암과 함께 제향했다.1910庚戌철향되었다.1912壬子金永根이 비명을 써서 묘소에 비석을 세웠다.■ 생애『오남선생문집(五南先生文集)』은 김한섭(金漢燮 : 1838-1894)의 시문집이다. 13권 7책 목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김한섭의 자는 치용(致容)이고, 호는 오남(吾南), 본관은 영광(靈光)이다. 선계(先系)는 신라에서 나왔고, 시조는 고려 현종 때 평장사(平章事) 등을 역임한 김심언(金審言)의 후손으로서 고려 때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김태용(金台用)이다.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지냈던 휘 필(㻫)의 손자로 이문습독관(吏文習讀官)을 지냈으며, 정암(精菴) 조광조(趙光祖)의 문하로 기묘사화 때 안처겸(安處謙)의 옥사에 연루되어 해남에 유배되었던 김광원(金光遠)이 13대조이다. 고조의 휘는 몽룡(夢龍), 증조의 휘는 상형(常衡), 조부의 휘는 원(瑗)이다. 아버지의 휘는 노현(魯鉉)으로 심재(心齋) 송환기(宋煥箕)의 문인이고, 어머니는 해남윤씨(海南尹氏) 윤상열(尹商說)의 딸이다. 김한섭은 1838년(헌종 4년) 5월 23일 장흥 부산(夫山, 현 장흥군 부산면)에서 출생하였다.타고난 자품이 순수하고 뛰어나 11세에 글을 짓기 시작했고, 18세에 주석가들의 득실을 논평한 「중용차의(中庸箚疑)」를 지으니 어른들이 너무 이르다고 금지하였다. 『상서(尙書)』를 배울 때 일 년의 날 수를 말한 「요전(堯典)」의 "기삼백육순유육일(朞三百六旬有六日)"을 배울 때 글방 선생이 모른다고 하자, 스스로 연구해 풀이하여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에게 나아가 배웠으나 이미 화서가 병중인 상태여서 물러나 그 문인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과 성재(星齋) 유중교(柳重敎)와 더불어 도의교(道義交)를 맺었다. 두 번째로 화서에게 찾아갔으나 갑자기 작고하여 그 유문(遺文)을 기록하여 돌아왔다.이 후부터는 과거 공부를 버리고 오로지 도학에만 힘쓰면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고산(鼓山) 임헌회(任憲晦)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1862년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는데, 천성이 효성스러워서 삼년상을 치루는 동안 아침마다 반드시 묘소에 가서 곡을 하고 당시 상례를 치루는 예법이 크게 무너짐을 탄식하면서 "중문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예의 큰 예법이니, 이를 삼가지 않으면 다른 것은 볼 것도 없다[不入中門禮之大防也 此而不謹無足觀之]"고 하며 옛 예법을 지킬 것을 중요시하였다.1877년 금릉 월각산 (月角山, 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아래 대명동(大明洞)에 한천정사(寒泉精舍)를 짓고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1879년 봄에는 추양계(秋陽契)의 일로 영암 도갑사(道岬寺)에서 관내의 사우들과 모여 강회(講會)를 열었다. 1882년 봄에는 둘째 아들인 봉식(鳳植)을 지도(智島, 현 신안군 지도읍)의 김평묵에게 보내어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게 하였다. 1883년에는 스승인 임헌회의 문집을 간행하는 일로 인하여 고창 봉산(蜂山, 현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에서 오랜 시간 보내게 되었다.1884년 의복의 제도가 크게 변하자 심의(深衣)를 입고 지내면서 「의제변(衣制辨)을 짓고 양이(洋夷)가 세상에 날뛰는 것을 한탄했고 "근세벽양(近世闢洋)" 문자를 지어 학자들에게 "천지간에 이런 문자들이 없어서는 안된다[天地間 不可無此等文字]"고 했다. 후학들을 지도할 때에도 과거 공부를 배우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허락하지 않고 "과거 공부의 해로움이 사학(邪學)과 다를 것이 없으니, 온 세상이 긴 밤중이 된 것이 이것 때문이다.[科學之害 與邪學無別 擧世長夜職以此也]"라고 하였다. 1885년에는 둘째 아들 봉식이 질병으로 사망하였다.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진실로 통탄하며 "탁류속의 지주석이요, 어두운 거리에 촛불이라 어찌 평생 자부했던 마음을 저버리리오[濁流底柱昏衢燭 肯負平生自待心]"라고 시를 짓고, 또 「경시적도문(警示賊徒文)」을 지어 "너희 무리들은 하늘에 죄를 얻어 도망갈 곳이 없다. 내가 사는 데가 곧 수양산이니 죽어서 백이숙제(伯夷叔齊)를 따르게 되면 족하다.[爾徒獲罪於天 無所逃也 我之所居則首陽山也 死得從夷齊遊足矣]"고 썼다. 그 해에 동학무리들을 막기 위해 강진의 관군과 함께 수성(戍城)하다 사망하였다.1894년 12월 7일 주작산(朱雀山, 현 강진군 신전면 수양리 주작산)에 장사지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오남의 옛 집인 장흥 흥룡동(興龍洞, 현 장흥군 부산면 내안리)에 설단(設壇)하여 중암과 함께 제향하였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때 철향되니, 장례를 모신지 19년 만에 문인인 경회(景晦) 김영근(金永根)에 의해 명을 지어 묘소에 비석을 세웠다. 부인은 제주양씨(濟州梁氏) 양상숙(梁相淑)의 딸로 3남 1녀를 낳았다. 아들은 인식(麟植), 봉식(鳳植), 학식(學植)이고 딸은 이두림(李斗林)에게 출가했다.■ 구성과 내용『오남선생문집(吾南先生文集)』은 서(序)와 발(跋)이 없어 자세한 간행시기와 간행인 간행경위 등을 알 수 없다. 국립중앙도서관, 전남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있다. 13권 7책 목활자본이다. 1권에는 시(詩) 119편이 실려 있고, 2권에는 상량문(上樑文) 3편, 명(銘) 6편, 잠(箴) 3편 기(記) 5편이 실려 있고, 3권에는 서(序) 5편, 발(跋) 5편, 행장(行狀) 7편, 묘갈명(墓碣銘) 1편이 수록되어 있고, 4권에는 전(傳) 3편, 찬(贊) 2편, 제문(祭文) 15편, 5권부터 7권까지는 서(書) 98편, 8권에는 서증(書贈), 9편, 잡저 8편이 실려 있고, 9권부터 13권까지는 잡저(雜著) 37편이 수록되어있다.1권은 시집인데 부(賦)가 5편이고 금조(琴操) 1편, 고시(古詩) 8편, 오언고시(五言古詩) 8편, 칠언고시(七言古詩) 7편, 오언절구(五言絶句) 32편, 칠언절구(七言絶句) 21편, 오언율시(五言律詩) 12편, 칠언율시(七言律詩) 25편이 수록되어있다. 부 중에는 주희의 「감춘부(感春賦)」에 차운한 「근차주자감춘부(謹次朱子感春賦)」, 성리학의 중요 명제중 하나인 이일분수론(理一分殊論)을 주제로 한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이일분수부(理一分殊賦)」를 차운한 「근차율곡선생이일분수부(謹次栗谷先生理一分殊賦)」 등이 있다. 시는 대체로 「총국(叢菊)」 , 「설중송(雪中松)」, 「영원중잡훼(詠園中雜卉)」, 「옥매화(玉梅花)」, 「산거(山居)」, 「춘우(春雨)」, 「산중즉사(山中卽事)」 와 같은 산수영물을 노래한 시들이 다수이며, 「근차중암김장무안야교운(謹次重菴金丈務安野橋韻)」, 「증김익경(贈金翼卿)」 등과 같은 동문이나 후학들에게 주거나 차운한 시들도 많다. 이외에도 「등월출산(登月出山)」, 「등무등산(登無等山)」, 「여대언등주작산(與大彦登朱雀山)」과 같은 주변의 명산을 기행한 기행시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나주와 강진이 동학군을 막아냈던 것을 쓴 고시 「금릉의사(金陵義事)」와 「금성행(錦城行)」도 있다. 또한 왜구와 양적이 인근 연해에 자주 출몰하며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을 걱정하는 우국의 감정이 담긴 「근문양적거흥양삼도인왕래연해 이심형세도박우강진남포 기의소재 효연가지 오인불행 당차조석 험화불가무정 견성인소위독신호학수사선도 차성제일의체 인송선사고산선생병인팔월 서시오당절구설 여서사제생경보기운 (近聞洋賊據興陽三島因往來沿海 以審形勢到泊于康津南浦 其意所在 曉然可知 吾人不幸 當此朝夕 險禍不可無定 見聖人所謂篤信好學守死善道 此誠第一義諦 因誦先師鼓山先生丙寅八月 書示吾黨絶句說 與書社諸生敬步其韻)」, 「문왜양추유력람연해제읍(聞倭洋醜類歷覽沿海諸邑)」 등도 있다.2권에는 상량문(上樑文) 2편, 명(銘) 6편, 잠(箴) 3편 기(記) 5편이 실려 있다. 상량문은 「대명동사당상량문(大明洞祠堂上樑文)」, 「봉양정사상량문(鳳陽精舍上樑文)」으로 모두 1877년 이후 강진 대명동에서 우거하며 후학들을 길렀던 공간에 지었던 건물들의 상량문이다. 잠은 「주일재잠(主一齋箴)」, 「지척잠(紙尺箴)」, 「독서잠(讀書箴)」 3편이며 기는 총 5편으로 대체로 대명동에서 후학들을 길렀던 한천정사에 대한 기문인 「한천정사기(寒泉精舍記)」, 문인인 경회 김영근의 서실에 쓴 기문인 「경회당기(景晦堂記)」 등이 있다.3권에는 서(序) 5편, 발(跋) 5편, 행장(行狀) 7편, 묘지명(墓誌銘)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서는 「존양신론서(尊攘新論序)」, 「강릉유씨종회안서(江陵劉氏宗會案序)」, 「백우후육심이연행향음례서(白虞候六十宴行鄕飮禮序)」 등 5편, 행장은 선고(先考) 휘 원(瑗)의 행장인 「선고삼산부군가장(先考三山府君家狀)」과 둘째 아들 봉식(鳳植)의 행장인 「차자봉식행록(次子鳳植行錄)」, 「차자봉식정종언행(次子鳳植正終言行)」을 비롯해 7편이 있다. 묘갈명은 괴은(槐蔭) 문사구(文思九)의 묘지명인 「괴은문공묘지명(槐蔭文公墓誌銘)」 1편이 있다.4권은 전(傳) 3편, 찬(贊) 2편, 제문(祭文) 15편이 수록되어 있다. 전인 「효자안공전(孝子安公傳)」, 「열부유인이씨전(烈婦孺人李氏傳)」, 「김경독재전(金耕讀齋傳)」 3편은 모두 효자와 열부에 대한 것이다. 찬은 화서 이항로 선생 화상(畫像) 대한 찬인 「선사화서이선생화상찬(先師華西李先生畫像贊)」과 제갈공명, 황패(黃霸), 육수부(陸秀夫), 윤곡(尹穀) 4명의 일화에 대한 찬인 「사현찬(四賢贊)」 2편이다. 제문은 스승 화서의 제문인 「제화서선생문(祭華西先生文)」, 「재제화서선생문(再祭華西先生文)」, 역시 스승인 고산의 제문인 「제고산선생문(祭鼓山先生文)」, 「재제고산선생문(再祭鼓山先生文)」, 스승 노사의 제문인 「제노사기선생문(祭蘆沙奇先生文)」, 동문인 중암의 제문인「제중암선생문(祭重菴先生文)」을 비롯하여 총 15편이 있다.5권부터 7권까지는 서(書) 98편이 있다. 5권에는 스승인 화서, 고산, 노사에게 올린 서간인 「상화서선생(上華西先生)」「상고산선생(上鼓山先生)」, 「상노사선생(上蘆沙先生)」과 동문인 중암에게 보낸 서간인 「상중암(上重菴)」 4편이 있고, 6권에는 사우 및 동문들에게 보낸 서간이 29편이 있으며, 7권에도 역시 사우와 족제 등에게 보낸 서간이 14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답이복여(答李服汝)」에서는 성과 의(意), 정(情)과의 관계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성(性)은 심(心) 중에 갖추어진 이(理)이자 아직 발현하지 않은 것이고, 정은 성(性)의 발현이요 심(心)의 쓰임이다. 의(意)는 정(情)에 묶여 계교상량(計校商量)하는 것이다[性者心中所具之理而未發者 情者性之發而心之用也 意者緣情計校商量者也]"라고 하여 서로의 관계를 정립하여 설명하고 있고, 간재 전우에게 보낸 「여전자명(與田子明)」에서는 간재의 성위심재설(性爲心宰說)을 반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외의 서간에서도 경학이나 성리학적인 내용이 많아서 오남의 철학적인 견해를 엿볼 수 있다.8권에는 「지지설서증한천재제생(知止說書贈寒泉齋諸生)」, 「서증문충렬(書贈文忠烈)」 등 서증(書贈) 9편, 잡저 8편이 실려 있다. 잡저는 이후 9권부터 13권까지 29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9권에는 「경리관견(經理管見)」1편, 10권에는 「삼극도설(三極圖說)」, 「형이상하도변설(形而上下圖辨說)」 등 14편, 11권에는 「일감문답(一鑑問答)」 1편, 12권에는 「산중촉화(山中燭話)」, 「심자신지소주설(心者身之所主說)」 등 7편, 13권에는 「벽사설(闢邪說)」, 「통화변답(通貨辨答)」, 「농정신서서주변(農政新書序條辨)」 등 6편이 수록되어 있다. 대체로 후학의 교육에 관련된 내용이나 태극설(太極說)이나 성리설(性理說)과 같은 성리학적 견해를 논설한 것들이 많다. 또 「벽사설(闢邪說)」, 「통화변답(通貨辨答)」, 「농정신서서조변(農政新書序條辨)」처럼 정책적 견해를 논설한 것도 있다.세부목차卷 1賦 : 謹次朱子感春賦, 謹次栗谷先生理一分殊賦, 述懷賦, 肅艾賦, 菊花賦琴操 : 明洞琴操古詩 : 民之初生十四章, 大田三章, 南山四章, 採薇七章, 淸湖三章, 小兒歌習, 經業要辭, 金陵義辭五言古詩 : 續遠遊, 甲申三月十九日, 次紫極官韻, 新元吟贈小學諸童子, 偶吟示齋中諸生, 李兄白受(錫采)挽, 憶亡友文亮叔(基潁), 贈別崔秀才采佑七言古詩 : 次李无悶(喜冕)大明洞行, 大明紅, 題義僧靈圭碑, 題丁兄舜和(炫)鳳岡千洙堂, 自警吟, 落齒嘆, 錦城行五言絶句 : 山居(四首), 春日偶吟, 遣懷, 花樹亭次諸生韻, 叢菊, 雪中松, 遊修仁山謹次族祖放湖公(喜祖)韻, 除草(二首), 玉梅花, 登月出山(二首), 省坡州先墓, 明悶蒼碧亭謹次鼓山任先生韻(二首), 用韋蘇州韻詠夜, 聞書院毁薇之報, 詠園中雜卉, 大明洞山泉精舍雜詠(十二首), 大明洞林卉雜詠(二十六首), 明洞會事, 贈新谷主人(金璣烈), 山中卽事(二首), 春雨, 題張慶先畵卷, 謹次重菴金丈務安野橋韻, 謹次重菴丈惠贈大明洞韻(二首), 白虞侯(基虎)挽(十首), 上天吟(五首), 寒泉齋與諸生和吟(三首), 過長水洞悼亡友宣敬集(翼欽), 偶吟, 立春雨後偶吟(二首), 無題, 送金德文(永奎)兼寄韓守奉官敬熙(昌壽)七言絶句 : 錄先考三山府君家狀志感, 石實道中作, 過麻貴坪, 仲秋月夜聞長兒麟植誦濂洛風雅, 和族弟新齋(漢驥), 見童子雙廊喜感而吟, 智海別重庵文丈, 姜處士(禹永)挽(四首), 贈別黃萄鍾五, 壁上揭日月二字, 近聞洋賊據興陽三島因往來沿海以審形勢到泊于康津南浦其意所在曉然可知吾人不幸富此朝夕險禍不可無定見聖人所謂篤信好學守死善道此誠第一義諦因誦先師鼓山先生丙寅八月書示吾黨絶句說與書社諸生敬步其韻(二首), 書社諸生俱讀孟子喜成一絶(時殷景乃範子見聖則文五同處), 草堂卽事, 鳳陽精舍雜詠(五首), 姑堊鳥(二首), 送大彦(魏琫植)乃晦(金永根)之雲潭, 贈任萄吾東(二首), 次重菴遺塚韻贈羅聖敎(有英三首), 題鳳岡精舍, 山家獨作, 和河巳千(正秀)之字韻五言律詩 : 偶吟, 書示諸生, 己丑立春感吟, 壬辰立春翌日吟, 贈心漁堂主人(金道淳), 贈魏大彦, 贈丁文玉(璨壽), 贈金翼卿(世輔), 庚寅陽月哉生明入處鳳陽精舍, 中元憶重菴先生, 仲秋上弦大彦來言所懷, 剝月望朝書示吳禮中(時榮)丁瑩汝(玟壽)金直卿(在植)李祥元(思圈)七言律詩 : 己卯暮春興省內諸賢會講道岬寺到大明洞和吟, 集古人詩句示諸生, 癸未至月謹次朱子寞灘韻, 謹次重翁贈別正三(金台漢)益進(韓學淵)韻, 到笛坪謹次南坡李丈(僖錫)書示韻, 奉和无悶李兄用其韻, 步錦坡李兄(秉燮)寄示韻, 遊舍人亭敬次原韻, 花樹亭次諸丈韻, 靜潭齋次主翁聞倭洋魏類歷覽沿海諸邑, 林德洪(炳鏞)來訪, 致圖(馬鍾河)讀心經汝仁(金世鉉)讀近思錄文萄忠烈讀論(高彦在)韻, 次崔氏(奎文)龍湖亭韻, 寄題心漁堂, 寄吳大集(成模), 登無等山, 贈別姨弟羅賢守, 語及諸隣兒讀小學作此志喜, 新元逢朗西諸友, 病中强吟, 輿大彦登朱雀山, 知足翁嘉顯(尹樂浩)誦退溪呈尹安東詩因命和之謹忘拙構呈卷 2上樑文 : 大明洞祠堂上樑文, 鳳陽精舍上樑文銘 : 約軒銘, 隧齋銘, 止一齋銘, 持敬齋銘, 母贊室銘, 復軒銘箴 : 主一齋箴, 紙尺箴, 讀書箴記 : 寒泉精舍實記, 首陽精舍記, 敬齋箴板重刊實記, 弘毅齋記, 景晦堂記卷 3序 : 尊攘新編序, 送陳子平(禹錫)歸皇朝村序, 江陵劉氏宗會案序, 寶巖坊約序, 白虞侯六十一宴行鄕飮禮序跋 : 敬題 永曆大統曆後, 敬題朱子五倫筆帖後, 敬畏箴跋, 書晩悔集後, 題河君巳千自敍賦後行狀 : 先考三山府君家狀, 再從叔仁山公(德鉉)行狀, 刑曹參議金公(相勉)行狀, 學生金公(鯨錫)行狀, 次子鳳植狀錄, 次子鳳植正終言行, 十一代祖月峯府君謚狀本草墓誌銘 : 槐蔭文公(思九)墓誌銘(幷序).卷 4傳 : 孝子安公(世龍)傳, 烈婦孺人李氏傳, 金耕讀齋(日淳)傳贊 : 先師華西李先生畵像贊, 四賢贊祭文 : 祭華西先生文, 再祭華西先生文, 祭鼓山先生文, 再祭鼓山先生文, 祭蘆沙奇先生文祭重菴先生文, 祭族大父同知公(瑾)文, 祭齋鄭公(在弼)文, 祭茶欄魏兄(榮馥)文, 祭梧軒丁公(炫)文, 祭族弟新齋文, 祭剛軒丁君(炳序)文, 祭亡次子鳳植文, 祭亡長子婦丁氏文, 祭族孫鍾煥文卷 5書 : 上華西先生, 上鼓山先生(三), 上蘆沙先生, 上重菴(十三)卷 6書 : 上李黃溪(璞), 上李朗海(烋二), 與柳穉程(重敎四), 與崔參判(益鉉與二答一), 與宋祭酒(秉璿二), 答鄭國彦(在弼), 與魏芳瑞(榮馥), 答金子元(勳), 與洪汝章(大憲與一答一), 答李服汝(喜冕五), 答李敬述(孝植), 與田子明, 與洪思伯(任龜與一答二), 答柳聖存(基一), 與奇會一(宇萬三), 與宋燦五(鍾雲), 答朴應瑞(在麟), 與李致道(秉龜), 答族弟民受(永澤), 答宋致承(鎭鳳答一與一), 答金景三(在珪), 答崔德汝(潤燦), 答李進夏(三遠), 答金亨善(泰瑀), 答丁采文(炳序), 答尹士奎(柱璨), 答金贊炯(水), 答玄士明(在昇二), 答朴子善(熙元)卷 7書 : 答族弟台漢, 答魏衡良(三), 答郭洪翊趙宗九, 答魏琫植, 答族弟漢文(三), 答金永根(三), 答吳成模, 答崔根完(二), 答金世輔, 答白永昇(答一與一), 答金世鉉, 答黃明奎, 與天台山講會諸生, 寄長兒麟植卷 8書贈 : 知止說書贈寒泉齋諸生, 書贈郭昌欽, 讀禮說書贈朴秉洙, 書贈吳成模, 學顔說書贈韓學淵, 陽復說書贈黃明奎, 讀論語說書贈崔采佑, 書贈羅有英, 書贈文忠烈雜著 : 論天台講說, 寒泉齋夜講略辨, 寒泉齋約規, 寒泉精舍學規, 小學箚疑, 處巳常則, 寶巖坊契約, 小齋志喜卷 9雜著 : 經理管見卷 10雜著 : 三極圖說, 形而上下圖辨說, 朞圖解說, 日月會朔圖辨說, 土圭地中圖辨說, 律呂相生圖辨說, 卦變改正圖說, 心統性情圖辨說, 人物性同異圖辨說, 費隱圖辨說, 明德圖辨說, 大學全圖後說, 聖賢闢邪圖說, 聖賢傳敬圖說卷 11雜著 : 一鑑問答卷 12雜著 : 山中燭話, 心說集解上, 心說集解下, 心者身之所主說, 儒釋心學不同辨, 衣制辨答, 衣制辨說卷 13雜著 : 寅字說, 闢邪說, 通貨辨答, 異端總辨, 農政新書序條辨, 警示賊徒文
- 기사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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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卷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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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賦
- 琴操
- 古詩
- 五言古詩
- 七言古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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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言絶句
- 山居【四首】
- 春日偶吟
- 遣懷
- 花樹亭次諸生韻
- 叢菊
- 雪中松
- 遊修仁山。謹次族祖放湖公【喜祖】韻。
- 除草【二首】
- 玉梅花
- 登月出山【二首】
- 省坡州先墓
- 明岡蒼碧亭。謹次鼓山任先生韻【二首】
- 用韋蘇州韻詠夜
- 聞書院毁撤之報
- 詠園中雜卉
- 大明洞山泉精舍。雜詠【十二首】
- 大明洞林卉雜詠【二十六首】
- 明洞會事
- 贈新谷主人【金璣烈】
- 山中卽事【二首】
- 春雨
- 題張慶先【錫文】畫卷
- 謹次重菴金丈。務安野橋韻。
- 謹次重菴丈。惠贈大明洞韻【二首】
- 白虞侯【基虎】挽【十首】
- 上天吟【五首】
- 寒泉齋與諸生和吟【三首】
- 過長水洞。悼亡友宣敬集【翼欽】
- 偶吟
- 立春雨後。偶吟【二首】
- 無題【甲午六月二十七日】
- 送金德文【永奎】兼寄韓守奉官敬煕【昌洙】
- 菊花【三首】
-
七言絶句
- 錄先考三山府君家狀志感
- 石室道中作
- 過麻貴坪
- 仲秋月夜。聞長兒麟植。誦濂洛風雅。
- 和族弟新齋【漢驥】
- 見童子雙髻。喜感而吟。
- 智海別重菴文丈
- 姜處士【禹永】挽【四首】
- 贈別黃丱鍾五
- 壁上。揭日月二字。
- 近聞洋賊據興陽三島。因往來沿海。以審形勢。到泊于康津南浦。其意所在曉然可知。吾人不幸。當此朝夕險禍。不可無定見。聖人所謂。篤信好學。守死善道。此誠第一義諦。因誦先師鼓山先生丙寅八月書示吾黨。絶句說與書社諸生。敬步其韻【二首】
- 書社諸生。俱讀孟子。喜成一絶【時殷景乃範子見聖則文五同處】
- 草堂卽事
- 鳳陽精舍雜詠【五首】
- 姑惡鳥【二首】
- 送大彦【魏琫植】乃晦【金永根】之雲潭
- 贈任丱吾東【二首】
- 次重菴遺躅韻。贈羅聖敎【有英三首】
- 題鳳岡精舍
- 山家獨作【甲午七月。見朝報。志感】
- 和河已千【正秀】之字韻
- 五言律詩
-
七言律詩
- 己卯暮春。與省內諸賢。會講於道岬寺。到大明洞和吟。
- 集古人詩句。示諸生。
- 癸未至月。謹次朱子涒灘韻。
- 謹次重翁。贈別正三【金台漢】益進【韓學淵】韻。
- 到笛坪。謹次南坡李丈【僖錫】書示韻。
- 奉和无悶李兄用其韻
- 步錦坡李兄【秉燮】寄示韻
- 遊舍人亭。敬次原韻。
- 花樹亭次諸丈韻
- 靜潭齋。次主翁【高焉柱】韻
- 次崔氏【奎文】龍湖亭韻
- 寄題心漁堂
- 寄吳大集【成模】
- 登無等山【一名瑞石】
- 贈別姨弟羅賢守
- 聞倭洋醜類。歷覽沿海諸邑。
- 林德洪【炳鏞】來訪
- 致圖【馬鍾河】讀心經。汝仁【金世鉉】讀近思錄。文丱忠烈讀論語。及諸隣兒讀小學。作此志喜。
- 新元。逢朗西諸友
- 病中强吟【甲午】
- 與大彦。登朱雀山【甲午】
- 知足翁嘉顯【尹樂浩】誦退溪呈尹安東詩。因命和之。謹忘拙構呈。
- 卷之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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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2)
- 上李黃溪【墣】
- 上李朗海【烋】
- 上李朗海
- 與柳穉程【重敎】
- 與柳穉程
- 與柳穉程
- 與柳穉程
- 與崔參判【益鉉】
- 與崔參判
- 答崔參判
- 與宋祭酒【秉璿】
- 與宋祭酒
- 答鄭國彦【在弼】
- 與魏芳瑞【榮馥】
- 答金子元【勳】
- 與洪汝章【大憲】
- 答洪汝章
- 答李服汝【喜冕】
- 答李服汝
- 答李服汝
- 答李服汝
- 答李服汝
- 答李敬述【孝植】
- 與田子明【愚】
- 與田子明
- 答田子明
- 與洪思伯【在龜】
- 答洪思伯
- 答洪思伯
- 答柳聖存【基一】
- 與奇會一【宇萬】
- 與奇會一
- 與奇會一
- 與宋燦五【鍾雲】
- 答朴應瑞【在麟】
- 與李致道【秉龜】
- 答族弟民受【永澤】
- 答宋致承【鎭鳳】
- 答金景三【在珪】
- 與崔德汝【潤燦】
- 答李進夏【三遠】
- 答金亨善【泰瑀】
- 答丁采文【炳序】
- 答尹士奎【在璨】
- 答金贊炯【永煥】
- 答玄士明【在昇】
- 答玄士明
- 答朴子善【煕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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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2)
- 卷之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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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著
- 三極圖說
- 形而上下圖辨說
- 天軆至圓。周圍三百六十五度【九百四十分。爲一度。】四分度之一。【二百三十五分。】繞地左旋。常一日一周。而過一度。【驗經星則可知】日麗天。而小遲。故一日亦繞地一周。而在天爲不及一度。積三百六十五日。【九百四十分。爲一日。】二百三十五分。而與天會。是一歲日行之數也。書所謂朞。三百有六旬有六日是也。歲有十二月。月有三十日。三百六十。者一歲之常數也。故日與天會。而多五日。二百三十五分。爲氣盈合。朔虛而閏生焉。故三戯一閏。十有九歲七閏。則氣朔均齊。是爲一章。如以三百六十五日。二百三十五分。分配於二十四氣候。則一候所當。十五日。二百五分六釐强。自今歲年冬至。至明年冬至通計。則爲三百六十五日。二百三十五分。餘候皆倣此。但天度三百六十五度。二百三十五分。而小剩。歲日三百六十五日。二百三十五分。而不足。故天漸差而西。歲漸差而東。約七十五年而退一度。以今初昏中星驗之。與堯時不同者。職以此也。此歲差之所由說也。嗚呼。堯克明峻德。欽若昊天。曆象日月星辰。敬授人時。庶績咸熙。易曰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其斯之謂乎。
- 日月。俱右旋乎。左旋也。然則圖何以右旋乎。從推數之簡。如曆家退步之法也。按書傳。明魄朔望圖。則一日。十三度十九分度之七。【三百四十六分三釐一毫五絲八忽小餘】而今此圖。則云十二度三百四十六文三釐一毫五絲八忽者。抑何以歟。蓋月行一日。不及天。爲十三度十九分度之七。在日則不及。爲十二度十九分度之七。此以日月會朔爲圖。則以十二度十九分度之七。推數而後。至三十日四百九十九分。而月與日會。此不易之定法也。彼書傳所圖。名以明魄朔望。而以月不及天。十三度十九分度之七推數。故至二十八日已爲三百七十四度餘。於二十九日。以復行爲說。不亦苟且眩亂之甚乎。若此圖一覽。可以瞭然矣。日與天會。而成一歲三百六十五日二百三十五分者。一歲之常數也。月與日會。而成一月三十日者。一月之常數也。然未滿三十日。而至午時二十九分。【郞四百九十九】而合朔。則未滿爲四百四十一分。通計十二朔。則五千二百九十二分。如日法九百四十而一得五。不盡五百九十二分。是爲朔虛。是以合氣盈朔虛。而閏生焉。一歲閏率。則十日八百二十七分。此曆法之大略也。
- 周禮大司徒云。以土深正。日影以求地中。其法。樹八尺之臬。測夏至方午之影。而地中則其影。尺有五寸於地千里。差以一寸則尺有五寸。乃一萬五千里也。春秋分。則其影。爲七尺五寸。冬至則其影爲一丈三尺。蓋北極出地上。三十六度。其南五十五度。當嵩高之上。又其南十二度。爲夏至之日道。又其南二十四度。爲春秋分之日道。又其南二十四度。爲冬至之日道。又南下去地爲三十一度。合爲一百八十二度半强。而嵩高。正當天之中。是以周公營東都。立八尺之表於洛陽鄧城。且於其東西南北。各千里許。立四表。以夏至午中。測日影。中表。則其影正直。而爲尺有五寸。南表則近日。故其影差短。爲一尺四寸。而其地多厚。北表則遠日。故其影差長。爲一尺六寸。而其地多寒。東表則日已蹉過。故其影已夕。而其地多風。西表則日尙未及。故其影尙朝。而其地多陰。以此驗之。洛邑。是天地之中。而寒暑風雨。俱適中和。且四方朝聘貢賦。道里均終。繼天治人者。可不於此而定都哉。噫。今洋胡所謂。地球圖者。瀰滿於世。粗有眼者見之。誠未滿一笑。而然世之人。信以爲眞。口液津津。甚可痛惜。不必張皇引据。但以其圖言之。天下有五大洲。而三代洲。陽界也。二大洲。陰界也。陰陽二界。合爲一世。此誠萬賦近理。且所謂地中海者。在中國視之。則西域之外。極邊西海。而彼以陰陽二界。合爲一地。故反謂以地中。此亦萬賦近理。陽界人物。豈能通涉於陰界乎。如許誕妄。似不足惑人。而但聖學廢壞於俗好新奇。何哉。嗚呼。周公。聖人也。洛邑。地中也。攷之土圭。日影不差。驗之天時。寒暑均適。天象。焉可誣也。聖人。焉可侮也。洛邑之外。別有地中。非吾人所道。如周公家奴。起乎塚中。其所揮斥辨證。倘如何耶。
- 按書傳。律呂圖。陽律生陰呂。則曰下生。陰呂生陽律。則曰上生。此於陰陽之分。名義固嚴矣。然頗覺窒碍難通。今以愚見。更定此圖。直以數之多寡。爲生之上下。自蕤賓以後。上下之生。一切相反。莫無犯僭汰之誚耶。蓋黃鍾。爲律呂之祖。起數之始。而位子而主十一月。其長九寸三分。損一隔八。而下生林鍾。林鍾。位未而主六月三分。益一隔八。而上生林鍾。林鍾。位寅而主正月三分。損一隔八。而下生南呂。南呂。位酉而主八月三分。益一隔八。而上生太簇。太簇。位辰而主三月三分。損一隔八。而下生應鍾。應鍾。位亥而主十月三分。益一隔八。而上生蕤賓。蕤賓。位午而主五月三分。益一隔八。而上生大呂。大呂。位丑而主十二月三分。損一隔八。而下生夷則。夷則。位申而主七月三分。益一隔八。上生夾鍾。夾鍾。位卯而主二月三分。損一隔八。下生無射。無射。位戌而主九月三分。益一隔八。而上生仲呂。仲呂。位已而主四月。此則呂氏春秋。淮南子。及通典諸說。皆然。但司馬氏律書。漢前志所論。與書傳律呂圖相合。若究其實。則律呂相生之妙。不害爲同。而但上下二字。名義相悖。且漢前志所論。三分蕤賓。損一下生。大呂以下等語。與律呂本法。節節不合。何者。蕤賓之數。六寸二分餘。而若三分損一。則當爲四寸一分餘。何以爲大呂之八寸三分乎。此不過以陽生陰爲下生。陰生陽爲上生。信筆書之。而不識蕤賓。復上生之妙也。大抵律呂起數。自黃鍾爲始。左旋而至應鍾而終焉。黃鍾九寸。大呂八寸三分餘。太簇八寸。夾鍾七寸四分餘。姑洗。七寸一分。仲呂。六寸五分餘。蕤賓。六寸二分餘。林鍾。六寸。夷則。五寸五分餘。南呂。五寸三分。無射。四寸八分餘。應鍾。四寸六分餘。隔八相生。以次漸短。由是觀之。大呂於蕤賓。爲上乎。爲下乎。不待費說而可知矣。是以。自黃鍾。至姑洗。皆爲下生。自仲呂至應鍾。皆爲上生。謂之上者。以在已之上也。此皆法象自然之妙。而非誰可以强名之也。縱不能精於律呂者。此等梗槩。亦可類推。
- 謹按性理大全。考占變三十二圖。竊有未分曉處。以第一圖言之。中孚。當在第三層。大畜。當在第四層。而俱反居於第二層。損當在第三層。而反居於第二層。餘圖。皆一例此。恐非朱子手畫定本。而必是後人傳寫之誤無疑。蓋乾之一爻變、則自姤至夬。得六卦。二交變則自遯至大壯。得十五卦。三爻變則自否至泰。得二十卦。四爻變則自觀至臨。得十五卦。五爻變則自剝至復。得六卦。六爻變則坤一而已。自坤而反推之。亦如此。是以姤遯否觀剝。與乾而爲一行。復臨泰大壯夬。與坤而爲一行。首末相應。對偶不紊。各有條理。各有次序。有自然不可易之定位。而決非人巧所可安排者。愚不揆僭猥。改定爲圖。朱子之意。正當如是云。後三十一圖。亦以此例推之。其庶矣乎。
- 程子曰。心也。性也。天也。一理也。自理而言。謂之天。自稟受而言。謂之性。自存諸人而言。謂之心。此言人之所得乎天而主乎一身者理也。張子曰。由太虛有天之名。由氣化道有之名。合虛與氣有性之名。合性與知覺有心之名。此從一理上漸細分說。出氣化非道。所以氣化者乃道也。如所謂一陰一陽之謂道。性卽理也。而所掛搭者氣質。故謂之合也。氣字。特帶去說、非謂理與氣。均半襯合。而爲性。性之發爲情。而情乃知覺底物。合性與知覺。卽心統性情之謂也。朱子曰心如水。性猶水之靜。情則水之流。此言心之統性情。猶水有靜動。而性是心之軆。情是心之用也。合此數說而觀之。則心性情。名義軆統。槩可知矣。蓋心之全軆。湛然虛明。萬理具足。隨感而應。妙用不測。以其未發而全軆者言之。則性也。卽健順五常之理。乘氣而靜者也。以其已發。而竗用者言之。則情也。卽喜怒哀懼愛惡欲之理。乘氣而動者也。心統性情云者。只就混淪一物之中。指其未發已發而爲言耳。非是心是一箇地頭。性是一箇地頭。情又是一箇地頭。如此懸隔也。理則純一無雜。氣則有萬不同。故淸者智而濁者愚。粹者賢而駁者不肖。是以有聖凡心不同之說。而然及其未發。氣不用事。故雖濁駁之甚者。無惡可言也。及其已發。知覺不同。而善惡判焉。其原於性命之正者。曰道心。道心之發。非不乘其氣。而特純乎天理者也。如惻隱仁之端。羞惡義之端。辭讓禮之端。是非智之端。與夫愛敬忠悌之類是也。其生於形氣之私者則曰人心。人心之發。非不原於理。而特所感者形氣也。如口之於味。鼻之於臭。目之於色。耳之於聲。四肢之於安佚。精盛思室。飢欲食。寒欲衣之類是也。然人心也。有天理焉。有人欲焉。其發也。循乎天理。則爲善。如富食而食。當衣而衣。視聽言動之俱以禮也。此孟子所謂形色。天性也。惟聖人然後。可以踐形也。徇乎人欲則爲惡。如不當食而食。不當衣而衣。視聽言動之俱以非禮也。此孟子所謂飮食之人。則人賤之矣。爲其養小而失大也。人心者。形氣之私也。道心者。天理之公也。七情者。人心道心之總名。四端者。七情中善情之一名。人心道心。固可以對言。七情四端。不可以對言。猶性與情。固可以對言。而心與性。不可以對言也。世之學者。不能深究乎此。而遂以心性判作兩段。動輒曰心卽氣。而性卽理也。且創爲性爲心宰之說。以粧點理爲氣主之案。若果爾則是性却統心也。心統心性情之妙。更於何推覓。而朱夫子。主宰是心之說。反顚倒無理。如使朱子家奴起乎今日。其將袖手含嘿乎。抑亦苦口辨誣乎。噫。人皆有是心。而不思已矣。朱子曰心之理。是太極。心之動靜。是陰陽。蓋人心之有寂感。如太極之有動靜。而爲一身之主。萬化之本。心與太極。其實一也。故曰心爲太極。又曰惟心無對。
- 朱子曰。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氣以成形而理亦賦焉。於是。人物之生。因各得其所賦之理。以爲健順五常之德。觀此。可知其物無不具五常之性。而性無不具五常之理也。何者。陰陽五行。若闕一便。生物不得。而纔有是氣。已有是理。理則一本。而氣則萬殊。故所乘之理。亦自不同。以兩儀言之。則陽之理健。陰之理順。以五行言之。則木之理仁。金之理義。火之理禮。水之理智。土之理信。自異軆而觀之。則健順五常。似各自爲一德。而自一統而言之。則健順五常。便俱是一理也、故乾健坤不同。而乾曰元享利貞。坤亦曰元享利貞。水之潤下。火之炎上。木之曲直。金之從革。不同。而仁義禮智。無一行不具也。如木主乎仁。而禮是仁之享通底。義是仁之斷制底。智是仁之斂藏底。言之水火金土。無非此例。以此推之。覆載間。含生之物。外乎健順五常。而豈有所謂性哉。夫五常。一健順也。健順。一太極也。非太極之外。別有所謂健順五常。故曰萬物。同一太極。然理無形。故通。氣有形故局。健之理。卽順之理。順之理。卽健之理。是理之通也。陽自是陽。陰自是陰。是氣之局也。非惟陰陽五行亦然。非惟五行人物亦然。人之五常之理。與禽獸草木無異者。理之通也。人則所稟之氣。秀而正通。故五常全明。禽獸則所稟之氣偏濁。故於五常。各有一線明處。如虎【狼稟木氣。偏勝於水火金土。而勝者常爲主。故粗通於父子之仁。而其他禮義智。更推不得。蜂蟻。稟金氣。偏勝於水火木土。而勝者常爲主。故粗通於君臣之義。而其他仁禮智。更推不得。餘物莫不皆然。】草木則所稟之氣。尤濁而質亦全塞。故五常全昧。若合下不賦者。皆氣之局也。徒知理之一原。而遂以爲人與禽獸草木之性。少無差別。則是不識萬殊之妙也。若然則孟子何以。而謂人犬牛不同乎。徒見氣質之各殊。而遂以爲人獨稟五常。禽獸或只稟一德。草木則本無五常。是全昧性命之理也。若爾則朱子何以。而有一寶珠之說乎。同中。須當識其異。異中。亦當識其同可也。由前一說。則此所謂論性不論氣。不備者也。由後一說。則此所謂論氣不論性。不明者也。不備猶未盡善。不明。却甚害道。蓋天地萬物。本吾一軆。吾之心正。則天地之心亦正。而天地位矣。吾之氣順。則天地之氣亦順。而萬物育矣。此聖人所以能盡已之性。盡人之性。盡物之性也。無他。性之理一故也。苟不備不明。則天地萬物。自與已不相干。而終陷於自私自利。是以學問之道。貴窮理盡性也。
- 道者。形而上者。卽理也。理有體用以言乎。用則其於日用事物之間。莫不各有當然之則。小子之學。則灑掃應對進退之節。愛親敬長隆師親友之道。皆是也。大人之道。則格致誠正修齊治平。皆是也。近而夫婦之所能知能行。遠而聖人之所不能盡。而其大無外。其小無內。可謂費矣。然其軆之所以然者。則非視聽所及。可謂隱矣。所以然者。本然之妙也。所當然者。當行之實也。此二者。雖有軆用之殊。而其實一理也。故曰君子之道。費而隱。然道不孤立。其未發也。乘氣而靜。其已發也。乘氣而動。氣卽形而下之器也。日用事物。形而下者。甚廣。而天理之當然者。流行昭著於其中。所謂費者。非指形而下之器。特就其上面。指其所當然之理也。若夫發見流行之際。或有不得其攸當者。卽氣不循理。自用所由。而殊非理之本然也。世之人。言必曰。理無爲而凡略涉於流行發見者。斷謂之氣。是於形而下裏面。不識天理流行當然之妙也。苟如此見。則太極。遂爲無用死物。而氣機自用也。其曰費。者亦不過爲形而下之器。君子之道。更無處說去。烏其可哉。
- 朱夫子於大學傳明德曰。明德者。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又嘗曰天之賦於人物者。謂之命。人與者受之者。謂之性。主於一身者。謂之心。有得於天而光明正大者。謂之明德。又曰這箇道理。在心裏。光明照徹。無一毫不明。又曰人本來皆具此明德。德內便有仁義禮智四者。只被外者汨沒了。不明。又曰明德。謂得之於已。至明而不昧者也。如父子則有親。君臣則有義。夫婦則有別。長幼則有序朋友則有信。初未嘗差也。苟或差焉。則其所得者。昏而非固有之明矣。又曰天之所以與我。便是明命。我之所得以爲性者。便是明德。命與德。皆以明言。
- 是這箇物。本自光明。又曰這箇道理。光明不昧。方其未接物時。此理固湛然淸明。及其隨事應接。此理亦隨處發見。又曰明德未嘗息。時時發見於日用之間。如見非義而羞惡。見孺子入井而惻隱。見尊賢而恭敬。見善事而歎慕。皆明德之發見也。聖人訓語。如是詳盡。不一而足。學者於此。誠能反復軆驗。則庶可知明德之爲何。而竊不可以妄以已意。揣摩杜撰也。然先儒。以氣之本然。謂明德者有之。此於朱子之訓。當乎否乎。且有以明德謂理。而虛靈不昧。則屬之於氣。是亦未深信乎此理本自光明不昧也。蓋天之所賦者。元享利貞也。此所謂明命也。人之所得以爲性者。仁義禮智也。發而爲情者。愛恭宜別也。這箇道理。統軆用而本虛靈不昧。此所謂明德也。明德者。卽心統性情之謂也。虛靈不昧。是神明之變文。以此心軆用全部。而言具衆理應萬事。就全部中分。全軆大用而言。然不曰心。而曰明德者。心之發處。固有人心道心之別。公私善惡之可言者。惟此明德。單指其本然善心。卽仁義禮智之心。發而爲惻隱羞惡恭敬是非之類者也。大舜所謂道心。孟子所謂本心。皆指此明德也。此人人所同得。而非有我之所得私也。明德之無分數者。此其然也。且人物之生。莫大具有健順五常之德。而人則所稟之氣。正且通。故五常之德。無一不明。物則所稟之氣。偏且塞。故不能有以通貫乎五常之全德。而或偏明焉。或全昧焉。故於人。則謂明德。而於物則不當謂明德。此所以人爲萬物之靈也。是亦不可以不知。■按德內。便有仁義禮智四者。與性中。只有箇仁義禮智四者。語意正同。這箇道理。在心裏光明照徹。卽太極。含具萬理而爲萬化之者也。
- 右圖。本朱子所排定。而就中物格知至。至身修爲知所止者。與大學章句所訓不同。故今依章句改修。得無太僭率耶。蓋天降生民。莫不與之以明德。惟其氣拘欲蔽。不能皆有以明善。而復其初。是以聰明睿智之聖。生當君師之位。先明其德。而使天下之人。皆明其德。此之謂明明德新民也。若不能窮理以致其知。則無由以進德修業。故知止爲始。能得爲終。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明明德之事也。齊家以下。新民之事也。物格知至。則知所止矣。意誠以下。皆得所止之序也。所止者何。至善之所在。而至善。十分恰好之謂也。總而言之。則明明德新民。皆當止於至善。分而言之。物格也。有至善知至也。有至善。意誠以下。亦皆然。若到九分九釐。而未塵一釐。不可謂至善也。三代盛時。莫不有學。治隆俗美。周室寢衰。德敎不明。夫子生於是時推明大學敎人之法。以詔諸子。而曾子之徒。作爲傳義。以承其統。及孟子沒。而無傳焉。千四百年之後。程朱子出。表章訓解。使斯道復明。猗歟休哉。蓋此德明。則天下治。此德不明。則天下亂。明明德三字。大學一篇之綱領。而實天下萬世敎人之大法也。
- 夫邪說者。害人心之蟊賊。塞正路之蓁蕪也。從古以來。若此之類。不一其端。而凡異於聖人之道者。摠謂曰異端。且雖云學儒者。雜以異端。則亦邪說也。是不容於先王之誅者也。若唐虞之際。有共工。巧令。孔壬驩兜。黨惡濟姦。崇鯀。方命圮族。三苗。反道敗德。故帝舜。施流放竄殛之典。周公。驅飛廉於隅而戮之。其憂世愛人深且至矣。周公歿。聖人之道不行。邪說害人。雖有孔孟之聖。不得君師之位。旣莫得而誅之。而只異空言嚴斥。然由此而天理明。人心正矣。如五覇者。假仁義而尙權詐。三王之罪人也。是以仲尼之徒。無道桓文。如老子者。妄言道德。而專尙虛無。又雜以權詐。其流爲楊朱之爲我。莊列之說詭誕。蘇張之縱橫。申韓之刑名。方士之修練。而墨氏愛無差等。告子生之謂性。以上數者。皆率天下而禍仁義。且鄕原者。闇然媚世。似德而非德。故一切深惡。而痛絶之。此之謂惟仁者能惡人也。洙洒世遠。聖人之學不傳。而世之學者。高者入於異端虛無。卑者。溺於記誦詞章。如筍卿楊雄之徒。雖稱儒者。然擇焉而不精。語焉而不詳。筍卿。以性爲惡。以禮爲僞。大本一差。安謂知學。楊雄。溺志詞章。濡跡亂賊。而已不識性。更說甚道。西漢以來。專尙老莊。而不失儒者規模者。惟董子而已。其言曰。正其誼不謀其利。明其道。不計其功。又曰仲尼之門。五尺之童。羞稱五覇。若非見道分明。安能說得乃爾。曁于東漢。佛入中國。而自後老佛並熾。亂亡相尋。昌黎韓子。著原道一篇。惟本二帝三王孔孟相傳之統。而辨斥老佛之非。欲人其人而火其書。其功亦孟子後一人而已。如王通。好處雖多。但大本領處。不曾理會。而妄自尊大。續經之類。如小兒堅屋。亦甚亂道。王安石之學。如捕風捉影。好高自大。妄解古經。而然略未有實見做得。譬若塔上相輪。對望而語屋。蘇軾。早拾蘇張之緖餘。晩醉佛老之糟粕。而且打破敬之說。凶險悖理。卽聖門之一反逆爾。故朱子以爲東坡學術之害。不在荊公之下。斥之甚嚴。至若陸九淵。自以爲尊德性。則雖不道問學。自有頓悟之道。此卽禪家圓覺閃爍底影子也。捷徑一開。江西一派。靡然宗之與朱門不相合。如告子之於孟子爾。朱子乃苦口湥排。不少假借。而然其徒私相傳授。至於陳憲章王守仁。而其說極矣。其害深矣。蓋百種邪說。不可勝數。而究其本原之差。則終不出於形氣利欲之窠臼也。向非洛閩諸子。闢而廓之。聖學何由以明。入紀何得以正乎。噫。今洋胡邪學。其無倫之說。滅盡天理。潛通貨色。壞喪人心。其禍也甚於楊墨老佛而戎狄之醜者也。禽獸之尤者也。自生民以來。天下之大亂。未有若是之甚也。朱子嘗曰邪說害正。人人得以攻之。不必聖賢。如春秋之法。亂臣賊子。人人得以誅之。不必士師也。則不能攻討而叉唱爲不必攻討之說者。其爲邪詖之徒。亂賊之黨。可知矣。聖人救世立法之意。其嚴如此。執此以言。則今之能言距洋學者。聖人之徒也。謂之不必然者。皆滛邪之徒也。
- 蓋自上古。聖神繼天立極。而道統之傳有自來。斯道何謂也。健順五常。天之明命也。三綱五倫。天之敘典也。命德計罪。天之常理也。自理而言。謂之天。自人稟受而言。謂之性。自存諸人而言。謂之心。心卽一身之主宰。而語其全軆。則寂然不動之中。無一理之不具。語其妙用。則感而遂通之際。無一事之不應。是以君子常存敬畏。以立其大本。及其發也。精以察之。一位守之。敬又一心主宰。而貫動靜該軆用者也。黃帝丹書。始發其端。蓋敬勝怠。則克明厥德。而萬善從此而生。所以吉也。怠勝敬。則其德反昏。而百惡從此而生。所以滅也。只此一敬字。實萬世心學之淵源也。自是以來。唐虞三代。魯鄒諸聖。旣皆以而相傳之。至于有宋濂洛關閩諸子。亦皆以而續夫千載不傳之緒。則天下之善德。豈有以加於此哉。夫主一無適。敬之要法。酬酢萬變。敬之活法。未知者。非敬無以知之。旣知者。非敬無以守之。歷選千古。先聖後聖。其揆一也。以此而學焉。當戒懼愼獨。而造次必於是。顚沛必於是。則雖愚柔之資。可以變化氣質。涵養德性。而將八於聖賢之域矣。若謂以敬不足行。而任情循欲。不畏天命。不謹人紀。則是喪其本心。而終爲下愚而已。雖聖人與居。不能化以八也。克念作聖。罔念作狂。正此類之謂也。故程子。甚愛表記。君子莊敬日彊。安肆日偸之語。而曰敬義夾持。可以上達天德。朱子亦嘗曰。敬者。聖學之所以成始而成終者也。兩賢豈欺余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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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