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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1
  • 유사(2)(遺事(2))
  • 죽곡 이군 유사(竹谷李君遺事)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1 / 유사(2)(遺事(2))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21.0001.TXT.0012
죽곡 이군 유사
군의 휘는 승규(承奎)이고, 자는 내권(乃權)이며, 죽곡은 호이다. 이씨(李氏)의 선계는 광산(光山)에서 나왔으니,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휘 순백(珣白)이 그의 먼 조상이다. 휘 선제(先齊)는 호가 전문(蕇門)으로, 경창부원군(慶昌府院君)에 봉해졌고, 이분이 낳은 휘 조원(調元)은 호가 청심당(淸心堂)으로, 은일(隱逸)로 여러 번 부름을 받아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이르렀으며, 이분이 낳은 휘 호선(好善)은 호가 면재(勉齋)로,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성(大司成)을 지냈고, 이분이 낳은 휘 열(烈)은 호가 졸암(拙庵)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承旨)를 지냈으니, 이분들이 모두 그의 이름난 선조들이다. 고조 휘 영근(永根)은 호가 사촌(沙村)이고, 증조 휘 광우(光佑)는 호가 균헌(筠軒)이며, 조부 휘 면휘(勉徽)는 호가 묵재(黙齋)이다. 부친의 휘는 문호(文鎬)이고, 모친은 하동 정씨(河東鄭氏)로 지환(之煥)의 따님이다. 철종(哲宗) 임술년(1862) 12월 25일이 군이 태어난 날이다. 군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어 봉양하지 못한 것을 지극히 한스럽게 여기며 어머니를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집이 매우 가난하고, 자신 또한 병이 많았지만 온 힘을 다해 부지런히 일하여 봉양하였는데, 부인이 군에게 병이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군이 올린 맛난 음식을 간혹 도로 주면 군은 거짓으로 먹는 척하고 몰래 다른 그릇에 담아 두었다가 뒤에 다시 올렸다. 성품이 예의를 좋아하였고, 또 남의 위급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여 친척이나 친구의 상사(喪事)에 반드시 남보다 먼저 달려가서 온갖 의절을 몸소 직접 지휘하였으며, 관례와 혼례는 반드시 옛날 예법을 따랐고 구차스럽게 세속을 따르지 않았다. 고을에서 향음주례(鄕飮酒禮)와 향사례(鄕射禮)를 행하거나 의례를 강론하는 모임이 있을 때에는 심한 병이 아니면 반드시 가서 그 의례를 도왔다. 어떤 친척이 전염병으로 죽고, 그 가족들도 모두 한창 고통스러워하자 군이 그들을 위해 염습하여 관에 안치하였고, 영남 사람이 〈외필(猥筆)〉의 말을 가지고 노사(蘆沙) 선생을 무함하자주 20) 군이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무함을 변박하여 억울함을 푸는 일을 하려고 했다가 일이 가라앉음으로써 그만두기도 하였다. 군은 목소리가 크고 시원한데다 언사가 아름답고 뛰어나 분쟁을 해결하고 번거로운 일을 처리하는 데 넉넉하게 여유가 있었으며, 나이 많은 어른을 공경하고 벗을 추양함에 이르러서는 몸은 옷을 가누지 못할 듯이 하였고 말은 입에서 나오지 못할 듯이 하였으며, 자기의 가난함을 알지 못하고 남의 가난함을 근심하였고, 자기의 선행을 알지 못하고 남의 선행을 부러워했으니, 대체로 선행을 즐거워하고 인의를 좋아한 것은 본래 성품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병오년(1906) 4월 26일에 세상을 떠나니, 중산(中山)의 선영 임좌(壬坐) 언덕에 장사지냈다. 부인 함안 조씨(咸安趙氏)는 용희(鏞熙)의 따님으로 3남을 낳았으니, 철휴(哲休)ㆍ장휴(章休)ㆍ동휴(同休)이다. 아아, 군은 빼어나고 화락한 자질로 의기가 있고 기민함이 있어 함께 공부하고 선행을 할 만하였기에 내가 의지하며 만년의 벗으로 여겼는데, 만리를 굴러갈 바퀴가 반도 가지 못하고 갑자기 꺾일 줄 어찌 알았겠는가. 지금 그의 아들이 후세에 길이 전할 글을 부탁하니, 참담한 서글픔이 그날처럼 새로운지라 눈물로 붓을 적셔가며 그 대강을 기술하여 돌려주었다.
주석 20)영남 …… 무함하자
노사는 조선 말기의 성리학자인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호이고, 〈외필〉은 기정진이 81세 때에 문인 조성가(趙性家, 1824~1904)의 이일분수설(理一分殊說)에 대한 답설(答說)로 지은 글이다. 기정진은 〈외필〉에서 이이가 일찍이 언급한 "음양(陰陽)의 동정(動靜)은 기(氣)의 기제(機制)가 스스로 그러한 것이지 그렇게 하도록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명제에 대하여, 동정하는 자체는 기이지만 동정하게 만드는 것은 이(理)라고 단정함으로써 기의 자발성(自發性)을 비판하고 근원적인 이의 주재성(主宰性)을 강조하였다. 이 글이 알려지자 권봉희(權鳳熙), 권명희(權命熙) 등 영남 지역의 노론들 사이에서 율곡을 모욕했다고 하여 문집의 훼판(毁板)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한국문집총간 해제, 노사집, 노백헌집》
竹谷李君遺事
君諱承奎。字乃權。竹谷號也。李氏系出光山。尙書左僕射諱珣白。其遠祖也。有諱先齊。號蕇門。封慶昌府院君。生諱調元。號淸心堂。以隱逸累徵。至吏曹參議。生諱好善。號勉齋。文科大司成。生諱烈。號拙庵。文科承旨。皆其名祖也。高祖諱永根。號沙村。曾祖諱光佑。號筠軒。祖諱勉徽。號黙齋。考諱文鎬。妣河東鄭氏之煥女。哲宗壬戌十二月十五日。卽君之寅降也。早失所怙。未得逮養爲至恨。事母盡誠。家貧甚。身又多疾。而血力服勤。以就其養。夫人悶其有疾。所進甘毳。或反賜之。君佯若食之潛置他器。後復進之。性好禮。又好副人之急。親戚知舊之喪。必先人奔往。凡百儀節。躬親指揮。冠昏必依古禮。不爲苟且從俗。鄕坊行飮射講聚之儀。非甚病。必往以相其禮。有族人以染疾沒。其家又皆方痛。君爲之襲斂而殯焉嶺人以猥筆語。誣蘆沙先生。君不勝忿鬱。將爲辨誣伸枉之擧。以事寢而止。君聲音弘暢。言辭英發。解紛剸劇.恢恢有餘。而至於敬謹長老。推讓朋友。身若不勝衣。言若不出口。不知己貧而憂人之貧。不知己善而羨人之善。蓋其樂善嗜義。素性然也。丙午四月二十六日卒。葬中山先隴負壬原。配咸安趙氏鏞熙女。生三男。哲休章休同休。嗚呼。君以秀爽愷悌之姿。有氣義有機警。可與共學。可與爲善。余倚以爲晩年之契。豈知萬里之轍。未至半途而遽爾摧折哉。今於其遺胤不朽之託。悲愴如新。和淚泚筆。述其梗槩而還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