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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9
  • 전(傳)
  • 김효자전(金孝子傳)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9 / 전(傳)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9.0002.TXT.0010
김효자전
김효자(金孝子)의 휘는 기원(基源), 자는 군진(君眞), 호는 심헌(心軒)으로 계파는 김해(金海)에서 나왔다. 고(故) 충신 염헌공(淡軒公) 김극검(金克儉)주 187)의 후손이며, 효자 참봉 김선(金銑)의 7세손이다. 일찍 어버이를 여의고 집안살림이 가난하여 시서(詩書)를 공부할 방도가 없었지만, 천성이 유순하고 신중하여 홀어머니를 섬김에 매우 효성스러웠고, 산에서 나물을 캐고 물에서 고기를 낚아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였으며, 몸을 삼가고 집안을 잘 다스려 그 뜻을 받들었다. 어머니가 병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걷고 크게 웃지도 않으면서주 188) 한데에서 기도를 올리고 약을 먼저 맛보며주 189) 지극히 근심하였다. 하루는 병이 위독해지자 마침내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이미 끊어진 목숨을 되살아나게 했다. 초상을 당해서는 애통해 하고 슬퍼함이 지극한 정성에서 우러나와 이웃 마을 사람들이 이를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종제 중 한 사람이 일찍이 그의 땅을 몰래 팔아먹었는데, 효자는 그 어머니가 들어서 알까 두려워 숨기고 말하지 않았다. 얼마 뒤에 어머니가 들어서 알고는 밥상을 마주하고 드시지 않았다. 효자는 남몰래 스스로 돈을 빌려 값을 지불하고 땅을 돌려받았는데, 어머니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전날에 몰래 팔아먹었다고 한 것은 헛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표형(表兄)이 하루는 집에서 기르던 소를 빼앗아 가자 어머니가 또 밥상을 마주하고 드시지 않았다. 효자가 이에 쫓아가 잡고는 본래의 값만큼 형에게 주고서 소를 끌고 돌아와 어머니의 뜻을 위로하고 기쁘게 해드렸는데, 또 소 값을 지불한 연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종제와 표형 대하기를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얼마 뒤 종제가 의지할 곳 하나 없자 효자가 집을 경영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생업에 종사하게 했다. 또 한 친척이 공포(公逋, 국가의 재물을 사사로이 소비함)를 범함이 적지 않으니 효자가 타일러 말하기를, "내가 비록 집이 가난하나 마땅히 3분의 2를 갚아줄 것이니 그 3분의 1은 네가 일찌감치 마련하여 관청의 독촉을 받지 않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다. 하루는 밖에서 돌아오니 관리가 이미 잡아간 것을 알고는 효자가 즉시 쫓아가 관가의 뜰에 이르자 바야흐로 엄중한 장형을 당하고 있었는데, 효자가 울부짖으며 간절히 빌며 말하기를, "기간을 어긴 죄는 나에게 있고 저 사람에게 있지 않으니 그 곤장을 나누어 받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관리가 물어서 기특하게 여겨 특별히 그 기한을 늦추어 주니 효자가 힘을 다해 빌려서 그 3분의 1까지도 모두 지급하였다. 그 마음을 미루어 나가 붕우와 향당에 이르기까지 그들과 더불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이해를 다투지 않으며 화락하고 온화하였으므로 모두 그들의 환심(歡心)을 얻었다. 외사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독서하고 학문하는 근본 목적은 자신을 수양하여 행함에 이롭게 하고자 하는 것인데, 겉치레만 숭상하는 폐해가 날로 많아져 진솔한 정이 날로 침체되었다. 효자처럼 가난하고 누추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여 글을 읽고주 190) 종유할 방도가 없는데, 일찍이 스스로 깨달아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 효순한 자식이 되고, 형제들 간에 있어서는 돈독하고 화목한 사람이 되며, 향려(鄕閭)에 있어서는 충신한 선비가 된 분으로 말하자면, 어찌 지금사람이면서 옛 사람이 아니겠으며, 배우지 않고도 배움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떳떳한 본성이 아름답게 여기는 바에 향리(鄕里)의 천거와 사림(士林)의 보답이 한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인 것이 당연하다.
주석 187)김극검(金克儉)
1439~1499.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렴(士廉), 호는 괴애(乖崖)이다. 문장에 능했고 성품이 청렴결백했다. 《대조실록(世祖實錄)》ㆍ《예종실록(睿宗實錄)》ㆍ《성종실록(成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호조 참판(戶曹參判)ㆍ동중추부사(同中樞府事) 등을 지냈다.
주석 188)조심스럽게……않으면서
부모가 병환이 있을 때, 행동을 경계한 말이다. 《예기(禮記)》 곡례(曲禮)편에, "행불상 소부지신(行不翔笑不至矧)"이라 하여, "다닐 때에도 조심하여 나는 듯이 걷지 말고 웃어도 잇몸이 드러나지 않도록, 즉 크게 웃지 않는다."고 하였다.
주석 189)약을 맛보며
원문의 '상약(嘗藥)'은 약을 맛본다는 뜻으로 부모님이 병환이 있어 약을 드실 경우 자식이 그 약성을 시험하기 위하여 먼저 약을 맛보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 하(曲禮下)〉에, "임금이 병이 들어 약을 먹을 경우에는 신하가 먼저 맛보고, 부모가 병이 들어 약을 먹을 경우에는 자식이 먼저 맛본다.[君有疾, 飲藥, 臣先嘗之, 親有疾, 飲藥, 子先嘗之.]"라고 하였다. 즉 어버이를 정성껏 효도로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주석 190)글을 읽고
《예기》 〈학기(學記)〉에 "오늘날 가르치는 자들은 그 글자만 보고 웅얼거릴 뿐이다.[今之敎者 呻其佔畢]" 하였다. 신(呻)은 음(吟)의 뜻이고 점(佔)은 시(視)의 뜻이고 필(畢)은 간(簡)의 뜻이니, 오늘날 경서를 가르치는 스승들은 경서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단지 간편(簡片)에 있는 글자만 보고 송독(誦讀)하여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말이다. 대개 '점필'은 글의 내용은 모른 채 입으로만 송독한다는 다소 부정적인 뜻인데, 후세에는 글을 송독하는 것을 범칭하는 말로 쓰였다. 여기서는 '송독'의 뜻으로 쓰였다.
金孝子傳
金孝子諱基源。字君眞。號心軒。系出金海。故忠臣淡軒公克儉后。孝子參奉銑七世孫也。早孤貧。居寓甚僻。無詩書遊業之方。而天性馴謹。事偏慈甚孝。採山釣水以供其旨。謹身克家以奉其志。有疾則不翔不矧。露禱嘗藥。極其致憂。一日疾劇。遂嚼指注血。以甦旣絶之命。及遭艱。哀傷慘怛。出於至誠。隣里聞之。莫不釀涕。有一從弟。嘗竊賣其土。孝子恐其母氏聞之。匿不以言。頃之母氏聞之。對案不食。孝子乃潛自稱貸。給價還土。而告于母氏曰。前日之竊賣云者是浪言也。其表兄一日攘家牛而去。母氏又對案不食。孝子乃追而得之。依價與兄。牽牛而還。以慰悅親意。而又不言給價之由。然待從弟與表兄。與平時無異。旣而從弟蕩然無依。孝子爲營室屋。使之安業。又有一族親。犯公逋不少。孝子諭之曰。吾雖貧。當報三分之二。其一汝宜早辦。毋見官督也。一日自外還。見官吏已捉去矣。孝子卽時追去至官庭。方被嚴杖。孝子號泣懇乞曰。愆期之罪。在我不在彼。願分受其杖。官問而奇之。特寬其限。孝子盡力假乞。倂其三分之一而給之。推而至於朋友鄕黨。不與之較曲直。不與之爭利害。而愷悌溫良。皆得其歡心焉。外史氏曰。讀書學問本欲修身利行。而文弊日繁。眞情日替。若孝子生長於艱難朴陋之中。寡佔畢遊從之方。而早自開悟。事父母爲孝順之子。處兄弟爲惇睦之人。在鄕閭爲忠信之上。豈非今人而古人。無學而有學耶。秉彛攸好。鄕里之薦。士林之報。宜其不一而多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