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9
  • 전(傳)
  • 동지돈녕부사 영헌 조공전(同敦寧瀛軒曺公傳)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9 / 전(傳)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9.0002.TXT.0006
동지돈녕부사 영헌 조공전
영헌(瀛軒) 조공(曺公)의 휘는 석우(錫祐)이며, 자는 찬경(燦卿)이다. 고려조 평장사 문충공(文忠公)인 휘 용기(用奇)가 그의 중조(中祖)이다. 휘 극인(克仁)에 이르러 우리 단종 조에 흥양(興陽)으로 은둔하였으므로 자손들이 여기에 그대로 살았다. 증조 명상(命祥)은 사헌부 장령에 증직되었고, 조부 윤승(允承)은 호조 참의에 증직되었으며, 아버지 순진(順振)은 공조 참판에 증직되었는데 세상에 행의가 드러났다. 어머니 정부인(貞夫人) 여산 송씨(礪山宋氏)는 광우(光佑)의 딸로 부덕을 순수하게 갖추었으며, 순조 임진년(1832, 순조32) 2월 7일에 공을 낳았다. 공은 어려서부터 지극한 성품을 지녀 공손히 응대함과 나아가고 물러남이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몸이 바짝 마르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끝없이 슬피 울부짖으니 이웃이 모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부친을 섬길 적에 더욱 정성을 다하여 입고 먹는 물질적인 봉양과 마음으로 뜻을 받드는 봉양에 극진히 하지 않음이 없었다. 부친이 병환이 있을 때 근심을 다하였고 대변의 달고 씀을 맛보아 병세의 덜하고 더함을 징험하기까지 하였다. 부친의 상을 당하여서는 이미 기애(耆艾)주 164)의 나이인데도 몸을 지나칠 정도로 훼손하였고, 여막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3년을 마쳤다. 이를 미루어서 친척과 붕우에게까지 은혜와 의리가 모두 지극하여 각각 환심을 얻었다. 고을과 도내의 인사(人士)들이 공을 효성스럽고 청렴함으로 천거하니 금상(今上) 임진년(1892, 고종9)에 사헌부 감찰에 임명되었고, 계사년(1893)에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으로 승진하였으며, 갑오년(1894)에 돈녕부 동돈녕(敦寧府同敦寧)으로 승진하여 3대가 추증을 받았다. 경자년(1900) 10월 3일에 생을 마쳤다. 5남을 두었는데, 경수(暻洙)·흥수(興洙)·인수(仁洙)·문수(文洙)·기수(錤洙)이다. 외사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고에는 질박함주 165)이 흩어지지 않고 인문(人文)이 번잡하지 않았기 때문에 풍속이 순후(醇厚)하고 간략하며, 백성들이 오복(五福)을 누리는 것주 166)이 두터웠으나 속임수와 간교함이 날로 더욱 무성하여서는 재앙이 일어났다. 공의 평소 행적을 살펴보니 질박하고 성실한 천성을 온전히 하여 꾸미거나 모방하는 뜻이 있지 않았으니 또한 지금 사람이면서 옛 사람이라 이를 만하다. 후대 자손이 번성하고 작위와 은총이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는 선을 닦아봐야 이로울 것이 없고 악을 행해도 해로울 것이 없다고 여기는 자에게 경계가 될 만하다.
주석 164)기애(耆艾)
노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60세를 기(耆)라 하고, 50세를 애(艾)라 한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50세를 애(艾)라 하니 관복을 입고 정사에 참여할 수 있으며, 60세를 기(耆)라 하니 사람들을 부릴 수 있다.[五十曰艾, 服官政, 六十曰耆, 指使.]"라고 하였다.
주석 165)질박함
원문의 '대박(大樸)'은 원시(原始) 상태의 질박한 대도(大道)를 말한다.
주석 166)오복(五福)을 누리는 것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의 물음에 대답하여 지은 홍범구주(洪範九疇) 가운데 아홉 번째가 "향함을 오복으로써 한다[嚮用五福]"이다. 여기서 오복(五福)은 장수[壽], 부유함[富], 강녕함[康寧], 덕을 좋아하는 것[攸好德], 늙어서 편히 죽는 것[考終命]을 가리킨다. 《書經 洪範》
同敦寧瀛軒曺公傳
瀛軒曺公諱錫祐。字燦卿。麗朝平章事文忠公諱用奇。其中祖也。至諱克仁。際我端宗朝。遯于興陽。子孫仍居焉。曾祖命祥贈司憲府掌令。祖允承贈戶曹參議。考順振贈工曹參判。世著行義。妣貞夫人礪山宋氏光佑女。婦德醇備以純廟壬辰二月七日生公公幼有至性唯諾進退。有異凡兒。早喪所恃。毁瘠骨立。哀號罔極。隣里莫不感涕。事嚴庭。尤盡其誠。口體之奉。心志之養。無不備至。親有疾。極其致憂。至嘗糞甛苦。以驗差劇。及遭艱。年已耆艾。而致毁過甚。廬墓泣血。以終三年。推以至於族戚朋友。恩義兼至。各得歡心。鄕道人士。薦公孝廉。今上壬辰。除司憲府監察。癸巳陞敦寧府都正。甲午陞敦寧府同敦寧。追榮三世。庚子十月三日終。五男。曰暻洙興洙仁洙文洙錤洙。外史氏曰。上古大樸未散。人文未繁。是以風俗醇厚簡質。而民所以嚮用吾福者厚矣。及其變詐巧僞。日以益繁。而灾孽作矣。迹公平日之行。有以全其質實忠慤之天。而未嘗有表襮依樣底意。亦可謂今人而古人矣。祚胤之蕃衍。爵寵之煒煌。不亦宜乎。此可爲謂善無益謂惡無傷之者戒也耳。