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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0
  • 유사(遺事(1))
  • 희암 처사 조공 유사장(希庵處士趙公遺事狀)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20 / 유사(遺事(1))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20.0001.TXT.0016
희암 처사 조공 유사장
공의 휘는 두열(斗烈), 자는 의지(義之), 호는 희암(希庵)이니, 조씨는 계통이 함안(咸安)에서 나왔다. 중엽에 휘 승숙(承肅)주 105)은 세상에서 덕곡 선생(德谷先生)이라고 불렀고, 고려가 망하자 망복(罔僕)주 106)하였다. 우리 조정에 들어와 휘 종례(從禮)는 호가 율정(栗亭)이고 벼슬은 직제학(眞提學)이며, 휘 림(琳)은 호가 신재(愼齋)이고 대사성(大司成)을 지냈으니, 모두 세상에 이름이 높이 드러난 선조이다. 참봉(參奉) 휘 희광(希匡)이 동복(同福)에 거주하였고, 4대를 전해 내려와 감정(監正) 휘 옥생(玉生)이 능주(綾州)에 거주하여 자손들이 이로 인해 이곳에 살게 되었다. 증조 중국(重國)은 통정(通政)을 지냈고, 조부는 달운(達運)이며, 부친은 시복(時福)이니 대대로 문행(文行)이 있었고, 모친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김광수(金光洙)의 따님이다. 공은 정조 정유년(1777)에 능주 오산리(鰲山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 다녔고 학문의 과정은 가정의 가르침을 따랐다. 점차 성장하면서 고을의 사우(士友) 가운데 어진 자를 좇아 종유하여 강구하고 연마하여 스스로 넓혀나갔다. 효우의 행실이 가정에 드러났고 돈독한 친목의 풍조가 종족에게 알려졌으며, 곤궁한 사람을 도와주고 재난과 환난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으니, 자상하고 측달(惻怛)함이 두텁지 않음이 없었다. 집 한 채를 지어 '망미(望美)'라고 편액하여 걸고, 오직 은은하게 날로 닦되 남이 알아주는 것을 구하지 않는 것으로서 궁극적인 계획을 세웠으며, 생도들을 가르칠 때에 과조(科條)가 찬연했다. 때로 좋은 손님 및 벗과 함께 시냇가와 산, 바람과 달 사이에서 술잔을 들고 시를 읊으며 놀며 마음을 시원하게 펴면서 유연(悠然)히 세속에서 벗어난 모습이 있었다. 중년에는 한가한 날에 병학(兵學)을 섭렵하여 대략 대치(大致)를 알았지만 또한 시험해보지 못했다. 철종 병진년(1856) 7월 28일에 고종명하여 산음(山陰) 후록(後麓) 유좌(酉坐)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부인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조광인(曺光仁)의 따님으로 5남 2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용희(鏞熙)·용기(鏞起)·용직(鏞直)·용순(鏞珣)·용후(鏞厚)이고, 사위는 광산(光山) 이장휘(李章徽)와 공주(公州) 이문현(李文現)이다. 손자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주역》에 "선(善)을 쌓은 집에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주 107)"라고 하였으니, 자손의 남은 복록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공의 장손 조익제(趙翼濟)는 훌륭한 선비이고, 그의 사촌 형제와 여러 자질(子侄)도 모두 근칙(謹勅)한 사람들이니, 이는 공이 선을 쌓은 데 대한 보답이 아니겠는가. 내 생각에 조씨의 가문에 반드시 번창하고 성대할 날이 있을 것이다.
주석 105)조승숙(趙承肅)
1357~1417. 본관은 함안(咸安)이고, 자는 경부(敬夫)이며, 호는 덕곡(德谷)이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이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교수정(敎授亭)을 짓고 두문불출하면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많은 영재를 배출시켰다. 저서로는 《덕곡집(德谷集)》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주석 106)망복(罔僕)
망국의 신하로서 의리를 지켜 새 왕조의 신복(臣僕)이 되지 않는 절조를 말한다. 《書經 微子》
주석 107)선(善)을……있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나온다.
希庵處士趙公遺事狀
公諱斗烈。字義之。號希庵。趙氏系出咸安。中葉有諱承肅。世稱德谷先生。麗亡罔僕。我朝有諱從禮。號栗亭官直提學。諱琳。號愼齋大司成。皆顯祖也。諱希匡參奉。寓居同福。四傳至諱玉生。監正。寓綾州。子孫因居之。曾祖重國通政。祖達運。考時福。世有文行。妣光山金氏光洙女。正廟丁酉。公生于州之鰲山里。幼而就塾。學問課程。遵循庭訓。稍長。從鄕裏士友之賢者。遊從講曆。以自展拓。孝友之行。著於家庭。敦睦之風。聞於宗族。賙窮賑匱。赦災恤患。慈詳惻怛。無不款洽。築一室。揭顏以望美。惟以闇然日修。不求人知爲究竟計。訓迪生徒。科條燦然。時與佳賓良朋。觴詠遊暢於溪山風月之間。悠然有出塵之標。中年以餘日。涉獵兵學。略曉大致。而亦未有所試。哲宗丙辰七月二十八日終。葬山陰後麓酉坐原。夫人昌寧曺氏光仁女。生五男二女。鏞熙鏞起鏞直鏞珣鏞厚。光山李章徽公州李文現。孫以下不錄。易曰。積善之家。必有餘慶。觀子孫之餘祿。而其人可知。公之長孫翼濟善士也。其群從諸子侄。皆謹勅人也。此非公積累之報耶。余謂趙氏之門。必有昌大之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