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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1
  • 유사(2)(遺事(2))
  • 심계 배군 유사(心溪裴君遺事)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1 / 유사(2)(遺事(2))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21.0001.TXT.0011
심계 배군 유사
내가 사는 시골 마을에 중년의 벗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배군 흥묵(裴君興默)과 문군 송규(文君頌奎)가 이들이다. 두 군은 한 무리 중에서 영특함과 빼어남으로 뜻을 함께 하고 학문을 같이 하며 맹렬하게 분발하여 기세를 떨쳐나갔으나 불행히도 모두 멀리 저 세상으로 떠난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하루는 배군의 조카 규덕(奎悳)이 찾아와 숙부의 행장(行狀)에 관한 글을 청하였다. 아, 내가 문군에 대해서는 사후의 글을 편술하여 그가 남긴 아들에게 부쳐주었지만, 유독 배군에 대해서만은 아직 짓지 못하고 있었다. 매번 군에 대해 아는 사람이 나만한 사람이 없는데 내가 늙어가는 것이 염려스러울 때마다 죽기 전에 그의 지조와 행적에 대한 사실을 기록하여 그의 집에 보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으니, 비록 규덕의 요청이 없다 하더라도 잊지 않고 있었던 일이었다. 군은 어려서부터 침착하고 조용한데다 단정하고 자상하여 유희나 장난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부모님 곁에 있을 적에는 응대하는 것을 조심하였고, 밖으로 스승에게 나아가서는 책을 읽는 데 매우 근면하였다. 그의 대인(大人) 은곡공(隱谷公)이 이를 기특하게 여겨 어린아이를 기르는 온갖 것을 한결같이 옛사람이 학문 하던 차례를 따르게 하였고, 과거 시험을 위한 문장을 지어 과거에 급제하거나 녹봉을 구하는 계책으로 삼지 않게 하였다. 조금 장성하여 문군과 종유하게 되어서는 서로 살펴보고 바로잡아 주면서 연마하고 훈도하여 서로 함께 날로 달로 매진하였다. 대체로 문군은 지혜가 열리어 도를 깨닫는 데 뛰어났고, 배군은 지조를 지키는 데 뛰어났으니, 이것이 서로 필요로 하고 도움이 되어 공공(蛩蛩)과 거허(駏驉)주 18)처럼 서로 없으면 안 되고 장님과 절름발이처럼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이유였다. 살펴보건대, 군은 평소 집에 거처할 때에 밤늦게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뜰을 청소하였고, 온화한 말과 기쁜 낯빛으로 어버이께 잠자리와 음식을 여쭈었다. 깨끗한 방 한 칸을 두어 사방 벽에 도서를 둘러놓고 구용구사(九容九思)와 〈동명(東銘)〉ㆍ〈서명(西銘)〉ㆍ〈경재잠(敬齋箴)〉주 19)과 같은 글을 좌우에 걸어 두거나 붙여 놓았는데 질서 정연하여 법도가 있었다. 매번 부지런히 일하고 여가가 있을 때마다 두 손을 맞잡고 단정하게 앉아 조용히 책을 대하면서 침잠하고 연구하여 밤으로 날을 이었으니, 대체로 거경(居敬)과 치지(致知)의 공부를 잠깐 사이에도 놓은 적이 없었다. 겸손함과 공손함으로 자신을 기르고 담담함과 침묵으로 스스로를 지키면서 강론하고 토론하거나 묻고 변별하는 것 외에는 한가로이 수작하는 말을 한 마디도 낸 적이 없었으며, 제멋대로 방자한 사람은 만나지 않았고 분분하게 다투는 곳은 가지 않았다. 그의 몸가짐이 구차스럽지 않음이 대개 이와 같았다. 아아, 이러한 사람이 있으면 이러한 뜻이 있고, 이러한 뜻이 있으면 이러한 학문이 있기에 앞날의 조예를 헤아릴 수 없었는데, 하늘이 수명을 빌려 주지 않아 중도에 떨어져 꺾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군의 처음 휘(諱)는 학순(學舜)이고, 자는 정일(正一)이다. 계보가 달성(達城)에서 나왔으니, 문양공(文讓公) 휘 지타(祗沱)ㆍ무열공(武烈公) 휘 현경(玄慶)ㆍ달성군(達城君) 휘 운룡(雲龍)ㆍ금헌공(琴軒公) 휘 정지(廷芝)ㆍ회은(晦隱) 선생 휘 문우(文祐)가 모두 상계(上系)의 현조(顯祖)이다. 우재(寓齋) 휘 두유(斗有)에 이르러 문과에 급제하여 찰방(察訪)을 지내다 장릉(莊陵 단종(端宗))이 임금 자리에서 물러나자 능주의 대곡(大谷)에 은둔하였고, 자손이 그대로 이곳에 거주하였다. 2대를 전해 내려와 휴재(休齋) 휘 상경(尙絅)은 문과에 급제하여 목사(牧使)를 지내다 혼조(昏朝 연산군(燕山君)) 때 벼슬을 그만두었다. 고조의 휘는 득효(得孝)이고, 증조의 휘는 이현(以絢)이며, 조부의 휘는 정채(廷綵)이다. 부친 휘 상섭(相涉)은 호가 은곡(隱谷)으로 세상에 은덕(隱德)이 있었고, 모친 영평 문씨(永平文氏)는 익충(益忠)의 따님으로 여사(女士)의 행실이 있었다. 정사년(1857) 8월 27일과 을축년(1889) 7월 26일이 바로 군이 태어나고 세상을 떠난 날이며, 묘지는 본주(本州) 동쪽 방축(防築) 안 사좌(巳坐) 언덕에 있다. 부인 남평 문씨(南平文氏)는 천호(天浩)의 따님이다. 뒤를 이을 자제가 없어 규덕의 동생 규상(奎祥)을 후사로 삼았다. 규덕과 규상이 한창 학문에 뜻을 두고 있어 군이 이루지 못한 뜻을 계승할 사람이 있게 되었으니, 이것을 써 보내어 더욱 힘쓰게 하였다.
주석 18)공공(蛩蛩)과 거허(駏驉)
공공과 거허는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전설상의 짐승 이름으로, 둘다 말 처럼 달리기를 아주 잘하여 항상 함께 붙어 다니면서 앞발은 짧고 뒷발은 길어서 달리지 못하는 짐승 궐(蟨)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궐을 등에 업고 달아나 궐에게 맛있는 풀을 얻어 먹었다고 한다. 《淮南子 道應訓》
주석 19)구용구사(九容九思) …… 경재잠(敬齋箴)
구용은 군자가 지녀야 할 아홉 가지 몸가짐으로, 《예기》〈왕조(玉藻)〉에"발은 진중해야 하고, 손은 공손해야 하고, 눈은 단정해야 하고, 입은 무거워야 하고, 목소리는 차분해야 하고, 머리는 곧아야 하고, 기상은 엄숙해야 하고, 자세는 덕스러워야 하고, 얼굴빛은 장엄해야 한다.[足容重, 手容恭, 目容端, 口容止, 聲容靜, 頭容直, 氣容肅, 立容德, 色容莊.]"라고 한 것이고, 구사는 군자가 지녀야 할 아홉 가지 생각으로,《논어》〈계씨(季氏)〉에 "볼 때는 밝게 볼 것을 생각하고, 들을 때는 밝게 들을 것을 생각하고, 얼굴빛은 온화할 것을 생각하고, 용모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고, 말은 진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일은 경건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의심난 것은 묻기를 생각하고, 화를 낼 때에는 어려움을 당할 것을 생각하고, 이득을 볼 때에는 의리에 맞는가를 생각한다.[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라고 한 것이다. 〈동명〉과 〈서명〉은 북송의 학자 장재(張載)가 서재의 동서 양쪽 창문 위에 걸어 놓고 재생(諸生)을 경계시킨 잠명(箴銘)으로, 〈서명〉은 하늘을 아버지로 삼고 땅을 어머니로 삼아 우리 모두가 한 형제라는 대동(大同) 사상에 입각하여 인의(仁義)에 어긋나는 완악한 자신을 바로잡는다는 뜻의 〈정완(訂頑)〉이라 했던 것이고, 〈동명〉은 어리석음을 고친다는 뜻으로 〈폄우(砭愚)〉라 했던 것인데, 이러한 이름은 논쟁의 단서가 될 수 있으므로 〈동명(東銘)〉과 〈서명〉으로 하자는 정이(程頤)의 제안에 따라 개칭한 것이다. 〈경재잠〉은 주희(朱熹)가 장식(張栻)의 〈주일잠(主一箴)〉을 읽고 경(敬)을 위주로 한 사언시 40구를 지어 자신을 경계한 글로, 《주자대전》과 《심경(心經)》에 수록되어 있다.
心溪裴君遺事
余在鄕里。有中年友二人。裴君興默文君頌奎是已。二君以一隊英秀。同志同學。蔚然奮張。不幸皆遠已久矣。一日裴君從子奎悳。來謁其叔父狀行之文。嗚呼。余於文君。身後文字。編述之。付其遺胤。而獨於裴君。尚闕焉。每念知君者莫如我。而我老矣。未死之前。思記其志行之實。以貽其家。雖靡奎悳之請。所不忘也。君自幼沈靜端詳。不好戱美。在親側。應對惟謹。就外傳。讀書甚勤。其大人隱谷公奇之。蒙養凡百。一依古人爲學之序。而不令做時文。爲覓科干祿計。稍長與文君遊。相觀相規。磨礱浸灌。我日斯邁。爾月斯征。盖文君長於開悟。裵君長於持守。此其所以相須而交資。如蛩蚷之不可以相無。瞽躄之不可以相離也。見君平日居家。夙興夜寐。灑掃庭除。溫言怡色。問寢問饍。置淨室一間。四壁圖書。如九容九思東西銘敬齋箴之類。左揭右貼。秩然有法。每於服勤之餘。高拱危坐。靜對方冊。沈潛硏究。夜以繼日。蓋其居敬致知之功。未嘗有須臾之間。謙恭自牧。澹黙自持。講討問辨之外。未嘗出一語爲閒酬酢。身不接放浪之人。足不踐紛競之地。其持身不苟。類如此。嗚呼。有是入而有是志。有是志而有是學。前頭造詣。有不可量。誰知天不假年。而中道隕折哉。君初諱學舜。字正一。系出達城。文讓公諱祗沱。武烈公諱玄慶。達城君諱雲龍。琴軒公諱廷芝。晦隱先生諱文祐。皆其上系顯祖。至寓齋諱斗有文察訪。莊陵遜位。遯綾之大谷。子孫仍居焉。再傳休齋諱尙絅。文牧使。昏朝解印。高祖諱得孝。曾祖諱以絢。祖諱廷綵。考諱相涉。號隱谷。世有隱德。妣永平文氏益忠女。有女士行。丁巳八月二十七日。己丑八月二十六日。卽君懸弧與屬纊也。墓州東防築內已坐原。配南平文氏天浩女。無嗣。以奎悳弟奎祥爲後。奎德奎祥方志于學。君未就之志。紹述有人。書此歸之。以增其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