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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0
  • 유사(遺事(1))
  • 계암 조공 유사장(溪庵曺公遺事狀)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0 / 유사(遺事(1))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20.0001.TXT.0017
계암 조공 유사장
공의 성은 조(曺), 휘는 학신(學臣), 자는 내권(乃權), 호는 계암(溪庵)이다. 휘 계룡(繼龍)은 진평왕(眞平王)의 공주(公主)주 108)와 혼인하여 창성군(昌城君)에 봉해졌고, 이로 인하여 창녕(昌寧)을 관향(貫鄕)으로 삼았으니 바로 그 시조이다. 신라에서부터 고려까지 뛰어난 공훈과 현달한 벼슬이 대대로 끊어지지 않았다. 우리 조정 초에 이르러 휘 서(庶)는 시호가 청간(淸澗)이고 벼슬은 직제학(直提學)으로, 사명(使命)을 받들어 상국(上國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고황제(高皇帝 주원장(朱元璋))가 특별히 총애하여 도핵배(桃核杯)를 하사하였다.주 109) 6대를 전해 내려와 휘 국병(國柄)은 제용감 정(濟用監正)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능성(綾城)에 살았고, 자손들이 대대로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고조 휘 봉인(鳳人)은 호가 동파(桐坡)이고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문행(文行)으로 널리 알려졌고 유집(遺集)이 있다. 증조의 휘는 동근(東覲)이고, 조부의 휘는 현묵(賢默)이며, 부친의 휘는 명화(命貨)이다. 모친 흥덕 장씨(興德張氏)는 장한봉(張漢鳳)의 따님으로 규문의 법도가 순수하게 갖춰졌으니, 순조 12월 20일에 청계리(淸溪里)에서 공을 낳았다. 공은 타고난 자질이 순후(淳厚)하고 활달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장난을 좋아하지 않고 다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날마다 곁에서 어버이를 모시면서 응대하고 대답하며 잘 받들어 따르기를 흐르는 물처럼 하였으며, 맛있는 것을 구하면 입에 넣지 않고 반드시 소매 속에 넣어 가지고 와서 드렸다. 스승에게 나아가 수업을 받을 때 번거롭게 지휘 감독하지 않았는데도 문리(文理)가 날로 진보하였고, 약관에 널리 제가(諸家)를 섭렵하여 사조(詞藻 시가(詩歌)나 문장)가 문채 나고 아름다웠으며, 집상(執喪)할 때 애훼(哀毁)하여 죽을 먹고 물을 마셨으며, 삭망(朔望)마다 성묘하여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그만두지 않았다. 형제 3인이 우애가 매우 돈독하였으니, 산을 매입하여 과일나무를 심고 못을 파서 고기를 길러서 부모가 살아 있을 때에 이로써 봉양을 올렸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이로써 제수를 올렸다. 늘그막에 청계(淸溪) 가의 한 구역에 정사(精舍)를 지어 그 편액에 '벽류(碧流)'라고 쓰고, 사촌 형제들과 밤낮으로 서로 마주 대하면서 즐겁게 지내는 정을 다하였다. 또 집안 자제와 마을의 수재를 모아 학업을 익히게 하자, 사방의 친구들이 그 일을 노래하여 화답하였다. 평소에 삼가고 경계함으로 몸가짐을 하였고, 근검으로 집안을 다스렸으며, 공손함과 용서함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였다. 자손을 가르칠 때 덕이 있는 자를 친근하게 하여 절차(切磋)의 유익함이 있게 하고자 하였다. 일찍이 자식을 가르치는 시를 짓고 말하기를, "이미 옛것을 익히고 또 새것을 알아야 하니[旣溫其故又知新], 성인 되고 우자 되는 건 본디 자신에게 달려 있다네.[爲聖爲愚自在身] 그 가운데 진실하고 분명한 곳을 알고자 한다면[欲識箇中眞的處], 내가 어른을 어른으로 존경하는 것과 친척을 친히 하는 것을 밝혀야 할 것이다.[明吾長長與親親]"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그 마음속에 보존된 것을 알 수 있다. 계사년(1893) 4월 12일에 졸하여 천운산(天雲山) 아래 부임(負壬)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부인 함안 윤씨(咸安尹氏)는 윤성연(尹聲淵)의 따님으로 부덕(婦德)이 모두 지극하였고 4남 3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인승(仁承)·의승(義承)·예승(禮承)·지승(智承)이고, 딸은 광산(光山) 이동호(李東鎬)·하동(河東) 정장현(鄭章鉉)·양성(陽城) 이봉기(李鳳基)에게 출가했다. 손자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아, 누적한 행실과 풍부한 재능이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세상에 시험되지 못하여 빛을 숨기고 아름다움을 속에 품은 채 멀리 황량하고 누추하며 적막한 물가로 훌쩍 떠나버렸으니, 공의 입장에서는 진실로 손상될 것이 없지만 이 세상에 있어서는 어떠하겠는가. 내가 동향(同鄕)에 있으면서 미적거리고 일이 많아 미처 찾아뵙지 못했는데 갑자기 영원히 이별하였다. 노년에 비로소 공의 유장(遺狀)을 구해 읽었는데, 간절하게 추앙하는 마음이 더욱 절실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생(李生) 승복(承福)은 바로 공의 외손으로 나와 종유(從遊)했는데, 공의 큰아들이 낳은 손자 병규(秉圭)의 명으로 나에게 행실을 기록하는 글을 요청하였다.
주석 108)진평왕(眞平王)의 공주(公主)
신라 진평왕의 장녀로, 후에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된 덕만 공주(德曼公主)를 말한다.
주석 109)사명(使命)을……하사하였다
1398년(태조7)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명나라 황제를 만나 공물(供物)을 줄여줄 것을 요청했다가 참소를 당해 수년간 금치국(金齒國)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그 뒤 명나라 황제는 강직한 충절에 탄복하여 사면해주었고, 복숭아 씨앗에 금과 은으로 상감(象嵌)해서 만든 도핵배를 하사품으로 내려주었다. 《高麗列朝登科錄》
溪庵曺公遺事狀
公妣曺。諱學臣。字乃權。號溪庵。有諱繼龍。尙眞平王公主。封昌城君。因以昌寧爲貫。卽其始祖也。自羅至麗。名勳達爵。奕世不絶。至我朝初。有諱庶。號淸澗官直提學。奉使上國。高皇帝寵異之。賜桃核盃。六傳而諱國柄。濟用監正。退寓于綾城。子孫世居焉。高祖諱鳳人。號桐坡中司馬。文行著聞。有遺集。曾祖諱東覲。祖諱賢默考諱命貨。妣興德張氏漢鳳女。閨範純備。以純廟十二月二十日。生公于淸溪里。姿稟淳厚開爽。自幼不好戱美。不好爭競。日侍親側。應封唯諾。承順如流。得一味不入口。必袖而供之。就傳受業。不煩提督而文理日就。弱冠博涉諸家。詞藻斐蔚。執喪哀毁。啜粥飮水。朔望省掃。風雨不廢。兄弟三人。友愛純篤。買山種果。鑿池蓄魚。親在以供其養。親沒以供其奠。晩年築一區精舍於淸溪之上。題其顏曰碧流。與群從昆季。日夕相對。以盡湛樂之情。又聚門子弟村秀才。使肄業。四方知舊歌其事而和之。平居持身謹勅。御家勤儉。接人恭恕。敎子孫。欲其親近有德。俾有切磋之益。嘗有訓子詩曰。旣溫其故又知新。爲聖爲愚自在身。欲識箇中眞的處。明吾長長與親親。此可以見其所存矣。癸巳四月十二日卒。葬天雲山下負壬原。配咸安尹氏聲淵女。婦德備至。生四男三女。男仁承義承禮承智承。女適光山李東鎬河東鄭章鉉陽城李鳳基。孫以下不錄。嗚呼。有積累之行。贍富之才。而不見知於人。不見試於世。潛光含章。遐擧遠引於荒陋寂寞之濱。在公固無加損。而在斯世爲何如也。余在同鄕。因循多故。未及拜床。而奄隔千古。衰暮之日。始得其遺狀而讀之。區區追仰之情。尤切罔喩。李生承福。卽公之外孫。而從余遊。以其長房孫秉圭命。謁誌行之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