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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1
  • 유사(2)(遺事(2))
  • 죽호 민공 유사(竹湖閔公遺事)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1 / 유사(2)(遺事(2))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21.0001.TXT.0004
죽호 민공 유사
공의 휘는 치석(致奭)이고, 자는 윤화(潤華)이며, 호는 죽호(竹湖)로 여흥(驪興) 사람이다. 평장사 휘 영모(令謨)와 상서(尙書) 휘 식(湜), 여흥군(驪興君) 휘 지(漬)가 모두 현조(顯祖)로, 함께 《고려사》에 실려 있다. 우리 조선조에 이르러 휘 회삼(懷參)은 호가 의암(義庵)이고, 유일(遺逸)로 집의(執義)를 지냈으며, 세조조(世祖朝)에 대정현감(大靜縣監)으로 좌천되었다가 풀려나 돌아왔는데, 이로 인하여 능주(綾州)에 거주하면서 자손들이 대대로 이곳에 거주하였다. 이분의 현손(玄孫) 휘 대승(大昇)은 호가 농은(農隱)으로, 봉사(奉事)를 지냈으며, 병자년(1636)에 의병을 창도하여 그 일이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에 실렸으니, 공의 8세이다. 고조의 휘는 제범(濟範)이고, 증조 휘 일신(一臣)은 문학과 행실이 세상에 드러났다. 조부의 휘는 백렬(百烈)이고, 부친의 휘는 진현(振顯)이며, 모친 하동 정씨(河東鄭氏)는 수속(遂續)의 따님으로 문충공(文忠公) 지연(芝衍)의 후손이다. 순묘(純廟) 정해년(1827) 5월 8일에 부춘(富春)의 용두리(龍頭里)에서 공을 낳았다. 공은 바탕이 온화하고 인자했으며, 말하고 침묵하는 데 법도가 있었고 행동거지에 절도가 있어 일찍이 장난하거나 방만한 기색이 없었으며, 몸을 비스듬하게 하거나 한쪽 다리에 의지해 서는 모습이 없어 어린 시절부터 남들이 모두 그를 공경하였다. 부모를 섬길 때에는 효성이 지극하여 뜻과 몸을 봉양하는 것이 모두 갖추지 않음이 없었고, 집상(執喪)할 때에는 한결같이 예법과 제도를 따랐다. 집안사람을 다스리는 데에 도리와 규범이 엄정하였고, 종족을 대함에 있어서는 은덕과 정분이 두루 미쳤으며, 벗들과 교제함에 있어서는 온화함과 공경함이 모두 지극하였다. 무릇 굶주리거나 병든 사람이 있으면 힘이 닿는 대로 도와주어 내버려두지 않았다. 대대로 가학으로 향리의 명가가 되었는데, 공이 이를 계승하고 훈육되어 감히 실추시킴이 없었다. 족숙(族叔) 사애 선생(沙厓先生 민주현(閔胄顯))이 바로 매산(梅山) 홍문경공(洪文敬公 홍직필(洪直弼))의 뛰어난 제자로 학문에 연원이 있었기에 공은 사애를 따라 그 학문의 일부를 들으며 사숙(私淑)의 의리를 붙일 수 있어 학문의 조예가 높고 깊었으며, 명성과 인망이 성대하고 장중하여 당시 사우(士友)들에게 의지함과 우러름을 받았다. 일찍이 격언(格言)이나 중요한 말을 모아 자리의 오른쪽에 붙여두고 스스로를 비추어 살폈고, 또 그 말을 들어서 자제와 제자들을 경계하였다. 계유년(1873) 5월 29일에 세상을 떠났으며, 세청면(世清面) 어촌(漁村) 오른쪽 세동(細洞)의 경좌 언덕에 안장되었다. 부인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재찬(在燦)의 따님으로 정숙하고 유순하였으며, 부인으로서의 법도를 잘 갖추었다. 자녀는 4남1녀를 두었으니, 선호(善鎬)는 백부(伯父)의 양자로 나갔고, 다른 아들은 계호(啓鎬)ㆍ상호(尚鎬)ㆍ창호(昌鎬)이며, 딸은 공주(公州) 이병귀(李秉龜)에게 시집갔다. 손자는 영하(泳夏)ㆍ영은(泳殷)ㆍ영주(泳周)이고, 나머지는 어렸다. 아아, 공은 우리 마을에서 학문과 덕망이 높은 선비로, 효성스럽고 우애스러우며 화락한 행실이나 문학과 시례(詩禮)의 풍모가 마을 자제들의 모범이 되었는데, 수명이 오십도 되지 못하고 갑자기 이 세상을 버릴 줄 어찌 알았겠는가. 옛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오늘을 슬퍼하니 단지 남은 생애의 한이 절실할 뿐이다. 영하가 가장(家狀)을 받들고 와서 후세에 길이 전할 글을 부탁하니, 감히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여 사양하지 못하였다.
竹湖閔公遺事
公諱致奭。字潤華。號竹湖。驪興人。平章事諱令謨。尚書諱湜。驪興君諱漬。皆顯祖也。俱載麗史。至我朝。有諱懷參。號義庵。逸執義。世祖朝謫守大靜縣。放還因居綾州。子孫世居焉。至玄孫諱大昇。號農隱官奉事。丙子倡義旅。事載節義錄。於公爲八世。高祖諱濟範。曾祖諱一臣。文行著世。祖諱百烈。考諱振顯。妣河東鄭氏遂續女。文忠公芝衍後。純廟丁亥五月八日。生公于富春之龍頭里。天資溫仁。語默有常。動靜有節。未嘗有戱嬉放慢之色。傾側跛倚之容。自在髫齡。人皆敬之。事親至孝。志體之養。無不畢給。執喪要遵禮制。御家人倫理嚴正。待宗族恩誼淶洽。接朋友和敬備至。凡有饑饉疾戚。隨力扶恤。未有關遺。世以詩禮爲鄕里名家。公承襲擩染。無敢失墜。族叔沙厓先生。卽梅山洪文敬公高第弟子也。學有淵源。公從沙厓得聞其緖餘。以附私淑之義。造詣崇深。聲望隆重爲。一時士友所倚仰。嘗聚格言要語。貼于座右。以自鏡考。又舉以戒子弟及生徒。癸酉五月二十九日考終。葬世清面漁村右細洞庚坐原。配密陽朴氏在燦女。貞靜柔嘉。閫儀甚備。四男一女。善鎬出爲伯父后。啓鎬尚鎬昌鎬。女適公州李秉龜。孫男泳夏泳殷泳周。餘幼。嗚呼。公吾鄉先進宿儒也。其孝友愷悌之行。文學詩禮之風。爲鄉子弟所矜式。豈知壽未半百而遽棄斯世也耶。緬古傷今。只切餘生之恨。泳夏奉家狀。有不朽之託。不敢以非其人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