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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포집(南圃先生集)
  • 권11
  • 경의설(經義說)
  • 한거지(閒居誌)

남포집(南圃先生集) / 권11 / 경의설(經義說)

자료ID HIKS_OB_F9008-01-202202.0012.0001.TXT.0005
한거지
시골 노인이 평소에 성질이 졸렬하고 어그러져 인간 세상에서 부앙(俯仰)할 수 없었다. 나이 40에 비로소 들판의 남쪽에 집을 지어 '남교(南郊)'라고 하고, 반무(半畝)의 채소밭을 일구어 스스로 만족하고 살면서 또 '노포(老圃)'라고 불렀다. 집 주변에 언덕이 있는데 모두 9개여서 혹자는 '구고주인(九臯主人)'이라고 불렀고, 집 뒤에 푸른 소나무를 손수 심어놓고 그 집을 '만취(晩翠)'라고 전각하였다. 작은 채는 직각으로 네모지고 겨우 무릎을 허용하였는데 그 벽에 '직재(直齋)'라고 써 놓았고, 이웃 학생이 두 개의 언덕에 서실을 지어놓고는 '양정(養正)'·'열락(悅樂)'이라고 하였다. 거처하는 곳에는 이름난 산과 아름다운 강이 없어서 바탕이 소박하기가 마치 그 사람과 같다고 하여 혹 '야옹(野翁)'이라고 칭하였다. 야옹은 일찍이 책보기를 좋아했는데 병치레가 잦아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없어서 서가에 수백 권을 꽂아두고 때때로 열람하여 단지 우리 마음의 기(氣)에 물을 대줄 뿐이었다. 나머지는 심사숙고의 뜻을 붙이지 않았는데 천연(天然)의 뜻에 병통이라고 여겼으니 대개 성품이 그러하였다.
성품(性品)을 기르는 방법을 대충 깨닫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기가 거칠어서 정진(精進)할 수 없었고,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때때로 혹 참여하여 들었지만 나태하고 둔하여 실행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행동이 온통 어둡고 졸렬하여 사람들이 모두 그르다고 하고 단점으로 여겨도 효효(囂囂)주 34)하였으니 대개 그의 뜻이 너그럽고 느슨했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책상 정리를 하고는 묵연하게 정좌(靜坐)하여 마치 의도가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실제는 얻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침잠하여 시를 읊어 기(氣)를 펼치고 우주(宇宙)를 살펴보고는 운행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고, 고금(古今)을 통달하였어도 그 귀착점은 즐기는 것에 참여함이 없었다.
봄에 채소가 채원에 가득하고 가을 곡식이 밭에 가득함에 이르러서는 혹은 대나무 지팡이와 짚신을 신고, 혹은 작은 아이와 파리한 말을 타고 풀잎에 이슬 맺힌 들녘 사이를 다니며 시를 읊으니 그의 즐거움은 농포(農圃)에 있는 것 같았다. 온화한 바람이 꽃을 재촉하고, 드러난 하늘에 달이 흘러가면 가야금 한 번 타고 술 한 잔 마셨는데 스스로 술을 따르고 스스로 가야금을 켜고 좌우에 관동(冠童)이 노래를 부르고 시를 읊어서 그의 환락을 도우니 그의 즐거움은 가야금과 술에 있는 것 같았으며 혹은 맑은 강에 달이 뜨면 비록 멀더라도 반드시 가서 암학(巖壑)에서 느긋하게 소요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으니 아마도 산수를 즐기는 자가 아니겠는가? 그 사람의 즐거움은 저절로 그에 맞는 즐거움이 있으니 반드시 깊이 구별할 필요는 없다.
그 마음에 대해서는 항상 그의 입으로 말하기를 "지극히 높은 것은 하늘이요, 지극히 넓은 것은 땅이지만 일원(一元)주 35)의 뒤에는 다 매몰되고 사라져서 그 자취 또한 청소해 버린 것처럼 될 것이니 하물며 우리 인간은 작기가 한 덩어리의 고깃덩어리라서 100년을 살지 못하고 흙과 함께 썩으니 어찌 스스로 있다·없다 할 것이 있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나에게는 또한 천지와 그 이치를 함께 하는 것이 있으니 밝고 밝은 마음의 사이에 붙어서 선을 기르고 확충해 간다면 천지만큼 높고 큼을 채워서 일원(一元)과 더불어 처음과 끝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려(思慮)가 여기에 이르면 저 뜬구름 같은 세상의 근심과 즐거움, 우연히 찾아오는[倘來]주 36) 비방이나 명예가 어찌 그의 즐거움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몇 가지 즐거움은 백 년의 한가로운 마음을 맡길 수 있을 것이고, 뒤에서 언급한 마음의 즐거움은 천지의 묘용(妙用)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모아서 정리하여 〈한거지(閑居誌)〉에 쓰지 않겠는가?
을사년(1665, 현종6) 3월 10일 구고주인(九臯主人) 쓴다.
주석 34)효효(囂囂)
스스로 만족하여 욕심이 없는 모양을 말한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어떻게 해야 효효할 수 있느냐는 송구천(宋句踐)의 질문에 맹자께서 말씀하기를 "덕을 높이고 의를 즐거워하면 효효할 수 있다.[尊德樂義, 則可以囂囂矣.]"라고 하였다. 이에 대한 조기(趙岐)의 주에 "효효는 스스로 만족하여 욕심이 없는 모양이다.[囂囂, 自得無欲之貌.]"라고 하였다.
주석 35)일원(一元)
송(宋)나라 소옹(邵雍)이 주장한 '원회운세(元會運世)'의 설에 나오는 용어로, 이 세계가 생성했다가 소멸하는 1주기(周期)를 말한다. 그 학설에 따르면 30년이 1세(世), 12세가 1운(運), 30운이 1회(會), 12회가 1원(元)이니, 일원은 모두 12만 9600년이 된다. 《皇極經世書 권2 纂圖指要下》
주석 36)당래(倘來)
당래(儻來)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자신의 몸에 우연히 찾아오는 것을 이른다. 《장자》 〈선성(繕性)〉의 "요즘 사람들은 높은 관직을 얻고는 뜻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몸에 속한 것이지 성명(性命)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서, 우연히 찾아와 몸에 잠깐 붙어 있는 것이다.[今之所謂得志者, 軒冕之謂也, 軒冕在身非性命也, 物之儻來寄也寄之.]"라고 보인다.
閒居誌
郊老平日。 性質拙訛。 不能俯仰於人間世。 其年四十。 始築室于郊之南。 仍號'南郊'。 半畝蔬園。 自足爲生。 又號'老圃'。 宅邊有臯凡九墩。 或稱'九臯主人'。 屋後手種蒼松。 篆其軒曰'晩翠'。 小室直而方。 僅取容膝。 題其壁曰'直齋'。 隣生葺書室于二臯。 曰'養正'曰'悅樂'。 所居無名山佳水。 質素如其人。 或稱曰'野翁'。 翁嘗好看書。 多病未能劇讀。 架有冊數百卷。 有時披閱。 只取有灌漑吾心氣而已。 餘不着意苦思。 以病其天然之志。 盖性然也。 養性之方。 非不粗覺而氣麤不能精進。 治心之法。 時或預聞而懦鈍不能力行。 是以行之多暗劣。 人皆非短之。 亦囂囂焉。 盖其志寬緩故也。 嘗淨掃庭室。 几案斯整。 默然靜坐。 若有所思。 而其實無味乎所得矣。 沉吟叙氣。 俛仰宇宙。 繹思運意。 通達古今。 而其歸無預於所樂矣。 至於春蔬滿圃。 秋糓盈疇。 或竹杖草屨。 或短童羸馬。 行吟於野田草露之間則其樂似在於農圃矣。 和風促花。 露天流月。 一琴一樽。 自酌自彈。 而左右冠童。 咏歌吟詩。 以助其歡則其樂似在於琴酒矣。 而或泛月淸江。 雖遠必臻。 優遊巖壑。 不憚其勞則無乃樂於山水者耶? 其人之樂。 自有其樂。 不必深辨。 其心常語其口曰: "至高者天。 至大者地。 而一元之後。 澌盡泯滅。 其迹如掃。 况吾人眇然一塊肉。 未及百年。 與塵土同朽者。 何足自以爲有無哉? 雖然在我者。 亦有與天地同其理者。 昭昭然寄寓於方寸之間。 善養而擴充之則可以塞天地之高大而與一元同終始矣。" 思慮之至此則彼浮世之憂樂。 倘來之毁譽。 豈足以動其樂哉? 然則前所稱數者之樂。 足以寄百年之閒情矣。 後所稱方寸之樂。 可以達天地之妙用矣。 合而收之。 書用誌哉? 乙巳暮春上浣。 九臯主人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