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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7
  • 조수경한규에게 답함(答趙受卿瀚奎 ○丁丑)

후창선생문집(後滄先生文集) / 권7

자료ID HIKS_OB_F9002-01-201801.0007.TXT.0030
조수경한규에게 답함
근래에 일이 있어서 형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세 차례입니다. 《예기(禮記)》에서는 "예(禮)는 왕래하는 것을 숭상하니, 오기만 하고 가지 않으면 비례이고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 것 또한 비례이다"주 79)고 했습니다. 선사가 만년에 사방에서 편지로 질문하니 걸핏하면 글상자가 넘쳐서 뚜껑을 덮기도 어려웠습니다. 답장편지를 보낼 때면 크게 한숨을 쉬었지만 오히려 힘써서 대략 빠르게 답장하니 젊은 사람들도 고마워했습니다. 제가 형에게 세 번이나 편지를 보냈는데도 한 번도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생각건대 영남에서는 일반적인 학규(學規)가 다른 것이 있습니까? 선성(先聖)이 '예는 왕래를 숭상하고' 선사도 질문을 하면 반드시 답장했었던 도를 다시 바라지는 못하겠네요.
올 여름 초에 어쩌다 온 답장은 때가 지난 이후에 희망이 끊어진 나머지에서 나온 것이니, 그 놀라고 감격스러움은 옴에 따라 답장하는 일반적인 예에 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전에 있었던주 80) 치변(薙變)주 81)으로 인하여 몸을 숨기고 교제를 멈추어서 답장이 지체됨을 알았으니, 지난번 줄곧 망령되게 잘못 헤아려서 불공하게 생각한 것이 매우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런 변란에 대처하는 것이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멀리 옛사람을 예로 들 것도 없이 단지 요즘 세상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본디 수립한 것이 있어서 편안히 앉아서 초연히 면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우리 동문 같은 경우에 최경존(崔敬存)은 참으로 최상이었으니, 난리에 임하여 굽히지 않고 목숨을 버려 의를 취했고,주 82) 담양의 이복일(李復一)【이름은 광우(廣雨)이다. 내가 이절사전(李節士傳)을 썼다】과 진천(鎭川)의 정덕여(鄭德汝)【이름은 승원(升源)이다. 음성의 오진영이 정절사전(鄭節士傳)을 썼다. 내가 그 후론(後論) 중의 '말에 의를 해치는 것이 있다'고 논하여 음성 오진영에게 절의를 배척한 것이라 지목 당하였다】는 또한 씩씩했으니, 목을 찔러 거의 죽음으로서, 저들이 두려워하며 복종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고향의 안윤성(安允成)【이름은 재욱(在旭)이다. 내가 안의사시(安義士詩)를 썼다】은 더욱 기특합니다. 그간 숨어서 피하는 한 가지 일은 다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며 지나치게 염려하여 거의 여러 해 동안 편지도 끊고 왕래도 않고야 마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선사가 절애고도에 숨는 것보다 깊숙한 것은 없으나, 어찌 일찍이 이와 같이 하였겠습니까? 이설(異說)이 시끄럽게 날뛰는 것을 염려하고, 유학이 쇠락하는 것을 한탄함에 이르러 또한 홀로 선을 지키는 것주 83) 외에 세도를 근심한 것이 심원했음을 알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인자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제가 식견이 밝고 행실이 고망주 84)한 형을 위하여 깊이 생각하여 묘한 생각으로 구할 만한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헤아림에 도리에 어긋나는 실수를 하지 말고, 또한 즐겁지 않을까 두려워 화를 내지 않으며, 잘 안다고 하면서 말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또 두세 번 한두 개 문구의 타당치 못한 점을 개정하라는 것에 대하여 말단의 일이라 여기는데 실망했다고 하시니 제가 들은 것과는 다릅니다. 치평(治平)의 근본은 성의(誠意)에 있고, 성의의 방법은 스스로 부족한 것을 구하는데 있습니다. 작은 한 생각과 작은 한 이치와 용렬한 한마디 말에 대해서도 오히려 스스로 부족한 점을 구하는데, 하물며 문장이란 마음을 드러내고 이치를 나타내며 말의 정밀한 것이어서 더욱 구차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임에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천하에 심리(心理), 언문(言文), 자수(自修)의 공에 대해 실수가 있으면서도 세도(世道)를 붙잡은 자는 없습니다. 형께서 깊이 헤아려 비록 그 사람이 아니라 하고, 타당하지 않은 문장을 바르게 고치는 것을 말단의 일이라 여기며 그것을 실망했다고 말한다면, 또한 어찌 이치에 맞는 말이 되겠습니까? 형은 이 점에 대하여 만약 타당함과 타당하지 못함의 시비, 고침과 고치지 않음의 맞음과 그릇됨을 논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강론의 한 실마리가 되리니, 저는 마땅히 마음을 비우고 덮어놓고 따를지 어길지를 깊이 생각하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근본을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또 이미 대략적으로 판단하여 말하기를, "이때를 당하여 어찌 한가롭게 평상의 문구를 논함에 그치리오?" 라고 하였습니다. 논문은 제가 지난번 보낸 편지이고 제 평생의 뜻은 아닙니다. 오호라! '심상(尋常)'이라는 두 글자를 추론하여 말한다면 그 폐단은 이루다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선비가 의리를 엄하게 밝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교훈을 긴요하게 여겨도, '심상'이란 문구로 간주하여 수용한 것이 없음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눈앞에서 천지가 뒤집어지고, 부모와 스승을 적으로 여기는 문자에 이르러서도 또한 심상한 문구로 간주하여 변란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오늘의 나쁜 습관으로 이른바 유술을 떨쳐 일으키고 동문을 보합주 85)하려 한다면 결단코 이루어질 이치는 없을 것입니다. 비유컨대 종기를 치료함에 있어서 피고름과 썩은 살을 씻어버린 후에야 살이 생겨나서 피부가 온전히 붙을 수 있습니다. 만약 심상한 일로 보아서 다 제거하지 않고 간혹 나의 피와 살이라 여겨 감싸고 안타까워한다면, 살이 돋고 피부가 완전히 붙는 날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도 거의 드물 것입니다. 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석 79)예(禮)……비례이다
《예기(禮記)》 〈곡례상(曲禮上)〉편의 기록이다.
주석 80)간연(間緣)
불교철학에서 사람과 사물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연(緣)이라 하여, 인연(因緣), 등무간연(等無間緣), 소연연(所緣緣), 증상연(增上緣)으로 분류하였다. 등무간연은 직전의 원인으로, 불교의 찰나생멸(刹那生滅) 법칙에 의하면, 앞선 순간의 심적 활동은 그 다음 순간의 심적 활동이 일어나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편지에 답장하기 이전의 상황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주석 81)치변(薙變)
1895년 을미년에 시행된 단발령을 말한다.
주석 82)난리에 임하여 목숨을 버려 의를 취했고
1917년 왜정(倭政)이 전주에 잠업소(蠶業所)를 설치한다는 명목으로 대대로 전수해 온 대지를 매도하라고 요청했으나, 일제에 토지를 내줄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하자, 일제는 토지 수용령을 발동시켜 가옥을 모두 소각하였다. 최병심은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결사적인 단식 투쟁으로 이겨냈다. 만동묘(萬東廟) 철폐로 인한 정향(丁享) 문제로 항거하다가 왜경들에 의해 괴산경찰서에 10여 일 간 구속되기도 하였다. 한말 독립투사들의 비사(秘史)를 엮은 조희제(趙熙濟)의 《염재야록(念齋野錄)》에 춘추대의적(春秋大義的)인 민족자존의 의지를 밝힌 서문을 쓴 일로 조희제와 함께 임실경찰서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주석 83)독선(獨善)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곤궁해지면 자기의 몸 하나만이라도 선하게 하고, 뜻을 펴게 되면 온 천하 사람들과 그 선을 함께 나눈다.[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 하였다.
주석 84)고망(高望)
위고망중(位高望重)의 줄임말, 지위가 높고 명망이 크다는 뜻이다.
주석 85)보합(保合)
《주역(周易)》 건괘(乾卦) 단사(彖辭)의 "하늘의 도가 변화함에 각각 성명을 바르게 하여 큰 화기를 보전케 해 준다.[乾道變化, 各正性命, 保合大和]"라는 말을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는 동문의 성명을 바르게 하여 크게 화합하게 됨을 이르는 말로 사용하였다.
答趙受卿瀚奎 ○丁丑
頃因有事,致書于兄者,凡三度矣。禮曰: "禮尚往來,來而不往,非禮,往而不來,亦非禮." 先師晚年,四方書問,動輒溢篋,以艱於覆 答有時發書太息,猶必力疾略 謝及於少輩,而弟於兄三施,而一不見報,則意嶠之南 自有一般學規,有異乎? 先聖禮尚往來,先師有問,必答之道者,不復有望矣。
今夏之初,何來巍覆,出於過時之後,斷望之餘,則其爲驚感,已非隨往隨復恒例之可比。又以知間緣薙變,隱身息交,以致稽報,則深悚夫向來妄揣繆度之爲不恭也。然吾儕之處此變也,何至如是? 不待遠據古人,只以并世言之,素有樹立,安坐超免。若吾同門之崔敬存,則固太上也,臨難不屈舍生取義,若潭陽之李復一【廣雨 ○弟爲作李節士傳】,鎮川之鄭德汝【升源。○陰作鄭節士傳。弟論其後論中,語有害義者,被排節一之目於陰.】亦可壯也,刺頸幾殊,使彼畏服,若鄙鄉之安允成【在旭○弟爲作安義士詩】,更可奇也。其間隱避一事,又可爲也。然不宜惴惴過慮,幾多年斷書闕禮而後已也。夫隱莫深於先師之絕島,而何嘗如是乎? 至於慮異說之喧騰,歎儒學之衰獘,則又以見自守獨善之外,爲世道憂者深遠,此正仁者之心也。然而以弟爲識明行高望,其有深慮妙算之可救者,則非惟爲擬人不倫之失,亦恐有不恱者之移怒,而不得爲智者之言也。但又以再三改正於一二文句之未穩,爲末事,而謂之失望,則異乎吾所聞。夫治平之本,在於誠意,誠意之方,在求自慊,一念之微,一理之細,一言之庸,猶求自慊。而況文者心之著,理之顯,言之精,而尤不可茍焉者乎。
天下未有失於心理言文自修之功,而能扶世道者,則高明深妙,雖非其人,其以改正未穩之文爲末事,而謂之失望者,亦豈爲理到之言? 兄於此,若論穩與未穩之是非,改與不改之當否,則是固爲講論之一端,弟當虛心愼思以覆從違今也。不然,旣以改本爲善,而又槪斷之曰: "當此之時,何暇論尋常文句而止哉?" 論文固弟向日之書,而非弟平生之志也。鳴呼! '尋常'二字若推而言之,其獘有不可勝言者。今之士子,於嚴明義理,喫緊愛人之訓,旣不免看做尋常文句,而無所受用。至於目下有翻天地,賊父師之文字,亦且看做尋常文句,而不以爲變,由今之弊習,以求所謂振起儒術保合同門,則決無有成之理。譬如治瘇然,膿血朽肉消洗棄之,然後肌可生起,皮可完合。若視爲尋常,而不盡去,或認爲吾血肉,而護惜之,則不惟生起完合之無日,其不傷人也者 幾希矣,兄以爲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