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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1
  • 유사(2)(遺事(2))
  • 증 통정대부 덕재 윤공 유사(贈通政大夫德齋尹公遺事)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1 / 유사(2)(遺事(2))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21.0001.TXT.0007
증 통정대부 덕재 윤공 유사
공의 휘는 필중(必中)이고, 자는 익서(益瑞)이다. 윤씨(尹氏)의 계보는 파평(坡平)에서 나왔으니, 고려 태사(太師) 휘 신달(莘達)을 시조로 삼았으며, 문정공(文靖公) 휘 집형(執衡)ㆍ문숙공(文肅公) 휘 관(瓘)ㆍ문헌공(文獻公) 휘 위(威)가 모두 그 현조(顯祖)이다. 문헌공이 적을 토벌하여 남원(南原)에서 공을 세우고 남원을 식읍(食邑)으로 삼았기에 자손들이 그대로 이곳을 본관으로 삼았으며. 휘 만동(萬東)에 이르러 능주(綾州)에 우거하였다. 고조 휘 상양(商鍚)은 호가 신재(愼齋)로 은거하여 도의를 행하였는데, 언제가 한번은 흉년을 만나 한 마을의 조세를 대신 내주자 마을 사람들이 비(碑)를 세워 칭송하였으며, 참판(參判)에 증직되었다. 증조 휘 홍도(弘道)는 통정 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조부 휘 창종(昌宗)은 호가 계남(溪南)이며, 부친 휘 일주(壹周)는 호가 봉남(鳳南)으로 통정대부에 올랐고, 모친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덕립(德立)의 따님이다. 공은 정종(正宗) 기유년(1789)에 능주(綾州) 동면(東面) 회덕리(懷德里)에서 태어났다. 풍채와 기골이 뛰어났고, 성품과 기질이 온유하였으며, 부모를 섬기는데 효성이 지극하여 응대하는 것이 공손하였고, 받들어 따르는 것이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스승에게 나아가 《소학》 책을 받아 읽게 되어서는 일상생활의 절도를 하나하나 준수하여 입으로는 비루하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내지 않았고, 손으로는 부잡한 장난을 하지 않았으며, 무릎을 모으고 단정히 않는 모습이 성인처럼 의젓하였으니, 이웃 마을에 사는 통정 대부 이공(李公) 인석(寅錫)이 공의 남다름을 듣고서 딸을 공에게 시집보냈다. 아우들과 우애가 매우 지극하여 재산과 집기를 있거나 없거나 함께하였고, 내외의 친척에게 은덕과 정의가 융성하고 흡족하여 각기 환심을 얻었다. 일찍이 한번은 크게 흉년이 든 적이 있었는데, 대소 가솔이 모두 한 집에 모여 한솥밥을 먹으면서도 집안에 불화가 없었다.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몸이 상할 정도로 슬픔이 깊었고, 수질과 요대를 벗지 않았으며,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고, 온갖 정성과 형식을 한결같이 예법과 제도를 따랐다. 공은 평소에 명예나 이익을 바라지 않았고 평판이나 권세를 추구하지 않았으며 분수에 편안하고 천성에 따라 유유자적하였다. 일찍이 자손들을 경계하여 말하기를, "선(善)을 쌓으면 반드시 훗날 복이 있을 것이고, 불선(不善)을 쌓으면 반드시 훗날 재앙이 있을 것이다. 복과 재앙은 자기 자신이 구하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할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병진년(1856) 2월 5일에 삶을 마치니, 본면(本面) 원산(院山) 임좌 언덕에 장사지냈다. 부인 이씨(李氏)는 정숙하고 온유하였으며 규문의 법도에 빠짐이 없었다. 1남2녀를 두었으니, 아들은 태행(泰行)이고, 딸은 여흥(驪興) 민치호(閔致鎬)와 김해(金海) 김규엽(金圭燁)에게 시집갔다. 태행은 외아들 병임(秉臨)이 일찍 죽어 자식이 없자 종부제(從父弟) 태승(泰勝)의 아들 병현(秉玹)을 데려와 후사로 삼았다. 병현의 아들 정섭(定燮)이 나와 종유(從遊)하였는데, 하루는 대인(大人)의 명으로 가장(家狀)을 안고 와서 한마디 말을 적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오래도록 굳게 사양하였으나 정섭의 요청이 갈수록 간절하기에 삼가 가장에 근거하여 수식하고 윤색하였다.
贈通政大夫德齋尹公遺事
公諱必中。字益瑞。尹氏系出坡平。以麗太師諱莘達爲始祖。文靖公諱執衡。文肅公諱瓘。文獻公諱威。皆其顯祖也。文獻討賊南原。有功食米南原。子孫仍貫焉。至諱萬東。寓綾州。高祖諱商鍚。號愼齋。隱居行義。嘗遇饑歲。替納一鄕之稅。鄉人立碑頌之。贈參判。曾祖諱弘道。通政。祖諱昌宗。號溪南。考諱壹周。號鳳南。通政。妣金海金氏德立女。公以正宗己酉。生綾之東面懷德里。風骨岥嶷。性氣溫裕。事親至孝。應對唯諾。承順如流。就傳授讀小學書。日用節度。一一遵循。口不出鄙悖之言。手不作浮雜之戱。端坐斂膝。偉然如成人。隣里通政李公寅錫。聞其異。以女妻之。與其弟友愛甚至。財產什物。有無共之。內外族戚。恩誼隆洽。各得歡心。嘗遇大無。大小家眷。渾聚一室。同鼎綴食。而庭無間言。遭內外艱哀毀過甚。不脱絰帶。不御酒肉。凡百情文。一遵禮制。平日不慕名利。不遂聲勢。安分任眞。囂囂如也。嘗戒子孫曰。積善必有餘慶。積不善必有餘殃。惟慶惟殃。無非自已求之。何怨天尤人之有。丙辰二月五日考終。葬本面院山壬坐原。齊李氏貞靜溫柔。閫範無闕。舉一男二女。男泰行。女驪興閔致鎬金海金圭燁。泰行有一男秉臨早死無育。取從父弟泰勝子秉玹爲後。秉玹子定燮。從余遊。一日以其大人命抱家狀。有一言之託。余牢辭久之。而定燮之請愈勤。謹据狀以修潤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